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자식들 썪었네, 마지막 까지도 내 탓이라 그러네. 난 잘못한거 받아들이지도 못했는데. ㅋ.ㅋ...ㅋ.... 오늘만 버티면 되는데 너무 힘들다.... 내편은 없다... 마지막까지도 네 탓에 우린 널 해고하는거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금전적인 피해? 나도 그래요. 나 지금 월세방 계약금까지 내서 돈 벌어야하는데 먼저 해고했잖아요. 아... 진짜....
요즘 ai발전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ai이미지로 대체되었더군요. 누구든 쉽게 공짜로 접할 수 있어 온곳에 ai영상이나 이미지가 쓰이던데. 미래에 제 진로가 안정적일지 의문이네요. 저는 그림을 전공으로 하고 싶고, 저만의 색을 담아 원하는 대로 그려내는 그림이 순수하게 재밌어요. 적성에 잘 맞는것 같은데.. 가끔은 세상의 발전이 제 앞길을 막는 것같아서 두려워요. 제가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요?
언제 구조그룹을 만나 평준이상의 삶을 영위할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세계구조공백에서 긍정긍정을 절대결정체차원에서 탐색적응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그런데 무한기하순환이 있어야 구조화를 넘어 안정적인 환경화가 있을것 같습니다 작금의 최신패러다임으로 일컬어지는 ESG경영도 기업내현상에서 시작되는건데 개인이고 여성고립이고 미혼환자인 본인에게 언제 영향과 효과가 있을지는 불안할 뿐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대장금 다시보기를 했습니다 50회가 넘는 대작 특집 사극이었는데 사극을 뒤집고 역사를 정제할만큼 여성이미지의 등장을 고취하는 시사였다고 해도 될듯합니다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사전제작부터 여성들을 위한 한식의 재편성 한복의 재복식문화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역사 내에서 여성의 중앙진출과 직업을 꺼내어 현대의 직업여성의 배려와 지지를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수출을 통한 사회 외적으로도 확장해준것 같습니다 첫회를 봤는데 여성죄인에게 사약을 내리는 무장한 남자 형조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분명 내명부와 중인 궁녀들이 해도 위험했을 일인데 정말 보기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극복을 해내고 여성인권을 확장하고 고결할 수 있도록 하는 풀이를 해낸것 같아 보입니다 어쩌면 이런 내용들이 적십자나 유엔 세계보건기구 연합장병들이 해낼 수 없는 여성사각지대구조의 절대체계를 만들어줄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제작진과 연기자들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여성인권을 하모니로 만들어갑니다 사전제작의 단계는 사회내에서 공개된것이 아니니 사회외의 최소객관독립성을 유지할수도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기사였지만 기억이 나는데 제작진과 연기자들을 위한 캐터링 서비스가 지역주민의 빈곤가정 지원방편이 되었다거나 대장금 촬영을 위해서 좋은 자연경관을 지키기 위해서 개발금지나 불법건물폐기명령이 있다고도 전해들었습니다 연속극을 하게되면 너무길고 사회 각계의 여성을 통한 해석과 토론을 뒷쪽에 덧붙여서 왕의 등장없이 권력은 중전 공주정도로만 하고 매년 한회씩 특집편을 만들고 더빙없이 한국어 일본어 중문 영문편을 만들면 216년간 후세까지 세계표준시간 스케쥴링이 되지 않을까요 여성보호 절대결정체차원 무한기하순환 을 생각해봤습니다 재미있는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긍정 속에서 하루를 지낼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도와줄래요
해고당하고 내일이 마지막이예요!!! 만세!!! 정말 음습하고, 끔찍한 곳이었어요. 무슨일 당했는지는 제 글 좀 보면되요. 내일이 마지막인데 뭘해야할까요? 일단 오늘은 웃으면서 잠들게요 히히
계속 후회만 밀려오고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어찌할 수 없는 거 알면서도 후회감이 몰려와요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오며, 언젠가 작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업·조직·개인의 구조를 설계하고 점검하며, 다차원적 병목을 분석하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느끼신 점이나 피드백이 있다면 편하게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OS는 인간의 정체성과 같다 이전에 이야기했던 OS와 편집은 따로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축을 향하고 있었다. 편집은 자신의 맥락을 구성해 나가는 성장의 과정이며, OS는 인간이 세상을 해석하는 작동 배경이자 정체성의 기반이다. 그래서 정체성은 어떤 고정된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OS라는 세계관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업데이트되어 왔는가의 문제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떠올리면 기능, 앱, 디자인을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 모든 작동 방식을 결정하는 핵심은 OS다. 그런데 이 OS가 돌아가는 본체, 즉 뇌의 구조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경험의 누적이다. 환경, 관계, 충격, 습관, 문화 같은 삶의 반복적 경험이 쌓여서 각자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OS가 계속 업데이트된다. 이 누적된 업데이트가 바로 정체성의 기반 구조가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말투, 취향, 목표, 관계 방식은 모두 앱에 가깝고, 그 모든 것을 허용하고 제한하고 해석하는 깊은 구조가 OS다. 그래서 인간의 정체성은 성격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세계관의 핵심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정체성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내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읽고 해석하도록 학습되어 있는가”라는 의미의 OS에 가깝다. 정체성은 마음속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나도 잘 의식하지 못하는 채로 항상 뒤에서 돌아가는 해석 엔진이다. 안드로이드와 iOS가 완전히 다른 구조로 작동하듯 인간의 OS도 서로 다르게 최적화된다. 같은 사건도 각자 다르게 저장되고, 같은 말도 서로 다른 감정으로 변환되고, 같은 선택 앞에서도 완전히 다른 결론이 나온다. 정체성은 뇌의 설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이 압축되고 축적된 개인화된 OS, 즉 세계관 알고리즘에서 나온다. 결국 우리의 삶은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내 OS와 환경의 OS, 그리고 타인의 OS가 충돌하는 지점에 의해 움직인다. 해석, 판단, 관계, 감정, 선택은 이 세 구조의 충돌 속에서 발생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라는 말은 사실 타고난 성격 진술이라기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세계를 읽고 반응하도록 길들여진 OS를 갖고 있다”는 고백에 가깝다. 정체성은 고정된 레이블이 아니라 환경 OS와 타인의 OS, 그리고 그 충돌을 통과하며 계속 재조정되는 작동 구조다. 그렇다면 OS는 어떻게 계속 무거워지는가. 많은 사람들은 업데이트를 정리되고 최적화되고 가벼워지는 과정으로 오해한다. “업데이트했다”는 표현에는 성숙과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하지만 실제 OS 업데이트는 그 반대다. 업데이트는 비워내기가 아니라 더 많이 집어넣는 과정이다. 더 많은 기능, 더 많은 설정, 더 많은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기능이 늘어날수록 의존성도 늘고 관리해야 할 항목도 많아져 시스템은 더 무거워진다. 스마트폰이 업데이트될수록 용량과 배터리 소모가 커지듯 우리의 내면 OS도 업데이트될수록 더 많은 정보가 쌓인다. 학습 또한 업데이트와 같다. 반복과 축적, 시행착오를 통해 이해가 깊어질수록 처리해야 할 정보량은 더 커지고, 그만큼 시스템은 더 무거워진다. 여기서 말하는 ‘무거워짐’은 나빠졌다는 뜻이 아니라, 정체성 OS가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더 많은 경우를 알고, 더 많은 예외 규칙을 품게 되었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복잡성이 의식적인 기준과 함께 자라지 않으면 풍부함이 곧바로 혼란으로 전환된다는 데 있다. 이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은 점점 혼란에 잠긴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 처리되지 않은 정보, 배경에서 계속 돌아가는 기억들은 OS를 점점 느리게 만든다. 문제는 세상이 “추가형 업데이트”로 움직이는데 우리는 그것을 “정리형 업데이트”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업데이트했으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오히려 과부하를 정상화시킨다. 실제로는 더 많은 정보가 더 넓은 선택지를 만들고, 더 높은 불확실성을 만들며, 판단을 더 무겁게 만든다. 선택지는 늘어났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지 모르면 판단은 고장 난다. 결정은 미뤄지고 책임은 두려워지고 OS는 가벼워지기는커녕 더 무겁고 더 느려지며 우리는 더 빨리 포화 상태에 도달한다. 이때 우리가 느끼는 ‘정체성 혼란’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추상적 질문 이전에 “이 복잡해진 OS를 어떤 기준으로 운용할 것인가”라는 구조적 문제다. 즉, 오늘의 혼란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업데이트된 OS를 다루는 기준이 따라오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에 가깝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를 넣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그 기준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이 기준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 자체가 정체성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끝이 없다. 요약하면, 이 글이 말하는 정체성 업데이트는 ‘지식 추가’가 아니라 ‘선택 기준 재설계’다. 무엇을 내 OS에 남겨둘지, 무엇을 과감히 차단할지, 더 이상 내 세계관의 일부로 두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작업이야말로 정체성의 가장 실질적인 변화다. 그렇다면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일상의 사례를 떠올리면 쉽게 보인다. 메신저 업데이트 목록에서 내가 자주 사용하는 기능이 사라진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업데이트를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버전이 내 목적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업데이트=빠르고 좋아진다”는 막연한 인식의 기원을 모른 채 그냥 업데이트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기능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후회한다. 이 차이가 구조적 사고다. 무엇이 빠르게 업데이트되는지, 왜 최적화되었다고 느끼는지, 어떤 가능성이 열리고 어떤 가능성이 닫히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이해하는 능력이다. 다뤄야 할 정보량이 많아진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면 선택의 구조는 점점 흔들린다. 구조적 사고란 ‘좋아 보이니까’, ‘다들 하니까’가 아니라 “나의 목적, 나의 자원, 나의 OS 상태”를 기준으로 업데이트의 방향을 점검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부족하면 정체성 업데이트조차도 타인의 기준과 환경의 속도에 떠밀려 일어나는 일이 된다. 이제 관점을 나 자신에게로 돌리면, 이것은 결국 자신의 OS를 점검하는 과정이다. 나는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는가. 그 습관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지금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었는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 왜 이런 반응이 나왔는가. 나는 왜 최적화되었다고 느꼈는가. 그 느낌의 기원은 무엇이었는가. 어떤 가능성이 열리고 있었으며 어떤 가능성이 닫히고 있었는가. 내 판단은 어디에서 출발했고 그것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었는가, 아니면 익숙함과 두려움에서 나온 자동 반응이었는가. 내가 지금 다루고 있는 정보량은 얼마나 되는가. 내 OS는 그 양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이 질문들은 결국 나의 시스템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기준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드러내준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문장을 자연스럽게 해체한다. 답을 따라가다 보면 ‘원래’라고 믿어온 것들 역시 특정한 시기, 특정한 환경, 특정한 관계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OS 버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정체성은 그 버전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다시 편집하고 덜어내고 재설계할 수 있다는 자각에서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신다"는 단순한 일상도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누군가는 남들이 마시니까 따라 하고, 누군가는 습관적으로 컵을 들고, 누군가는 단지 '잠이 깨는 기분'을 느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기분이 아니라 잠이 깨는 감각 자체를 포착한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감각을 포착하는 순간,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를 드러낸다. 감각이라는 구조 안에서 습관, 기분, 행동, 필요 등이 서로 연결되어 움직인다. 이 구조가 생기면 커피는 외부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상황이나 현상을 겪고 매번 업데이트가 된다. 생산성의 조건, 리듬의 변화, 집중의 출발점처럼 확장된 의미로 재해석된다. 그리고 이 의미는 또 다른 관점을 계속해서 파생시킨다. ‘잠을 깨운다’는 작용을 이해한 사람은 관점이 확장되어 그 감각의 본질을 다른 영역에도 자연스럽게 적용한다. 커피라는 작은 행위가 감각을 통해 OS의 구조를 드러내듯, 어떤 습관이든 그 기원을 따라가면 동일한 OS 작동 방식이 드러난다. 관점을 나로 돌려보자 예를 들어 손톱을 뜯는 습관을 보자. 우리 내부 관점으로 돌려 손톱을 뜯게 된 기원이 뭘까? 아, 긴장을 해소하려고. 왜 긴장할 때마다 손톱을 뜯게 되었을까? 뜯는 순간 신경이 분산되고 그 감각에 몰입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배우게 되었을까? 아, 친구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무의식적으로 따라 했던 것이 습관이 되었구나.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현상의 해석 그 자체가 아니라, “아, 나는 모방하는 본능이 강하구나”라는 더 깊은 구조를 보는 것이다. 왜일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모방으로 학습하며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책이나 포기로 이어지는 해석이 아니라 자신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연결된다. 이해를 하게 된다면? 선택지가 보이고 선택지가 보인다면? 실행이 가능해지며 이해를 통한 해답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관점이 확장되어 습관이라는 게 범위가 다양하구나 생각하게 되며 자신의 선택이나 결정 등 행위를 한 번 더 점검하게 된다. 이 해석이 확장되면 집단적 관습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사실도 보이게 된다. 즉, 아주 사소한 일상도 OS의 작동 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며 정체성은 이런 관점의 축적을 통해 확장된다. 결국 정체성은 앱을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OS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확장되기 시작한다.
겁도많고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단기알바만하며 살아가다보니 어느덧 무직백수 27살이 되었네요.. 내년엔 28살인데 이제는 정말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할 것 같은데 이력서 넣기도 겁이나네요.. 이제는 이런거 따질데가 아닌데도 ㅜㅜㅜ 제가 5년전에 전산세무랑 회계자격증 취득한게 있어서 세무회계쪽으로 가려고했어요 근데 입사지원하기 두려워서 지금까지 못하게되었는데 이제 지원하려니 하나도 생각나는 것도 없고 회계1급 수준도 안될지경이라 취업된다해도 업무를 숙지 할수 있을까 싶어요... 그리고 저는 사람들 감정에 공감하고 도와주는걸 좋아해요 그래서그런지 주변에서 사복 추천도 많이해줘서 사복2급 학은제로 딸까하는데 이것도 하는게 맞는지 싶어서 ㅠㅠㅠ 하.. 모르겟어요 그래도 그냥 다 일단 해보는게 낫겟죠?? 진심어린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 선택으로 생긴 4년의 공백기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다들 인턴 경험도 있는데 나는 없다. 무경력이다. 아무것도 안 한건 아니지만 심적으로 부담이 된다. 죽음이라는 답 밖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죽을 용기도 자신도 없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거 아는데 미래가 암울하고 막막해요
열심히 생각하고 많이 지원했는데 연락이 없다 ㅠㅠㅠ 속상하다... 뭐라도 내가 잘할 수 있다는 걸 ... 보여주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