내일도 전국 대부분 지역이 영하로 떨어진다고해요 경상권은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내일도 전국 대부분 지역이 영하로 떨어진다고해요 경상권은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너무 재밌는데 입안 뜯을때 피가 진짜 맛없어요ㅜㅜ이런분 계시나요
최대한, 노력해서 이길려고 해도, 죽고싶다는 생각만 들어요. 자격증 시험 준비, 학원, 일정 틀어질 때 생기는 스트레스, 인간 관계 스트레스, 옛날에 했던 흑역사, 자괴감, 많은 실수 등 이런 스트레스가 저를 무너뜨릴 정도로 심하게 받습니다. 무너지면 무너질 수록 더 잘 무너지고, 우는 날이 많아지더라고요. 제가 감당 할 수 없는 무게인 것 같다고 판단 했지만, 뭐 할 수가 없어 짊어지고 가야 됩니다. 어떡하죠. 저
언제 혹시 누군가하고 같이 앉아서 하고싶은 얘기들을 맘껏 할수 있을까?
친구랑 문자나 의사소통할 때 제가 대화의 문맥을 이해하는게 힘들어요.. 친구가 ”??“ 이런식으로 물음표를 보내거나 할 때 내가 또 문맥을 잘못이해했나 싶어서 더 긴장하고 생각하게돼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자존감도 낮아지고 친구를 만나기도 두려워지더라고요ㅠ 제가 지능이 낮은걸까싶은 생각이 들면서 인정하고 싶지가 않아요. 그냥 간단한 대화도 정보를 처리하는데 오래 시간을 쓰려고 해요. 혹시나 실수할까봐, 덤벙될까봐요. 친구를 만나도 즐겁지가 않고 긴장해서 힘들어요. 저를 무능한 친구로 인식할까봐 그게 가장 겁나는것 같아요. 대화를 하다가 제가 주제를 트는 경우도 있고 순간 아차!하면서 자책하게 돼요. 그냥 순간순간이 저를 돌아보고 통제하려고 하니까 진짜 혼자있고 싶어요. 밖에나가면 모든 에너지란 에너지는 다 쓰고 돌아오니까 집에 오면 녹초가 되고 제가 실수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요. 피곤합니다ㅠ 그렇다고 친구를 아예 안만날 수도 없고. 제가 친구한테 끌려다니는건가 싶기도 하고… 또 제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친구에게 했어요. 엄마가 베트남분이고 이혼가정이라고… 사람은 고정관념이라는게 조금씩 있기때문에 혹시나 친구가 나를 전과 다르게 무시하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들어요. 또 제가 대화의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는게 다문화가정이라서 그런것이라고 생각할까봐도 두려워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21년을 살았는데요… 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것과 그것들로 인해 너무 고통받아요. 어떻게 하면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을까요? 친구들 반응 하나하나에 조금씩 무너지는 제 자신이 참 안 그러고 싶은데 힘드네요.
특정인이 결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누명씌우는 학폭 가해자들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돌아가고플 만큼 행복하고 그리운 때가 단 한 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믿어서 거기에 끌려가는게 아니라 지혜를 믿어서 지혜에 끌려가야 된다. 인간은 정말 추하고 악하다. 거기에 마음 걸고 기대 거는 건 나를 혹사***는 일이다. 그러니 지혜에 마음을 걸고 지혜롭게 살아가자. 지혜는 나를 살린다. 내 편이다
사회생활 하다보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생기니 미움받을 걸 두려워 하지 말고 소신대로 살아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변명삼아 고집불통의 사람이 된다면 그건 또 틀린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균형은 어떻게 맞춰야 할까요?
이제 좀 괜찮아진다 싶었더니 다시 안좋아졌네 학원때문에 친구사이는 점점 틀어지고 숙제때문에 맘 편히 쉬어본적도 없고 가족들은 다 나한테만 짜증내고 꼽주고 2026 1.2일에 죽으려고 2년 전에 계획 세워났는데 이런 삶에도 그나마 위로가 되는 존재들이 있다는 생각에 우리 오빠 대학 갈때까지만 살아있기로 생각했어
죽고싶다...살기싫어ㅠ
이 ㄱ같은 학원때문에 친구사이 틀어짐 친구들은 놀자는데 난 학원 숙제때문에 안됀다고 말했다가 ***먹음
이해해주려다보면 악인까지 이해하려는 순수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놈들은 이해받든 안받든 신경도 안쓰고 자기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이해는 이해해줄필요가 있는 약자에게 하는게 맞다. 나의 이해심을 남용하지 말라. 나는 소중하다
계속 후회만 밀려오고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어찌할 수 없는 거 알면서도 후회감이 몰려와요
어릴 때부터 언니에게 신체적 폭력과 감정적 괴롭힘을 많이 당했습니다. 옷걸이로 머리를 때리거나, 얼굴을 꼬집고, 주먹으로 때리고, 싸대기를 맞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제일 친한 친구 앞에서도 저를 때린 적이 있어 그 친구도 지금까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또 사람들 앞에서 저를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는 말도 자주 해서 어릴 때부터 자존감이 많이 무너졌습니다. 성인이 된 뒤에도 관계는 계속 힘들었습니다. 언니는 2021년부터 2023년 6월까지 꾸준히 돈을 요구했고, 50만 원, 100만 원씩 보내다 보니 최근 계산해보니 총 1,500만 원 정도가 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언니는 영수증을 조작해서 실제보다 많은 금액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또 기초생활수급자로 주거급여를 받고 있으면서도, 저에게 월세를 이중으로 받았어요 제가 결국 “나도 생활이 힘들어서 더는 못 줘요”라고 말하자 언니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난 너랑 더 이상 연락 안 하고 살 거야.” 라고 말하고 저를 차단했습니다. 언니의 금전 요구를 한적이 있어요 언니가 에어팟을 갖고 싶다며 저에게 “너 남자친구한테 물어봐서 사줄 수 있는지 알아봐 줄 수 없겠냐”고 했고, 만약 남자친구가 사준다 하면 그걸 본인이 가지겠다고 요구했습니다. 이런 부탁을 들을 때마다 정말 당황스럽고 큰 부담을 느꼈습니다. 저는 언니에게 어떤 피해도 준 적 없는데 어릴 때의 학대부터 성인이 된 후의 금전 요구, 영수증 조작, 사람들 앞에서의 무시, 타인을 통한 요구까지 계속 당해온 것 같아 너무 억울하고 마음도 많이 힘듭니다. 이런 상황이면 고소를 하는 게 맞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조언이 필요합니다.
강의가 사실 다음 게 39분 다다음 거는 78분이에요 그래서 78분을 먼저 듣고 39분으로 돌아오려고요ㅋㅋ 기출이라 차근차근 안 나가도 돼요 뭐 하나 끝나면 얘기할게요 아침에 일어나서 무인카페 가서 공부하고 아침 먹고 좀 자고 강의 나머지 좀 더 들었어요 점심도 좀 늦게 먹었어요 두개만 일단 더 들어보고.. 그러고 솔직히 더 듣고 싶긴 해요 그거는 컨디션 좀 보고요 지금 세시반이라 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이 얼마 안 됐어요 답답할 때는 카페도 많이 가요 사람 있으면 옮겨야 돼서 그렇긴한데 답답할 때는 카페 만한 곳이 없어요 저번에 언니 생일 때 간 카페가 되게 좋았거든요 커피는 4-5000원 해도 진짜 사장님이 장인정신으로 내리시더라고요 ㅋㅋ 올해 마셔본 커피 중에 제일 맛있었어요 근처였으면 자주 갔을텐데 걸어서 2-3km 거리라 쉽게 가기가 힘드네요 나중에 친구가 놀러 오면 한번 데려가고 싶어요 보통은 다 역 주변에서 만나다보니까 그게 좀 힘들어요 아 진짜 맛있는 커피 마시고 싶다 일단 또 나갔다 올게요 ㅋㅋ
현실이 일이안풀리고 이러니까 자꾸 옛날 생각이나고 과거로 돌아가고싶고 후회돼요 자기 혐오도 생기는거같고
난 죽어도 대학 두번 다시는 안갈거다. 아니..죽고 싶었다. 상담사 앞에서는 괜찮다고 말해도 사실은 하나도 안괜찮고 매일 불안에 떨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뭐가 나한테 맞는건지 뭘해야 하는건지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정답같은게 없었을수도 있을거다. 아니면 내가 못찾았을수도 있다..어떻게 찾는지 몰라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 날들이 많이 있었다. 남들은 잘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아닌것 같다.. 아니면 남들도 나처럼 힘들어하고 있는데 겉으로는 티를 안내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내기 싫은걸수도.. 나는 항상 상담사님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 아니..거짓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 약을 적게 주니까 아니면 약이 계속 늘어난다..나는 그게 싫었다. 부모님은 나보고 괜찮아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부모님 시점에서 보았을때 이다. 내 시점에서는..전혀 하나도 안괜찮다. 아니 괜찮을리가 없다. 내가 살아 있는 이상 괜찮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을 다해서 내 온힘을 다해서 지금까지 버티고 견디고 살아왔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아무도 모를것이다.. 오직 나만..알수 있었다..왜냐 내가 겪었으니까..나만 그 고통을 아픔을 알수 있었다. 그 누구도 아무도 손 냄ㄹ어 주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손 내밀에 달라고도 안했다. 그냥..나를 무시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불안이랑 같이 산지 3년째이다. 이제는 포기했다. 내가 우울증을 극복할수 없을거라고 확신한다 아니 믿는다. 절대 우울증을 나는 극복할수 없다. 병원에서는 ADHD 불안장애라고 하는데 그딴거.. 있어서 뭐하지 라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오며, 언젠가 작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업·조직·개인의 구조를 설계하고 점검하며, 다차원적 병목을 분석하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느끼신 점이나 피드백이 있다면 편하게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OS는 인간의 정체성과 같다 이전에 이야기했던 OS와 편집은 따로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축을 향하고 있었다. 편집은 자신의 맥락을 구성해 나가는 성장의 과정이며, OS는 인간이 세상을 해석하는 작동 배경이자 정체성의 기반이다. 그래서 정체성은 어떤 고정된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OS라는 세계관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업데이트되어 왔는가의 문제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떠올리면 기능, 앱, 디자인을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 모든 작동 방식을 결정하는 핵심은 OS다. 그런데 이 OS가 돌아가는 본체, 즉 뇌의 구조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경험의 누적이다. 환경, 관계, 충격, 습관, 문화 같은 삶의 반복적 경험이 쌓여서 각자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OS가 계속 업데이트된다. 이 누적된 업데이트가 바로 정체성의 기반 구조가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말투, 취향, 목표, 관계 방식은 모두 앱에 가깝고, 그 모든 것을 허용하고 제한하고 해석하는 깊은 구조가 OS다. 그래서 인간의 정체성은 성격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세계관의 핵심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정체성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내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읽고 해석하도록 학습되어 있는가”라는 의미의 OS에 가깝다. 정체성은 마음속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나도 잘 의식하지 못하는 채로 항상 뒤에서 돌아가는 해석 엔진이다. 안드로이드와 iOS가 완전히 다른 구조로 작동하듯 인간의 OS도 서로 다르게 최적화된다. 같은 사건도 각자 다르게 저장되고, 같은 말도 서로 다른 감정으로 변환되고, 같은 선택 앞에서도 완전히 다른 결론이 나온다. 정체성은 뇌의 설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이 압축되고 축적된 개인화된 OS, 즉 세계관 알고리즘에서 나온다. 결국 우리의 삶은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내 OS와 환경의 OS, 그리고 타인의 OS가 충돌하는 지점에 의해 움직인다. 해석, 판단, 관계, 감정, 선택은 이 세 구조의 충돌 속에서 발생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라는 말은 사실 타고난 성격 진술이라기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세계를 읽고 반응하도록 길들여진 OS를 갖고 있다”는 고백에 가깝다. 정체성은 고정된 레이블이 아니라 환경 OS와 타인의 OS, 그리고 그 충돌을 통과하며 계속 재조정되는 작동 구조다. 그렇다면 OS는 어떻게 계속 무거워지는가. 많은 사람들은 업데이트를 정리되고 최적화되고 가벼워지는 과정으로 오해한다. “업데이트했다”는 표현에는 성숙과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하지만 실제 OS 업데이트는 그 반대다. 업데이트는 비워내기가 아니라 더 많이 집어넣는 과정이다. 더 많은 기능, 더 많은 설정, 더 많은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기능이 늘어날수록 의존성도 늘고 관리해야 할 항목도 많아져 시스템은 더 무거워진다. 스마트폰이 업데이트될수록 용량과 배터리 소모가 커지듯 우리의 내면 OS도 업데이트될수록 더 많은 정보가 쌓인다. 학습 또한 업데이트와 같다. 반복과 축적, 시행착오를 통해 이해가 깊어질수록 처리해야 할 정보량은 더 커지고, 그만큼 시스템은 더 무거워진다. 여기서 말하는 ‘무거워짐’은 나빠졌다는 뜻이 아니라, 정체성 OS가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더 많은 경우를 알고, 더 많은 예외 규칙을 품게 되었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복잡성이 의식적인 기준과 함께 자라지 않으면 풍부함이 곧바로 혼란으로 전환된다는 데 있다. 이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은 점점 혼란에 잠긴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 처리되지 않은 정보, 배경에서 계속 돌아가는 기억들은 OS를 점점 느리게 만든다. 문제는 세상이 “추가형 업데이트”로 움직이는데 우리는 그것을 “정리형 업데이트”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업데이트했으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오히려 과부하를 정상화시킨다. 실제로는 더 많은 정보가 더 넓은 선택지를 만들고, 더 높은 불확실성을 만들며, 판단을 더 무겁게 만든다. 선택지는 늘어났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지 모르면 판단은 고장 난다. 결정은 미뤄지고 책임은 두려워지고 OS는 가벼워지기는커녕 더 무겁고 더 느려지며 우리는 더 빨리 포화 상태에 도달한다. 이때 우리가 느끼는 ‘정체성 혼란’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추상적 질문 이전에 “이 복잡해진 OS를 어떤 기준으로 운용할 것인가”라는 구조적 문제다. 즉, 오늘의 혼란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업데이트된 OS를 다루는 기준이 따라오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에 가깝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를 넣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그 기준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이 기준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 자체가 정체성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끝이 없다. 요약하면, 이 글이 말하는 정체성 업데이트는 ‘지식 추가’가 아니라 ‘선택 기준 재설계’다. 무엇을 내 OS에 남겨둘지, 무엇을 과감히 차단할지, 더 이상 내 세계관의 일부로 두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작업이야말로 정체성의 가장 실질적인 변화다. 그렇다면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일상의 사례를 떠올리면 쉽게 보인다. 메신저 업데이트 목록에서 내가 자주 사용하는 기능이 사라진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업데이트를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버전이 내 목적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업데이트=빠르고 좋아진다”는 막연한 인식의 기원을 모른 채 그냥 업데이트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기능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후회한다. 이 차이가 구조적 사고다. 무엇이 빠르게 업데이트되는지, 왜 최적화되었다고 느끼는지, 어떤 가능성이 열리고 어떤 가능성이 닫히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이해하는 능력이다. 다뤄야 할 정보량이 많아진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면 선택의 구조는 점점 흔들린다. 구조적 사고란 ‘좋아 보이니까’, ‘다들 하니까’가 아니라 “나의 목적, 나의 자원, 나의 OS 상태”를 기준으로 업데이트의 방향을 점검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부족하면 정체성 업데이트조차도 타인의 기준과 환경의 속도에 떠밀려 일어나는 일이 된다. 이제 관점을 나 자신에게로 돌리면, 이것은 결국 자신의 OS를 점검하는 과정이다. 나는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는가. 그 습관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지금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었는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 왜 이런 반응이 나왔는가. 나는 왜 최적화되었다고 느꼈는가. 그 느낌의 기원은 무엇이었는가. 어떤 가능성이 열리고 있었으며 어떤 가능성이 닫히고 있었는가. 내 판단은 어디에서 출발했고 그것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었는가, 아니면 익숙함과 두려움에서 나온 자동 반응이었는가. 내가 지금 다루고 있는 정보량은 얼마나 되는가. 내 OS는 그 양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이 질문들은 결국 나의 시스템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기준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드러내준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문장을 자연스럽게 해체한다. 답을 따라가다 보면 ‘원래’라고 믿어온 것들 역시 특정한 시기, 특정한 환경, 특정한 관계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OS 버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정체성은 그 버전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다시 편집하고 덜어내고 재설계할 수 있다는 자각에서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신다"는 단순한 일상도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누군가는 남들이 마시니까 따라 하고, 누군가는 습관적으로 컵을 들고, 누군가는 단지 '잠이 깨는 기분'을 느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기분이 아니라 잠이 깨는 감각 자체를 포착한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감각을 포착하는 순간,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를 드러낸다. 감각이라는 구조 안에서 습관, 기분, 행동, 필요 등이 서로 연결되어 움직인다. 이 구조가 생기면 커피는 외부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상황이나 현상을 겪고 매번 업데이트가 된다. 생산성의 조건, 리듬의 변화, 집중의 출발점처럼 확장된 의미로 재해석된다. 그리고 이 의미는 또 다른 관점을 계속해서 파생시킨다. ‘잠을 깨운다’는 작용을 이해한 사람은 관점이 확장되어 그 감각의 본질을 다른 영역에도 자연스럽게 적용한다. 커피라는 작은 행위가 감각을 통해 OS의 구조를 드러내듯, 어떤 습관이든 그 기원을 따라가면 동일한 OS 작동 방식이 드러난다. 관점을 나로 돌려보자 예를 들어 손톱을 뜯는 습관을 보자. 우리 내부 관점으로 돌려 손톱을 뜯게 된 기원이 뭘까? 아, 긴장을 해소하려고. 왜 긴장할 때마다 손톱을 뜯게 되었을까? 뜯는 순간 신경이 분산되고 그 감각에 몰입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배우게 되었을까? 아, 친구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무의식적으로 따라 했던 것이 습관이 되었구나.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현상의 해석 그 자체가 아니라, “아, 나는 모방하는 본능이 강하구나”라는 더 깊은 구조를 보는 것이다. 왜일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모방으로 학습하며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책이나 포기로 이어지는 해석이 아니라 자신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연결된다. 이해를 하게 된다면? 선택지가 보이고 선택지가 보인다면? 실행이 가능해지며 이해를 통한 해답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관점이 확장되어 습관이라는 게 범위가 다양하구나 생각하게 되며 자신의 선택이나 결정 등 행위를 한 번 더 점검하게 된다. 이 해석이 확장되면 집단적 관습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사실도 보이게 된다. 즉, 아주 사소한 일상도 OS의 작동 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며 정체성은 이런 관점의 축적을 통해 확장된다. 결국 정체성은 앱을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OS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확장되기 시작한다.
내 편은 없다. 이 세상에 그러니 나만이 내 편이 돼야 된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하건 무슨 실수를 하건 나라도 내가 내 편이 돼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왜냐하면 나보다 더 악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나는 무조건 내가 뭔 짓을 했었더라도 내 편이 돼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