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점점 미쳐가나보다.. 미치겠다.. 진짜 빨리 끝짱 내고싶다.. 이제는 내안에 나라는 존재감이 미약해져서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될지..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내일도 아침에는 쌀쌀하다고 해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나는 당당하다 나는 하나도 안 창피하다! 나는 잘 살고있다! 나는 꼭 성공할것이다! 나는 꼭 승리할것이다! 나는 ..
나도 좀 그런 얼굴이었으면..
점점 더 낙심할수록 공허해지더라.. 즐거움은 싹다 가버린채..
왜 이렇게 외롭지? 울수록? 내가 왜?
올해로 29살.. 분명 그러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기족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것도 점점 오래 되어간다. 그래서 무슨 말을 먼저 꺼내는 것도 어렵다. 그리고 다같이 모이면 더 불편하다. 솔직히 어쩔땐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또 안 모였으면 좋겠고 안 보고 싶다. 아무리 살갑고 부드럽게 대해주는 순간에도 뭔지 모를 불편함이 있다. 당연한 거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가족들이 불편한 건 아니었다. 맨 첫글에도 적었듯이 분명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인간들한테 한소리 듣는 일이 적잖이 생겼고 그렇게 들었던 말들 중에서는 비수같이 느껴진 것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자 나는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우울증까지 생긴 상태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말들은 더 민감하게 들리고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인간들 입장에서는 내가 답답하고 속터졌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짜증이 나고 표현도 거칠어졌을 수도 있다. 특히 일 관련 문제로 그렇게 한소리를 많이 들었다. 한때 내가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에(대학교는 못 감) 반 백수로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만 하더라도 그 꼬라지가 어지간히 답답했겠나 싶다. 게다가 나는 일도 유달리 못 구해서 더... 그래서 그 시절에도 종종 한소리를 들어왔고 어떤 날에는 그런 내 모습이 하도 속이 터지고 X같았는지 형이라는 인간한테 한소리 듣는 과정에서 형이 던지는 핸드폰에 머리까지 맞은 적도 있었댜. 그때가 2016년도였으니 벌써 9년 전이다. 이제 거의 10년이 다 되간다. 이건 내가 긴 내용이 담긴 다른 글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성별이 남자라서 한때는 군 문제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남자는 어디 큰 문제가 없으면 군 복무를 해야 하니까.. 그렇게 성인이 되고 병무청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재검 판정이 나왔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어도 이런저런 문제도 있었지만 일단 우울증 문제도 있어서 정신과에서 6개월 정도 다시 진료 받다가 다시 병무청에 검사를 받으러 오란다. 그렇게 하라는대로 6개월 진료를 받고 다시 재검을 받으러 갔고 그렇게 4급 사회복무요원 즉 공익근무를 하라는 결과가 나왔다. 근데 또 형이 하는 말이 공익근무는 시간낭비고 돈도 얼마 못 버니까 방위산업체인지 뭔지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공장을 들어가서 일을 하라는 거였다. 그인간 말대로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문제는 내가 구하는 곳마다 써주는 곳도 많이 없었다. 4급 대체복무를 인정해주는 공장들에 연락을 해보면서 일할 곳을 찾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어떤 업체들은 왜 4급을 받게됐냐고 이유를 묻더니 다른 것들은 그닥 말하고 싶지 않은 치부라고 생각해서 말은 못 하겠고 우울증 문제 때문에 4급을 받았다고 얼버무렸는데 그럼 좀 어려울 것 같다면서 거부하는 곳도 있었다. 또 어떤 업체에서 말하기를 우울증 있는 사람 어디가서 써주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나 뭐라나 이런 소리를 하면서.. 그래서 그걸로도 또 종종 한소리를 들어먹었는데 그러다가 마침내 나를 써주는 곳을 찾았는데 그곳은 주,야 2교대로 일을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비로 대체복무로 인정되는 건 아니었고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친 후를 기준으로 복무가 인정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싶어서 처음에는 해봤는데 보통 직장인들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주간 시간에는 괜찮았는데 야간에 출근해서 밤 새는 건 졸음과의 사투를 더 심하게 견뎌내야 해서 더 힘들었다. 결국 주,야 2교대라는 시스템에 지쳐서 그만두게 됐는데 그만두더라도 몇 달은 좀 더 일하디가 관두지 그렇게 짧게 일하고 그만두냐고 또 한소리를 들어먹었다. 그러면서 추가로 너는 근성이라는 것도 없냐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또 니가 그렇게 몇 개월 일하고 관두는 일을 자기는 몇 년 넘게 하고 있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그 인간도 당시에 방위산업체로 대체복무를 하고 있었다. 그인간은 실업계를 나왔는데 그랗게 고3 때부터 취업을 해서 나랑은 다르게 스스로 자기 진로랑 자리를 잡은 상태였으니) 그렇게 다시 백수가 되고 또 그렇게 다시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또 여전히 쉽게 구하지 못 하고 있어 어느날에는 질책뿐만이 아니라 얻어맞은 날이 있었다. 그때가 8년 전 2017년 8월 15일 광복절이었는데 날짜가 날짜인 만큼 날짜마저도 잊혀지지가 않고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날은 또 내 문제로 엄마랑 형이라는 인간이 싸우다가 엄마는 잠깐 밖에 나갔고 형은 샤워하다가 나왔는데 샤워 다 하고 나와서 엄마는 어디나갔냐고 묻길래 어디 말은 안 하고 나갔다고 하니 갑자기 와가지고는 내가 너 때문에 엄마한테 이딴소리나 들어야 되겠냐느니 이게 다 너 때문이라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그 날 나를 격하게 때린 적이 있다. 그건 둘째치고 그날 기억에 남는 굵직한 일이 한가지 또 있는데 바로 그렇게 때리고 나서 내가 진짜로 산업체 일을 알아보고 있나 싶어서 내 핸드폰을 줘보라 하고 통화기록을 보더니 겨우 이정도밖에 안 해봤냐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왜 안 되는지 의문점 좀 가지라며 내가 답답해서 또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순간적으로 내 핸드폰을 머리에다가 던져서 내 핸드폰 액정이 깨진 적이 있었다. 그런 다음에 씩씩거리더니 깨진 내 핸드폰 액정을 보고 너 이거 핸드폰 바꾼 지 얼마나 됐냐고 묻길래 1년 3개월 정도 됐다고 말하니 숨을 크게 내쉰 다음 말을 가라앉히며 일단 그건 그대로 쓰고 나중에 핸드폰 좋은 걸로 바꿔주겠다면서 액정 고치지 말란다. 진짜 바꿔주기는 했다. 그게 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그 일이 있은 후로 대략 1년 반 정도 지난 후였나.. 어쨌건 그때까지는 그 인간 말대로 핸드폰 액정이 깨진 채로 그대로 쓰고 다녔는데 누가 내 핸드폰 깨진 액정을 보고 핸드폰은 어쩌다가 그렇게 됐냐고 종종 물어보는 사람이 있던데 그때마다 참 난감하기는 했다. 그때 저 일 때문에 깨졌다고 하면서 쉽사리 내 아픔이자 치부를 드러내긴 싫으니까.. 게다가 집안망신 같기도 해서 어디다가 저런 이야기는 절대로 못 했다. 솔직히 무슨 자랑거리라고 그런 걸 떠벌리고 다니겠나 싶다. 그래서 그때마다 그냥 높은 곳에서 실수로 바닥에 떨구는 바람에 깨졌다고 얼버무렸다. 아무튼 그때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그러다가 결국 더 크게 뭐라고는 안 하고 물 한 잔 떠다 주면서 마시라고 내밀고는 얼마나 내가 답답하면 이러겠냐며 약간 달래주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던 그런 일이 있었다. 더군다나 최근에 광복절에 이때 일이 불현듯 다시 떠올랐다. 그러다가 몇 달 후에 또 결국에 또 찾고 찾아서 또 방위산업체로 일할 공장에 어렵사리 일자리를 얻어 취업을 했다. 거리가 있었지만 전에 다녔던 공장처럼 주,야 2교대는 아니고 보통 직장인들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회사기도 했고 오히려 여기가 더 다닐만 하기도 하고 그랬다. 사실 일도 일이지만 출,퇴근길이 정말 고단했는데 그래도 어쩌겠나 다녀야지 싶어서 다니려고 했지만 여기서는 몇 일 하지도 못하고 바로 퇴짜 ;;; 그렇게 해서 얼마 안 가서 다시 제자리.. 원래 남자로 태어나서 불만이라거나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참 이 군 대체복무업체 찾***니느라 애먹었을 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로 태어난 게 싫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잠깐동안은 남자로 태어난 게 너무 싫었다. (요즘은 다시 또 싫어지지만) 그냥 여자로 태어났으면 이런 걸로 애먹지 않아도 되는데 싶어서.. 아무튼 그렇게 난 다시 집에 있게 되었다가 한 해가 지나서 20***이 됐고 그 해 연초에 또 크게 한소리 들었다. 이유야 뭐 뻔하다. 일 안 하고 백수로 있는 것 때문에.. 물론 이 일 전에도 방위산업체 일자리를 몇 일 못 하고 퇴짜당한 이후부터 다시 종종 한소리를 듣긴 했지만 지금 적는 이 일은 내가 한소리 들은 것을 넘어서 또 엄마랑 형이 내 문제로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기도 했던 날이다. 형이 나보고 산업체는 알아보고 있냐는 소리를 시작으로 한소리를 들었고 엄마는 이제 그정도 했으면 그냥 포기하고 공익이나 알아보라고 했는데 형은 또 거긴 돈도 얼마 못 받고 시간 낭비라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방위산업체를 알아봐야 한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또 싸웠고 그러다가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나였던 만큼 화살은 다시 나한테로 와서 형이란 인간이 너 때문에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라느니 뭐라느니 이런 소리를 듣고 또 차마 떠올리기도 싫고 글로도 입력하기 싫을 어떤 괴로운 말도 들었다. 엄마랑 언성 높이면서 싸울 때마저도 나를 가리키면서.. (무슨 말인지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말했듯이 떠올리기도 싫은 말이고 나한테는 진짜 끔찍한 말이라..) 다른 때는 몰라도 적어도 그때만큼은 두 귀가 잘 들리는 게 저주같이 느껴졌다. 그때만큼은 차라리 귀가 안 들렸으면 했다. 이런 생각 한 적도 처음이었다. 그 날은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내가 변변찮은 놈이었다는 건가 싶고.. 그인간도 그 당시 나를 보고 얼마나 울화가 터졌을까 싶다. 아무튼 그러다가 형도 결국에는 산업체 알아보란 말을 관두고 빨리 공익 알아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공익 알아보는 동안 다른 할 일 얼른 알아보라는 말과 동시에 계속 그러고 있으면 집밖으로 쫒아낸다고 하면서 엄포까지 놓으면서.. 그때 했던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뭔가 결연하게 느껴졌다. 진짜 쫒아낼 느낌으로.. 설령 진짜로 쫒아내지는 않더라도 계속해서 한소리 들었을 건 확실하다. 자랑은 아니지만 아마 계속 그렇게 있었으면 더 험한 꼴도 봤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긴 한다. 그때가 얘기했듯 20***도 연초였는데 개인적으로 돌아보면 20***은 그나마 비교적 좋았지만 그때마저도 이때 연초에는 나한테는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만한 이런 일들이 있었다. 어쨌든 나는 결국 그렇게 일을 찾아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게 됐다. 그마저도 겨우 구해서... 원래 이 물류센터에 연락이 오던 시기에 집에서 그닥 멀지 않던 치킨집도 가봤는데 여기서는 면접 관련해서 이야기 나누다가 나오는 길에 몇 분 있다가 문자로 그냥 아는 사람 쓰기로 했다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그럼 그렇게 하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애초에 여기 느낌 보니까 그렇게 큰 기대도 안 했다.) 굳이 답장은 보내지 않았고.. 그렇게 20*** 2월 거의 설날 되기 직전 쯤 물류센터에서 일을 했다. 직종이 직종인지라 힘을 좀 써야했고 끝나는 시간도 늦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감수는 하면 괜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에서 그 인간들한테 갈굼받는 것보다야 이게 훨씬 낫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긴 했다. 한때는 날 알아봐주면서 써주고 그 갈굼에서 벗어나게 해준 그 일터에 감사하기까지 하면서 더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일을 구하고 일을 하면서 공익을 자리를 기다렸는데 그 당시 공익 자리는 쉽사리 나지 않았고 신청기간에도 공익 자리에 공석은 쉽사리 안 나왔다. 그리고 나는 정신과 공익이라 더더욱 할 수 있는 곳이 제한되 있었다. 그리고 공익은 군대를 입대하지 않아도 한 달 동안은 훈련소에 가야 하는데 나는 정신과 공익이라 공익근무 자리를 배치받아도 훈련소는 면제였다. 그러던 어느날 거기서 일하게 된 지 한 2년 쯤 지나고 2020년 7월 쯤 여름에 집 우편함으로 장기대기로 인한 전시근로역 처분을 받아 사실상 면제를 받았다. 비로소 내 군 관련 문제는 끝났다. 그렇게 군 문제는 끝났고 그때 쯤 일하던 물류센터에서도 2020년 여름 8월부터 일하는 방식이 아예 달라진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듣기로는 일하는 방식이 더 수월해지는 것 같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은 더 많아지고 일의 강도도 더 높아지면서 평균적으로 끝나는 시간도 더 늦어졌다. 일하는 방식이 바뀌기 전에는 일찍 끝나면 9시 반에서 늦게 끝나도 한 오전 12시가 되기 전에는 끝났는데 바뀐 후에는 거의 못해도 새벽 2시는 되서야 끝났고 더 늦게 끝나면 새벽 4시~5시에 끝나기도 했다. 특히나 명절이 곧 올 때나 끝난 직후에는 더더욱 새벽 4시~5시에 끝났다. 명절이 가까워지거나 명절이 딱 끝날 때쯤 물량이 쏟아지기에.. 명절이 아니더라도 일단 평균적으로 새벽 2시는 되야 끝나니 몸도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예 작정하고 늦게 끝났을 땐 새벽을 넘어 아침 7시가 되서 집에 들어간 적도 있다. 그럼에도 그만둘 생각은 쉽사리 못 했다. 왜냐면 당시로서는 엄청 힘들게 얻은 일이기 때문에.. 그만두면 또 다른 곳을 들어가거나 다른 걸 해야 할 텐데 이것마저도 힘들게 얻었고 하고 싶은 건 없고.. 어디 일자리 구하려고 해도 오래 걸리니... 그렇기 때문에 그만두면 물론 당분간은 쉬는 차원에서 가족들도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이게 또 길어지면 전처럼 한소리를 들을 거고..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때 그만둔다는 생각을 쉽게 못 했다. 동시에 이런 이유들로 사실 여기서 일할 때도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일한 지 2년째되던 2020년 그때부터는 더더욱 앞서 적은 생각들이 더 크게 들었다. 하지만 결국 힘에 부치고 부쳐서 결국 2021년 2월 마지막 주를 끝으로 나는 3년간 몸담았던 이 일을 그만두게 됐다. 그렇게 2021년 2월 마지막 주를 끝으로 3월부터는 다시 백수가 됐는데 이땐 당연히 잠깐 쉬는 차원에서 가족들도 당분간 아무런 한소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해 5월부터는 다시 종종 일 관련 문제로 엄마한테 약간의 쓴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해 5월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원래 가지고 있던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 물론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지금 말하듯 일 관련 문제도 있었고... (물론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우울증은 있었지만..) 어찌됐든 그러다가 2021년 한 해는 3월부터 그렇게 백수인 상태로 끝나고 2022년이 본격적이었는데 이땐 엄마한테 종종 크게 한소리를 듣게 됐다. 그것도 그 중 처음은 거의 한 해 시작하자마자 일주일 후부터 바로.. 그리고 그 이전에 적었던 형한테 들었던 한소리랑 만만치 않았을 정도로.. 그때 들었던 말 중에 어떤 말은 뼈아프게 남는 말도 있다. 마음이 쓰라리고 후벼팔 정도로 물론 이때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할 이야기에서도 그런 말들을 들었지만.. 그리고 그 이후로 종종 쓴소리를 들어오다가 5월 쯤 되던 날 그때 다시 엄마한테 두 번 정도 대차게 한소리 듣게 됐다. 한 번은 5월 초였던 걸로 기억하고 한 번은 5월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도 역시 마음이 쓰리고 후벼팔 정도로 뼈아픈 말을 들었다. 다 공개하진 못 하고 그 중 일부만 공개하면 널 낳은 걸 후회할 때도 있다는 말.. 게다가 넌 학창시절부터 그렇게 제대로 날 그렇게 애를 먹이냐면서 일갈하고 역정을 냈고 내가 과거에 학교폭력을 당했던 일이 있는데 그때 이야기도 들먹이면서 니가 바로 섰으면 걔네가 널 괴롭혔겠냐느니 이런 소리를 하며 내 역린까지 건드려지기도 했다.. 솔직히 그 소리를 들었을 땐 약간 억울했지만 내가 죽일놈이라 생각해서 참았고 아무 말 못했다. 그때 일들이 일 관련 문제로 엄마한테 한소리 들었던 모든 기억 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크게 남는다. 더군다나 그게 그 한 해가 최악으로 남은 이유 중에 하나가 되기도 했다.. 그때 어떤 말들을 들었는지는 안 적었다. 이렇게 적는 것도 괴로우면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내 입장에서는 끔찍한 말이라서... . 적은 것들 말고도 당연히 그동안 한소리 들은 기억은 여러개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렇게 적은 것들이 제일 기억에 크게 남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남들이 나처럼 그러고 다녔으면 그 인간들도 그저 "에휴.. 병X.. 왜 저러고 사냐 ;;" 이러고 혀를 차고 말았겠지만 하필이면 그런 사람이 자기 아들이자 자기 동생이니.. 가슴을 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나름의 반발심리가 있는 것인지 이런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비록 내가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고 내세우고 자랑할 정도로 대단하거나 잘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문란하게 산 것도 아니고 불량하게 ***처럼 산 것도 아니고 질이 안 좋게 산 것도 아니고 그런 질 안 좋은 무리들이랑 어울려 다닌 것도 아니고.. 누굴 협박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사기를 치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내가 맨날 술이나 퍼먹고 다니면서 ***처럼 깽판을 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술은 입에도 안 대는 게 나다.) 누굴 때리고 패는 것도 아니고 (물론 요즘은 하도 화가 많이 나서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하지만 실천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내가 사람을 죽였나 아니면 나라를 팔았나.. ;;; 그런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한소리를 들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말았다. 그렇다고 나도 저런 소리까지 했어야 할 만큼 저런 행동까지 했을 만큼 심각해 보였을지 모르니... 게다가 세상에 한소리 들을만한 이유들이 내가 적은 저런 것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내가 앞에서 적은 한소리 들은 이유들만 보더라도 내가 죽일놈이지 ;;; 물론 당연히 이런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고 여느 가족들처럼 나를 잘해주고 챙겨줄 때도 있고 온화하게 대해줄 때도 있다. 일상적으로는 이것저것 먹으라고 챙겨주기도 하고 그외에도 어느 하나라고 콕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다른 것도 이것저것 챙겨줄 때도 있다. 그리고 형같은 경우는 내가 예전에 잠깐 추운 겨울날 잠깐 3시간 정도 전단지 알바 돌리는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거 해봐야 얼마나 버냐고 핀잔을 주고 타박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꼴에 지 동생이라고 당시 자기가 입고 다녔던 따뜻한 잠바를 입고 가라고 챙겨준 적도 있고 그리고 예전엔 이래저래 먹을 거 사오라고 시켜대고 부려먹긴 했어도 내 것도 사다주기도 했고 먹을 거라도 사오면 나도 먹으라고 주기도 했고 그리고 또 위에서도 썼던 내용이지만 내가 한창 물류센터 알바할 때 2020년도 쯤에 8월부터 일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고 그때문에 일이 더 많아지고 힘들어졌을 때가 있었는데 특히 추웠던 겨울날 많이 힘드냐고 물어봐주기도 했고 너무 힘들면 잠깐 쉬어도 괜찮다고 하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힘든 일 있으면 본인한테 이야기 하라고한 적도 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뭐 하나라고 특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 외에도 이래저래 자잘하게 챙겨준 것도 많다. 갑자기 써보려니 글문이 턱 막히는 것도 있지만 ;;; 그리고 그때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로 아주 가끔 문자로든 직접 말하든 뭐 힘든 거 없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한다. 그리고 2년 전에는 그 인간이 데려다준다고 해서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본으로 나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해외여행까지 갔다 왔다. 또 그 외에도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봐주고 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봐 주기도 한다. (그때마다 원하는 것도 없으니 없다고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리고 올해는 또 지난 6년간 쓰던 핸드폰도 바꿔주기도 했다. 이 또한 나 혼자서는 핸드폰 살 때 이것저것 이 나이 먹도록 엄두도 못 내는 건데 그 인간이 바꿔준 거다. 그렇게 물어봐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종종 먹을 것도 사준다.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사주기도 한다. 그리고 옷을 잘 안 사입는 나로서는 옷 같은 것도 사주기도 하고 가끔 집에 들를 때 사오면서 입어보라고 하기도 한다. (입어보라고 말하는 말 뽄새가 약간 까칠하게 느껴질 때가 있긴 해도 ;;;) 내가 생일인 날에도 마찬가지로 연락처로 뭐 필요한 거 없냐 먹고 싶은 건 없냐 이래저래 물어봐주기도 하면서 케이크도 보내주고 먹고 싶은 걸 시켜주기도 한다. 그리고 또 7월 말은 내 생일인데 올해 이번 생일에는 집에 와서 이곳저곳 매장에 데려가면서 여름 바지를 사주려고 하기도 했다. 비록 내가 정말 맞는 바지 찾기 어려울 정도로 허리가 없는 체형이고 결과론적으로는 못 사고 돌아왔지만.. 게다가 덤으로 이런저런 과정에서 또 잠깐 가족들끼리 이런저런 자잘한 일들로 약간의 트러블이 일어나서 잠깐은 곤욕이었지만.. (그 중 하나는 내가 가기 싫은 듯한 태도였던 것도 있고.. 내가 워낙에 그 인간들이 불편하니 같이 있는 것도 불편하고 어딘가에 같이 가기도 꺼려지다보니..) 그래도 생일이라 또 이것저것 먹을 것도 사주려고도 했는데 그냥 부담스러워서 케이크 하나만 먹겠다고 해서 어플로 투썸플레이스인가 거기서 배달로 케이크를 사다 주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 식사로는 쭈꾸미 볶음까지 먹기도 했고..
전원이 꺼진 폰으로 해킹 시도하는 학폭 가해자들
학폭 가해자들이 특정인의 약점을 잡기 위해 폰해킹을 시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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