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6살 남자입니다.
어렸을 때 부터 아버지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들이 정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굉장히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계시며, 지금도 분노를 참으시지 못하시는 성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첫 기억은 유치원생 시절로 떠올리자면
아빠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한번 맞기 시작하면 어머니도 말리지 못하였고, 온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맞았습니다. 사소한 것들에 회초리를 드셨고 무릎을 꿇고 누나와 앉아 허벅지를 강하게 내리치셨고, 울면 왜 우냐며 더 세게 때리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초등학생 시절도 같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같이 검도도 배우고 관두고 하다보니 집에 죽도, 묵도 등 검도 용품이 생겼습니다. 또 사소한 잘못을 하게 되면 죽도로도 맞고, 묵도로도 맞았습니다. 팔과 허벅지에 멍이 들고, 긴팔과 긴 바지를 자주 입고 다니던 기억이 납니다.
한번은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집 구경을 시켜준다며 쌀 보관하던 항아리가 있었는데 뚜껑을 내려놓을 때 힘조절을 못하여 뚜껑이 깨졌던 일이 있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초강력 본드가 손에 다 묻어가며 뚜껑을 붙였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고 며칠 뒤 어머니가 밥을 지으시려다가 발견하고 거짓말 한 것이 들통이 나 어머니가 잘 감싸주셔서 일단락 됐었구요.
친척 형, 누나가 말해주기론 너희가 왜 맞는지 전혀 모르겠다. 전혀 맞을일이 아니었는데 강하게 훈육을 하셨다. 라고 말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중학생 시절은 시험을 보고 집으로 와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는데, 방에서 그냥 속상해서 울고 있으니 왜 우냐며 멱살을 잡히고 크고 두꺼운 손바닥으로 골이 울릴정도로 머리를 맞았으며, 옷을 잡아당겨 뒤집어서 저항하지 못하는 자세에서 온몸을 맞았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목수일을 하셔서 손이 굉장히 두꺼웠습니다.
이때부터 겉돌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학원은 가기 싫어졌고, 친구들과 하는 게임은 재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학원을 안나가고 친구들과 피***을 다니고 이 일이 부모님 귀에 들어가고 굉장히 크게 혼났던 기억이 있네요.
고등학생 시절엔 야자를 하지 않는 주말에 외출중이면 5시만 되어도 아버지에게 전화가 와 시간이 몇시인데 아직도 집으로 안들어 오냐며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 혼나고 저녁식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턴 공부는 거의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열심히 살지 않았습니다.
성적도 맞는 대학으로 진학하여 경기권 전문대 2년제를 졸업하였고, 1학년부터 2학년 1학기까지 막 놀다가 군대로 입대를 하였고, 23살 4월 군 전역 후 술집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며 용돈을 벌었고, 2학년 2학기에 바로 복학하여 마지막 학기라도 공부를 해야겠다 다짐하고 공부를 하고 전역하니 학점은 2.99점 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선 일자리를 추천해주셨고, 생각해보고 말씀드리겠다고 감사인사를 드린 뒤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리자 아버지께선 그런 일은 하는게 아니다. 자기가 아는 특수직업 고위직 종사자분에게 너를 소개시켜 줄테니 이 직업을 준비해봐라.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직장에 들어가면 안정적이고, 제가 좋아하는 개들과 일을 할 수 있어서 훈련소에 들어가서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지만, 정작 사실은 막노동을 돈주고 일하다 왔습니다.
그리고 이 직업은 채용공고가 그렇게 자주 뜨지도 않았으며, 기준이 높아 깔짝댄 제 실력으로는 입사의 문턱조차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달 두달 시간이 흘러 코로나가 터진 뒤 관광사업이 죽어 자리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컴퓨터와 핸드폰 낮잠만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는 유명 기업 생산직에 들어가라. 부사장님과 아는 분들에게 얘기해 놓았다며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라 하셨고 어떤 회사인지 알고싶어 검색을 해봤는데 정말 가고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무언갈 따질만한 놈은 아니란것은 정말 잘 알고 있었으나, 너무도 가기 싫었던 나머지 자기소개서도 잡코리아 자기소개서 자동완성을 사용하였으나, 합격되었습니다.
전화통화로 2~3분 길이의 자기소개서 영상, 핸드폰으로 발송된 인성검사를 마쳐달라는 연락을 받았고 더이상 아버지의 지인들과 엮이기 싫은 마음에 그리고 가고싶지 않다는 의사표현을 하기위해 제출해야할 것들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희망하지 않는다 이야기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그 연락을 듣고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인신공격마저 서슴치 않으셨습니다. 너같은 꼴통대가리가 어디가서 뭘 해먹고 살겠냐 야이 ***끼야 나가서 노숙자로 살던 니 마음대로 살다가 뒤져라 등
그렇게 며칠간 집을 나갔고, 카카오톡으로 온 메세지는 너
집들어오면 죽을줄알어
내눈에서 보이지마라 ***끼야
넌 사람새끼도아니니까
내 눈에 보이지마라 자식같지도않아
대가리에 똥만가득찬새끼
생각도 없는새끼가 살겠다고
노숙자가되든 보이지마라
너
살길 알아서가라
그지같은 ***끼야 짜증난다
새끼로 생각안한다
라고 두통의 문자가 와있었고 그 후로 일주일간 부모님의 연락, 누나와 친구들의 연락들을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갈곳이 없어 결국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는 그래도 따듯하게 맞이하여 주셨으나, 아버지는 너이 ***끼 무섭지? 아오 *** 등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한탄을 하셨습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좋은자리인데 너같은 쓰레기가 그런 자리에서 언제 일해보겠냐 생각이 있는 새끼냐 등의 이야기를 하셨고 일주일간 집을 비운동안 생각을 하고 돌아와서 앞으로의 향후 계획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되돌아온것은 또 욕설과 온갖 인신모욕 등 그래도 어머니가 막아주셔서 맞지는 않았으나, 리모콘을 들고 머리를 때리려고 하기도 했었고, 저새끼 뼈를 부셔놓고싶다 죽여버리고싶다 등 온갖 소리를 다 들어봤네요.
뜬금없는 이야기 이지만 저는 결혼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가끔 제게서 보이는 폭력성은 아버지와 닮아있어 자식에게 폭력가정에서 자랄 것 같은 자식이 있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기도 했고, 스스로를 챙기지도 못하는 제가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도 너무 막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왜 결혼을 안할거냐 물어보신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인생을 살지 않을거다. 결혼 안할것이다 라고만 말했고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나는 장례식장에 아무도 안올것이라며 한탄하셨습니다.
그렇게 며칠 뒤 오늘 이모와 부모님 셋이서 제가 나간동안 술자리를 가지셨는지 집에 오자 앉아보라며 부르시기에 앉았더니 너이 ***끼야 로 시작해서 온갖 욕설을 퍼붓고 전에 했던 말들을 또 반복하시고 저런새끼를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 하십니다. 어머니는 옆에서 울기만 하시고 계십니다.
고용 보험 센터에 가서 청년 패키지 1유형을 신청중인 상태이며, 현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싶어 무엇을 하면 될지 알아보고 있으나, 또 무기력함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않고 며칠을 지냈습니다. 패키지 결과는 한달이 소요된다고 하였으며, 한달동안 계획이라도 잘 짜야하는데 전 뭘하고 있는걸까요
그냥 하소연이 하고싶어지는 새벽이라 어디에 글 쓰기도, 친구에게 풀어놓을수도 없는 이야기를 익명성을 빌려 올려봅니다. 답이 없는 멍청한 백수의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쌀쌀한 날씨지만 다들 마음만큼은 따듯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울스트레스성정체성잘되기를모든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