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아무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
할머니가 보고싶어서 미칠 것 같다.
아직 할머니의 말투와 목소리. 그리고 주름진 그 손이 기억난다. 할머니는 스킨로션을 꾸준히 바르셔서 주름은 있지만 피부가 윤기가 나셨고 아주 부드러우셨다. 눈이 좋지 않으셔 안경을 착용하셨고 키는 작은 편이셨다. 그리고 사람을 그립게 만드는 목소리를 지니셨다.
나는 할머니의 아홉손주들중 막내였다.
할머니는 나를 "옥동아"라고 "울아가"라고 다정하게 불러주셨고 내가 울면 "야가 와이랄꼬" 라면서 다독여주셨다.
내가 아기때 순해서인지 눈을 잘 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나를 볼 때 마다 해주셨다.
걷다가 만나는 친구가 많으셨고, 부지런하셔서 경로당 열쇠를 맡으셨다. 할아버지는 나 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할머니는 홀로 분리형원룸에서 사셨다. 하지만 집이 아주 가까웠다 10분거리.
할머니는 담배를 피셨다. 좁은 베란다 벽에 등을 기대 앉아 한 쪽 다리를 굽혀 괴서 담배를 피셨다. 지금도 할머니의 담배냄새까지 그립다. 눈이 점점 나빠지시던 할머니의 계란 껍질 살짝 들어간 계란찜도 그립다.
할머니가 보고싶다. 외할머니칭호는 딱딱하다. 할머니 병원에도 시험기간이라고 자주 못 간 나를 원망한다. 할머니를 꼭 안으며 사랑해요 한마디 못한 나를 원망한다. 그냥 못난 손녀였던 나를 원망한다. 유치원때 언니맹장이 터져서 부모님이 바쁘자 한 일이준가 한달인가 같이 산 적이 있다. 그때 심심하다고 찡찡거렸던 것 조차 원망한다
나말고 막내가 한명 더 있는데 (나랑은 당연히 동갑) 남자인 걔랑 여자인 나를 정말 똑같이 대해주셔서 감사하다. 그런 이상한 할머니가 아니셔서 감사하다.오직 둘중 한명이 아플때만 그 한명에게 더 신경써주셨을 뿐. 정말 무조건의 무한대의 사랑을 할머니께 받았다.
내가 처음 떠나 그리움을 느낀 분이 할머니다. 삼촌때는 너무 어렸고, 할아버지들때는 아직 나지도 않았다. 오직 할머니만 나와 14년의 시간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할머니 한 분이 더 계신다. 나와 15년째 함께 하신다. 많이 편찮으신데 뵈러 갈때마다 손을 잡고 사랑한단 말을 많이 하게 된다. 필사적으로. 엄마한테도 마찬가지다. 나는 필사적이게 되었다.
할머니를 주제로 백일장을 썼다. 2학년이 137명인가 있는데 그 중 3등을 했다. 기쁘다. 할머니의 선물인냥 자랑스럽다. 할머니, 할머니 손녀가 3등했어요.
할마니는 산소도 납골당도 따로 없다. 유언이셨다. 그래서 대공원에 뿌렸다고 한다. 그래서 딱히 찾*** 장소가 없다.
꿈에나 나오면 꿈에서 마저 울 뿐이다.
보고싶다보고싶다보고싶다. 미치도록 보고싶어 미치겠다.
보면 지금 보면 더 잘해드릴 수 있는데 더 더 사랑한다고 하고 병실을 치워드리고 안아드리고 내가 밥까지 차려드릴 수 있는데 그런데 그녀는 없다.
할머니의 마지막 병실에서 할머니가 쓰시던 그 컵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쯤 어버이날에 선물한 컵. 내가 드린 할머니의 마지막 컵. 그래서 할머니가 보고싶다.
이 글을 쓰면서도 할머니가 보고싶은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글이 엉망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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