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사람으로부터 감정을 묵살 당해 본 적 있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부부|불행|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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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엄마라는 사람으로부터 감정을 묵살 당해 본 적 있는가? 초딩 때였나, 우리 집은 부부싸움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살얼음판 같은 집안 분의기 속에서 난 언제쯤 이 전쟁이 끝날까, 위태로운 가정을 오늘은 무사히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엄마는 싸움의 모든 원인을 늘 내게 돌렸다. 모든 시작이 나라는 식으로. 나만 아니었으면, 내 유학생활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해외에서 보낼 필요가 없었다는 둥, 그럼 매번 더럽고 치사한 네 애비한테 생활비 보내라고 얘기 안 해도 된다는 둥, 그런 소리를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었다. 팩트이긴 하지만, 세뇌 당한 나는 부담과 책임, 그리고 죄책감을 안고 가정의 불화를 힘이 닿는 만큼 해결해 보려 했다. 하지만 나 같은 게 무슨 대단한 힘이 있다고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매일 밤 눈물을 훔치며 잠에 들었다. 그날이 있기 전까진 난 나름 나만의 방법으로 사이가 틀어진 엄마와 아빠를 달랬다. 별것도 아니고 그저 애교를 피우는 것이었다. 어린 자식이 코앞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망각한 그들에게 나의 존재를 인식시키려 노력했다. 하루는 둘이 하도 싸워서 안타까운 마음에 화장실 문앞에 '부부까움 금지'라고 적은 종이를 붙였다. 나로썬 불안감과 깊은 호소가 담긴 최대의 표현이었는데, 그걸 본 엄마는 종이를 확 떼어내더니, '누가 싸우고 싶어서 싸워!?'이러면서 갈기갈기 찢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울고싶은 거 꾹꾹 참고 애써 종이로 그 마음을 표현한 건데, 내 슬픔마저 묵살당했다. 엄마 눈에는 내가 그저 어리광이나 피우는 암덩어리로 보였겠지. 절망에 빠진 나는 집안에서 온전히 내 공간일 수 있는 화장실에 숨어서 한 시간 가량 울었다. 몰래 숨어서 운 적도 많았지만, 그날따라 눈물이 그치치 않았다. 가까스로 눈물을 그치고,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엄마와 마주쳤다. 안에서 뭐했냐고 묻자, 숨길 수 없을 거 같아 울었다고 했다. 곧이어 엄마는 매섭고 무서운 어조로 '왜 우냐?'라고 다그쳤다. 부부싸움해서 울었다고 하니까, 울 거면 자기가 울어야지 네가 왜 우냐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나 까짓것은 슬퍼할 자격도 없다는 듯 비난하고 모진 말을 내뱉었다. 그저 날 벌레 같은 하칞은 존재쯤으로 여긴 듯했다. 모든 불행이 나로부터 시작되었는데, 혼지 가여운 척 울고 있으니, 엄마 눈에는 얼마나 가증스러워 보였겠나. 나만 보면, 치가 떨렸겠지, 혐오스러웠겠지, 억울했겠지.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했든, 내 감정은 이미 짓밟힐 대로 짓밟혀서 그 후에는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그저 엄마라는 사람은 나의 가장 깊은 속내를 내보이면, 자신이 무안하지 않으려 내 감정을 짓밟고 묵살시키고, 역으로 나를 무안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난 그후로 단 한번도 엄마 앞에서 부부싸움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내 슬픔을 알아주고 받아줄 사람도 없다는 걸 알았고, 엄마도 내 편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난 깊은 외로움 속에서 혼자 버티고 지냈다. 지금은 지난 세월을 잊고 많이 치유됐지만, 살면서 비슷한 순간이 찾아올 때면, 나의 감정을 묵살당한 그때가 생각나서 울컥하곤 한다. 치욕스럽고 무안하고 절망적인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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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du22
· 4년 전
당신은 그럼에도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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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you03
· 4년 전
고마워 글쓴아, 그냥 열심히 살아준 것에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 어렸을 때부터 힘들고 속상한 게 많았을텐데 그동안 수고 많았어 글쓴아. 아 지금은 어때, 잘 살고 있어? 사실 상처라는 게 완전히 치료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흉으로 남아 볼 때마다 특정 장면이 생각나기 마련이잖아. 그럴 때 어느 누구는 그랬었지 라며 넘어가고, 어느 누구는 보는 사람도 괴로울 만큼 힘들어하더라고. 무튼 오늘 글쓴이 얘기 해줘서 고마워. 시간이 얼마큼 지나도 당신 만큼은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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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leumma
· 4년 전
부모는 선택할 수 없죠 그런 부모와 함께 자란것도 그리고 엄마가 유학을 못한 것도 행복하지 못한 것도 단 하나도 당신과 관련되지 않았어요 당신 잘못 탓 아무것도 없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이네요 그곳에서 나오세요 두려움을 깨고 하루빨리 나올 수 있다면 나와서 더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노력해보세요 당신이 가진 힘을 믿으세요 내 가치를 내 크기를 소중함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입니다 그 누구도 나의 가치를 함부로 결정내리거나 재단 할 수 없습니다 다른 가정과 비교가 되겠죠 하지만 과거를 버리고 충분히 지난 시간보다 행복한 시간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 인생을 어떻게 이끌고 가느냐에따라서요. 책 미움받을 용기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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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oon080521
· 4년 전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마음아프네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