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언제까지 기다려줘야 하나요?
저는 이제 취업을 할 시기에 접어드는 대학생입니다.
엄마의 집착과 어리광을 더이상 못받아주겠어요.
엄마가 저를 사랑해서 그러는건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순전히 자기 이익을 위해서 저를 잡아두고 있습니다.
엄마는 애초 가족과 가정을 애정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제가 유치원생일 때부터 조부모님께 저를 떠넘기고 매일 유흥에 취해 살았어요. 엄마는 가정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엄마는 저를 사랑스럽다기보다는 귀찮고 성가신 대상으로 보는 것 같았어요. 제 앞에서 결혼과 출산을 후회한다고 거듭 말했으니까요.
그렇게 가족은 제게 큰 의미가 아니게 되었어요. 제가 독립적인 성향이 짙은 어른으로 자라게 된 것은 엄마의 영향이 컸죠. 저는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왔으며 도움을 받는것이 서투르고 싫었습니다. 물론 사랑받는 일도 그랬고요.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사랑을 주는 일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고3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가까운 누군가를 잃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 충격이 컸죠. 엄마도 그래보였어요. 근 20년간, 어쩌면 그 이상 미친듯이 친구들을 불러내서 술을 진탕 마시던 버릇을 고칠 정도였으니까요.
엄마는 그때부터 가정에 헌신적인 사람이었던 양 변모했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가족이라는 틀을 중시했다고, 아빠에게는 아빠가돼서 뭘 못한다느니, 언니에게는 가족이 중요하다는 개념이 있긴 하냐느니, 온갖 막말과 폭언을 통해 우리를 갑작스레 본인의 틀에 욱여넣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20년간 그대로였고, 그동안 엄마노릇을 못했던 건 엄마 본인이면서 말입니다.
엄마는 끔찍하게 의존적인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집착과 의존의 수준이 도를 넘어섰어요. 제가 당신의 구세주라도 되는 양, 엄마라도 되는 양 제게 매달렸습니다. 저는 제가 엄마를 낳은 줄 알았습니다. 젖먹이 아이도 이정도로 매달리진 않을겁니다.
말씀드렸지만 전 여러모로 이런 엄마를 케어해 줄 여유가 없습니다. 취업준비하느라 스트레스도 상당하고, 전 독립적인 성격입니다. 엄마에 대해 좋은 감정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솔직히 같잖습니다. 제가 젖먹이일 때 엄마는 절 버려두고 술이나 마시러 다녔습니다. 근데 이제 자기가 힘들다고 제게 매달리다니요. 기가막히고 화가 납니다. 제가 태어난 걸 후회하던 엄마가 저밖에 없다고 울고부는데 저는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엄마는 절 버렸습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뭐든 혼자서 해왔고 부모의 도움은 받지도, 받으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경제능력이 생길 때 까지 부모의 집에서 부모가 번 돈을 써야한다는 것도 치가 떨리게 싫었습니다. 제게 가정이란 그런 곳이었습니다. 불안하고, 부당하고, 그냥 집에서 숨쉬는 일 자체가 빚인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안전한 울타리는 고사하고 제 쓸모를 입증하지 못하면 언제든 가차없이 쓰레기취급 당할 수 있는 곳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자기가 살려고 저를 밟아서 그 위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제 허파를 다 뜯어가서 자기가 숨을 쉬려고 합니다. 가족이란 으레 그런거라며 세뇌하면서요. 징그럽습니다. 엄마의 슬픔이 징그럽고 더럽습니다. 오래 참았어요. 나보다 몇배는 오래 산 인간의 감정과 슬픔을 먹어주면서 오래도 나를 망가뜨렸습니다. 죽으려고도 했어요. 칼로 팔을 찢어대며 태어난 걸 원망했습니다. 제 인생은 벌을 받는 것 같았어요. 행복할 쯤이면 어마어마한 불행이 저를 짓눌러서 저는 행복하면 안되는 사람 같았습니다.
이제 겨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자꾸 발목을 잡습니다. 전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요? 엄마는 언제까지 슬플 예정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