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알oㅏ주는 사람도없고 힘들고 지치고 사는게 지옥같은데 그냥 먄나서 실제로 안아줄사람있나 서러움이 복받쳐 흐른다 더 이상 힘이 안나서 안길곳이없다 너무 눈물 나는데 기댈곳 하나없다 옵 챗 이 름 mullong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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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알oㅏ주는 사람도없고 힘들고 지치고 사는게 지옥같은데 그냥 먄나서 실제로 안아줄사람있나 서러움이 복받쳐 흐른다 더 이상 힘이 안나서 안길곳이없다 너무 눈물 나는데 기댈곳 하나없다 옵 챗 이 름 mullong 입니다
알아들었으먼 끄덕여.
중 1이에요, 1학기 초반까지만 해도 반장이든 체육부장이든 이것저것 하고 대회도 많이 나가면서 학교생활이 공부도 재밌고, 나름 체육부장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는데, 1학기 후반 언젠가 한번 시간표가 바뀌는 날이 있었는데 그날 담임선생님이 까먹고 공지를 안해주셨고, 하필이면 그 바뀐 과목이 체육이였던지라 저는 그날 평소처럼 반 친구들을 데리고 운동장으로 나가 체육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체육과 바뀐 그 과목 선생님이 운동장쪽 창문을 열고 너네 뭐하냐며 당장 올라오라고 소리치셨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애들을 데리고 올라갔고, 그 과목선생님이 저를 찾으시는 고함이 복도까지 들렸습니다. 반으로 들어갔더니 자기가 20년 교사생활하면서 이런 ***은 경우는 처음 본다며 저를 엄청나게 혼내셨는데요. 사실 이러면 안돼지만 그 15분여 동안 그냥 멍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잘못이 이런 욕설을 들으면서 혼나야할 정도로 크지는 않다고 생각됐거든요. 심지어 15분여 동안 같이 잔소리를 듣고 있어야했던 반 친구들이 저를 보고 폐급 체육부장이라고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그 일로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과 가벼운 상담을 했는데, 담임선생님께서는 제 잘못이 없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정말 좋은분이세요. 근데 그 이후로 전에 있었던 자랑스러움과 이것저것 하고 싶은 즐거움이 사라졌습니다. 제 멘탈이 유리멘탈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2학기가 되었는데도 계속 내가 왜 학교를 다녀야하고 이정도로 반 친구들에게 애정을 쏟아야하나, 제가 뭐를 위해서 이런 책임까지 져야하고 노력을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어차피 노력 해봤자 이미 뛰고 날 애들은 다 타고난것 같고 저는 해봤자 폐만 끼치고 욕만 먹는것 같은데, 이건 단순히 사춘기여서 드는 생각인가요? 이 시기가 지나면 괜찮아 질까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 무엇일까요? 저는 조금 속물적인 사람이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바라고 남들이 잘한다, 대단하다 해주는 것을 갈망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공부를 잘 하고, 운동을 잘하고, 착하고, 뭐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해서 친구들이 부러워하고.. 이런 제 자신을 사랑했었나 봅니다. 고등학교에 진학 후, 제가 이전까지 옳다고 믿었던 가치관들이 흔들리고 부서지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과 처음으로 저보다 잘하고 더 열심히 사는 더 나아보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감이 줄고 위축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특별히 예쁘지도, 유명하지도, 재미있지도, 공부를 잘하거나 친구가 많지도 않은 제가 이제 더 이상 사회적인 시선에서 멋져보이거나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되다보니, 제 자신을 사랑할 이유까지 사라져버린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격도 조용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싶습니다. 단순히 눈치*** 말아라, 자신감을 가져라.. 이런 조언 말고 현실적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미 형성된 저의 가치관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았을때 비로소 만족하는 사람이기에 제가 엄청나게 능력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일까요..?
살때문인지 밖에나가거나 사람들 만나는게 너무 싫습니다 어떡해야할까요,,
2020년 10월 21일 서울에 올라가서 심리검사 받은 내용이다. 그때만 해도 44세였는데.. 평가 보고서 정신 건강의학과의원 성명... 성별/남자/만 44세 직업/청소 일용직 학력/고졸 평가일 /2020년 10월 21일 생년월일 /1976년 8월 19일.. 보통 체격, 간편한 복장, 신경을 쓰지 않은 듯 긴 손톱,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야구모자 위 후드를 쓴 모습 등이 관찰되는 만 44세의 남성으로 위생 상태는 양호하였으며 면담 및 수검 태도는 비교적 협조적이 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비교적 양호한 빠르기와 힘없는 작은 목소리로 전달하는 모습이었는데 자기표현이 적은 편이었고, 수검시 어차피 안될 것 같다며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면담에서는, 어릴 때부터 늘 혼자 있고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고 하며 20대 중반 부터 여자가 되고 싶어ㅏ 여장 해왔고 트렌스바에서도 일한 적이 있으며 20대부터는 남성을 이성으로 경험해왔다고 한다. 그간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없지만 우울할 때가 종종 있고 자살시도 경험이 있으며 30세부터 4년간 집에만 있는 생 활을 하였다고 보고하였다. 검사 전반에서 피검자의 진술과 일관되게 성적 불편 및 불쾌감이 드러나고 있다. 자기보고 검사 에서는 자신의 생물학적인 성인 전형적 남성적 열할에 대한 역할에 흥미나 수용이 현저히 낮고 오히려 여성적인 역할에 대한 선호 및 동일시가 관찰되고 있다. 또 한 구조화 되어있지 않아 의식적 방어가 쉽지 않은 투사검사에서 도 여성적 역할에 대한 선호 및 동일시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더욱이 성정체성 문제로 인한 심리사회적 적응상 문제를 호소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를 보상하기 위한 소망 또한 드러 내고 있다. (내가 늘 원하기는 돈도 모으고 치아치료와 여자로 살고 싶다 / 다른 친구들이 모르는 나만의 두려움은 여장을 하는 것을 다 알까바 하는 두려움 /내 생각에 여자들이란? 부러운 존재 / 결혼 생활에 대한 나의 생각은?자식도 있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 /언젠가 나는?돈 모으면 여자가 되고 싶다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 처음 엄마 립스틱을 바르던 날, 후회는 안한다 그때부터 성향에 물들어갔으니까 어리석게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거나 아니면 새로운 장소 내가 어렸을때는? 늘 혼자였고 친구가 없었으며 따돌림을 많이 당했다. 가난해서, 여자같아서 남녀가 같이 있는 것을 볼때?여자가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잊고 싶은 것은?학창시절 / 내가 정말 행복 할 수 있으려면? 자신감을 키우고 부정적인 마인드를 버리면 된다. 한편 검사상 현실검증력이나 현실 적 판단력의 약화 등 정신증적 상태및 사고 장애 양상을 보이는 반응들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성정체성 문제를 피검자의 일시적 인 혼란이나 망상의 발현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사회적 현실적 판단력이 다소 빈약하고 지적 자원은 다소 제한적이며 현실 접촉력이 다소 악화된 상태가 시사된다. 정서적 측면을 살펴보면 자아강도 가 악화되어 있으며 의욕 및 심신 의 활력 수준 또한 저조한 편으로 우울감과 무력감, 낮은 자기상, 자살사고, 집중 및 사고의 비효율 성, 대인간 불편감과 불신 및 소외 감 등 만성적인 우울 상태가 시사 된다. 이런 양상은 성격적 경향과 과거 력은 물론, 성정체성으로 인해 그건 경험해온 적응상 어려움이 많은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및 제언 자신의 생물학적 성인 남성이 여성적인 역할에 대한 강한 동일시와 선호가 드러나는 상태이며, 이런 양상이 정신증적 상태나 혼란의 영향은 아닌 것으 로 보이는바로 우울장애에 대한 치료를 통한 안정화가 필요할 것 으로 보이며 이후 재평가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자살시도에 대한 면밀한 주의가 요구된다. 2020년 10월27일 임상 심리전문가.. 진단서 결과.. 질병 /성전환증 F64.0 소견 / 본 환자는 2020년 10월 21일 내원하여 정신 상태검사 및 심리검사결과 성전환증으로 진단 됨. 첫 호르몬 주사는 2022년에 맞음.. •┈┈┈•┈┈┈•┈┈┈☂︎ 2021년 11월 3일, 민들레 의원에서 터벅터벅 걸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민들레 의원을 어떻게 찾***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터미널 근처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나는 정면으로 오는 이들과 눈을 마주치기 싫어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며 걸었다. 지도 앱에 찍힌 목적지는 법동.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느낌상 맞은편 버스를 타야 할 것 같아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 도착한 611번 버스를 타고 안내방송을 들으며 긴장 속에 창밖을 바라봤다. 보람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렸을 때, 드디어 민들레 의원을 찾을 수 있었다. 병원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작고 조용한 병원 안. “처음 오셨어요?” 간호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증, 진단서, 작성해야 할 서류들… 낯설고 어색했다. 진단서를 건네고 구석진 의자에 앉아 있으니, 마치 외딴섬에 홀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유난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한 아주머니의 시선이 거슬려 가슴이 답답해졌다. 잠시 후, 이름이 불렸다. 무겁게 걸음을 옮겨 진료실 문을 열자 의사가 내 진단서를 보며 물었다. “우울증 치료 중인가요? 호르몬을 맞으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치료를 멈추라는 말은 없었다. 다만 마음 한켠이 더 무거워졌다. 소변 검사, 피 검사, 그리고 엉덩이에 꽂히는 데포 주사. 주사 바늘이 사라진 뒤에도 통증은 남아 있었다. 계산대 앞에 섰을 때 금액은 7만 원. 근처 약국에서 약을 찾으려 했지만, 첫 번째 약국에는 약이 없었다. 두 번째 약국에서 약을 건네받을 때, 약사의 낯선 눈빛이 오래도록 맘에 남았다. 약값은 3만 원. 발기를 막는 약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남자의 즐거움 중 하나를 잃는 것일까… --- 복합터미널에 돌아온 나는 곧장 미용실로 향했다. 염색과 커트를 하는 동안, 낯선 냄새와 기다림이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거울 속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마트에 들러 간단한 물건을 사고, 숙소로 돌아와 치킨을 주문했다. 치킨은 아프리카 BJ가 준 기프티콘으로 결제했고, 배달비 3천 원은 내가 냈다. 치킨을 뜯으며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다행히 발기는 여전히 가능했다. 그 순간, 주사의 여운은 잠시 잊혔다. --- 밤이 되자 화장을 시도했다. 서툴고 어색했지만,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재미는 묘했다. 메이드복을 입고 셀카를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웃고, 표정을 지으며, ‘다른 나’를 만들어 갔다. 그러다 결국 욕망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사정을 하고, 다시 평범한 화면 앞으로 돌아왔다. 한쪽 모니터에서는 TV 예능이 흘러나오고, 다른 모니터에서는 인터넷과 ***이 켜져 있었다. 그렇게 2021년 11월 3일은 끝났다. 주사를 맞았고, 돈을 썼고, 화장을 했고, 웃고, 또 흔들렸다. 하루를 살아냈다는 사실만이 뚜렷하게 남았다. ---빗속의 춤, 나를 찾아서 나는 비 오는 날의 특별한 공기를 좋아한다. 축축하고, 차분하면서도 왠지 모를 비밀스러움을 머금은 그 분위기는 나를 이끌었다. 어릴 적, 시골 뒷마당에서 사랑방 뒷문을 살짝 열고 나섰던 날처럼 말이다.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진 켈리처럼, 나도 비를 맞으며 춤추고 싶었다. 다만, 내 모습은 조금 달랐다. 엄마 몰래 꺼내 입은 여자 옷과 어설프게 바른 화장이 비에 ***어 흘러내려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비는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감정의 흔적인지 모를 경계를 지워주었다. 그때의 빗물은 단순한 물방울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나를 억누르던 모든 시선과 사회의 기대들을 씻어내는 듯했다. 축축하게 몸에 감기는 천의 감촉, 맨발에 느껴지는 차가운 흙의 감각, 그리고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빗소리는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했다. ***어가는 옷과 흘러내리는 화장 속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 이상할까?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했으며, 세상의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은 나를 만났다. 그 특별한 빗속의 경험은 개울가로 이어졌다. 여름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개울에 여자 옷을 입고 발을 담그는 것은 또 다른 해방감이었다. 물속으로 몸을 깊이 담글수록, 나는 물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가운 물이 옷 속으로 스며들며 피부에 닿는 감각은 짜릿했다. 나는 그 속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그 기쁨은 남들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오직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뒷산. 아무도 없는 시골의 뒷산은 나에게 또 다른 은밀한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몰래 여장을 하고 산을 오르는 동안, 나는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가벼움과 설렘을 느꼈다. 숲의 나무들이 나를 감싸주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는 나를 위한 배경 음악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여성적인 옷차림과 화장이 주는 새로운 감각은 나 자신을 더 깊이 탐색하게 해주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순간들이 나 자신을 찾아가는 소중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빗속에서 춤추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산에서 자유롭게 거니는 여장의 모습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모습으로 나를 표현할 때 가장 행복하고 온전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옷이나 화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마주하고,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타인의 빗속의 춤, 나를 찾아서 나는 비 오는 날의 특별한 공기를 좋아한다. 축축하고, 차분하면서도 왠지 모를 비밀스러움을 머금은 그 분위기는 나를 이끌었다. 어릴 적, 시골 뒷마당에서 사랑방 뒷문을 살짝 열고 나섰던 날처럼 말이다.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진 켈리처럼, 나도 비를 맞으며 춤추고 싶었다. 다만, 내 모습은 조금 달랐다. 엄마 몰래 꺼내 입은 여자 옷과 어설프게 바른 화장이 비에 ***어 흘러내려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비는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감정의 흔적인지 모를 경계를 지워주었다. 그때의 빗물은 단순한 물방울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나를 억누르던 모든 시선과 사회의 기대들을 씻어내는 듯했다. 축축하게 몸에 감기는 천의 감촉, 맨발에 느껴지는 차가운 흙의 감각, 그리고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빗소리는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했다. ***어가는 옷과 흘러내리는 화장 속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 이상할까?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했으며, 세상의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은 나를 만났다. 그 특별한 빗속의 경험은 개울가로 이어졌다. 여름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개울에 여자 옷을 입고 발을 담그는 것은 또 다른 해방감이었다. 물속으로 몸을 깊이 담글수록, 나는 물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가운 물이 옷 속으로 스며들며 피부에 닿는 감각은 짜릿했다. 나는 그 속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그 기쁨은 남들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오직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뒷산. 아무도 없는 시골의 뒷산은 나에게 또 다른 은밀한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몰래 여장을 하고 산을 오르는 동안, 나는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가벼움과 설렘을 느꼈다. 숲의 나무들이 나를 감싸주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는 나를 위한 배경 음악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여성적인 옷차림과 화장이 주는 새로운 감각은 나 자신을 더 깊이 탐색하게 해주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순간들이 나 자신을 찾아가는 소중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빗속에서 춤추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산에서 자유롭게 거니는 여장의 모습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모습으로 나를 표현할 때 가장 행복하고 온전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옷이나 화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마주하고,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나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유를 만끽하는 여정인 것이다. 90년대엔 정말 그랬다. 시골에선 정보가 거의 없었고, 늘 혼자 있다 보니 괜히 나만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밤이 되면 몰래 여자 옷을 입고 동네 버스 정류장에 나가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의 시대는 피***이 생긴 후로 , 우물안에 개구리 지냈던 시골에서 하리수 등장은 충격이었다. 여자가 될수 있누나 하는 생각.. 20대 후반이 되던 해, 시디트젠 커뮤니티와 화상채팅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냇다 그저 음악방송을 하면서 하는게 좋아서.. 그리고 내방이 없어서 부모님방에 자던 그 시절은 내 감정은 맞춤법이 맞는지도 모르는 글들을 노트에 적곤 했다. 다만 여장도구들이 부모님방안에 있어서 늘 가슴 조마조마 한채로 살아갔다. 여장하는게 좋아서 모텔방은 주로 남자들이 잡아주고 그만큼 댓가로 성적인 것을 원해도 하는수 없이 해야만 했다, 그래도 집에서 못 누리는것을 모텔에서 하니 자유가 온거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그 후로 모텔 출입이 많아졌다. 그만큼 숙박요금은 많이 들었고 그 돈 모아놨으면 아마 가슴 수술 정도는 할수 잇을텐데.. 모텔에서 나와 ..식당에서 밥먹을때 그 이상한 시선들 아직도 못잊는다. 사람을 마치 동물원 원숭이 보듯..나는 죄인처럼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무리 일을 하더라도 금방두고 몸도 피곤하고 몸은 자주 마비가 오고 , 아무튼 30대도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다. 그러다 트젠 한분을 알고 그 당시 일한 돈으로 53키로 나가는 내가 서울 가서 일하려고 했지만 그분은 사기였다. 내수술비로 여자가 된 그분을 나는 다시 방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다 시골피***에서 39살에 친구밑에서 일하고 , 그거로 조금씩 모아***만. 어림도 없었다. 발견하고 자유를 만끽하는 여정인 것이다. 90년대엔 정말 그랬다. 시골에선 정보가 거의 없었고, 늘 혼자 있다 보니 괜히 나만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밤이 되면 몰래 여자 옷을 입고 동네 버스 정류장에 나가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의 시대는 피***이 생긴 후로 , 우물안에 개구리 지냈던 시골에서 하리수 등장은 충격이었다. 여자가 될수 있누나 하는 생각.. 20대 후반이 되던 해, 시디트젠 커뮤니티와 화상채팅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냇다 그저 음악방송을 하면서 하는게 좋아서.. 그리고 내방이 없어서 부모님방에 자던 그 시절은 내 감정은 맞춤법이 맞는지도 모르는 글들을 노트에 적곤 했다. 다만 여장도구들이 부모님방안에 있어서 늘 가슴 조마조마 한채로 살아갔다. 여장하는게 좋아서 모텔방은 주로 남자들이 잡아주고 그만큼 댓가로 성적인 것을 원해도 하는수 없이 해야만 했다, 그래도 집에서 못 누리는것을 모텔에서 하니 자유가 온거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그 후로 모텔 출입이 많아졌다. 그만큼 숙박요금은 많이 들었고 그 돈 모아놨으면 아마 가슴 수술 정도는 할수 잇을텐데.. 모텔에서 나와 ..식당에서 밥먹을때 그 이상한 시선들 아직도 못잊는다. 사람을 마치 동물원 원숭이 보듯..나는 죄인처럼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무리 일을 하더라도 금방두고 몸도 피곤하고 몸은 자주 마비가 오고 , 아무튼 30대도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다. 그러다 트젠 한분을 알고 그 당시 일한 돈으로 53키로 나가는 내가 서울 가서 일하려고 했지만 그분은 사기였다. 내수술비로 여자가 된 그분을 나는 다시 방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다 시골피***에서 39살에 친구밑에서 일하고 , 그거로 조금씩 모아***만. 어림도 없었다. 41살쯤, 대전의 허니라는 트랜스젠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어요. 하루에 이만 원을 준다고 했고, 팁은 따로 알아서 받는 구조였죠. 그때는 마땅히 잘 곳이 없어서, 겨울에 난방도 안 되는 허름한 여인숙에서 방을 얻어 만 원 내고 컵라면을 먹으며 버텼어요. 첫 출근 날, 대기실에서 여장을 한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더라고요. 대부분 트젠 언니들은 20, 30대였고, 가슴까지 수술한 분, 모든 수술을 다 마친 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냥 겉보기엔 남자가 여장만 한 모습이라, 손님들이 “넌 남자가 왜 여기서 일하냐”면서 못생겼다, 남자XX가 왜 그러냐며, 마시던 술을 제게 붓기도 했어요. 목소리도 남자 같으니 노래 한 번 불러보라고 해놓고, 욕을 퍼붓기도 했죠. 그렇게 일주일 정도 다녔는데, 결국 그만뒀어요. 이유는 갑상선 약을 타러 가야 했던 것도 있고, 손님들이 준 술도 감당하기 어려웠거든요. 일주일쯤 됐을 때, 허니 마담이 저한테 여관에 방을 잡아줄 테니 앞으로 내가 언니를 여자로 만들어줄게, 같이 일하면서 돈도 모으고 호르몬도 맞고 해보자고 했어요. “우리도 처음엔 다 그랬어,” 하면서 다독여줬지만, 저는 그때 그냥 끝냈어요. 그러다 44살이 되고 나서야 용기를 내봤어요. 원래는 밖에 나가기도 힘들어했는데, 서울까지 간 거니까 저한테는 정말 대단한 일이었죠. 정신과 문을 열고 들어가서 심리검사도 받고, 결과를 기다렸더니 트랜스젠더로 나왔더라고요. 하지만 먹고살아야 하니 삼성전자 청소 일용직 일을 해야 했고, 그래서 2년 뒤, 46살에 다시 용기를 내서 대전민들레라는 곳을 갔어요. 병원은 작고 좀 낡았어요. 의사는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 분이었고요. 제가 “나이가 많아서 괜찮을까요?”라고 물었더니, 나이와 호르몬 치료는 상관없다고 하더라고요. 진단서를 확인하고 바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자고 했고, *** 보관 동의도 물어봤어요. 검사도 했는데 언제 다시 오라는 말은 없었어요. 그래서 ‘안드로 쿨정’이라는 약도 처방받아, 근처 모텔에서 하룻밤 묵으며 첫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았는데, 마음이 참 이상했어요. 가슴은 간질간질하고, 발기는 약해진 것 같고, 가끔 감정기복도 느껴지더라고요. 대신 안드로쿨정은 별로 먹지 않았어요. 그 후로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쉰 살이 될 때까지 다시 주사를 맞지는 못했네요. 요즘 웨딩드레스도 입고싶고 아이도 육아도 해보고싶고 쓸데없는 생각을하네요 재수없죠?
수면장애 우울증 무기력증 만성피로 불안증 공황장애(과호흡증후군) 이명 아마 제 생각엔 이 모든게 복합적인 원인 때문에 나타나는 것 같아요. 저랑 안친한 사람들은 제가 엄청 행복하게 자란줄 아는데 요즘 그렇게 가면 쓰고 다니는 것도 지쳤는지 2명정도가 마음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전문가 상담을 받아보는게 좋을 것 같다고 하네요. 일단 잠을 못자니까 엄청나게 생각하는 사고회로가 굳었고 머리가 멍해요. 태어나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해본 것 같아요.(순간적인 것도) 잘 사는게 무의미 하다고 느끼고, 그런데도 인생을 항상 열심히 살아요. 아마도 이건 제가 다른 한 편으로 무의식적으로 열심히 살고싶다는 반증일까요? 왜 열심히 사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은 짜치는게 싫고, 성공은 하고 싶어요. 근데 오래살고 다시 사는건 절대 싫은 순간적으로 행복해도 어차피 다시 안좋아질 것 같고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려고 하는데 (주의에서 적극 추천) 이게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 괜찮아져도 또 다시 넘어지겠지? 희망고문 하는건 아닐까... 또 상담사분이랑도 잘 맞아야하는데 그걸 찾아야하는 피로감도 상당합니다. 사실 죽으려고 몇 번이고 알아 보기도 했는데 그냥 딱 눈 감으면 되는데 저도 불안불안해서 한 번 글을 남겨봐요.
저는 인류애를 중요시 여기고 큰 감동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비효율적인 인간은 죽어도 된다는 사상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내가 아무리 비도덕적인 행위를 해도 누군가 막아선다면 저항하고싶은 반골기질도 있습니다. 제가 봐도 저는 모순적인데 원래 남들도 이런걸 받아들이고 사는건가요? 아니면 제가 잘못된걸까요?
거울을 볼때마다 거울애 비춰진 사람이 내가 아니라 다른사람같이 낮설어요. 이번년도에 큰 충격을 받을 일이 1번정도 잇었는데 그거 때문일까요? 병원 가봐야 하나요?
다른사람들보다 월등히 독립심이 부족하고 마음이 여린데 어떻게 독립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할까요?
고2인데요… 작년 2학기때쯤 부터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기싫고… 이런 증상이 계속 있다가 (이땐 그냥 잠깐 번아웃 인줄 알았어요) 올해 초에 좀 심해져서 병원을 갔더니 우울증이라고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을 계속 먹고있는데 우울한 느낌은 없는데 무기력은 나아지지가 않는 것 같아요…. 벌써 시간이 꽤 됐는데…. 일상생활에 거의 아무 감정도 안들고 그냥 다 귀찮고 하기싫고… 예전의 저와 너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뭘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아예 안들고 그냥 감정이 없는거 같어요.. 원랜 엄청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잘했는데 지금은 성적이 수직하락중이고요 ㅠㅠㅠ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전 솔직히 제 정신건강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부모님이 그냥 제가 나태한거라고 동의를 안하십니다.. 이것도 미칠거 같고요. 내년에 고삼인데 이거 언제 좋아질까요.. 좋아지긴 할까요..? 너무 무서워요 ㅠㅠ
사람들이 나를 ~라고 생각할 것 같다 하는 두려움이 평소 있는데요 예를 들면 내향적인 성격 탓에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어떡하지, 혹은 무언가 부탁을 할 때 이기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면 어떡하지 등등 정말 여러 상황에서 저런 생각들을 해요 그런데 결국엔 저 생각들도 제 생각이잖아요? 그럼 저건 사실 제가 보는 제 자신인 걸까요??? 남들이 그렇게 보는 게 아니라요.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아주 무의식에서 살짝 드는 생각이지 실제로는 남들이 정말 날 깎아내리거나 무시할까봐 두려워서....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데요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vs 아니다, 실제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 법한 상황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충분히 해볼 법한 생각이다 중에 뭐가 맞는 걸까요? 그리고 이 생각들을 어떻게 잠재우고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객관식 시험을쳤는데 50문제를 30분만에 푸는거였습니다. 참고로 어린애수준의문제 아닙니다 시간이 빠뜻해서 제가 응시자중 제일 마지막으로 겨우 다풀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거까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사람들은 거의 만점에 가까울정도로 받았습니다. 그것보고 현타가왔습니다. 핑계처럼 보일수도있지만 시간만 적당했다면 저도 잘할수있었을것같습니다. 저는 사실 빨리생각하는게 너무힘듬니다. 예전에 종이로 된 심리검사지를 풀었는데 그땐 120 문항을 1시간만에 다풀어야만했습니다. 또 저만 다 못풀어서 다른사람 눈치가 보이곤 했습니다. 군대에서도 행동이 느려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곤했습니다. 정신과에 가봤는데 제가 인지능력이 남들에 비해 느리다는판정을 받았습니다. 남들에 비해 느려서 열등한것도 서러운데 앞으로 사회생활에서 느리다고 욕먹을일만 있을까봐두렵네요.
남 인생과 저의 인생을 자꾸 비교해요 특히 잘난 사람과 초라한 제 인생을요 그러다보니 자괴감에도 빠지고 헛된 망상에 빠져 사는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댓글 달아주실줄 몰랐는데!! 진짜 감사해요 하나하나 읽어보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남한테 제 이야기를 아주 못하는 성격이에요. 지금 10년이 넘는 친구들도 있고 가족들도 있는데도 제 속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이런 성격 때문에 20대 후반인데도 이***가 깊어져본 적도 없고 소꿉친구들 말고는 거의 연락도 다 끊겼어요. 근데 이제는 너무 외로운거 같아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아주 친한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외로움을 언급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서 더 고민이에요.
안녕하세요 중1 여학생입니다 털어놓을때가 없어 여기까지 왔네요. 현재 정신과에서 우울증과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어요. 저번에 심리검사를 받았는데 아이큐가 두자리에요. 공부도 엄청 못해요. 재능도 없고 매일매일 방구석에 틀어박혀 자ㅎ를 하고 자살을 생각합니다. 내일 영어 수행평가인데 공부 안했어요. 첫 중간고사도 망했으면서 수행이라도 챙겨야되는데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사는건지 인터넷이 저의 유일한 안식처에요. 학교에서 친구도 없어요. 유일하게 제 곁을 지켜주던 친구도 제가 끊어냈어요. 전 그 친구에게 안 좋은 영향만 끼쳤거든요. 저 툭 하면 울어요. 부모님이 절 부르실때도 눈물이 나요 왜 일까 제가 죽으면 슬퍼하실 부모님 생각이 나서 그런가 아님 부모님이 저에게 쓰신 돈과 시간을 다 날려서인지 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까요 아직 어린데 아직 할일도 많은데 살*** 자신이 없어요.
인생 첫 알바를 시작한 고3입니다. 처음 하는 알바인 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강합니다만 동시에 불안도 같이 강해지는 거 같아요. 실수하면 민폐인 거 같고 무언가 한 가지를 물어보려 해도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까 망설여집니다. 적어도 1월 10일까지는 일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지만 제가 있어도 괜찮은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주말에만 일하지만, 평일에도 중간중간 알바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일이 많습니다….
정말 몇번을 검사해도 infp에 인간관계, 여러 감각들에 예민하고 감성이 진짜!! 깊고 풍부해요. 그래서 자주 우울해지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지금 간호학과 다니고 있는데.. 요즘 저의 성격을 보고 배우면서 간호사가 맞는 직업일까 싶네요ㅋㅋㅠㅠ 그렇다고 간호학과를 중고등학생 때 부터 희망해왔고 꽤 흥미도 있어서 그만두진 않을 것 같은데 나중에 임상 나가서 버틸 수 있을까 싶어요ㅠㅠ infp에 예민한 기질 가지신 분들 어떤 직업군에 종사하시나요??
학생입니다. 이번년도 초에 대학 좋은 곳 가고 싶어서 완전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학원에 다니게 됐습니다. 이번년도가 특히 제가 겪었던 해 중 가장 평화로운 것 같습니다. 친구관계에 너무 신경쓰지 않고 자잘한 문제들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작년보단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그런데 취미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고 가고 싶은 학과도 없습니다. 요즘 가장 고민인건 큰 감정 변화가 없어서인지 재미를 찾지도 못하고 뭘 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저는 감성 타는 걸 즐기는 사람인데요. 작년에는 인간관계 때문에 매일 우울해서 울고 슬퍼하고 그랬습니다. 그때 되게 힘들었는데 요즘은 아무 감정도 안들어서 오히려 작년의 그 눈물 흘리던 게 그리워지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학원에 가지 않는 주말은 일요일 밖에 없는데요 그때 방 밖에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자고 핸드폰만 보다가 하루를 끝내게 됩니다. 저는 지금 공부는 상위권 유지 중이고요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6살, 초등2학년, 초등5학년, 중등1학년. 제 고민은 첫번째, 하고싶은 게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답답함과 두번째, 삶이 너무 순탄하고 감정변화가 크게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공허한 것입니다. 세번째는 일요일마다 너무 무기력해지고 원래 학교는 싫어하지 않았는데 요즘 계속 빠지고 싶고 그래서 빠지고 그럽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외모와 직업, 학업에 대한 열등감이 너무 심해요 예전에 관련해서 무시를 당한적이 있어서 더 그런거같구요 남한테 치이지않으려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가끔 지치고 제 자신이 먼지 한톨보다 못한느낌이 듭니다 직장도 퇴사했는데, 집에서 한발자국 나가기도 힘들정도로 살짝 대인기피증이 온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