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로 사는게 버겁습니다.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공황|상담|우울증]마인드카페 네이버블로그 링크마인드카페 페이스북 링크마인드카페 유튜브 링크마인드카페 인스타그램 링크마인드카페 앱스토어마인드카페 플레이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앱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플레이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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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로 사는게 버겁습니다.
커피콩_레벨_아이콘소저어엉
·5일 전
저는 지금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며 하루에도 20알이 넘는 약들을 복용하고 있어요. 공황장애, 우울증, PTSD, 심장병, 메니에르 등 엄청나게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어요. 이거보다 훨씬 많지만 귀찮으니 적지 않을게요... 공황과 우울증의 뿌리를 찾아보자면... 저는 순탄치 못한 어린 시절을 지내왔어요. 공부를 안 한다는 이유로 맞아야 했고,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맞아야 했어요. 일기장을 학교에 두고 왔다는 이유로 세 시간 동안 손들고 벌을 서야 했고,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장난쳤다는 이유로 세 시간 동안 손들고 벌을 서야만 했어요. 제가 8살로 넘어갈 즈음부터 시작된 일이에요. 책상에 앉아 공부를 안 한다는 이유로 맞아야 했고, 책상에 앉아 문제집이 아니라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맞아야만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살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모든 집이 다 그런 줄 알았어요. 언니랑 말다툼했다는 이유로 책 5권을 들고 4시간 동안 벌을 서야 했어요. 근데 저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사랑인 줄 알았어요. 매일같이 맞아도 제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이니까요. 저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며 자라왔어요.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이건 폭력이었어요. 이뿐만이 아니에요. 저는 또래에 비해 2차 성징이 조금 빨리 찾아왔어요. 초등학교 3학년 끝 무렵쯤부터 시작됐어요. 그때부터 신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저도 이제 어른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마냥 행복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했어요. 이유는 없었어요. 그저 제가 남들보다 작다는 이유로 시작된 괴롭힘이었어요. 그렇게 저는 학교에서 심한 학교폭력을 당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에 우리 언니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어요. 말하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여기서 저는 이 악몽이 끝날 줄 알았어요. 집에 가면 그래도 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 악몽은 여기서부터 시작됐어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갈 무렵에 2차 성징이 왔다고 했잖아요? 아빠가 그때부터 저를 강제추행하기 시작했어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이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초가을쯤이었어요. 그때 저는 파란색 체리가 그려진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어요. 츄파춥스 티셔츠였어요. 그날도 저는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갔다가 집에 와서 숙제를 하고 있었어요. 학교 숙제, 학원 숙제, 집에서 내주는 숙제까지 해야 했어요. 저녁 7시 반쯤이었을까요?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왔어요. 그래서 저는 반갑게 맞이해 줬어요. "아빠, 다녀오셨어요?" 하고요. 엄마가 잠시 나간 틈을 타서 아빠가 저한테 다가왔어요. 다가와서는 대뜸 뽀뽀를 해 달라고 하길래 저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뽀뽀를 해 줬어요. 그러고 나서 다시 숙제를 하러 가려고 몸을 틀었는데, 아빠가 제 팔을 잡더니 저를 끌어당겼어요. 그리고 제 얼굴을 감싸더니 다시 뽀뽀를 했어요. 그래서 저는 "아빠, 저 숙제해야 해요."라고 했지만 아빠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제 머리를 쓰다듬더니 입에 뽀뽀를 했어요.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어요. 아빠가 제 입속으로 자신의 혀를 집어넣었어요.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어떤 행동인지도 모를 때라 불쾌하다는 느낌만 받았어요. 너무 놀라서 몸이 굳어 있었는데도 멈추지 않더라고요. 제 입속에 혀를 집어넣고 제 머리를 만지던 손이 점점 내려와 제 몸을 훑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아빠의 손이 제 옷 속으로 들어왔어요. 더 놀라서 얼어붙었는데, 아빠는 제가 좋아서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했나 봐요. 멈추지 않더라고요. 대략 3분 정도 그 행동을 지속했어요. 그러다가 엄마가 오는 소리가 들리자 재빠르게 그만두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지옥이 시작됐어요. 매일같이 제 몸을 만지고, 옷 속에 손을 넣어 주무르고, 심지어 속옷 안에도 손을 넣어서 만지기 시작했어요. 너무 싫고 불쾌해서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순간 아빠가 돌변했어요. 물건을 던지고, 소리치고, 욕하면서 내 자식인데 내 마음대로도 못 하냐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면... 저는 그렇게라도 사랑받고 싶었거든요. 제 몸은 점점 변해 가는데 아빠의 행동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어요. 점점 노골적으로 제 몸을 만지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저는 반항하지도 못한 채 가만히 있어야 했어요. 또 한 번은 저를 끌어안고 제 목에 뽀뽀하는 척하더니 목 부분을 빨아들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아빠가 술을 마시고 와서 제게 그러더라고요. "너 *** 본 적 있어?" 그래서 없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빠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 너는 이게 뭘 의미하는 행동인지 모르겠네?" 그러더니 저를 안방으로 끌고 가서 침대에 강제로 눕혔어요. 그리고 제 상의를 아주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다행히 엄마가 집에 들어와서 그 행동은 거기서 멈췄어요. 하지만 결국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두 번, 중학교 입학 직전에 한 번, 총 세 번의 ***을 당했어요. 아빠는 제게 직접적으로 ***를 요구했고, 저는 그걸 거절할 수 없었어요. 거절하면 또 어떻게 될지 너무 뻔했으니까요. 맞기 싫었어요. 아픈 게 싫었어요. 처음엔 아빠가 하는 행동이 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 행동이 ***를 맺으려는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땐 너무 늦었었죠. 어쩌면 제게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있었기에 임신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거예요. 증상이 워낙 심했으니까요. 엄마한테 말하지 그랬냐고요? 말했어요. 근데 엄마가 한 대답은 이거였어요. "아빠가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그런 거니까 네가 이해해 줘." "그게 아빠의 사랑 표현 방식인 거야." 엄마는 제게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더라고요. 우리 아빠는 알코올 의존증이 있어서 술을 안 마신 날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어요. 근데 술을 마시고 나면 기억을 못 하더라고요. 전혀 기억이 안 난대요. 저는 너무 억울한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아빠는 술을 마시고 올 때마다 저한테 폭언을 했어요. "나가 죽어라." "왜 사냐." "그렇게 살면 좋냐." "돈 빠져나가는 구멍이다." "너한테 쓰는 돈이 아깝다." "왜 태어났냐." "네가 스스로 죽지 못하겠으면 내가 죽여 주겠다." "너 같은 건 쓸모없는 존재다." "***맞다." "***." "망상장애다." "네가 나를 범죄자로 만든 거다." "네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 거다." 이런 말들을 수백 번이나 저한테 했어요. 이미 그때 저는 정신 상태가 말이 아니었어요. 당장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죠. 매일 어떻게 하면 가장 확실하게 죽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시도하기를 반복했어요. 하지만 계속 살아남더라고요. 참 뭣같이요. 근데 또 제가 그런 시도를 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저한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왜 그런 짓을 해?" "살아야지." ...참 모순이지 않아요? 죽으라고 하더니 저보고 살래요. 살아남으래요. 살 수 있는 한 끝까지 살래요. 원하는 대로 죽어 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인 건지 모르겠어요. 성적인 희롱도 멈추지 않고 했어요. "사이즈가 몇이야?" "만져 보고 싶다." "크다." "말랑말랑하네." "내가 이렇게 만져 주면 너도 기분 좋지 않아?" "나는 너희 생리 냄새 구분할 수 있어." 이런 말들을 정말 쉬지 않고 내뱉었어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더러운 말들도 서슴없이 뱉었어요. 다행인 건 중학교에서 심리검사를 했었는데, 제가 스트레스와 불안 지수가 전교 1등이었대요. ㅋㅋ 그래서 위클래스 선생님이 저를 찾아오셨고, 그때 처음으로 상담이라는 걸 받아 봤어요.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에 가 보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고, 그때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어요.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악착같이 버텼는데... 아빠랑 엄마, 그리고 학교에서 저를 폐쇄병동에 넣었어요. 4개월 동안 갇혀 있었어요. 그 시간은 정말 지옥 같았어요. 물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그 공간 자체가 저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곳에서 자해라는 걸 배워서 나왔어요. 그리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해바라기센터라는 성범죄 전문 상담센터에서 아빠를 신고했대요. 그래서 집에 경찰이 왔었어요. 그날 경찰관분들이 저에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신고하고 싶냐고요. 근데 저는 무서워서 안 한다고 했어요.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됐어요. 아빠한테 이 일은 비밀로 하기로 하고 넘어갔는데... 엄마가 술을 마시고 결국 이 일을 아빠한테 말해 버린 거예요. 그러고 나서 엄마는 빨래를 걷어야 한다며 잠깐 나갔어요. 아빠가 제게 다가와서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대체 제가 언제까지 그딴 정신머리로 살 거냐고, 그렇게 살 거면 죽으라고요. 제가 자기를 범죄자로 만들었대요. 그러면서 아빠가 저한테 그랬어요. 자기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라고요. 저한테 그렇게 행동하는 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래요. 제가 그걸 막아 버리면 자기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냐고 묻더라고요. 그리고 저한테 그랬어요. 도망쳐 보라고요. 어떻게서든 저를 찾아내 만질 거고, 제가 죽을 때까지, 제가 결혼을 하더라도 자기한테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말문이 막혔어요. 저는 그래도 아빠가 그 이후로는 좀 자제할 줄 알았어요. 근데 너무 헛된 희망이었나 봐요. 그래도 다행히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에는 그만뒀어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더라고요. 2024년 1월에 저를 폭행했어요. 그리고 살해 협박을 했어요. 이 일을 밖에 나가서 누군가에게 말하면 저를 죽이겠다고 했어요. 제가 도망가면 사람을 써서라도 찾아낼 거고, 찾아내서 죽일 거라고 했어요. 때려서 죽이든, 칼로 찔러 죽이든 어떻게든 죽일 거니까 어디 가서 발설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때 너무 심하게 폭행을 당해서 상체 곳곳에 멍이 잔뜩 들었어요. 옆구리, 허리, 배, 가슴까지 어느 곳 하나 멍들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살려 달라고 빌었는데 아빠는 그런 저를 발로 차고 밟고 주먹질했어요. 제 머리채를 잡고 던졌고, 제 얼굴을 수차례 가격했어요. 발설하면 죽여 버린다고 하니까... 그런데 우리 아빠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절대 말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 아빠가 주방에서 식칼을 꺼내 제 목에 들이밀었어요. "발설하면 칼로 네 목을 난도질해 죽일 거야." 그 행동을 보고 저는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저 사람은 진짜 저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솔직히 살아가는게 너무 두려워요 이게 다 제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저 소설이었으면 좋겠고 영화의 이야기였으면 좋겠어요. 근데 이게 현실이라는게 너무도 역겹게 느껴져요... 요즘따라 매일 밤 꿈에 나타나요 20살이 되자마자 도망치듯 집을 나와 자립했는데, 원가족으로부터 분리되었는데... 왜 저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걸까요? 누군가 손만 올려도 숨이 턱턱 막히고 교회 언니들이 안아주고 토닥여주는 손길들조차도 버겁습니다. 아버지와 겹쳐보여서요.. 그런데 또 아버지가 너무 역겹고 더럽고 추악하고 원망스러움과 동시에 아버지가 불쌍하고 내가 다 망쳐버린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듭니다. 자꾸만 눈물이 나요. 엄마가 아픈 것도 내 탓인 것만 같고 내가 가족들을 망쳐버린 것 같고..... 그냥 잘 모르겠습니다. 뭘 어떻게 살아야하나요 얼마나 더 견뎌야하나요.. 사건은 계속해서 진행 중에 있는데.. 검사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걸 계속 진행하는게 맞는지도 모르겠고 아버지가 벌을 받는다고 해서 제가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 같아서 더 모르겠습니다. 저 어떡해야하나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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