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헛하고 살아갈 의미가 없어요 - 마인드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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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rosebloom
4달 전
헛헛하고 살아갈 의미가 없어요
안녕하세요:) 양재진선생님 옛날 황금* 동치*렛미*에 나왔을때부터 카리스마와 자상함때문에 팬이었습니다 사회인이 되어 바쁘게살다가 이렇게 유튜브로 또 다시 뵐수있어서 너무 기쁩니다:) 이렇게 글을 쓰게된 이유는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께 제마음을 글로 표현 해보고싶었습니다. 서두가 너무 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전 부산에살구요 올해 만31살입니다:) 저는 남성lgbt중 g 이구요 g로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있어요 그런데 요즘 사는게 지겹고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들어요 살고싶지않아요 편안하고 자유롭고 깊은 잠을 자고싶어요 저는 정체성을 초등학교때 일찍 깨우친 편이구요 사회적으로 말하는 여성성을 가지고 있어서 학창시절 남중 남고를 졸업하며 꽤나 힘들게 컸습니다 제가 여자같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성장하다보니 난 여자로 살아야하는건가? 트랜스젠더 인건가? 라는 착각도 한때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제 정체성이 확고합니다.. 집은 넉넉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래요 빚보증에도 시달렸었고 가족 분위기 또한 …. 형은 어릴때 왕따트라우마로 인해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나이가37인데 아직 방안에만 있습니다 부모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에 정말 옛날 유교사상이 투철하셔 형을 병원한번 안데리고 갔었어요 교회는 열심히가시지만…. 심지어 주변에서 제가 여자애같고 남다르다는걸 아는데도 눈치채지 못하실정도로 무심하십니다 네 알아요 집이 힘들었고 평생고생하셔서 저희를 객관화 못하셨을수도…. 어릴적부터 저는 허용되는게 잘 없었습니다. 인형놀이도 남자라서 안되고 핑크도 허용 되지 못했어요 사소한것 하나하나다 남성성을 강요 받았구요…. 성향은 그림 그리는것을 좋아했고 또래보다 잘해서. 미술쪽으로 꿈을 일찍 키웠지만 그것또한 허용 되지 못했습니다 집이 힘드니까 반항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고등학교1학년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어머니가 힘들지만 고2중반때 부터 그남아 그중에 저렴한 학원을 보내주셨고(제가찾았습니다) 서울쪽 대학은 돈이 많이든다며 비슷한 지역쪽으로만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그래도 좋은 학교 학원 선생님들을 만난 덕분에 나름 지방권에선 유명한 명문대를 입학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가 끝이었습니다 형에게 남들과의 비교에 정신이 몰려있던 부모님은 디자인학과인 저에게 제 컴퓨터하나 선물해주지 않았습니다 늘 전 컴퓨터가 있는 학교에 있어야했고 형이 저러니 너는 알바라도 해라라는 소리를 늘 주변에서 듣고 지냈지요 부모님도 그러길 원했습니다 과제와 알바는 저에게 사명이었고 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소심하고 여자애같다는 저는 알바도 구하기 쉽지 않더군요 사회의 차가움을 정말 많이 느꼈던때 입니다:) 결국 알바는 여러번해냈어요!:) 학비는 학자금 대출이었지만 34학년땐 국가장학금 덕분에 무료로 다닐수 있었어요 그덕분에 과제에 집중하고 열심히 했지만! 제노력은 부질없다는듯 당연히 초중학교 어릴때부터 탄탄히 그림공뷰를 하고 과제를 해온 학교에만 집중하는 친구들과는 실력이 벌어질수 밖에없었습니다 자존감 높은 친구들이 늘부럽고 존경스러웠어요… 나도 예고 가고싶었는데…부럽다 멋지다…이런생각.. 후배들도 그랬구요 질투보단 늘 부럽고 도와주는게 고맙고 그랬습니다 아참 4학년때 졸업작품 핑계를 되었더니 부모님께서 노트북을 사주셨습니다 그때 너무 기뻤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졸업후 저는 취준은 사치인듯 시간없이 당연히 돈을 벌어야했고 남다른 성향을 가진 전 제 성향이 덜 들어나고 장점이되는 일을 빨리 찾을수 밖에없었어요 고심끝에 미에 관심도 있었던 저는 결국 미용을 하기로 결심하고 후다닥 자격증을 땄습니다 부모님은 당장 돈을 벌라고하면서 공부기간이 좀더 필요한 미술 전공을 왜 살리지 않냐고 타박하셨었습니다. 그때전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설명을해도 모를테니까요.. 세월이흘러 정말 소심했던 저는 미용일을하면서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감도 얻고 외향적으로 변했습니다 내면은 늘 여리지만요… 돈을벌며 어릴때 못해봤던거 다해봤어요 제가 원하는거 눈치없이 사구요:) 물론 부모님 용돈도 늘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간이흐르다보니 마음속에선 매순간 미술을 다시하고싶다는 생각이들었어요 그렇게 3년차에 과감히 퇴사를하고 시작했지만 코비드의 악재가 시작되었고 경제적으로 한계가 오더라구요 아버지도 실직하시고… 그래서 결국 4개월만에 알바를다시 시작하다 올해재입사를 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은 하고있어요 하지만 지금도 계속 그림을그리고 싶어요 친구들 처럼요.. 다시 시작한들 또 안될까봐 무섭고 이편안함이 깨질까 두렵습니다. 저희가족는 저만 또 바라보구요 웃긴게 또 결혼하라고 자주 그러십니다 제가 게이인거 모르시니까요…말하면 쓰러지시겠죠 일반인들은 결혼이라는걸 해서 도망치기도 하지만 전 그럴수도 없구요 게이와 트랜스젠더 사이 성격인저는 게이들에게조차 끼순이라고 놀림받아요 지금의전 매일매일 저의 죽음을 상상합니다 제가 안식이되는곳이 없어요 부모님을 가족을 사랑하지만 제상황을 알고 울어줄 사람은 대학교친구들 밖에 없을거 같아요 아직 살아있는건 다 서울로취직했지만 마음만은 가까운 여자친구들덕뷴 같구요 그러나 그럼에도 친구들은 세월이흘러 각자의 삶을 또 살아가겠지요 전 정신과약도 오래먹었고 지금도 불면증약을 먹고 잠듭니다 이글을쓰고 약먹고 또 잠들고 다신 안깨어나고싶어요 제가 살아갈가치가 있을까요 선생님 게이로서도 사회적 시선도 힘들고 게이안에서도 힘들고 다 힘들어요 이길을 더이상 걷지않고 저의 길은 끊어버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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