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삶과 죽음을 재는 것도 꽤나 피곤한 일이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고민|불안|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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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매일같이 삶과 죽음을 재는 것도 꽤나 피곤한 일이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하나 정해져 있는 것이 없어 늘 불안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고, 죽는다는 것은 삶의 불안을 견디는 것 만큼이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삶을 견딜 힘도, 죽음을 맞이할 용기도 없으니. 남은 것은 살아 있지 않은 듯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옛날 어느 노래 가사에서처럼,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막고 어둠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로 끝이 올 때까지 버텨내는 것. 그것이 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방어였다. 병원에 가고자 수차례 시도했으나, 나라는 인간은 이것저것 마음에 걸리는 게 참 많은 인간이었다. 누구도 내 허락 없이는 볼 수 없다는 그 기록 한 줄이 어쩌다 내 인생을 망칠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곧, 병원으로 향하는 내 발길을 막던 걱정거리들이 다수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가 되면 반드시 맨 처음으로 병원에 가자고 벼르고 있으나, 아마 막상 그때가 되면 새로운 걱정들이 무럭무럭 자랄 터이니 또 모를 일이다. 병원을 갈까 말까 고민하는 동안, 내가 죽지 못하도록 나를 받치고 있던 지지대는 매우 굳건했다. 그러나 그것에 문제가 있다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보통 보이지 않으면 잊게 되니, 누구도 내 삶을 반기지 않는다고 여기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보통의 억제기는 사랑이라고 하는데, 그로부터, 아니, 생각해보면 어느 다른 누군가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것이 꽤나 오래된 것 같다. 사실 그들은 변한 것이 없었다. 변한 것은 나 하나뿐이었는데, 무엇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이 닫혔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온갖 배신과 분열과 뒷담화와 편가르기 등등에 노출되어 온 탓에, 내 관계 형성 및 지속 능력은 0에 수렴했다. 나에게 있어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떠날 존재들이었다. 단언컨대 단 한번도,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따뜻함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 내 역할은 늘 한 발 떨어져있는 관찰자이자 중재자였다. 나는 그들의 '친구'였던 적이 없었다. 누군가와 그 흔한 말싸움 한번 하지 않고 살았다는 건 자랑이 아니다. 그건 그냥 내가 그곳에 속하지 못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취업 시즌엔 그것을 예쁘게 포장하여 보기좋게 내놓기에 좋긴 했으나, 본질은 그저 늘 겉도는 바보였다. 내가 죽으면 내 장례식엔 누가 와 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채 열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했다. 연락처를 뒤져봐도 비슷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장례식에서 엄마가 혼자 많이 외롭진 않을까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엄마라도 있어줄 때 죽는 게 나에겐 이득이지 않을까 하는 못된 생각도 했다. 누군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라 했다. 얼추 맞는 말이긴 하나, 사는 것에 질려버린 나같은 인간은 그냥 큰 이유 없이 살고 싶지 않아지기도 한다. '이렇게'라고 부를만한 거창한 무언가가 없으니까. 그냥 지금까지 굴러온 대다수의 순간에서 찌꺼기처럼 떨어져나온 잔해들이 어느순간 뭉쳐 커져버렸을 뿐이니까. 그러니 '왜' 죽고싶어 하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진짜로 모르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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