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앞에서만 괴물이 되어버리는 나
2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습니다. 저와 동생 모두 20대입니다. 어렸을 적 저는 동생에게 매우 가혹한 누나였습니다. 동생에게 물리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가한 것이지요. 동생은 가족 중에서 유독 나의 부탁을 받는 것이 싫대요. 부탁을 거절하면 누나가 나에게 실망할 것 같고 그게 싫대요. 누나 앞에서는 할말도 제대로 못하고 누나의 기에 눌린대요. 무섭고 두렵고 자기를 어떻게 해버릴 것만 같대요.
저 또한 동생한테만 보이는 모습이 있나봐요. 오늘 동생과 트러블이 있어 동생의 이야기를 듣는데,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숨이 쉬어지지 않을만큼 화가 났어요. 이성의 끈, 퓨즈가 끊어져버렸어요. 동생에게 목청껏 소리치며 달려들었어요. 발길질을 하고 밀쳐대고 서로가 서로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폭력을 가했습니다. 서로 죽여버리겠다고 했어요. 선풍기는 해체되어 나뒹굴고 있었고, 말그대로 치고 박았어요.
이성을 되찾은 뒤에 동생과 다시 이야기를 하고 사과했어요. 내가 잘못한 게 맞고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동생은 이미 또 상처를 입은 것 같아요. 동생 말이 맞아요. 동생은 나에게 그럴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어요. 나는 또 그런 대접을 해버리고 말았네요. 나는 동생의 기나긴 상처를 치유할 자신이 없어요.
동생 앞에서 눈깔이 뒤집어져버린 나는 괴물이었어요.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나였어요. 유독 동생 앞에서는 이성이 끊어져버리는 것 같아요. 어렸을 적으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동생은 우리는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피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고. 저는 동의했어요. 이제 나도 피하고 싶어요.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요.
어렸을 때 엄마는 외출할때면 제게 습관처럼 이야기했어요. 엄마가 없을 땐 니가 엄마야. 나는 정말 엄마처럼 행동했어요. 어설프고 이상한 여섯 살짜리 엄마. 동생을 체벌하고 괴롭히고 가두는 나.
엄마는 습관처럼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어요. 아들 낳으려고 셋 낳았어요. 아들을 원했던 시댁에서 동생으로 인해 엄마의 목이 빳빳해졌거든요. 난 그 이야기를 듣는 게 싫었어요.
동생은 뭘 하든 엄마의 관심을 가져가는 것 같았어요. 그럴 때면 엄마는, 넌 야무지잖아. 니 동생은 애가 어설퍼서 엄마가 챙겨줘야 해. 남자애들이 원래 좀 그래. 니가 이해해
나도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었어요. 엄마는 결국 영원히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요.
동생에게 미움의 감정도 있어요. 나에게서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빼앗아간 동생. 그 마음이 이상하게 나타난 것 같아요. 나는 정말 동생을 잡아먹으려고 했을지도 몰라요.
동생을 정말 누구보다 사랑했어요. 동생이 아프면 내가 아픈 것 같았고, 동생이 울 때면 웃겨주고 싶었어요. 동생이 나를 의지하는 게 좋았어요. 어딜 가든 동생을 챙겼어요. 근데 나도 모르게 동생에게 가스라이팅을 했던 것도 같아요. 동생은 정말 나로부터 도망쳐야하는 게 아닐까요?
중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서로 공부하느라 멀어졌어요. 성인이 되면서 과거 나의 잘못을 알았고 상담도 받았어요. 동생에게 가지고 있던 죄책감을 발견하고 나를 징벌하던 내 자신도 발견했어요. 동생에게 사죄했어요. 나의 죄책감을 이야기했고 너에게 마음 속에서 계속 사죄하고 있었다고 했어요. 동생은 괜찮다고 말해줬어요. 근데 괜찮지 않았을 거 같아요. 동생은 착한 동생이 되려, 또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했을지도 몰라요.
동생에게 눈깔을 뒤집고 미친듯이 소리지르고 욕하고 때려부수던 나. 내가 아닌 것만 같았지만 그것도 나였어요. 이성이 사라져버린, 강렬한 분노만이 가득한 나는 성인이 된 이후 처음이었어요. 이런 분노는 처음이었어요. 숨이 안쉬어졌어요. 내 몸이 감당할 수 없는 화염이었어요.
동생은 또 상처를 입었대요. 내 얼굴을 보면 아까 그 장면이 생각난대요. 당분간 얼굴 보고 싶지 않고 대화하고 싶지 않대요. 알겠다고 했어요.
동생은 나보다 키도 10센치가 크고 몸무게는 20키로가 넘게 차이가 나요. 동생은 마음만 먹으면 내 얼굴에 주먹을 더 세게 갈길 수 있었을 거에요. 근데 그러지 않았어요. 못했던 걸까요?
동생은 유독 내 앞에서만 말이 안나오고 내 기에 눌려요.
나는 이제 예전의 못된 누나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동생에겐 아니었나봐요. 어쩌면 나는 아직 그 누나일 수도 있어요.
상극은 가족이어도 피하라는 말이 떠올라요. 나는 동생 앞에서 괴물이 되고, 동생은 내 기에 눌려버리는, 우리는 상극인 게 아닐까요? 이건 그저 핑계일 뿐일까요?
무력해요.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때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끔찍이도 사랑했던 동생이었는데. 서로 연애 고민도 이야기하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할 때엔 문제가 없는데. 이제 난 에너지가 없어요.
그냥 이대로 대화를 단절한 채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근데 한 지붕 안에서 가능할까요?
동생에게 나는 괴물이 맞나봐요. 동생은 나를 맞서 싸워내야 해요. 나에게 목소리를 내야만 해요.
이게 내 업보인가 싶어요. 카르마.
어릴 적 나의 행동들이 지금에서야 부메랑처럼 내 목과 가슴을 베어버리는 듯 해요.
그저 살아가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혼자서는 너무 어려워요. 괴물인 나, 가해자인 나. 또 다시 자꾸 그렇게 되어버리는 나.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