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평한 사람이 되겠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주 어린.
작고 무지한 한 꼬마 아이가 그렇게 다짐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한 곳이었다.
키가 작다고, 혹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다고,
자신들의 잣대에 맞지 않으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악당같이
남의 몸을 숭덩숭덩 잘라버렸다.
여린 마음에 큰 상처가 생겼다.
아이는 시간이 지나며 청소년이 되었다.
청소년이 된 아이는 억울한 마음을 담아,
왜 소수자들은, 작고 힘없는 자들은 차별받나요
하고 물었다.
사람들은 대답했다.
우리가 무슨 차별을 한다고?
아이는 절망을 배웠다.
습득이 빠르고 배운 것을 실생활에 잘 써먹는
똑똑하고 성실했던 아이는
한을 담아 던진 물음의 답에
절망을 배웠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버렸다.
...끝은 아니었다.
포기하기엔 너무나도 열심히 살아온 삶이었다.
아이는 그 잔인한 세계에서,
어렸을 적에 배운 반짝임을,
책을 읽으며 키워온 환한 이상을,
아주 가끔 만난 공평에 다가서는 사람들을,
작디작은 가슴에 끌어모아 왔던 것이다.
아이는 그것들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제 인생에서 허락되었던 것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들만 골라 왔기에.
가장 크고, 환하고, 행복한 것들 뿐이었기에.
아이는 아픈 와중에 발버둥쳤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아픔이 되돌아왔다.
절망을 각인한 아이는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아직도, 저를 아프게 하는 반짝임은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래서, 아픈 어른은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