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지를 못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가 방관자, 모가 학대자가 된 데에는 사회적인 구조가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원망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나는.. 방관하였던 부에게 정을 완전히 떼어냈고 가해하였던 모에게 애증을 가지나(같이 지낸 세월이 너무 오래되어 그렇다) 실제로 가해행동을 용서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당신의 탓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다. 당신이 나에게 그런 끔찍한 기억을 심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것보다는 덜 우울했을 텐데, 라고 말하고 싶다. 가끔은 울컥해서 이런 말을 면전에 대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걸 왜 자신의 탓으로 돌려버리느냐는 식의 응답을 듣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은 절망감이다. 깊고, 검정색이고, 아주 끈끈한 것.
하지만 그런 대거리와 절망감은 과연 정당한 감정인가? 내가 겪는 것들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내가 또한 폭력을 저지르고 있으면 어떡하지. 나는 두렵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가해자가 잘못을 했을까?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내가 당할 만해서?
이런 잘못된 생각들은 언제나 대롱대롱 매달려서 나를 죄책감으로 내몬다.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지만.. 쉽사리 멈춰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내 탓을 하고 산 세월이 너무 길었다.
사실, 모가 아무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더라도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가 오랫동안 자신의 것으로 체화했을 무의식적 말투, 행동거지, 단어의 선택 등은 내가 같은 양의 시간동안 공포감과 두려움으로 체화한 것과 같은 위계를 지닌다. 그가 생각없이 뱉는 말에서 나는 예전의 아픈 기억을 상기하고, 공포감을 느끼고, 움츠러든다. 정작 용기를 내어 아무렇지도 않은 양 말해 본 학대의 기억은 그 사람에게는 남아있지 않더라고. 기억을 못 하는 척이 아니다. 정말로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이겠지.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 너무 두렵다. 저런 사람이 될까 봐, 무섭다. 피해자는 순식간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같은 고통을 안겨 주고 싶지 않다.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
두서 없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