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매일 매일 저의 분노와 화를 조절 못하고 아이에게 푸는거 같습니다. 어느날 내가 왜이럴까? 생각해보니 책도 찾아보고 검색도 해보니 저의 과거 트라우마가 그대로 재연 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현재 저의 명확한 상태를 알고싶습니다.
수시로 무기력해져요.. 극복법좀 알려주세요
정신과 다니는데요. 대표원장님께 진찰 받는데 원장님은 괜찮은데 간호사들이 불친절하고 예약을 잡아도 1시간을 대기해야 해요.... 솔직히 정신과 상담 5분하고 똑같은 약 처방 받고 나오는데 그냥 다른 병원 가야 할까요? 문제는 저만 그런게 아니라 모든 환자들이 거의 한시간은 기다리더라고요.... 간호사들이 병원 시스템상 시간 예약을 정확히 잘 못 정하는것 같은데 다른 환자들도 1시간을 기다리니 간호사들에게 뭐라 말해야 할까 싶네요... 정신과가 처음이라 그런데 그렇다고 기록이 다 있는데 정신과를 쉽게 바꾸는건 또 안되겠죠?ㅜㅜ 정신과가 많은것도 아니라서 고민이네요....
대체 뭔 잘못을 했길래 신은 나에게 이런 미치도록 큰 그릇을 줘서 날 이렇게 만드는걸까.
우울증인 사람은 가벼운 말에도 상처를 잘 받는것같다 오늘도 난 상처를 받았는데 내가 말하는게 역겹다는거 이 한마디.. 작은 말에도 상처를 잘받고 그냥 난 없어지고싶다 너같은사람이 제일 역겨워 이 한마디..
저는 올해 퇴직한 교사이며 57세 남성입니다. 퇴직전 학교에서 유독 저를 잘 따르던 후배가 있었습니다. 신규교사로 부임할때 제가 처음 안내를 해 주었고 그 친구 말로는 그게 각인 효과가 된거라고 하네요. 그렇게 5년을 근무하며 일반적인 멘토 멘티 처럼 지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퇴직하고 그 친구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죠. 이후에도 그 친구는 새 학교에서의 적응 문제, 전 남친과 이별의 아픔, 새 남친과 잘 안되는 문제 등을 토로하며 톡을 주고 받았고, 특히 대학원 진학을 위해 자소서 첨삭 같은 것을 지도해 주면서 간혹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여러가지 문화적 취향(음악 영화 일본 서브컬쳐)이 비슷해서 더 가까워졌죠. 당연히 절제했고 절대 선 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성의 영역이고 감정은 이미 깊은 곳에서 자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문제는 20대 여성이 50대 후반 아저씨에게 뭘 느끼겠어 하는 마음에 방심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한테서 터졌습니다. 새 남친과 관계가 잘 안되는 이유가 저한테 감정이 분산되어서라고 털어 놓은 것입니다.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딸 보다 어린데. 그리고 그 친구가 관계 정리를 선언했을때 나도 예상보다 훨씬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 이미 여러가지 문제로 어려움이 많은 상태였습니다. 10년을 공들여 만든 교원단체에서 배신 당했고 1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후 제대로 애도도 하기 전에 1년 반이나 상속세 세무조사에 시달리고 9억이나 추징당하고, 이 모든 과정을 장남이라 내색 않고 혼자 감당했지만 동생은 이를 전혀 몰라주고, 교권침해와 교직에 대한 사회적인 멸시가 높아지면서 지난 32년간의 헌신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이렇게 나도 힘든데 그 친구의 이런저런 고민을 들어주다 애착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즉 그 친구의 고민을 듣고 같이 공감하는 것이 오히려 저에게 삶의 의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하고 감정적으로 자꾸 밀착하면 안된다는 그 친구의 뜻을 충분히 존중하고 사실 내 편에서 먼저 그럴 생각이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우울이 생각보다 강하기 쏟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에스엔에스 등에 우울증 위험 신호가 느껴지는 글들을 마구 올렸고 그 중 일부는 자살 위험까지 보이는 것들인가 봅니다. 아끼던 제자 하나가 그걸 감지해서 거의 강제로 정신과에 가기로 하고 조금 안정되었습니다. 그 제자는 정신과에 가세요 하는게 아니라 같이 가요라고 했습니다. 일단 위기감을 느낀 나는 그 친구와의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아무래도 그 친구의 커리어와 이후 연애를 위해 이런 애매하고 오해받기 쉬운 관계는 정리해 주는게 도리고요, 일단 만났는데 그 친구가 제 위험한 sns를 다 봤던 모양입니다. 처음부터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나타나더니 그냥 울어버리고 저도 울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여러가지로 우울하고 고민 많은 그 친구의 마음에 공감하는것이 저의 마음 상태에서는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눌러왔던 여러 아픔과 상처를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는 것으로 눌러왔는데 오히려 내가 거기 의지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근 몇달은 아침을 보며 일어나지 못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어요 아침에 자는날이 반복되고 핸드폰보고 먹***고가 반복 되어요 근데 모르겠어요 이제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지경 같아요
하루하루가 괴로워 살기싫단 생각 하나로 하루를 보내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단 생각으로 점점 게을러져 진작에 치웠어야 할 방은 쓰레기, 옷으로 널부러져있고 꾸준히 날짜가 꼬박꼬박 적혀있던 공부 플래너도 지금 보면 전부 3, 4달 전 날짜밖에 없어 _ _ _ _ _ _ _ _ _ _ _ _ _ _ _ ... 난 아직 괜찮지 않은데 다시 시작하래 난 아직 나아지지 않았는데 전혀 괜찮지 않은데.. 여전히.. 너무 아픈데 이젠 삶이 버거울 지경, 아니 끔직할 지경이야 근데.. 왜 나한테 살라고 응원을 해줘.. 싫다고, 그런 것들조차.. 무슨 마음으로 한 건지는 잘 아는데.. 난 싫어, 싫다고.. 시작이란 단어가 내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다시 하래, 계속 처음부터 그러고선 내가 무너졌을 때 위로하는 꼴이.. 진짜 싫어 앞으로 수십년간 이걸 반복해야하잖아 날 이렇게 만들어놓고 위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꾸역꾸역 버티라는거잖아 근데, 근데 있잖아? 나 진짜 역겨워서 못하겠어 안 살래, 살기 싫어 진짜진짜진짜 최악이야
그래서 아랫집에서 제가 크게말한거 다 들었을것같아요..
(2025/7/14)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진심. 그것은 억울함, 분노, 원망, 행복, 과거, 괴로움... 죽어서도 내 인생에서 제일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 아빠와 엄마의 싸움. 어렸을 적이라 꿈인지도 현실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런 기억이지만, 가슴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내가 억지로 그 기억을 끄집어낼 수 없도록. 둘, 삼촌에게 처음으로 소리 지르고 화를 냈던 일. 내가 싫다고 했는데, 자기 딴엔 장난이라고 무시하며 왜 화를 내는 거냐고... 자신의 잘못을 마치 내 잘못인 양 말했다. 너무 원망스러웠고 저주했다. 그러다 이 세상까지 저주하며 살았다. 하지만, 가족이라 가족이라서... 미워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난 지금까지 살면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그런 순간은 다섯 손가락도 필요 없을 정도로 거의 없다. 어려서 미숙했다. 닥친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몰랐고, 아무도 알려주지도 도와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위험할 때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그 누구도 몰랐고, 그 누구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엄마 말곤 없었다. 그런데, 이젠 정말 아무도 없다. 아마도. 나는 날 이렇게 만든 고리타분한 세상을 저주하고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게 한 모든 것을 원망하고 내게 힘듦만 주는 모든 이를 싫어한다. 행복했던 기억? 있다. 당연히. 그런데, 그 기억들을 전부 눌러버릴 정도로 수많은 불행의 기억들이 날 갉아먹는다. 힘든데도 일어서기 두려울 정도로. 매일이..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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