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서 온 문자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상담|우울증|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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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서 온 문자
커피콩_레벨_아이콘gusto1983
·3달 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저는 마흔셋 첫째 입니다. 어려서 부모님은 맞벌이로 친할머니께서 저를 정성껏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 주셨고 무뚝뚝하지만 성실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삼촌들과 자랐습니다. 친가쪽은 아버지 형제분들이 모두 남자라 제가 첫 손녀딸이라 정말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할머니 사이 고부갈등으로 저는 중간에서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사이가 좋지 않아서 늘 그 사이에서 겉돌아야 했어서 할머니 품에서 컸어요. 명절이면 작은 아버지 내외 사촌동생들은 밥 하나 먹을 때도 챙김을 받는데 제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시절 명절은 저는 늘 혼자였죠. (아주 어린시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 명절이면 어머니가 안계셨어요. 저희는 서울에 2층 집으로 1층은 할머니와 제가 그리고 2층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쓰셨는데 기억 중에 어린시절 명절에 2층에 있는 엄마에게 박카스를 사다준 기억이 있는데 명절이었던 거 같아요. 언제는 명절에 다들 부모의 챙김을 받는 동생들이 부러웠는지 울면 아버지한테 크게 늘 혼났던 기억도 있고 어린 마음에 엄마한테 잘 보이고 싶었는지 어버이날이며 생일이면 엄마가 좋아하는 비싼 선물들을 하고는 했죠. 하지만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게 사춘기를 겪으며 왕따도 당하고 말썽도 부리게 됐고 그 때 전학 보내달라고 했는데 어머니에게 거절 당하고 난 뒤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살부터는 어떤 도움도 없이 취업을 나가면서 제 힘으로 사이버로 대학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25살부터 35살까지 계속 공부를 이어가다 우울증이 왔고 그 때 알았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독립하지 못 하고 눈치보며 아파하는 제 모습을요. 늘 무섭고 차가운 엄마에게서 사랑받고 인정받으려 아둥바둥 하는 저를요. 공부를 그만두고 취업을 하며 독립을 시도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저는 결국 빚만 안고 다시 방황하다 아버지께서 당뇨로 인한 신부전증으로 폐암 수술을 하셨는데 다시 재발하면서 집으로 들어가게 됐고 늘 집에서 유령같이 살다 어서 도망가고 싶은 생각에 마흔에 조건 괜찮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서 나오게 됐지만 결혼해서 보니 그 사람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이혼을 하게 됐어요. 빚만 잔득 가진 사람이었고 폭력적인 사람이라 또 다시 저는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니면서 1년만에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집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어머니 말에 직장을 다니고 있던터라 대출을 받아 지금 2년째 혼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이혼하던 그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가 그나마 가족이라 생각했던 할머니는 제가 20대때 제가 혼자 임종을 하고 보내드렸고 아버지는 투석 중 심장마비로 모두 보내 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치매로 8년을 앓다가 가셨는데 그 당시 20대 초반인 저는 할머니 똥오줌 뭍은 속옷을 삶아서 빨았는데 그러는 제게 엄마는 냄새 난다며 핀잔이었고 목요도 시켜 드리고 일하고 지냈어요. 무척 힘들었고 어느 날 술 먹고 부모님께 이야기 했죠 엄마아빠도 돌봐야 하지 않느냐고 그러면서 조금씩 돌보는 거 같았어요. 아버지가 아플때는 제가 공부하며 아르바이트 하면서 아버지 병원 수발을 들었지만 결국 인정받지 못 했죠 저에게는 19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있는데 사이가 좋지 않아요. 동생이 태어나면서 저에게 엄마는 할머니가 너를 키워서 망쳤으니 동생은 자기가 키우겠다며 선포 했고 동생 일에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이 만들어 졌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벽을 만든 것을 까맣게 잊었는지 역시나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동생을 돌보지 않는다며 저를 죄인을 만드셨어요. 그래도 동생이 어릴때는 어색하지만 같이 놀기도 했는데 역시 사춘기를 보내며 사이는 완전히 단절 되었습니다. 동생도 교내 상담센터에서 상담치료도 받고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에서 겨우 졸업했다는 말을 들었고 미용대학을 나왔습니다. 너무 집안이 파란만장해서 다소 두서 없는 이야기 같을 수도 있을 거 같네요. 동생의 일은 쉬쉬하는 편이라 잘 모르지만 동생이 저를 싫어히는 이유가 그 아이가 힘들었던 이유가 엄마가 동생이 뭘 잘못이라도 하면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니 언니처럼 될래?’ 그러니 가득이나 나이차도 많이 나는데 저와 가까워지기 어려웠겠죠. 저는 자랄때 잘못 하면 엄청 맞으면서 컸고 예민하고 히스테리컬한 엄마라 소히 말하는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컸어요. 일예로 초등학교때 설겆이를 하다 접시를 깨뜨렸는데 엄마는 달라와 너는 이런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냐고 야단을 치고, 할머니는 정반대로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을 하는 그런 분위기… 제가 남자라도 만나면 저에게 ***라는 말을 하기도 했죠 나중에 알았는데 그 ***라는 말이 ***라는 뜻이라는 걸… 늦은 사회생활로 혼자 사는 게 넋넋하지 않지만 그래도 엄마와 동생이랑 떨어져 있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아직도 정신과에 다니고 약을 먹고는 있지만 괜찮습니다. 어제 드디어 엄마에게서 연락하지 말자란 문자를 받았고 다가오는 명절에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되서 편안합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이렇게 긴 글을 쓰고 있네요… 사건은 제가 결혼하며 나오면서 침대 프레임을 두고 왔는데 그 받침대가 부러졌다는 연락을 받았고 이케아 제품이라 다행히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어서 링크를 보내드리고 동생이랑 같이 둘이 살고 있고 동생이 쓰는 거니 그 사이트 통해서 주문하면 된다라고 말했다가 저한테 돈을 줄테니 주문해 달라고 해서 싫은티를 냈더니 또 소리지르고 날카로운 말을 쏟아내서 그냥 전화를 끊었습니다. 엄마랑 통화하고 엄마에게서 듣는 나쁜 말들은 저에게 너무 크게 와닿아 저는 늘 불안하고 늘 눈물을 흘리고 마니까 더는 소리 지르고 저를 나쁘게 만드는 말을 듣고 있고 싶지 않았어요. 평소에 안부나 생일에 밥은 먹었는지 연락도 없는 사람이 늘 뭔가 필요할때만 연락해서 저한테 해 달라는데 이제는 싫습니다. 해줘도 그닥 좋는 소리를 들은적이 없어서요. 더군다나 동생이랑 같이 사는데 동생한테 하라고 해도 될 걸 늘 저한테 말하고 화내고 이제 정말 싫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걱정되서 집 마당에 낙엽 치워주러 갔다가도 니가 언제부터 했냐 소리에 싸우고 본인 생일인데 쌍둥이 이모네 딸은 얼마를 줬다더라 저는 월급쟁이에 직장생활도 이제 4년차에 모은 돈도 얼마 없고 월세에 이혼하면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기간이 짧아서 도망치듯이 대출을 받아 살고 있어서 생활이 녹록치 않은데 속도 모르고 저런 소리하는 사람… 아버지 49제에서 절에 시주 10만원 한 걸로 동네까지 가서 집에도 못 들어가 보고 계속 엄마 화내는 소리만 듣다 오고 그냥 저만 보면 화가 난다고 합니다. 최소한의 도리는 하자로 집에 가면 동생은 제가 와도 자기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엄마 역시 쉬쉬하며 전 그렇게 잠깐 눈치보다 오니까요.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제가 먼저 전회를 끊고 다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 메세지 하나가 왔습니다. 너 다시는 엄마말 끊지말고 말그딴식으로 하지말고 다시는연락하지마라 너헌테 돈 내라고하는것도 아니고 돈 부쳐준다했지 너언제까지선용이빗대면 애기 할거냐 다시는 연락하며 살지 말자 왜 늘 저인가요? 왜 같이 사는 동생한테는 심부름 하나 일 하나 못시키는지 안시키는지 제가 대체 엄마라는 인연의 사람한테 뭘 그렇게 크게 잘못하며 산 걸까요? 아버지 아프실때 오십 그리고 엄마 마흔여덟에 낳은 동생… 저는 사이도 안좋은 엄마 아빠에게도 나온 동생이라고 생각 안합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하고 돌아갔지만 한 집에 살 때 정말 유전자 검사를 몰래 해볼까 고민하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말았는데 아버지 신장이식 관련해서 혈액형을 알아보던 중 엄마 아빠 모두 저까지 오형인데 동생만 에이형이라는 걸 안 후에는… 마음이 쓰레기통 같아 졌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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