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친할머니의 생신이다. 오랜만에 시골에 갔었다. 가자마자 나를 무시하셨고, 엄마를 보고 어휴.. 하셨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 할머니 왜 저러셔? 했더니 그냥 넘기라고 하셨다. 나이가 많아 한숨이 많으시다는 말을 믿었다. 그렇게 나와 엄마는 할머니의 생신상을 차렸다. 아버지는 부엌에 오시다가 할머니의 사내 ***가 어딜!!!!!!!!! 하는 말씀에 다시 돌아가시기를 여러 번. 귀가 예민한 나는 계속 예민한 상태가 되었고,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참으라고 했다. 옛날 분이라 남자가 부엌에 오는 게 이상하게 느끼시는 분이니까 참으라고. 나는 그 말에 또 그냥 웃었다. 엄마가 나를 달래는데, 내가 뭘 더 해....... 그러다가 결국 내가 카톡으로 아빵 ㅠ 나 귀 예민한 것 알잖아 ㅠㅠ 그냥 앉아 있어 ㅠㅠ 나 지금 진짜 예민해.. 하니까 미안해 딸.. 아빠가 무능력해.. 하는 답변을 받았다. 그때부터 ***같았다. 내 아빠가 왜 무능력해. 지금까지도 나와 내 어머니 먹여 살리는 저 남자가 왜. 그렇게 생일상은 차려졌다. 나는 사실 오늘, 그러니까 토요일에 알바생이 바쁘대서 내가 대타해야 하는 상황에 밥만 먹고 올 예정이었기에 그냥 할머니의 히스토리를 다 참았었다. 계집년. ***. ***. ***년 등등 모든 언어를 참고 참았다. 그게 나를 향한 말이 아니었기에 참기 버거웠지만 참았다. 엄마가 참으랬거든........ 그렇게 밥을 먹는 중에 계집년 낳아놓고 밥이 넘어가냐 이 ***아라는 말에 내 눈깔이 ***같아지는 걸 부모님이 아셨나보다. 아버지가 적당히 하시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의 저 말씀이 할머니를 건드린 건지 뭘 적당히 해!! 차마 저런 ***은 쓸모없는 계집년 하나 낳고 생일상 차리는 년은 이제 못 보겠다!! 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터졌다. 나는 서비스직이다. 그래서 쉬는 날이 없어 시골에 내려오는 게 12년만이다. 그래서 몰랐다. 그런데 오늘 저런 소리를 들으니 엄마의 고생이 느껴져서 결국 못 참았다. 아, 진짜 짜증 나네. 할머니, 혼자 밥 드시는 것 걱정해서 매년 생일 때마다, 제사 지낼 때마다 오는 우리 엄마 이딴 취급하셨어요? 그때 엄마는 나를 안았다.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우울증과 자해, 그리고 공황장애로 7년을 정신과 다니는 나를 아는 엄마는 나를 안았다. 그때 아버지도 급하게 밖으로 나가셨다. 차에 시동 걸고 올게! 하면서. 그때 나는 ***년이었다. ***년. ***년. ***. 늙은년 등등 하면 안 되는 말을 내뱉으면서 할머니한테 들이댔다. 그런 나를 막으면서 아버지는 큰아빠에게 전화하셨다. 어머니 좀 부탁한다고. 그렇게 나는 집에 왔다. 자취방에 내려 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 아빠와 오늘은 같이 자면 안 되냐고. 내 딸이 또 혼자 자취방에서 손목 그을 것 같아서 무섭다고 우셨다. 어머니도 울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본가에 있다. 아버지는 나 배고프겠다고 감자탕을 사 오겠다고 나가셨고, 어머니는 밥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며 밥을 하고 계신다. 사실 부모님께 죄송스럽다. 부모님이 저렇게까지 노력할 일이 아닌데, 내 ***같은 성격이 또 부모님을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더이상 친할머니를 보러 가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나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 부모는 소중하다. 할머니가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인가 싶다. 내 부모가 더 중요하지. 솔직하게 할머니께 한 내 모습이 죄책감 느껴져서 죽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나는 내 부모님보다 먼저 죽지 않을 거다. 내가 죽으려고 하다가 눈을 떴을 때, 본인들의 잘못이라며 몇 년을 내 눈치만 보는 내 부모님을 두고 죽지는 않을 거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아버지가 오셨다. 자기가 뭘 잘못했냐는 할머니 말씀에 어머니 때문에 아들 4명 중 3명이 이혼하고 1명만 재혼했다가 또 이혼해서 자살한 것보면 모르겠냐는 큰아빠의 말씀에 할머니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셨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 아버지만 이혼 안 하셨고, 작은 아빠가 재혼하셨다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제대로 들으니.. 그냥 웃음만 나온다. 나는 지금 늦은 저녁을 먹을 거다. 다들 밥 잘 챙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