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울증으로 치료받고 있고, 어느정도 진전이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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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콩_레벨_아이콘strikerkwon
·7년 전
저는 우울증으로 치료받고 있고, 어느정도 진전이 있어서 요즘은 담당의 또한 제 상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교복을 입던 시절 가장 좋아하던 책이 무어냐 누군가 물어오면 항상 대답하던 것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습니다. 문득 다시 읽고 싶어져서 시간을 내어 읽었습니다. 이제서야 조금은 그 내용이 피부에 와닿는 것 같아서 그것을 읽고난 후의 감상을 조금 적어봤습니다. 써가는 동안 제 나름 위로가 된 것 같아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께 감히 권해봅니다. 이하는 제가 읽고 느낀바를 글로 옮긴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 에밀 싱클레어 <데미안>을 읽고.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 하나를 부수어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언급되는 문장 중 하나다. 또한 이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기도 하다. <데미안>은 에밀 싱클레어의 성장소설이다. 그는 작자 헤세 그 자신의 투영이며, 당신의 투영이며, 나의 투영이며, 그리고 오늘 마주친 그의 투영이다. 누구나 인간이라면 본질로 가슴속에 선,악-카인과 아벨-을 가지고 있다. ‘싱클레어’는, ‘나’는 세계를 부수고 세계를 구축한다. 그것의 시작은 오롯한 자신과의 대면에서 시작한다. 관습과 편견 그리고 도덕의 세계에서 벗어나 카인의 표식을 이마에 새기고 구축한 세계에서는 꿈은 더이상 꿈이 아니다. ‘별을 안고 싶던 사내’는 더이상 절벽아라 검은 물로 침잠하며 후회하지 않는다. 주사위로 던져진 삶, 개구리의 삶, 애벌레의 삶, 뱀의 삶이 아닌 ‘인간’-하나의 인격체-으로서의 삶으로 나*** 수 있다. 그 곳에는 환희도 경외도 슬픔도 우울도 분노도 질투도 있다. 그것은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다. 하나의 ‘인간의 삶’ 이다. 아브락사스를 향해 날아가는 ‘새의 몸짓’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오롯한 ‘나’로 살아가야 한다. 소설 <데미안>이 던지는 메시지는 이 것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한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화마가 유럽을 휩쓸고 지나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세계가 새로운 세계로 가는(그것이 옳든 그르든) 길목에서 작가는 ‘데미안’을 창작했다기보다 만났다. 100년이 지난 이 세계에서 ‘나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상상해보면 아직 까마득한 껍질 속의 점액 상태인 듯하다. 일변 나 뿐만이 아닌 내 또래 대부분의 모습일 수 있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직 ‘어른아이’ 상태로 방황하고 있다. 소설 <데미안>은 그런 때에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주기 보다, 어서 벽을 깨고 진짜 세상으로 나가라고 온몸으로 아우성친다. 중요하다. 전공서에 종일 매달려 있는것 보다, 토익 900점을 넘기는 것 보다, 멋진 이성친구와 교제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생각한다. 많은 친구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어떤 메타포나 레토릭을 섞어서 서평을 쓰기보다 이정도로 줄이는 것이 여운이 깊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부터 내 세계를 깨보이는 여행을 떠나겠다고, 나의 데미안에게 쪽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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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가 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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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ikerkwon (글쓴이)
· 7년 전
격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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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name
· 7년 전
저도 데미안을 좋아해요. 글 잘 쓰시네요:) 저도 생각했던게 많았지만 읽은지 좀 되어서 살짝 가물가물해서 다시 읽을까 싶던 차에 이 글을 봤어요. 잘 읽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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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ikerkwon (글쓴이)
· 7년 전
고맙습니다. 당신의 데미안을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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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n212
· 7년 전
너무 좋네요. 데미안을 읽어봐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