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2남 3여 중 넷째로 태어났어요 동생이 중증 1급 장애로 많이 아픕니다 동생이랑 한 살 터울로 어릴 때부터 제약이 많았어요 가족 소풍이나 놀러가는 건 힘들었죠 아버지는 매일 일하러 나가시고 엄마는 저희를 키우시기에 벅찼구요 제가 지금 25살인데 중학교까지만 하더라도 가족 몸싸움이 빈번했어요 돈으로요 아빠는 저희를 맘에 안 드셔 하셨어요 집에서는 과묵하고 명령하는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상이었는데 밖에서는 저희 욕을 많이 하셨대요 지금은 나이인지라 일하기 힘드신데 아직 제가 독립이 안되고 오빠 결혼이나 언니 경제적 지원 때문에 지금도 일 나가시는게 죄송스럽고 그러네요 엄마는 지금까지 저희 돌보시는 게 지치셨는지 요새 동생 케어를 잘 못하세요 작은 언니한테 맞기시고 매일 집안일도 하시는데 병원 내원, 종교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세요 많이 지치셨나봐요 큰 오빠랑 큰 언니는 작은 언니 저보다 더 놀았어요 친구도 많이 만나고 일도 늦게 시작하고 동생도 거의 안봤어요 맏이 역할을 못했죠 독립도 서른 초반에 시작했어요 의지 대상은 아니었어요 근데 지금 보니 이 환경에서 둘의 도피처는 바깥이었나 생각이 들어요 작은 언니는 거의 맏이였어요 엄마 집안일 도와드리고 동생 돌봄 거의 언니 역할이었어요 저도 언니가 거의 엄마였으니까요 언니는 3년 전부터 계속 공무원 준비를 했는데 오후, 저녁에는 계속 동생 돌보고 새벽에 공부해서 오전에야 잠을 잤어요 근데 근 1년은 동생을 잠을 설쳐서 새벽에도 공부를 잘 못했죠 근데 항상 시험에서 떨어져서 마음이 안좋아요 현실적으로 공부량이 기존에 시험 보는 사람들이랑 비교가 안되잖아요 근데 언니는 불평하지 않아요 동생 계속 보는 거에 대해, 지금도 묵묵히 봐요 근데 최근에는 지쳤는지 동생에게 화를 많이 내더라구요 언니가 진짜 잘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뭔가 이 가족을 제 3자로 관찰한 느낌이에요 대학교 때 지역이 달라 다른 곳에서 자취하고 잠깐 휴학해 집에서 오랜만에 지내고 있는데 여전히 가족한테 잘 끼지도 못하고, 성격 때문에 큰 언니처럼 그냥 놀지도 못하고 작은 언니처럼 가정적이기도 못하고,, 옛날에는 버림받는 꿈을 많이 꿨어요 저는 스트레스 받아도 어리니까, 진로 고민 얘기해도 어리니까, 좋은 성적을 받아도 이미 오빠나 작은 언니도 그렇게 했으니까 가족들은 깊게 생각을 안해줬어요 고등학교 때 힘들었을 때 거의 처음으로 엄마 앞에서 서럽게 울었는데 너만 힘드냐, 뭐가 힘드냐는 말은 아직도 마음을 저려와요 동생은 제가 너무 사랑하죠 한 살 터울인데도 진짜 사랑으로 옆에 있었어요 동생이 세상을 못 누려 본 걸 다 제가 해주고 싶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았거든요 일에 대한 성과 등등 근데 그것들을 하려고 하니 부담이 되네요 이번에 오빠가 결혼한데요 저도 사회생활 시작할 나이인데 또 오빠한테 밀리겠죠 경제적 지원이나 등등.. 다들 저는 뭘해도 잘 할 거래요 사막에 떨어져도 잘 살거래요 굶어 죽지 않을 거래요 근데 이제 그 말이 그냥 혼자 계속 있어도 되겠다는 말 같네요 저는 저의 압박에 항상 같혀 지냈어요 "나는 이거 해내야 돼" "또 가족들 귀찮게 했잖아 표정으로 드러내지마" "너가 힘들어도 엄마랑 작은 언니, 동생만 하겠어?" "왜 이것도 못 견뎌, 책임을 다해야지" 근데 뒤돌아보니 남는 게 없네요 여전히 저는 가족들 눈치를 보고 바깥에 친구나 편한 관계가 없어요 행복한 기억도 별로 없고요 모든 순간이 제 몫인데 그동안 걸어왔던 게 다 제 잘못일까봐 무서워요 책임을 내려놓고 싶어요 저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을까요 저는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될까요?
남동생이 보이스피싱을 받앗다는데 걱정되서요 법원에서 우편이온다고그러더니 갑자기 이상한 전화받지말라고하더라고요 전 그래서 걱정이무지된게 잘못될까봐겁나요 넷플릭스도안되고 그러니 답답하네요 어젠 춤추면서 잘배웟고요 정신건강복지센터가좋아여 캘리도배울수잇어좋구요 ㅎㅎ 다행히 기억도나요 ㅎ녹음은 처음해봣지만 그래도 인증을하고싶어서ㅠ 근데 그다른언니는 잘지낼까요 ㅜㅜ
1월즈음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후 아빠와 둘이 살고 있고요 2인용 침대가 너무 텅 비어있고 엄마가 보고싶어서 힘들다는 말 때문에 아빠와 매일 같이 잡니다 아빠는 사망 이후 한동안 엄마 영정사진을 들고 외출했고요 틈 날때마다 꽃을 사서 엄마 무덤에 헌화를 하고 물을 주러 갑니다 자기 말로는 공황이 왔어서 힘들었다는데 약 몇 번 먹고 고쳤다면서 약 끊었다고 쉽게 말하고 다닙니다 자기 전에 엄마가 꿈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매일 합니다 청소를 하면서 엄마 살아있을 때 해줬으면 좋았겠다는 말을 하고요 근데 저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습니다 엄마는 늘 저한테 화를 낼때 강자인 아빠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울음소리 한 번 못 내게 했고요 자기 화를 못이겨서 등산스틱으로 머리를 때린 기억이 선명합니다 저는 엄마의 비염 증세로 인한 소리 때문에 고막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중학교때부터 느껴왔습니다 엄마가 주변사람한테 잘했고 저한테도 노력했던걸 알지만 저는 20여년간의 생활 끝에 엄마를 사랑하고 좋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큰 소리나 치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집을 나가서 차에서 자는 사람이었고 그 후에 엄마가 울면 제가 달래줘야 했습니다 이게 제가 미취학아동일때 일상입니다 아빠는 엄마를 ***이라고 취급했습니다 엄마가 장애가 있었거든요 외식하러 갔을때 너같은 *** 챙기는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소리지르고 사과도 안하고 태연하게 밥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살아있을때 못해놓고 죽은 후에 저렇게 후회하고 보고싶어하는걸 보면 제가 죽으면 저한테도 후회를 좀 해줄까요? 엄마가 죽었을때 주변 어른들은 저보고 아빠를 잘 챙기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해야할 상황이었지만 모두 내려놓고 본가로 내려와 아빠와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아빠보고 저를 잘 챙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살아있을때는 여기저기서 가져다 주던 반찬들이 이제는 하나도 오지 않아 아빠의 식사는 모두 제가 책임져야합니다 그런데 아빠는 못먹는거 투성이입니다 돼지고기도 못먹고 튀긴것도 못먹고 메밀과 매운 것도 못 먹습니다 그래서 뭘 먹고싶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말해주는게 아니라 너가 알아서 해야하는 거라고 합니다 저를 주부 정도의 실력으로 생각하나봅니다 저는 요즘 제 끼니도 챙기고 싶지가 않습니다 병으로 입원하거나 죽어서 아빠가 후회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밖에 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집은 11층인데 창문에 안전봉 하나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시골이라 주변에 정신과도 없습니다 온라인 상담 받을 돈도 못벌고 있어서 벌어야하는데 그때까지 버틸 자신도 없습니다 대화는 시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관계개선이 아니라 평생 후회만 하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되면 좋겠습니다 저승에서도 부모를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이 오만원 지폐를 둘이서 하나씩 나누어서 주어서 두장을 받았습니다 쓰지는 않고 불안이 없어지기를 기다리려고 바닥 상자에 두었습니다 기고만장해지는 가족을 볼수 없었습니다 어제 욕실물 독사건도 있고 해서 더 이상은 가족들이 집에 편안히 머무는게 힘들어서 한장은 돌려줬습니다 그사이 부족해진 시간과 끊겨버린 따뜻한 물 때문에 또 못씻고 있었고 기고만장한 가족들때문에 괜히 체압이 상승되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전에도 주변기압이 신경쓰여서 화장품 산다고 가족에게 돈을 받았습니다 백만원 경차완전파손 때 중고라지만 폐차인데 차값도 제대로 못받고 보험도 못받기도했고 아파트구입때도 삼천만원 통장에 있던것 이천팔백 하고 부동산수수료 정도만 출금만 하라했더니 삼천만원을 싹다 출금했더라고요 한번은 우연인지 차량파손시기즈음해서 자투리돈 모아 입금했던 금액하고 같은 금액을 가족여자가 주길래 이상해서 돌려주었습니다 뒤에 차량새로 구입 때 조금 더해서 입금한것은 기억합니다 이것저것 불편했던것도 있어 받았습니다 백만원 회사생활할때 현금영수증 발급받으면서 가족 여자남자 둘다 국민연금도 내줬던것도 분명해서 지금 쓰는 현금카드하고 백만원 권리에 대해 사각지대이니까 주장해보고 싶습니다 요즘은 산재사고로 뒤돌아*** 않던 아랫나라에서 많이난다는 초록차부터 조금씩 마시고 있습니다 나의 과거니까요 이후 경로도 절약해서 의미형성차원에서 적어보기도 하고요 얼른 가족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가까운 바닷가 여행이라도 가고싶네요 도와줄래요
아빠'라는 말만 봐도 눈물이 나 이젠 진짜 괜찮을려고 했는데 다 잊을려고 마음 정리했는데 왜 그러는 걸까, 자꾸만 나를 괴롭혀 내가 애쓰는 건 누구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구라도.. 한명이라도 주위에서 알아주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아빠가 이런 나를 보고 더 원망해도 아무렇지 않고 받아들일 자신 있었는데 또 흔들려, 이젠 내가 아빠보다 더 힘들어진 것 같아서 나 이제 아빠보고 원망해도 되냐고.. 죄송하다고 쉴새없이 말했으니 이제 용서가 됐냐고.. 너무 간절하게 물어보고 싶어졌어
안녕하세요. 대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입니다. “미소띤 모습과 재치있는 입담, 예의바른 행동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기가 높은 학생임.“ 이 문장은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적어주신 행동 특성의 첫 문장입니다. 초중고에서 늘 반장을 맡고 코로나 시국에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공대에서 최초 여자 학생회장을 맡아 학과를 이끌기도 했답니다. 사람들이 저로 인해 행복해하고 저의 웃음이 전염되는 걸 보는 게 제 취미이자 삶의 의미였어요. 아마도 사랑을 넘치도록 주신 엄마와 아빠가 계시고 이따금 장난을 쳤지만 매 순간 귀여워해주던 나이터울이 큰 오빠들 두명이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맑고 밝음을 지켜올 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땐 많이 어렸고 아빠가 엄마의 몫까지 전부 다 해주려하셨으며 친구들도 매우 조심히 또 매우 가까이에서 저를 지켜주었기에 잘 이겨냈어요. 아빠는 본업도 하시면서 집에 와 교복을 하얗게 빠는 법을 연구하시고 요리책을 사 모으시고 재봉틀까지 배우셨답니다. 매주 친구들을 데려와 바베큐 파티도 열게 해주셨어요. 작은오빠와 큰오빠는 나중에 알았지만 엄마쪽 이복오빠들이었어요. 그럼에도 추석마다 늘 아빠께 인사드리러 오고 엄마 묘에 매번 왔고 저를 사랑해주었죠. 대학에 와서 하루도 빠짐없이 대외활동에 대회와 학생회 모임들에 나갔는데, 타지에서 혼자 살아가려다 보니 더 각성했던 것 같아요. 시골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얻을 수 없는 정보들을 한꺼번에 하고 얻을 수 있었으니 제 세상이 따로 없었답니다. 300km라는 물리적 거리의 한계로 아빠를 자주 보러 가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매일매일 아침저녁마다 전화를 하고 일상 사진을 서로 공유했어요. 그치만 아빠는 제게 엄마와 아빠 역할을 모두 하느라 친구분들과 연락이 뜸해졌었고 아마 많이 외로웠을 거예요… 미안해 아빠 한편 고등학교때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어느날 작은아빠께 연락이 오더라구요. 아빠가 대학병원에 있다고. 들어보니 대장에 종양이 발견되었대요. 그런데 너무나도 다행히 병원에 일하러 가셨다가 대장암 검사 키트가 있어,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에 했던 검사에서 발견되어 초기 대응을 할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마음졸이며 살았는데 제가 대학가고서부터는 아빠가 아이스크림도 끊으시고 독하게 식단이며 운동을 하시더라구요. 기뻤어요. 타지로 대학을 와서 열심히 힘이 닿는데까지 살았는데, 그게 아빠의 원동력이었겠죠. 제가 신문에 나고 인터뷰를 하고 대기업 최연소 인턴을 하는 걸 여기저기 자랑해주는 아빠가 있어서 행복했어요. 지금은 제가 스스로 이렇게 어필하지 않으면 해줄 이가 없네요. ㅎㅎ 확실한 건 아빠도 제 원동력이었어요. 3학년때부턴 경제적 자립을 해보고 싶어서 밤을 새워 공부를 하고 공강과 주말엔 알바를 해보았어요. 그렇게 주말 알바를 하던 중.. 아빠의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많이 아팠을 우리 아빠의 마지막을 제가 지켜주지 못했죠. 그렇게 아빠를 보내주지 못하는 마음과 상실감, 너무나 많은 상속 처리를, 그 당시 저를 한없이 사랑해주던 동갑내기 남자친구가 휴학을 하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며 보살피고 해결해주었어요. 웃음을 되찾아준 고마운 사람이에요. 그렇게 한학기를 상속처리와 시골집 청소로 보내고, 남자친구와 저는 각자의 대학교로 복학했어요. 남자친구는 학교생활에 전념하고 싶다며 헤어짐을 원했고 쿨하게 잘가라고는 못했지만 열심히 이별했어요. 학교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일년여의 학교 생활을 마쳤는데… 오빠들의 소식이 들려왔어요. 큰오빠가 자살을 했대요. 아빠 돌아가시고 일주일 뒤에 따라갔는데 제가 너무 충격받을까봐 작은오빠가 말하지 못했대요. 우리 작은오빠도 정말 힘들었겠죠… 그리고… 자세한 건 모르지만 작은오빠가 구속될 거래요. 제 하나뿐인 가족이고 평생을 사랑한 오빠이기에 저는 야속하게도 걱정만 되어요. 예전에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 편의 가족들에 관한 책을 읽고서, 안타까우면서도 편견에 맞서는 건 어쩔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제 친구들도 그럴 것 같아서 저와 제 상황을 제 친구들에게 짐 지우고 싶지 않아서 숨어버렸어요. 이렇게 지금까지의 제 상황에서 제가 너무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근 한달간 친구들의 연락을 안 받고 살아가고 있어요. 집에서 짱구만 틀어 놓거나 잠을 자요. 배달 음식을 먹고 살 찔까봐 토하기도 해요. 친구들에게 아무리 전화가 와도 다 방해금지 모드로 안 봐요. 고맙고 미안함의 눈덩이가 계속 짓누르는데 이제부터 연락을 돌리면, 아마 그게 제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아서 더 멋진 말로 포장해 돌리고 싶어서 미루게 되는 것도 있어요. 지금까지 너무나 반짝이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이젠 더 반짝일 수 없을 것 같고 반짝일 이유가 없어요.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제 시간은 흐르지 않고 멈춰버렸고 오빠들도 너무 안타까워요. 엄마와 아빠 곁으로 가면 편안할 것 같아요. 엄마랑 아빠랑 큰오빠 라는 호칭이 앞으로 제 입에서 나올 일 없다는 게 참 아파요. 내가 누구보다 많이 사랑해줄텐데, 정말 좋은 딸이 될텐데 이렇게 빨리 갔어. 인스타 릴스에 가족콘텐츠가 올라오면 나는 너무 한없이 부러워. 보고싶어 부르고 싶어 엄마 아빠 오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님들께 제가 용기내어 상담센터에 간 적이 있는데, 오히려 제가 더 이야기를 들어드리고ㅠㅠ 종교를 권유하시고 그러길래 발길을 끊었거든요… 원래 그런 치유도 있는 걸까요?
19살 미대 준비중인 입시생이에요 저희집은 세 자매이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타 지역에 살고계세요 나름 화목할땐 화목하다가도 가끔 갈등이 일어나면 집이 완전 살얼음판이에요 저는 이걸 초딩때부터 봐왔지만 곧 몇달뒤면 성인 되는 나이임에도 아직까지 집 분위기가 험악하면 가슴이 막 뛰고 할 일에 집중이 안되요 다른 사람들은 신경쓰지말고 자기 할일만 해라 얘기하는데 저도 알고있어요 하지만 사람 마음이 생각처럼 되면 얼마나 좋게요.. 특히 엄마와 동생 갈등이 요즘 점점 커지고있어 고민이에요 둘이 싸우면 일절 얘기를 하지않아요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해버리는데 장녀로써 그게 마냥 멀뚱히 보고만 있는게 힘들어서 나름 중재도 해봤지만 요새는 중재를 해도 또 싸울걸 아니까 안 하고있어요... 이짓조차도 어릴때부터 해왔어요. 부모님끼리 싸우실땐 어떻겠어요 정말 그때는 살고싶지 않을정도에요. 저희 어머니 성격이 정말 저랑 안 맞은 드센 성격이세요 요새 갱년기 때문에 더 예민해진거같아요.. 어쩌다 저와 어머니랑 싸우면 어머니도 저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세요 저는 이게 버티기 힘들어서 먼저 사과하는 편이였어요 근데 이제 점점 힘드네요 엄마 본인은 저한테 사과 제대로 해본적 없으시면서.. 결론은 현재 가족끼리 부딪힌 상황에 집의 분위기 때문에 숨을 못 쉬겠어요
17살, 자퇴생입니다. 항상 기분나쁜듯이 구는 제가 생각하기엔 좀 사상이 꼬인듯한 어머니가 계십니다. 아, 추가로 자퇴는 괴롭힘으로 인해 1학기를 남겨두고 3학년 1학기에 하게됐어요. ..무튼, 제가 생각하는 어머니의 문제점, 1. 장난이라하기엔 좀 듣기거북한 말씀. ( 예:졸업못한 초졸학력(검고로 이미 중졸 했는데도.) 2. 성인되면 선물사줘라,용돈 줘라,유럽 +패키지+크루즈 여행보내줘라, 20살되고 같이 살려면 50만원씩 매달줘라 안그럼 그냥 진짜 나가라.(임대라 월세 50도 애당초 안넘고 엄마자신도 그돈이 크다는걸 아시면서 그런걸 대학생때부터 요구하는게 과연 맞을까 생각해요.) (이 얘길 중1때부터 은근히 하시다 최근엔 진짜 밥먹듯 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이부분에 대해서 다시 얘기를 꺼냈는데 되게 당당하게 (tv에 나오는) 호선쌤이 하라그랬어! 라며, 오늘 밥없다는데 밥이고 뭐고...하아.. 3. 실수로 발밟았을 경우, 실수지만 어깨로 쳤을경우 미안하다고 절대하지않음.(지적하 면 되려화냄,근데 남들한텐 또 안그러심) 실수로한건 자기잘못이 아니다라는 신념. 4. 예전에 부모님과 싸웠을때, 그때 너무 속상함과,서러움에 그 자리에서 자해를 했는데(자해라 해야할지... 주먹쥐고 머리를 세게때리거나, 벽이나 책상모서리에 머리를 내리침(다행히 그때 집이었어요.)) 그때당시 어머니는 비웃으며 더하라고 재촉했고, 지금까지 심각성을 깨닫지못한채 가끔 그때 일을 언급하며 놀림.(손으로 머리때리고, 벽에박고 그러는 제스처까지..) 5. 고민상담해줄땐 당시엔 참으면 복이온다, 지금까지 잘했다라는 위로(?)를 해주시지만 다음날엔 사실 한심했다고 털어놓으심. 니가 슬프면 다른사람은 더슬프고, 니가 죽고 싶으면 내가 더 죽고싶고, 그냥 지금 뛰어내릴 까? 같은 말도.. 6.사람이 화가많음. 장난에도 욕이 꽤 섞여있고 (특히 ~년) 싸울땐 진짜 다해요. ㅅㅍ,ㅅㅍㄴ, ***,ㅂㅅ 등등등... 뭐 이외에도 무궁무진하지만 대강 이정도 에요.(제일 단점이라고 생각하는건.) 위로같은 건 더이상 안바래요. 해결책,그리고 어머니가 어떤유형의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네... 엄마가 대체 뭔유형인지... 그리고 이런부류의 사람들 어떻게 대해야 (20살때까지) 싸우지 않을수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제발 누구라도 좀 알려주세요 제발요. 너무 지긋지긋해요. 같이살며 무슨마인드로 저를대하고, 그사람을 대해야할지 아무나 좀 제발 알려주세요.
뭔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는 게 티 나려 하니까 학교에서 힘드냐 ㅇ***이야 니들 때문에 힘들다고 멍청한 자식들아
아버지랑 자꾸 부딪칩니다 오늘도 아***건을 변기통에 빠뜨렸는데.. 입에 쓰는건데 어찌그렇냐? 내가 잘못하긴했지만..참 욕은 다듣고 사네요..결국 아버지가 내가 잘못한거냐며 결국따지지만 제가 빡쳐서 그렇면 버릴라고 했습니다. 그이후 계속 ***어됬지만유 나가사는게 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