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공부해라. 다른 국가를 공부해라. 통계를 공부해라. 역사를 공부해라. 인간을 공부하고, 동물을 공부하고, 생명을 공부하고, 우주를 공부해라. 그러다 보면 결국 어떠한 통찰이 생기는데, 바로 한국사회가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척박하고 안 좋은 상황과 지정학적 위치 속에서, 이런 구조를 갖는게 최선이었다면 최선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운명이란걸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잘못된 점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난게 불행이라면 불행이다. 그러나 200개 국 중에서 한국같은 나라가 드문 것도 사실이다. 누가 봐도 굶어 죽는 사람이 적고, 인지도가 높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은 객관적 축복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미래를 꿈꾸기 어렵고 행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좋지도 싫지도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돈이 많으면 좋을까? 많아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다. 근데 여러 책들에 따르면, 돈이 많으면 아군인 척 하는 적이 많이 생긴다. 사람을 더더욱 믿지 못하게 되고 의심하게 된다. 돈이 많으면 관성에 이끌려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그럼 내 개인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고, 나는 더 많은 부담과 책임감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관성에 이끌리거나 유지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금방 세어나가는 것도 돈이다. 돈으로 돈을 버는 삶이 즐거울까?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인간은 뇌과학적으로 지속적인 쾌락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뇌과학적으로 돈을 벌거나 쓰는 행위는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그로 인해 일상의 사소한 자극에는 무뎌진다. 담배를 주구장창 피우면 담배에 무뎌지고 더 많은 담배에만 자극을 느끼는 것과 같다. 즉 인간은 돈이 많으면 안정감은 느끼지만, 행복을 느낄 수는 없게 설계된 존재다. 돈이 없어 빈곤하면 무조건 불편하게 살아야 하고, 삶이 위협받고, 그래서 불행해진다. 하지만 부유해진다고 해서 행복해지는건 아니고, 부유해져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것도 아니다. 빈곤은 면하는 정도의 경제력을 유지하는 걸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외모가 잘나면 행복할까? 쾌락은 느낄 수 있다. 호감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살다보면 다 부질없다는걸 알게 된다. 잘생기고 예뻐도 결국 어리석은 사생팬이나 로봇같은 수많은 타인들의 늘 같은 반응에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배부른 소리라거나 그 피곤함 느껴보고 싶다고 자조할 수 있으나, 진지하게 염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인간을 못 믿게된다. 다 얼굴보고 다가와서 얼굴 좀 적응되면 성격에서 처음 보인 반응과는 다른 태도를 보여 상처를 주니까. 외모는 그저 무기일 뿐이다. 내가 더 편하게 생존할 수 있게 돕는 무기다. 유용하다. 근데 이런 무기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어차피 늙는다. 예외없이 다 늙는다. 노화라는 병을 얻는다. 내 무기가 낡고 녹슨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 특히 예쁜 여자들은 이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자기 외모를 자기 지위와 동일시하며 이것에 집착하게 된다. 병원을 자주 다니게 된다. 분명히 말하는데, 나이 먹고 이것만큼 추한 짓이 없다. 결정적으로, 평생 행복해질 수 없고 타인의 시선에 저당잡힌 삶을 살다 죽는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것에는 모두 다 장단점과 명암이 있다. 인생은 양면성이 있다. 관점을 다각도로 바라봐야 한다. 늘 바라보던 관점대로만, 습관적으로만, 편향적으로 바라보면 안된다. 어리석음이다. 누군가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치자. 이 사람은 불행할 것이다. 필자가 그랬다. 근데,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고통이다." "누구나 다 각자의 불행과 고민과 고통이 있다." "단지 서로 비교할 수 있게 객관적으로 정량화***지 못할 뿐이다." "태풍의 자극을 겪지 않은 나무는 예쁘지만 되려 나약하며, 태풍을 견딘 나무는 투박하지만 단단하게 자란다." "나는 학대를 당했기에 멘탈이 더 강해졌다." "나는 학대를 당했기에 그 아픔을 안다." "나는 학대를 당했기에 감정적으로 굴지 않으며, 성숙하게 감정을 제어한다." "나는 학대를 당했기에 극심한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되려 두려움이 없다." "나는 가해자를 용서했기에, 그 누구도 용서하고 불쌍하게 생각할 수 있다." 정신승리가 아니다. 객관적 사실의 나열이다.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근데 남들보다도 더 어려운 일을 겪어낸 사람은 몇배 더 단단하고 강인해진다. 용서는 강자가 보일 수 있는 태도다. 진심이다. 어차피 어떤 삶을 살아가던, 자아가 있는 생명으로 살아간다는건 고통 그 자체다. 누구나 욕먹고, 비난받고, 무시받고, 질투받고, 공격받고, 신체적 위협을 느끼고, 신경회로 때문에 통각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고, 경쟁을 해야되고, 노력을 해야되고, 눈치를 봐야하고, 머리를 써야하고, 걱정을 해야되고, 피곤함을 느끼고, 뜻대로 원하는대로 욕망하는대로 절대 안되고, 자기 능력의 한계를 맞이하게 되고, 운에 휘둘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고, 아프고, 늙고 약해지고, 병들고, 죽는다. 그리고 어차피 운이 상당부분 중요하며, 내 뜻대로 되는건 거의 없고, 불공평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연예인도, 잘생기고 예쁜 사람도, 돈 많은 사람도, 운동신경 뛰어난 운동선수도, 카이스트 다니는 연구원도 누구나 다 불공평함을 느끼기란 마찬가지다. 누가 문제냐? 내가 문제다. 어차피 누구나 다 고통스럽고, 누구나 다 외롭고, 누구나 다 혼자고, 누구나 다 불공평함을 느끼고, 누구나 다 늙고 병들고 아프고 죽는다면, 이는 되려 공평한 일이다. 정도의 차이? 의미없는 사소한 계산이고 부질없는 짓이다. 이 모든 부조리를 제대로 직시하고 수용할 줄 모르는 내가 문제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남들보다 더 OO하다는 생각도 갖지 말고, 나는 주인공도 아니고 내 인생은 드라마도 아닌 다큐이자 게임일 뿐이며, 그냥 별 것 없는 80억 중에 하나인 나에게 확률적으로 얼마든지 이런 불행과 행운이 닥칠 수 있다는걸 인정하고 살아가는게 중요하다. 인생이 고통스럽고 불공평하며 부조리로 가득하다면 그냥 죽을까? 아니, 죽는 그 순간, 정확히 그 순간에 나는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의식이 없어진' 존재가 된다. 마치 잠들어서 의식이 없는 것처럼.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내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고통의 최고치'를 격렬히 느끼며 몸부림쳐야 한다. 즉, 편안해지는건 없다. 편안함이라는걸 느낄 의식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끝도없이 극도의 고통만을 느낄 뿐이다. 그 이후는 사후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알 수 없지만, 분명한건 자살은 '논리적으로' 미련한 짓이며 편안해지는 길이 절대 아니다. 일단 태어나버린 존재는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한다. 단지 고통을 받아들이고,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고통을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줄 아는 내성을 지닌 존재가 되면 된다. 물론 말은 쉽지 어려운 일이다. 근데 이것 하나 알아라. 감정은 과학적으로 정확히 몸의 문제다. 감정을 통제하려면 몸을 통제하면 된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운동하고 명상하고 잠 잘 자라. 그러면 몸을 단련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감정이 통제된다. 그러면 고통에 내성이 생긴다. 화도 잘 안나고, 슬픔도 덜 느낀다. 그 상태에서 내 편안함과 행복을 찾아 강하게 살아나가면 된다. 타인이 부럽거나 내가 특별히 못나거나 그딴건 없다. 다 의미없고, 다 부질없고, 다 운이다. 그냥 편안하게 살다 사라지면 그게 제일이다. 건강하고, 강하고, 마음 편안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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