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년생에 2년제 전문대를 나오고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습니다. 자격증도 경력도 쌓지 않고 언젠간 되겠지 하며 미루다가 뒤늦게 후회를 합니다. 공항 지상조업에 지원을 하고 싶은데 이미 늦어버리고 무엇하나 없는 제가 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직업이 아니고 소박한 거 여도 좋아요 적어주시면 언젠가는 꼭 이룰 거예요 🍀
특성화고 갔다가 이번에 취업해서 오늘로 1개월차인데 3개월만 지나면 정규직 전환이였습니다. 그래서 일도 열심히하고 야근도 하면 안되지만, 정말 간절하게 이 회사에 다니고 싶어서 채용공고에서 *** 못한 새로운 일과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했습니다. 팀원분들 대부분도 좋았습니다. 한 분이 제가 뭐만하면 테클을 걸고 짜증을 내도 제가 조금 버티지라는 마인드로 다른 사람일도 제가 하면서 다녔습니다. 근데 오늘 퇴근 5분전 팀장님께서 부르시더군요... 수습기간 종료하고 학교로 돌아가라고요... 사유는 제가 이 부서와 결이 안 맞는다는 이유였습니다, 팀원들에게 물어봤으나 제가 질문을 너무 많이하고, 피드백을 들어도 좀 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너무 일하는 속도가 느리고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그리고 자기들은 경력직을 더 선호한다고.... 솔직히 억울했습니다.. 왜냐면 그런 저한테 다음달 업무를 다 맡겼거든요... 그러고는 하시는 말씀은 다음달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였습니다... 그걸 듣고 모든 퍼즐이 맞춰지더라고요.. 모든 일에 태클을 거는 그분이 어느 순간부터 태클도 안 걸고 오히려 친절해 지시고, 보통 일주일 전에 하면 될 일을 굳이 한참 남은 지금 저한테 다 하라고 한 이유도... 듣고는 슬픔도 아닌 허탈함과 배신감이였습니다.... 퇴근 전까지도 그 생각에 맨탈이 나간 상태로 퇴근했습니다... 그냥 모든 어른이 다 혐오스럽습니다... 주변에 좋은 어른은 한 명도 없는 제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솔직히 이제는 아무도 못 믿을 것 같습니다.... 대체 제가 뭘 어떻게 해야하나요?... 당장 내일 팀원들 볼 자신도 없습니다....
조용하게 차분하게 혼나니까 기분이 더 이상하다 내가 퇴사하니 사람이 착해짐 순한맛 됨
전 고3인데 꿈을 제대로 못정했어요 성우라는 꿈과 일본에서 디저트가게를 둘중에 뭘 선택해야할지 모르겠고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만약 당신의 그림 실력이 터무니 없어서 그림 분야 일을 포기해야 된다면 어떤 직업을 갖고 싶으신가요? 보통 그림그리시는 분들이 다른 직업은 뭘 갖고 싶어하는 지 알고 싶어요...... 제가 지금 그림 쪽 일이 부담돼서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인데 제가 좋아하는 게 딷히 없고 잘 모르겠어서요ㅠㅠ
최근에 알바에서 짤리고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이곳 저곳에 알바 지원을 했는데 도통 연략이 없습니다 물론 한곳에 연락이와서 내일 면접이 예약이 돼어 있는데 면접에서 떨어지면 직업학교에 들어가서 용접을 배우고 취업을 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직업학교에 들어가려면 2~5개월은 기다려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아무것도 안하기는 그러니 우선 집안일도 하고 방청소도 하고 체력도 기르고 일용직 아르바이트도 찾아보기도 하는데 도통 진전이 안보입니다 도대체 뭘 해야할지 감이 안잡힙니다 도와주십시오
지-잡대 산업디자인과 4년제를 24년에 졸업을 하였고 우울증에 취업 준비도 알바도 포폴도 안만들고 벌써 3년이 되었습니다. 자격증이라고는 컴활2급, GTQ 1급, GTQi 1급밖에 없고 컴활있어도 엑셀 다 까먹었습니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합니다. 부모님도 이제는 한계라며 Ai때문에 가망없는 브랜드 디자이너 하지 말고 아는 분의 딸처럼 공무원이나 하라고 화를 내셨습니다. 당연히 저는 욕먹어도 쌉니다. 지금이라도 지능 낮은 이 머리로 공무원이 가능할까요? 수능 때 다 5등급 맞았는데... 이 말을 듣고 방에서 볼에 손자국이 빨갛게 남을 정도로 뺨을 세게 때렸습니다. 다음날에 일어나보니 표정을 지을 때나 밥먹을 때 얼굴 근육이 아프더라고요. 한심합니다. 사실 25년도에 7월부터 국민취업지원제도를 하다가 상담사 지시에 따라 내일배움카드 디자인 포폴 수업을 들으려다가 후기가 다들 안좋았고 학원 선정에 한계가 있어서 사설 학원을 가고 싶다고 단순 이유로 중단한 것이 너무 후회가 됩니다. 스스로가 너무 멍청하고 여태까지 생각없이 살아 온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중단하면 3년 지나야 재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문제가 많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사회성이 없고 말귀를 못알아들어서 소외되고 쉬는 시간에 친구가 없으니 책을 억지로 읽으며 가만히 있었는데 애들이 수근거리고 왕따나 당하고 중학생 때까지 수능 공부와 대학에 대한 생각을 전혀 안하고 그림 그리고 놀았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도 딱히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 엄마가 갑자기 너 수능안볼거냐 뭐먹고 살거냐고 화내서 당황했고 그때부터 뒤늦게 정신차리고 디자인 입시를 급하게 준비하고 지-잡대를 갔는데 이렇게 디자인이 Ai에 잡아먹힐 줄은 몰랐어요. 대학생 때 저 아싸라서 대외활동, 인턴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저 경계선 지능일까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중에 부모님 돌아가시면 집안일은 할 줄 알지만 은행, 돈 개념, 보험, 집 구하는 법 등 문제가 많은데 앞길이 막막합니다. 스스로가 너무 무능력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예전부터 스스로 경계선 지능장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이해하고 해내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관련 특징들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전 학기까지는 팀플이 많지 않았고 취업도 멀게 느껴져 제 상태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회피해 왔습니다. 그러다 이번 학기부터 팀플과 과제가 많아지고 컴퓨터 학원까지 병행하면서, 과제를 제대로 해오는 것조차 어렵고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하는 제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지금 상태라면 어디든 적응하기 쉽지 않겠지만, 특히 사회복지 분야나 사무직은 많은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4학년 진학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4학년에는 자격증 수업뿐만 아니라 팀플과 과제가 있는 일반 수업도 있습니다. 이번 학기를 겪으면서 제 상태가 정말 심각하다고 느껴 지금 상태로 진학했을 때 과연 4학년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한 학기에 약 300만 원의 학비가 들어가는데, 사회복지 분야로 갈 생각이나 관련 자격증을 딸 생각이 없다면 그 비용을 들여 계속 다니는 것이 맞는지도 고민됩니다. 다른 분야로 가고 싶고 현재는 취미로 하는 베이킹과 관련해 제과제빵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진로를 정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4학년에 진학하지 않고 다른 분야를 알아보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다른 분야에 취업할 때 4년제 학위가 필요할 수 있으니 4학년까지 다니는 것이 나을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29살, 열정과 성실함 하나로 살아왔던 청년입니다. 일종의 힐링 공간이었던 이곳에 개인적으로 힘들고 아픈 이야기를 꺼내도 될지 조심스럽지만,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한번 남겨보고 싶습니다. 2020년, 23살이었던 저는 군대를 막 전역하고 막연히 카페라는 공간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새롭게 오픈하는 작은 카페에 취업했습니다. 당시 대표님은 저보다 겨우 두 살 많은 25살의 남자분이셨습니다. 대표님에게도 첫 사업이었고, 저 역시 제대로 된 사회생활이 처음이었던 만큼 모든 것이 서툴렀습니다. 저는 직원이었지만 단순히 주어진 일을 하는 것보다, 내가 운영하는 가게라는 마음으로 부족한 시스템을 만들고 매장을 성장***는 일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당시 월급은 190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돈보다 이 가게를 꼭 성공***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컸습니다. 무엇보다 대표님이라는 사람이 참 좋았습니다. 저보다 겨우 두 살 많았지만 단 한 번도 제게 반말하거나 함부로 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항상 존중해 주셨고, 직원인 제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그런 대표님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 밑에서 일하면 나도 언젠가 성공할 수 있겠다.' 그렇게 저희는 일주일에 6일, 많게는 7일까지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습니다. 퇴근하고 맥주 한잔하면서 매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부족한 부분을 서류로 정리하고, 다음 날 다시 현장에 적용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고된 직장생활이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다행히 장사도 잘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매니저가 되었고,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하고 교육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조금씩 가게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코로나가 시작됐고, 매장은 하루가 다르게 텅 비어갔습니다. 임대료와 직원들의 급여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새롭게 채용했던 아르바이트생과도 계약을 종료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가게를 살려보고 싶었습니다. 혼자 이벤트를 기획하고 마케팅도 해보고, 새벽까지 매장에 남아 새로운 디저트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대표님과 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약 1년 6개월의 운영 끝에 결국 카페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더욱 속상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언젠가 꼭 다시 만나 함께 일하자는 약속을 남기고 각자의 길을 갔습니다. 저는 그동안 미뤄왔던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 27살이 되던 해에 대표님에게서 뜻밖의 연락이 왔습니다. "그동안 음식점 장사를 했는데 장사가 잘돼서, 이제야 제가 모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대표님은 카페를 정리한 뒤 음식점을 운영하고 계셨고, 어느새 직원 10명에 연매출이 아주 높은 규모 있는 매장으로 성장시켜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좋은 급여와 함께 매장 운영 전반을 총괄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단순히 직원으로 다시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저를 믿고 큰 책임을 맡겨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한 바로 다음 날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6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을 마련하고 컴퓨터 두 대를 들여놓았습니다. 그 작은 공간에서 저희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경영과 서비스에 관한 지식도 현장에 적용해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카페와 규모있는 음식점의 운영은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저보다 훨씬 오랜 사회 경험을 가진 50~60대 직원분들을 10명을 이끌어야 했고, 수많은 식자재의 품질과 원가관리, 고객 만족도, 인력 운영까지 책임져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직원분들의 신뢰를 얻는 것조차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오픈 30분 전에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며 대화의 창구를 만들었고 낮에는 사무실에서 시스템을 정립하고 저녁에는 매장으로 내려가 직접 장사를 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외식업 관련 칼럼을 읽고, 직원 교육 방법 및 관리에 관한 책을 공부했습니다. 책에서 배운 내용을 현장에 적용해 보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수정하고, 직원분들과 소통하며 하나씩 바꿔 나갔습니다. 그저 직책만 높은 관리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부분들을 하나씩 체계화하고, 서비스와 품질을 개선해 나갔습니다. 다행히 그 노력은 조금씩 성과로 나타났습니다. 합류한 지 1년 만에 사업성과를 더 높일 수 있었고, 직원도 4명을 추가로 채용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저 혼자만의 성과는 아니었습니다. 대표님의 뛰어난 현장 감각과 직원분들의 헌신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대표님은 현장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었고, 저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관리 체계를 만드는 일에 강점이 있었습니다. 서로 잘하는 분야가 달랐기에 오히려 더 좋은 시너지가 났습니다. 저희는 2026년에 매장을 하나 더 오픈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이번에는 직원과 대표의 관계를 넘어 동업자로서, 그동안 만들어 온 시스템이 다른 매장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 검증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 목표 하나로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매뉴얼과 운영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피곤해도 괜찮았습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고, 이번에는 정말 무언가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2025년 9월, 모든 것이 멈췄습니다. 주말에 쉬고 있던 어느 날, 대표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매장에 출근하기 전 식사를 하셨는데, 몸을 일으키기 힘들 정도로 배가 아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가게가 걱정돼 병원에 가지 못하고 매장에 출근하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장 매장으로 나갔고, 대표님께 빨리 병원에 다녀오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날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다음 날이 되어도 대표님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집에도 찾아가 봤지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틀째 되던 날에도 저는 평소처럼 매장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대표님이 갑작스러운 쇼크로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였습니다. 그 순간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졌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매장에는 여전히 손님이 찾아왔고, 직원분들과 저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와중에도 가게를 마냥 닫아두거나 방치할 수는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켜야 했기에 저는 계속 매장에 나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 시간을 버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대표님이 평생을 바쳐 일군 가게니까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매장은 대표님의 가족에게 상속됐고, 저는 고용승계가 되지 않아 퇴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함께 일하던 사람도, 직장도, 앞으로의 계획도 모두 잃었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함께였고, 다시 일어섰을 때도 함께였습니다. 저를 가장 믿어주던 사람이었고, 제가 가진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었습니다. 단순히 대표님이나 직장 상사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너무 갑작스럽게 잃었습니다. 퇴직 이후 살면서 처음으로 숨이 턱 막히고 공포스러운 공황장애까지 겪게 됐고,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다시 시작할 자신감과 열정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관련 분야의 취업 문턱도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그렇다고 직접 창업을 하자니, 자영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봐왔기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아직 29살이면 젊다고 이야기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저는 아직도 작년 9월의 어느 날에 멈춰 있는 기분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잘해왔던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다시 예전처럼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날이 올지. 분명 누구보다 일하는 것이 즐거웠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마치 달려야 하는 말의 다리가 잘려버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 지금은 그 마음과 용기를 다시 찾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