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낮과 밤이 바뀐생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불안|불면증|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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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달 전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낮과 밤이 바뀐생활이 나를 스스로 구렁텅이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일어나니 팔과 다리 머리까지 피가 안 통해서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디차고 심장박동이 느릿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자마자 휘청 뒷목이 땡기면서 늪속에 빠지는 것처럼 몸이 이상했다. 손발이 차갑고 저리고 온 신경이 날이 선것처럼 반응했다.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답답해서 숨을 몰아쉬었다. 곧 죽을것같고 머리가 어지럽고 집과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아무도 없고… 숨이 가쁘고 손발이 차가워져서 곧 죽을 것 같아 천식호흡기를 하고 숨을 몰아쉬는데 갑자기 8살 어린시절에 내가 되서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빠가 엄마한테 칼을 던져서 칼이 바닥에 꽂혀있었고 나는 그 광경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엄마가 집을 나가 옥상에서 뛰어내린다고 하여 너무 불안했다. 6살 무렵 에스컬레이터가 무서워 주춤거리다 발을 헛디뎌 넘어진 내게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었지. 사실 더 어렸던 유치원때는 남들보다 느리고 엉뚱한 생각으로 어릴적부터 난 친구들과 쎄쎄쎄를 하거나 함께 어울리는 게 어려웠다. 왜냐면 생각이 많았고 가위질하는거나 과학실험하는 게 재밌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왠지 어려웠다. 초등학교 시절 난 수시로 배가 아파서 조퇴를 했었다. 아마 그때도 예민함이 컸던건지 곧 잘 배가 아팠다. 난 가만히 앉아 세상 모든 긴장을 품고 교실 한 켠책상 위에 엎드려있었다. 6학년때 전학을 갔다가 새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원래 초등학교로 돌아왔고 1시간 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때는 은따 같은 걸 당했었던 것 같고 나랑 친구인 아이들은 무언가 결핍이 있는 아이들 무리였다. (이혼가정아이들) 고등학교때는 그나마 나아졌지만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때도 내가 속한 친구무리는 어려운 아이들 결핍된 아이들 무리였다. 20대를 지나 대학에 가서 남자친구를 사겨보고 희노애락을 겪고 헤어지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비관적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남자친구는 나의 불안함과 충동성 그리고 낮은 자존감등으로 인해 싸울때마다 다른 여자를 만났었다. 그랬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고.. 큰 사건이 터졌었고 군대를 기다려주었다. 성숙하지 못한 풋내기 사랑 아마도 서투른 사랑의 원인은 내 자신이 아직도 유년시절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픈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아서겠지. 마치 처음부터 일그러지게 만들어진 유리잔처럼 무엇을 담아도 스스로가 볼품없어 보이고, 자꾸만 남들과 다른 나를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삶이… 내 스스로가 한심하단 생각. 성인이되어서도 늘 불안하고 눈치보는 아이가 되었다. 점차 스스로를 갉아먹는 성격이 자리잡혔다. 수줍음이 많아 심부름보내기를 할 때 수퍼에 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있기만 했었다.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가서 남들과 다른 모습에 친구들이 나를 놀릴까봐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펑펑 울었고,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곧 잘 느끼던 아이였다. 이후 아빠가 나(7살추정)와 동생(4살)을 모텔로 데려와 묵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어둑한 불꺼진 방안에 나홀로 깨어있었는데 티비가 보고 싶어 아빠가 자고 있을때 tv리모컨을 돌려 채널을 돌렸다. 그런데 아빠가 갑자기 잠결에 “뭐하냐!” 소리치고 “뭐보냐? 왜틀었어?” 추궁하듯이 물어봤는데 나는 왜인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빠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그랬더니 아빠는 “이게 진짜” 갑자기 커다란 손이 내 머리채를 붙잡아 끌려다니고 나를 뒤흔들었고 뺨을 맞았다. 이후 어른이 되서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본인께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빠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바람을 피웠고, 어머니는 아빠의 통화내용을 녹음해서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틀어놓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들은 헤어졌다. 8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학교 앞에서 500원을 주고 사온 병아리가 죽어 엄마와 함께 뒷동산에 묻어줬다. 그리고 어느날 막내이모가 정문 앞에 와서 “ㅇㅇ야 가야해..” 무슨 말을 했는지 가물가물한데 아직도 기억나는 건 이모가 무슨 말을 하다 고개를 돌리니 눈물 한 방울이 슬로우모션처럼 얼굴 옆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어머니가 밖에 서서 슬픈 얼굴을 하고 손을 흔들고 있고, 나와 동생은 아빠의 차에 태워져 창문 사이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 광경이 아주 느리게 흘러 갔고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재생이된다. 엄마와의 이별의 대한 슬픔은 그리움이 되어 내 가슴속에 붉은 꽃을 피웠다. 할머니는 새할아버지와 살고있었고, 매일밤 창밖으로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들을 보며 엄마가 오는걸거야. 하고 기다렸다. 또다시 난 미래가 두렵고 할머니가 쓰러지신 모습을 보니 왠지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난 주변에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나 지인 가족도 없다. 어쩌면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고립이 나를 옥죄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담센터에 전화를 거니 약을 먹으라고 건성건성으로 대답해주시고 내가 거치적거렸는지 담당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버렸다. 사람들은 늘 불안해서 어린아이처럼 우는 다큰 성인이 부담스러웠겠지…하나둘 신기루처럼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지쳐 하나둘 내 곁에서 떠나갔다. 어머니는 점차 나이가 들어 이곳저곳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며 아픈곳이 많아져간다. 불면증에 시달려 잠을 설치며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tv소리 갑자기 바뀐 잠자리에도 예민해서 잠을 못자는 성격에 남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아량이 넓고 교양이 있는 모습이 아닌, 남을 쉽게 질투하고 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같이 불안해보였다. 아마도 엄마도 맏이로서 10대부터 동생들을 책임지고 어린시절 할아버지에게 큰소리로 혼난 기억들이 많아서 눈치보는 성격으로 자라신 게 컸다. 쾌활하고 긍정적이고 엉뚱한 우리 엄마는 첫사랑과 결혼하였지만 아버지의 무책임함과 바람에 이혼 후 홀로 나와 동생을 책임지셨다. 그리고 알게모르게 나에게 일정부분 의지하셨다. 나는 아직 8살의 아이같은데… 몸만 나이가 들어간다. 내 안에 나는 아직 어린아이가 웅크리고 있는데 우리 아버지는 정상적인 아버지라기보다 또래 친구같은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일찍부터 자신의 아버지를 잃고 할머니는 다른 남자를 찾아 도망가 버렸다. 그래서 15무렵 남동생과 덩그러니 남게 되고, 친구가 부모이자, 연인이자, 형제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둘은 각자의 가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꿈꾸고 일찍 가정을 이뤘다. 그래서인지 미숙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갔고 나와 동생은 그 전쟁같은 상황에 오롯이 노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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