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힘들고 답답하고 외로워도 웃고 넘기고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고민|이혼|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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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어릴 때는 힘들고 답답하고 외로워도 웃고 넘기고 할아버지는 아빠가 돈을 못 버는 것에 대해 욕을 하고 아빠와 엄마는 제가 3살때 이혼했는데 이혼한 엄마가 어릴 때 하던 행동이다 라며 이야기를 꺼내 욕을 하고 평소에도 욕을 물 흐르듯 많이 했다. 할머니는 말의 의미를 전달을 잘 못했던 나와 말싸움이 붙을 때가 많았었다. 그 말싸움이 거기서 끝나면 되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까지 셋이서 먹는 저녁시간에 그 얘기를 꺼내 할아버지한테 밥 먹으면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또 욕으로 끝나지 않고 나무 회초리로 맞는 일도 많았다. 그때마다 잘못했다며 빌었고 언제나 매번 작게 울면서 삼키고, 참다가 감정이 순간 터져 일이 커졌을 때 아빠가 집에 있으면 아빠가 내려와 설교한다. 아빤 때리진 않아도 공포와 위압감으로 짓누른다. 그러면 매번 겁에 질리고 속으로 몇번이고 외쳤다 '아, 내가 왜 그랬지?!'하며 자책하곤 했다. 또한 그 뒤의 위로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위로같은 것도 안 해줬으면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학년이 올라가며 알게 되었다. 아빠는 돈이라는 것 때문에라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발언권, 주장할 권리가 없었다. 특히 아빠의 직업이 안정된 직업이 아니다보니 일이 없을 때가 학년이 올라가며 점점 늘어났는데 직장에서 직장 동료와 싸우고 직장도 그만두면서 근 몇년을 놀게된다. 그게 원인이 되어 아빠에 대한 욕을 내 앞에서 하는 건 일상이 되어갔고 때리는 것도 달라지진 않았다. 난 그래도 활발했다. 하지만 난 사교성이 많이 없어서 학교에 친구는 딱히 없었다. 난 근처 공원에서 나보다 어린 남자애들과 놀았고 솔직히 집보다 밖에 있는 편이 나았기에 매번 통금시간 아슬아슬하게까지 놀았다. 그러다 그 통금시간을 넘겼고 나를 끌고 갔다. 그 뒤 언제나 혼나는 것처럼 집으로 가면서 욕설, 비난 집에 와서 욕설, 회초리 잘못을 빌었다. 난 그래도 그 뒤로도 자주 그렇게 놀았다. 언제는 공부가 순간 하기싫어서 학원을 땡땡이 쳤다. 그때도 회초리와 욕설이 퍼부어졌다. 시간이 지나고 핸드폰이 생겼다. 핸드폰이 생긴 후로는 집밖에서 노는일이 줄었다. 그러다 초4였나 살고있는 집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공동 명의로 된 집이 였는데 할아버지가 집이 팔고 이사를 고향으로 갈건데 어떻게 하고 싶냐고 했다. 그때 아직은 어렸던 난 가볍게 수락했다. 그렇게 말한지 2년가량이 되었다. 아직까지 이사 얘기를 신경쓰던 난 2년 정도가 되자 이사는 안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신경을 끄려던 그때 집을 팔게 됬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에 난 아빠는 어쩔지 궁금해 물었다. 그곳에 남겠다고 했다. 근데 할아버지는 아빠도 같이 이사를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난 아빠의 뜻을 말해 주었다. 그 뒤에 아빠랑 대화가 오갔는진 몰라도 아빠는 그곳에 남는 걸로 결정이 난 듯한 분위기 속에서 아빠가 내게 말했다. 넌 할아버지를 따라갈거냐고 솔직히 난 이때 아빠의 재저을 걱정했다. 나 때문에 재정이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하면서 난 멍청한 생각을 했다. 차하리 이때 확실히 남겠다고 말했다면 현재가 되진 않았을거다. 난 6학년 졸업을 코앞에 두고 많은 고민을 하며 아리송한 마음을 잠깐이나마 할아버지한테 털어놓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미 난 무조건 따라간다는 조건을 생각을 박고 계셨는지 내 얘기에 대한 대답은 해주지않았고 난 그때도 기다렸다, 할아버지의 대답을.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넘어가나 했다. 대형 사고가 벌어졌다. 집 사기를 당했다. 무슨 사긴지는 모른다. 할아버지는 예전부터 내가 어른들의 얘기에 끼는 걸 못마땅해 하며 관심이라도 보이면 어른들 얘기한다고 쳐내고 몰라도 된다고 하고 뭔가 하라고 했을 때 왜 그러냐고 물으며 파고 들려하면 어른이 한말에 토단다고 뭐라했다. 그래서 난 어른들이 얘기하는 거에서 귀를 닫아버렸기에 모른다. 돈을 꽤 잃고 결국 내가 중학교 1개월동안 다니고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고 전학간 학교에 난 당연히 적응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평범하게 처음부터 다녀도 아슬아슬하게 적응하던 나였기에 이미 무리가 생긴 아이들에게 끼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다가와줬지만 친구를 제대로 사귀어 보지 못해 결국 자발적으로 혼자가 됬다. 이런 학교 생활중에도 집에서는 이사 전에서 바뀐 건 크게 없었다. 뭐 회초리를 적게 드는 것?정도? 결국 난 깨져서 터졌다. 말싸움의 끝에 ***이라고 한 마디를 할머니한테 터트렸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나에게 '***이라고 말한 게 맞냐?'등의 반응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에 저항을 여러번하여 옥상에서 막대기로 저항하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들은 욕이 그 싸움의 끝을 찍었다. ***새끼 그 뒤로 대화의 수는 점차적으로 줄었다. 지금은 거의 비즈니스 적 가족 또는 거리낌 없이 대하는 남이라 생각한다. 가족이라기엔 애정이 매말라 있었다. 난 이 관계의 끝은 누군가의 죽음만이 이걸 깨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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