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너무 힘들어서요. 제가 살아온 일부를 길게 적었어요 - 마인드카페[우울증|불안|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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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그냥 너무 힘들어서요. 제가 살아온 일부를 길게 적었어요. 앞뒤 문맥이 전혀 안맞아요. 생각이 흐르는대로 적어서요. 누군가는 읽어주세요. 그냥 그거면 될 것 같아요. - 중학생때 위염에 처음 걸렸다. 중학교 2학년때는 속이 메슥거리는 증상까지 생겨 위내시경을 받았다. 첫 위내시경을 받던 날이 생생하다. 수면제가 링거를 타고 몸에 들어올때 터질 것 같이 빨라지던 심장소리에 놀라 버둥거리다 잠에 들었다 의사는 너 꾀병 아니야. 많이 아팠을텐데? 하며 위 사진을 보여주었다. 딱쟁이처럼 보이는 굳은 피가 위에 붙어있었다. 위염 위궤양 중간 단계 정도라나. 그렇게 한달동안 약을 먹었다. 한달정도 지났을 무렵 다시 매슥거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렇게 몇개월 동안 병원에 다니며 약을 처방 받았다. 위장병에 먹는 약을 꾸준히도 먹었다. 그래도 낫지를 않았다. 메슥거림 소화불량은 꾸준히도 있었다. 대학병원에 갔다. 또 내시경을 받았다. 빠른 검사를 위해서 입원을 하고 내시경을 받았다. 이번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신경성이라고 한다. 소화가 안되면 병원에서 지어준 소화제를 먹으라고 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여전히 늘 항상 소화불량과 잦은 통증에 시달렸다. 종종 한의원에서 침도 맞고 약도 지어다 먹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조퇴 한 번이 쉽지 않았다. 잠깐 바꾼 한약은 몸에서 거부반응을 보였다. 위염은 더 나아가 역류성식도염으로도 발전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는 두번인가 한번 정도 내시경을 했던 것 같다. 약은 꾸준히 먹었던 것 같다. 늘 학교에 도착해서 아침이면 정수기에서 물을 떠와 약 봉지를 뜯었다. 그다지 누군가를 신경쓰면서 약을 먹거나 하지도 않았다. 내가 약 6년 정도 되는 시간동안 하루 세번 먹는 약, 각각 다섯알이 넘는 약을 꾸준히 먹어왔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 학교에 안가는 어느날 집에 누워있었는데 몸이 유체이탈하는 느낌이었다. 바닥에서 몸이 붕 떨어지는 느낌. 내가 내가 아닌느낌. 친구를 만나도 무기력하고 힘이 빠졌다. 그때 그게 난 미안했다 그 애에게. 고등학교 이학년 잠재되어있던 우울과 분노가 터져버렸다. 담임과 엄마의 무논리로 짓밟힌 내 꿈. 자퇴를 할 용기는 없었다. 그저 어른들에게 무참히 당한채 너덜너덜하게 학교를 다닐뿐. 반장이였지만. 늘 혼자 지냈다. 화학 남자 선생님이 애들 다 있는 교실에서 뭐야 반장인데 왕따야? 이랬다. 그래 난 자진 아싸였다. 밥 먹어도 다른 반 친구와 먹었다. 아무도 마주하기 싫었다. 고등학교 가장 마지막에 받은 내시경에서는 용종을 제거하였다. 그렇게 여러번 내시경을 받아놓고. 처음 펑펑 울었다. 난 스물이 되었다. 밤을 새서 노는 일이 많아졌고 술자리도 많았다. 4월달에 내시경 6월달에 내시경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가서 9월달에 온갖 위,식도 관련 검사를 모조리 다 했다. 코에 입에 관들을 쑤셔 넣으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서울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집에서 지냈다.불안장애와 우울증에 걸려버렸다. 스물하나가 되었다. 몸이 많이 건강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학교에 가며 다시 술자리가 많아졌다.괜찮았다. 집에서 나와 지내며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들과 지내며 정신적 치유를 받았다. 속도 치유되는 듯 했다. 자퇴를 했다. 사랑도 끝났다. 불안장애 증상이 다시 발현되었다. 사랑을 끝내는 건 죽을만큼 고통이였나보다. 이명과 어지러움 목 결림 위염 모든게 찾아왔다. 재수를 하는 중이다.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밥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다. 집에 있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또 과거에 마주하였다. 장염에 걸린 듯하여 내과에 갔다. 항생제 두개를 맞았는데 내시경을 해보라고 한다. 지겨웠다. 두달전에도 내시경을 받았는 걸. 이번엔 심각했다. 위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아 이게 위궤양인걸까. 하지만 난 통증 하나 없었다. 그리고 분명 두달 전 내시경 결과에서는 만성위염 말고는 별 이상이 없었다. 가지고 살아온 아픔은 점점 당연한 내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점점 둔해져 이젠 내가 나를 포기해버린걸까. 아픔에 민감해도 들어주는 이도 살펴주는 이도 없었다. 첫 내시경 이후에도 엄마는 밥이나 잘 챙겨 먹으라고 니가 밥을 안쳐먹어서 그런다고 네가 예민한거라고 그랬다. 그저 내가 예민한 애 유난떠는 애라고만 약에 의존하며 사는 애라고만 생각하니까. 중학교 때 처음 아팠을 때 그리고 아무 이상 없어도 소화불량과 매슥꺼움에 시달릴때 괜찮은 속에 의사의 처방만 믿고 약을 넣던 그 때 한번이라도 정신과를 먼저 찾아갔다면 이렇게 오래 아플 필요가 있었을까. 이렇게 오래 괴로울 필요가 있었을까. 스물 한 살 전에는 죽고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죽음을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발작을 하는 일은 있었어도. 살겠다고 아득바득하며 버텼는걸. 스물하나가 되었을 때 약한 자해를 했다. 그걸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했었는데 그 사람에게 너무 버거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해서 그 사람을 힘들게 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사랑한다고 느끼게 해준 사람이었는데. 과거에 다시 파고 들어가려고 한다. 어디서 잘못 되었는지. 모른척하고 지내왔을 때 남겨진 것은 내 위장으로 들어가던 수많은 몇천개쯤 된 알약들 뿐인데. 전 제가 괜찮다고 생각했는 걸요. 사실 지금도 그래요. 전 힘든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일로 힘들어하면 내가 나약한 의지없는 어리광부리는 애일 뿐인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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