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길 시작해야하나 모르겠네요 항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상담|우울증|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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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길 시작해야하나 모르겠네요 항상 친구들에게 더 위로받으려고 괜히 사실을 부풀렸던 때가 다반수라 이렇게 솔직히 얘기하는 건 처음이에요 긴글이 될 수도 있지만 혹시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집은 아버지어머니오빠저 이렇게 네명이 가족구성원입니다 오빠와는 3살차이고 저희집은 어려서부터 가난했어요 저랑 오빠는 유치원이 아니라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저는 잠을 자고 저녁에 집을 가는 오후반, 오빠도 3시?인가 까지만 수업받는 오전반이었어요 어린이집 차가 집에 내려주면 어머니가 집앞에 마중을 나오셨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러지 않았어요 집에 가면 오빠는 어머니랑 같이 티비를 보거나 제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저녁을 먹고있었어요 그게 부럽다고는 생각했어도 차별이라거나 외롭다는 생각은 하지않았어요 그렇게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이때부터는 뭔가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왠지 옷을 사고 먹을 걸 사고 필기구를 사고 뭘 사도 오빠와 비교되기 시작했고 오빠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는 아버지어머니에 할머니, 고모네, 첫째큰아버지네, 둘째큰아버지네까지도 오셨었어요 그걸 보고 저도 분명 이렇게 많은분들이 제 입학을 축하해주실 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는 어머니만 오셨어요 아버지는 오시지 않으셨죠 또 어머니는 제 담임선생님을 뵙기보다는 오빠의 담임선생님과 더 얘길 나누시고 그랬어요 오빠는 운동을 참 잘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어딜 가면 오빠가 학교에서 체육에 관해 받아온 상들을 자랑하셨었고 제가 받아왔던 독서나 그림, 글짓기 등에 대한 언급은 없이 "제는 알아서 잘해"라는 말밖에 없었어요 그게 참 서운했죠 친가분들도 오빠에게는 칭찬을 참 많이 하셨었지만 키작고 뚱뚱했던 제게는 칭찬보다는 살을 빼라는 말이 다였어요 그렇게 설과 추석처럼 친가들과의 만남을 싫어했고 초등학교 1학년이던 저는 벌써 차별이라는 걸 실감하고 많이 힘들었어요 목욕탕도 제 몸이 부끄러워 가길 거부했고 2학년 때 정말 친했고 학교를 마치고 유일하게 나와 놀아주던 그 친구의 주도하에 1년간 왕따도 당했었고 운동회 때도 오빠를 보러오던 친가쪽의 많은분들이 오빠가 졸업하며 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고 오빠의 졸업식날에도 많은분들이 오시고 많은 꽃다발과 선물, 용돈, 외식 등을 했었지만 제 운동회 때는 항상 어머니만 잠시 얼굴을 비추셨고 그마저도 5학년 때부터는 없었어요 제 졸업식 때는 꽃다발도 없이 어머니 혼자 졸업식이 다 끝나갈 쯤에 오신게 다고 외식이라기보단 귀찮아서 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먹고 어머니는 금방 가셨어요 그래도 졸업식이라고 탕수육도 시켜달라는 제말에 야단치시던 어머니가 미웠습니다 또 몸이 아프면 오빠의 경우 회사도 쉬시고 하루종일 죽에, 이마수건에 땀도 닦아주고 참 지극정성이셨지만 제 경우에는 혼자 학교에 가서 조퇴를 하고 서러워 울며 혼자 병원과 약국을 갔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요 또 뭘 사든 오빠는 메이커였고 저는 아니었죠 그리고 제일 싫었던 건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새벽에 항상 깨던 저에게 늦은밤 들려오던 부모님의 성관계소리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들어왔고 그건 19살이 된 아직까지도 듣고있습니다 그때는 어려서 그게 뭔지 몰랐으니 호기심에 가봤다가 목격한 적이 2번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나이에 성에대해 눈이 빨리 떴고 야동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야동은 부모님을 생각나게 해 거부감이 생겼고 대신 성인만화를 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광적이게 많은양의 만화를 다운받았었고 오빠의 도움하에 지웠었습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었냐면 부모님의 사이에는 항상 돈문제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돈을 잘 쓰셨었고 빌려주기도 잘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싸우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시고 집물건을 부수고 그렇게 차키를 들고 나가셨습니다항상 그럼 화를 잘 못내던 어머니는 조용히 물건을 치우셨고 전 울다가 어느새 익숙해져 방에 숨고 이불을 뒤집어썼었습니다 음 그리고 오빠는 학원도 다니고 방과후도 했지만 저는 국가에서 지원을 받아 방과후를 무료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방과후만 했었습니다 미술학원에 다니고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못다녔었죠 돈도 못버는 그림을 왜 그리냐 보내줄 돈 없다 라는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그래서 6학년 때는 힘들어도 집에서는 대들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스트레스가 쌓였고 나중에는 아버지담배를 훔쳐피기도 했고 자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자해는 중2 때까지 하다가 멈췄습니다 중학교를 입학하고부터 1학년 때는 괜찮았었습니다 차별은 언제나 있었던 거니 그건 큰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학년이 되고 그때가 제 암흑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집은 가난한데 아버지는 6개월, 그러니까 반년간 백수로 지내며 돈만 축내는 기생충같은 존재였습니다 집에 오면 밥해라 커피타와라 먹을것사와라 엄마한테전화해봐라 등등 모르는 아저씨들도 집에 부르곤 했습니다 저녁만 되면 어머니의 하소연과 아버지의 적반하장식의 태도와 욕설, 물건부숨 등 끝에는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집을 두고 욕을 내뱉으며 차키를 들고 나갑니다 그럼 어머니는 울고 그걸 또 치우고 집에서 키우던 개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정말 많이 때리셨습니다 가르친 것도 없으면서 알아듣지 못한다고 복날 개패듯이 패고 맞으면 아프니까 우는게 당연한데 시끄럽다고 더 때리고 모르는 사람이 집에 들어왔을 때도 짖는게 당연한데 때리고 아버지는 항상 때리기만 하는 무서운 존재니 보고 오줌을 지리면 그건 그거대로 때리고 항상 때리셨습니다 그걸 보호하는게 저였고 그런 저를 보고 아버지는 "지 애비보다 ***끼를 먼저 챙기고,, 잘도 논다 ***끼 내일 버려버린다 에이*** ***같아서 내가 ~@%~@" 라고 욕을 하시며 또 물건을 부수고 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중2 때 집에도 늦게늦게 들어가고 가도 개를 데리고 옥상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친구들에게 받아서 담배도 폈고 오빠는 뒤늦은 사춘기와 반항심에 집에서는 다 무시하고 대들고 싸우고 저를 동네북처럼 다루고 그래서 많이 맞았었습니다 그래서 친구 1명에게 상담도 했었는데 그친구는 화목한 가정에서 엘리트처럼 살았고 거기에 어느순간 열등감을 느끼던 저에게 제 스스로가 구역질이 나서 상담도 그만뒀었습니다 그래서 자해도 아주 심했고 자살기도도 했었습니다 어느날은 아버지가 저와 오빠를 부르더니 이혼생각 중이시라고 어머니는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약도 먹고있다고 하셨습니다 중2를 어리다고 해도 될진 모르겠지만 아버지로 인해 그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저였지만 이혼은 안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뭐 결국 저와 오빠의 의견은 필요없이 어머니가 한번 더 참고 이혼하지 않기로 결정이 났었습니다 그렇게 암흑기같던 중2를 지나면서 저도 1년간 꽤나 익숙해졌던 건지 중3으로 올라가고나서는 자해도 하지않았고 스트레스도 크게 받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 싸워도 그러려니 했고 오빠도 고3말이 돼가면서 철이 들어 제게 잘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1이 되고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이 그렇게 살던 중 이제는 부모님의 이혼소식에도 별감흥이 없었고 차라리 이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함께 살고있지만 언젠간 이혼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어머니가 참 불쌍하거든요 여튼간에 제가 고1 때 오빠가 군대를 가고 그때부터는 차별이 좀 사라졌었습니다 왜냐면 오빠가 없었으니 굳이 차별할 필요는 없죠 그리고 그때 아버지께 들었습니다 오빠를 낳았을 때 어머니가 무지 힘들어하셨는데 그러고 나서 제앞에 2명의 언니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첫째언니는 어머니가 힘드셔서 낙태를 하셨고 둘째언니 또한 낙태를 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아버지가 너무나 정이 가서 낳길 원하셨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도 앞에 낙태경험이 있기 때문에 낳아도 장애를 가질 확률이 매은 높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낳을려고 하셨고 어머니는 별로 내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유산하셨고 이젠 정말 애를 낳지말자고 했는데 그때 저를 임신하셨습니다 저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려서 낙태가 안됐고 될대로 되란 식으로 낳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애착이 안갔다고 하셨고 그래서 후회하냐고 물으니 제가 하는 거 봐서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저 일은 아마 평생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나를 고아원에 보냈으면 어땠을까 하고요 그렇게 고1도 보내고 고2로 올라오면서 미술이 하고싶어졌고 4개월간은 대화에서도 절대반대를 외치시던 부모님이 오빠가 휴가나와서 보내주라는 말에 1달정도 고민해서 보내주셨습니다 이때 보고 다시 깨달은 건 나는 낳고싶어서 낳은애가 아니니 이렇게 차별했고 오빠가 부럽다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탐탁치 않아하던 미술학원을 계속 다니고 돈이 들고 교통비와 밥값이 들 때마다 항상 저를 붙잡고 한탄을 하시며 그만두면 안되냐는 식으로 말씀하셨고 그때마다 싸웠습니다 오빠는 초1 때부터 고1? 2? 때까지 그렇게 학원을 보내줬으면서 내가 학원을 다녀봤자 지금 고2 8월인데 고3까지 2년도 안다닌다고 오빠에게 투자했던 돈을 내게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 그렇게 아깝느냐고. 그럴때마다 항상 지는 건 저였습니다 돈을 가진 권력자니까요 다닐려면 그래야했고 마지막엔 항상 당신들 말이 맞다고 하는게 다였습니다 이제는 고3이라 학원비가 달마다 90만원 가까이 내야하는데 그래서 학원이 끊길 뻔한 걸 오빠가 내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다니고있는데 학원을 늦게다닌 것도 있어서 선생님께서 재수도 생각해놔야한다고 하셨고 집에서는 좋은대학 가길 원하시고 고1 때까지 공부랑은 담을 쌓아뒀던지라 뒤늦게와서 아무리 공부해도 1학년 때 내신과 오르지 않는 수학과 영어점수 때문에 총합등급도 낮고 미래도 너무 어두운 것 같고 영원히 부모님의 차별적 잣대와 밤마다 들리는 성관계소리, 해준 것도 없으면서 많은 걸 보상받고싶어하는 그 망할 심리와 부담감과 압박감과 이미 최선을 다하고있는데 주변에서는 힘내라고 지금만 더 열심히 하면 잘될 거라는데 말들에 너무 힘들어서 최근 자해를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간의 대인관계도 너무 지치고 요즘은 아무렇지 않게 그냥 자기 전 새로운 다짐을 약속하듯 죽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의도로 이 글을 작성했는지 까먹었네요 그냥 얘기하고싶었어요 남들에게 못할얘기들을 익명으로나마 여기서 하고싶었습니다 두서없은 글을 만약 끝까지 읽어주셨다면 당신에게 감사인사를 하고싶습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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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elfless
· 6년 전
이렇게 털어놔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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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0pi
· 6년 전
많이 아팠네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정말 읽은 사람에게 감사인사까지 하는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감동받았어요 고마워요. 음 분명 힘든 이야기일 수 있는데, 이제 19살이면 혼자서 많은걸 할수있는 시기가 왔어요 생각보다 당신은 그 많은걸 견뎌낸 강한 사람이고 긍정적인 많은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어요. 일단 올해 고3 동안은 힘들 수 있으니까 일년만 더 참자는 생각으로 오빠한테 부탁도하고 부모님의 한탄도 딱 일년만 더 견뎌내면서 지금 최선을 다하고있다고 했으니까 지금처럼만 본인이 생각하는 만큼 열심히 하고 다른사람 기준에 맞출 필요없고 스무살이 돼서 재수를 하고싶다 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기면 돈때문에 지긋지긋했던 부모님께 의지해야했던것들을 버리고 본인이 본인만을 위해서 돈을 벌고 모아서 써봐요. 미술, 하고싶은거니까 본인이 원하는 부분 행복한 일 하게 될거예요. 나중에 혼자 살때 독립했을때는 지금과 다르게 행복해져야죠. 그때를 위해서 원하는길 꼭 놓지말고 꿋꿋하게 같이 견뎌봐요. 미안해요 도움이 안되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당신이 독립하게되면 그 해방감과 자기 인생을 오롯이 스스로 생각해서 하며 행복할것같아서 꼭 그때를 맞이했으면 해서..... 내 말도 읽어줬다면 감사인사를 전하고싶네요 고마워요 읽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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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ppeed
· 6년 전
흠 무슨말을 해드려야 할까요. 남들은 당신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아니다 맞다 라고 짓걸이지만 정작 그들은 그렇게 행동하지도 살지도 않죠. 어머니는 날 낳고싶지 않다고 하지만 난 태어나버렸네 그리고 난 이렇게 훌쩍 자라버렸네 자라는 시간동안 난 너무 외롭고 쓸쓸하고 아팠네 그말을 부모입에서 들으니 더욱더 가슴깊이 박히네. 그럼나도 이제는 내인생을 살아야겠네? 그쵸? 솔직히 말해 유년시절 떠올리시면 좇같을 거에요 최악의 나날들이죠. 근데 엎지러진 물 다시 양동이에 담을려하지만 벌써 저 아래로 흘러가버렸네요. 아 어쩔수없네 지나가버렸네 지금도 시긴은 바쁘게 흘러가고있네 내 꽃다운 20대도 내 유년 시절같이 좇같이는 살지말자 나도 하고싶은게 있고 먹고싶은게 있고 편안하고싶다 밤마다 이불 뒤집어 쓰고 혼자 울고싶지않다 조용히 잠을 이룰수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자신에게 당당한 내가 되고싶다 조금더 날 사랑하고싶다 나는 이 무거운 짐을 좀 내려놓고 싶다. 지금은 자신이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실거에요 하지만 아래가 있으면 위가 있는법 누구나 위로 올라갈수있는법 누구나 아래로 곤두박질 칠수있는법 아래가 있으면 쳐다볼 위가 있는법 오를 위가 있는법 자기자신을 위한 삶을 살것 그누구도 그어느것도 내인생에 주체가 되지못하니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행복해보자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