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호르몬과 웨딩 드레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마인드카페 네이버블로그 링크마인드카페 페이스북 링크마인드카페 유튜브 링크마인드카페 인스타그램 링크마인드카페 앱스토어마인드카페 플레이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앱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플레이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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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호르몬과 웨딩 드레스
커피콩_레벨_아이콘sweetheart57
·9일 전
2020년 10월 21일 서울에 올라가서 심리검사 받은 내용이다. 그때만 해도 44세였는데.. 평가 보고서 정신 건강의학과의원 성명... 성별/남자/만 44세 직업/청소 일용직 학력/고졸 평가일 /2020년 10월 21일 생년월일 /1976년 8월 19일.. 보통 체격, 간편한 복장, 신경을 쓰지 않은 듯 긴 손톱,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야구모자 위 후드를 쓴 모습 등이 관찰되는 만 44세의 남성으로 위생 상태는 양호하였으며 면담 및 수검 태도는 비교적 협조적이 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비교적 양호한 빠르기와 힘없는 작은 목소리로 전달하는 모습이었는데 자기표현이 적은 편이었고, 수검시 어차피 안될 것 같다며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면담에서는, 어릴 때부터 늘 혼자 있고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고 하며 20대 중반 부터 여자가 되고 싶어ㅏ 여장 해왔고 트렌스바에서도 일한 적이 있으며 20대부터는 남성을 이성으로 경험해왔다고 한다. 그간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없지만 우울할 때가 종종 있고 자살시도 경험이 있으며 30세부터 4년간 집에만 있는 생 활을 하였다고 보고하였다. 검사 전반에서 피검자의 진술과 일관되게 성적 불편 및 불쾌감이 드러나고 있다. 자기보고 검사 에서는 자신의 생물학적인 성인 전형적 남성적 열할에 대한 역할에 흥미나 수용이 현저히 낮고 오히려 여성적인 역할에 대한 선호 및 동일시가 관찰되고 있다. 또 한 구조화 되어있지 않아 의식적 방어가 쉽지 않은 투사검사에서 도 여성적 역할에 대한 선호 및 동일시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더욱이 성정체성 문제로 인한 심리사회적 적응상 문제를 호소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를 보상하기 위한 소망 또한 드러 내고 있다. (내가 늘 원하기는 돈도 모으고 치아치료와 여자로 살고 싶다 / 다른 친구들이 모르는 나만의 두려움은 여장을 하는 것을 다 알까바 하는 두려움 /내 생각에 여자들이란? 부러운 존재 / 결혼 생활에 대한 나의 생각은?자식도 있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 /언젠가 나는?돈 모으면 여자가 되고 싶다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 처음 엄마 립스틱을 바르던 날, 후회는 안한다 그때부터 성향에 물들어갔으니까 어리석게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거나 아니면 새로운 장소 내가 어렸을때는? 늘 혼자였고 친구가 없었으며 따돌림을 많이 당했다. 가난해서, 여자같아서 남녀가 같이 있는 것을 볼때?여자가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잊고 싶은 것은?학창시절 / 내가 정말 행복 할 수 있으려면? 자신감을 키우고 부정적인 마인드를 버리면 된다. 한편 검사상 현실검증력이나 현실 적 판단력의 약화 등 정신증적 상태및 사고 장애 양상을 보이는 반응들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성정체성 문제를 피검자의 일시적 인 혼란이나 망상의 발현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사회적 현실적 판단력이 다소 빈약하고 지적 자원은 다소 제한적이며 현실 접촉력이 다소 악화된 상태가 시사된다. 정서적 측면을 살펴보면 자아강도 가 악화되어 있으며 의욕 및 심신 의 활력 수준 또한 저조한 편으로 우울감과 무력감, 낮은 자기상, 자살사고, 집중 및 사고의 비효율 성, 대인간 불편감과 불신 및 소외 감 등 만성적인 우울 상태가 시사 된다. 이런 양상은 성격적 경향과 과거 력은 물론, 성정체성으로 인해 그건 경험해온 적응상 어려움이 많은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및 제언 자신의 생물학적 성인 남성이 여성적인 역할에 대한 강한 동일시와 선호가 드러나는 상태이며, 이런 양상이 정신증적 상태나 혼란의 영향은 아닌 것으 로 보이는바로 우울장애에 대한 치료를 통한 안정화가 필요할 것 으로 보이며 이후 재평가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자살시도에 대한 면밀한 주의가 요구된다. 2020년 10월27일 임상 심리전문가.. 진단서 결과.. 질병 /성전환증 F64.0 소견 / 본 환자는 2020년 10월 21일 내원하여 정신 상태검사 및 심리검사결과 성전환증으로 진단 됨. 첫 호르몬 주사는 2022년에 맞음.. •┈┈┈•┈┈┈•┈┈┈☂︎ 2021년 11월 3일, 민들레 의원에서 터벅터벅 걸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민들레 의원을 어떻게 찾***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터미널 근처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나는 정면으로 오는 이들과 눈을 마주치기 싫어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며 걸었다. 지도 앱에 찍힌 목적지는 법동.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느낌상 맞은편 버스를 타야 할 것 같아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 도착한 611번 버스를 타고 안내방송을 들으며 긴장 속에 창밖을 바라봤다. 보람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렸을 때, 드디어 민들레 의원을 찾을 수 있었다. 병원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작고 조용한 병원 안. “처음 오셨어요?” 간호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증, 진단서, 작성해야 할 서류들… 낯설고 어색했다. 진단서를 건네고 구석진 의자에 앉아 있으니, 마치 외딴섬에 홀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유난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한 아주머니의 시선이 거슬려 가슴이 답답해졌다. 잠시 후, 이름이 불렸다. 무겁게 걸음을 옮겨 진료실 문을 열자 의사가 내 진단서를 보며 물었다. “우울증 치료 중인가요? 호르몬을 맞으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치료를 멈추라는 말은 없었다. 다만 마음 한켠이 더 무거워졌다. 소변 검사, 피 검사, 그리고 엉덩이에 꽂히는 데포 주사. 주사 바늘이 사라진 뒤에도 통증은 남아 있었다. 계산대 앞에 섰을 때 금액은 7만 원. 근처 약국에서 약을 찾으려 했지만, 첫 번째 약국에는 약이 없었다. 두 번째 약국에서 약을 건네받을 때, 약사의 낯선 눈빛이 오래도록 맘에 남았다. 약값은 3만 원. 발기를 막는 약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남자의 즐거움 중 하나를 잃는 것일까… --- 복합터미널에 돌아온 나는 곧장 미용실로 향했다. 염색과 커트를 하는 동안, 낯선 냄새와 기다림이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거울 속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마트에 들러 간단한 물건을 사고, 숙소로 돌아와 치킨을 주문했다. 치킨은 아프리카 BJ가 준 기프티콘으로 결제했고, 배달비 3천 원은 내가 냈다. 치킨을 뜯으며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다행히 발기는 여전히 가능했다. 그 순간, 주사의 여운은 잠시 잊혔다. --- 밤이 되자 화장을 시도했다. 서툴고 어색했지만,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재미는 묘했다. 메이드복을 입고 셀카를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웃고, 표정을 지으며, ‘다른 나’를 만들어 갔다. 그러다 결국 욕망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사정을 하고, 다시 평범한 화면 앞으로 돌아왔다. 한쪽 모니터에서는 TV 예능이 흘러나오고, 다른 모니터에서는 인터넷과 ***이 켜져 있었다. 그렇게 2021년 11월 3일은 끝났다. 주사를 맞았고, 돈을 썼고, 화장을 했고, 웃고, 또 흔들렸다. 하루를 살아냈다는 사실만이 뚜렷하게 남았다. ---빗속의 춤, 나를 찾아서 나는 비 오는 날의 특별한 공기를 좋아한다. 축축하고, 차분하면서도 왠지 모를 비밀스러움을 머금은 그 분위기는 나를 이끌었다. 어릴 적, 시골 뒷마당에서 사랑방 뒷문을 살짝 열고 나섰던 날처럼 말이다.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진 켈리처럼, 나도 비를 맞으며 춤추고 싶었다. 다만, 내 모습은 조금 달랐다. 엄마 몰래 꺼내 입은 여자 옷과 어설프게 바른 화장이 비에 ***어 흘러내려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비는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감정의 흔적인지 모를 경계를 지워주었다. 그때의 빗물은 단순한 물방울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나를 억누르던 모든 시선과 사회의 기대들을 씻어내는 듯했다. 축축하게 몸에 감기는 천의 감촉, 맨발에 느껴지는 차가운 흙의 감각, 그리고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빗소리는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했다. ***어가는 옷과 흘러내리는 화장 속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 이상할까?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했으며, 세상의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은 나를 만났다. 그 특별한 빗속의 경험은 개울가로 이어졌다. 여름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개울에 여자 옷을 입고 발을 담그는 것은 또 다른 해방감이었다. 물속으로 몸을 깊이 담글수록, 나는 물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가운 물이 옷 속으로 스며들며 피부에 닿는 감각은 짜릿했다. 나는 그 속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그 기쁨은 남들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오직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뒷산. 아무도 없는 시골의 뒷산은 나에게 또 다른 은밀한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몰래 여장을 하고 산을 오르는 동안, 나는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가벼움과 설렘을 느꼈다. 숲의 나무들이 나를 감싸주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는 나를 위한 배경 음악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여성적인 옷차림과 화장이 주는 새로운 감각은 나 자신을 더 깊이 탐색하게 해주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순간들이 나 자신을 찾아가는 소중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빗속에서 춤추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산에서 자유롭게 거니는 여장의 모습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모습으로 나를 표현할 때 가장 행복하고 온전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옷이나 화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마주하고,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타인의 빗속의 춤, 나를 찾아서 나는 비 오는 날의 특별한 공기를 좋아한다. 축축하고, 차분하면서도 왠지 모를 비밀스러움을 머금은 그 분위기는 나를 이끌었다. 어릴 적, 시골 뒷마당에서 사랑방 뒷문을 살짝 열고 나섰던 날처럼 말이다.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진 켈리처럼, 나도 비를 맞으며 춤추고 싶었다. 다만, 내 모습은 조금 달랐다. 엄마 몰래 꺼내 입은 여자 옷과 어설프게 바른 화장이 비에 ***어 흘러내려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비는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감정의 흔적인지 모를 경계를 지워주었다. 그때의 빗물은 단순한 물방울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나를 억누르던 모든 시선과 사회의 기대들을 씻어내는 듯했다. 축축하게 몸에 감기는 천의 감촉, 맨발에 느껴지는 차가운 흙의 감각, 그리고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빗소리는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했다. ***어가는 옷과 흘러내리는 화장 속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 이상할까?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했으며, 세상의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은 나를 만났다. 그 특별한 빗속의 경험은 개울가로 이어졌다. 여름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개울에 여자 옷을 입고 발을 담그는 것은 또 다른 해방감이었다. 물속으로 몸을 깊이 담글수록, 나는 물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가운 물이 옷 속으로 스며들며 피부에 닿는 감각은 짜릿했다. 나는 그 속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그 기쁨은 남들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오직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뒷산. 아무도 없는 시골의 뒷산은 나에게 또 다른 은밀한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몰래 여장을 하고 산을 오르는 동안, 나는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가벼움과 설렘을 느꼈다. 숲의 나무들이 나를 감싸주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는 나를 위한 배경 음악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여성적인 옷차림과 화장이 주는 새로운 감각은 나 자신을 더 깊이 탐색하게 해주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순간들이 나 자신을 찾아가는 소중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빗속에서 춤추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산에서 자유롭게 거니는 여장의 모습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모습으로 나를 표현할 때 가장 행복하고 온전한 나 자신이 될 수 있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옷이나 화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마주하고,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나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유를 만끽하는 여정인 것이다. 90년대엔 정말 그랬다. 시골에선 정보가 거의 없었고, 늘 혼자 있다 보니 괜히 나만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밤이 되면 몰래 여자 옷을 입고 동네 버스 정류장에 나가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의 시대는 피***이 생긴 후로 , 우물안에 개구리 지냈던 시골에서 하리수 등장은 충격이었다. 여자가 될수 있누나 하는 생각.. 20대 후반이 되던 해, 시디트젠 커뮤니티와 화상채팅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냇다 그저 음악방송을 하면서 하는게 좋아서.. 그리고 내방이 없어서 부모님방에 자던 그 시절은 내 감정은 맞춤법이 맞는지도 모르는 글들을 노트에 적곤 했다. 다만 여장도구들이 부모님방안에 있어서 늘 가슴 조마조마 한채로 살아갔다. 여장하는게 좋아서 모텔방은 주로 남자들이 잡아주고 그만큼 댓가로 성적인 것을 원해도 하는수 없이 해야만 했다, 그래도 집에서 못 누리는것을 모텔에서 하니 자유가 온거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그 후로 모텔 출입이 많아졌다. 그만큼 숙박요금은 많이 들었고 그 돈 모아놨으면 아마 가슴 수술 정도는 할수 잇을텐데.. 모텔에서 나와 ..식당에서 밥먹을때 그 이상한 시선들 아직도 못잊는다. 사람을 마치 동물원 원숭이 보듯..나는 죄인처럼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무리 일을 하더라도 금방두고 몸도 피곤하고 몸은 자주 마비가 오고 , 아무튼 30대도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다. 그러다 트젠 한분을 알고 그 당시 일한 돈으로 53키로 나가는 내가 서울 가서 일하려고 했지만 그분은 사기였다. 내수술비로 여자가 된 그분을 나는 다시 방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다 시골피***에서 39살에 친구밑에서 일하고 , 그거로 조금씩 모아***만. 어림도 없었다. 발견하고 자유를 만끽하는 여정인 것이다. 90년대엔 정말 그랬다. 시골에선 정보가 거의 없었고, 늘 혼자 있다 보니 괜히 나만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밤이 되면 몰래 여자 옷을 입고 동네 버스 정류장에 나가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의 시대는 피***이 생긴 후로 , 우물안에 개구리 지냈던 시골에서 하리수 등장은 충격이었다. 여자가 될수 있누나 하는 생각.. 20대 후반이 되던 해, 시디트젠 커뮤니티와 화상채팅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냇다 그저 음악방송을 하면서 하는게 좋아서.. 그리고 내방이 없어서 부모님방에 자던 그 시절은 내 감정은 맞춤법이 맞는지도 모르는 글들을 노트에 적곤 했다. 다만 여장도구들이 부모님방안에 있어서 늘 가슴 조마조마 한채로 살아갔다. 여장하는게 좋아서 모텔방은 주로 남자들이 잡아주고 그만큼 댓가로 성적인 것을 원해도 하는수 없이 해야만 했다, 그래도 집에서 못 누리는것을 모텔에서 하니 자유가 온거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그 후로 모텔 출입이 많아졌다. 그만큼 숙박요금은 많이 들었고 그 돈 모아놨으면 아마 가슴 수술 정도는 할수 잇을텐데.. 모텔에서 나와 ..식당에서 밥먹을때 그 이상한 시선들 아직도 못잊는다. 사람을 마치 동물원 원숭이 보듯..나는 죄인처럼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무리 일을 하더라도 금방두고 몸도 피곤하고 몸은 자주 마비가 오고 , 아무튼 30대도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다. 그러다 트젠 한분을 알고 그 당시 일한 돈으로 53키로 나가는 내가 서울 가서 일하려고 했지만 그분은 사기였다. 내수술비로 여자가 된 그분을 나는 다시 방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다 시골피***에서 39살에 친구밑에서 일하고 , 그거로 조금씩 모아***만. 어림도 없었다. 41살쯤, 대전의 허니라는 트랜스젠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어요. 하루에 이만 원을 준다고 했고, 팁은 따로 알아서 받는 구조였죠. 그때는 마땅히 잘 곳이 없어서, 겨울에 난방도 안 되는 허름한 여인숙에서 방을 얻어 만 원 내고 컵라면을 먹으며 버텼어요. 첫 출근 날, 대기실에서 여장을 한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더라고요. 대부분 트젠 언니들은 20, 30대였고, 가슴까지 수술한 분, 모든 수술을 다 마친 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냥 겉보기엔 남자가 여장만 한 모습이라, 손님들이 “넌 남자가 왜 여기서 일하냐”면서 못생겼다, 남자XX가 왜 그러냐며, 마시던 술을 제게 붓기도 했어요. 목소리도 남자 같으니 노래 한 번 불러보라고 해놓고, 욕을 퍼붓기도 했죠. 그렇게 일주일 정도 다녔는데, 결국 그만뒀어요. 이유는 갑상선 약을 타러 가야 했던 것도 있고, 손님들이 준 술도 감당하기 어려웠거든요. 일주일쯤 됐을 때, 허니 마담이 저한테 여관에 방을 잡아줄 테니 앞으로 내가 언니를 여자로 만들어줄게, 같이 일하면서 돈도 모으고 호르몬도 맞고 해보자고 했어요. “우리도 처음엔 다 그랬어,” 하면서 다독여줬지만, 저는 그때 그냥 끝냈어요. 그러다 44살이 되고 나서야 용기를 내봤어요. 원래는 밖에 나가기도 힘들어했는데, 서울까지 간 거니까 저한테는 정말 대단한 일이었죠. 정신과 문을 열고 들어가서 심리검사도 받고, 결과를 기다렸더니 트랜스젠더로 나왔더라고요. 하지만 먹고살아야 하니 삼성전자 청소 일용직 일을 해야 했고, 그래서 2년 뒤, 46살에 다시 용기를 내서 대전민들레라는 곳을 갔어요. 병원은 작고 좀 낡았어요. 의사는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 분이었고요. 제가 “나이가 많아서 괜찮을까요?”라고 물었더니, 나이와 호르몬 치료는 상관없다고 하더라고요. 진단서를 확인하고 바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자고 했고, *** 보관 동의도 물어봤어요. 검사도 했는데 언제 다시 오라는 말은 없었어요. 그래서 ‘안드로 쿨정’이라는 약도 처방받아, 근처 모텔에서 하룻밤 묵으며 첫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았는데, 마음이 참 이상했어요. 가슴은 간질간질하고, 발기는 약해진 것 같고, 가끔 감정기복도 느껴지더라고요. 대신 안드로쿨정은 별로 먹지 않았어요. 그 후로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쉰 살이 될 때까지 다시 주사를 맞지는 못했네요. 요즘 웨딩드레스도 입고싶고 아이도 육아도 해보고싶고 쓸데없는 생각을하네요 재수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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