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책임지기도 버겁다고 생각했고, 책임지고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스트레스|불면증|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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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나 하나 책임지기도 버겁다고 생각했고, 책임지고 결정하는 순간이 적어도 지금은 아닐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모든게 빨리 다가와버렸다. 첫 직장에서 상사가 바뀐뒤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3주만에 3kg이 빠지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햇반 하나 먹고, 상사*** 꼴보기 싫어 점심은 안먹고 저녁에 퇴근하고 맥주만 피쳐 한통씩 비우고 잠들었다. 쉬는 날에도 10시간이 넘도록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서 창문만 쳐다봤다. 말라 죽어가는것 같았다. 정말 몸도 마음도 한계다 싶은 순간에 기적같이 현 직장으로 이직이 결정됐다.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좋은 곳에 다녀도 되나 내가 자격이 있나 싶을 정도로 실감나지 않는 변화였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직 후 친구와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다. 다 좋을것만 같았다. 전 직장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기 급급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커리어도 쌓고 내 미래도 설계할수 있고 자기계발도 할 수 있고 내가 하고싶던 일을 다 할수있을것만 같았다. 그렇게 휴가가 끝나고, 엄마가 대장암 3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휴가를 가있던 동안, 엄마는 배가 너무 아파 맹장인줄 알고 병원에 갔는데 대장암 진단을 받게 되셨다. 복막까지 퍼진 상태였다. 수술을 받고 7kg이 빠지셨다. 나랑 비슷한 체격이였던 엄마는 작고 왜소해져있었다. 거의 1년가까이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다. 약이 듣는동안은 물만 삼켜도 토해내신다. 초기에는 주초에 약을 맞으면 내가 집에 가는 주말에는 거의 회복되어 있었는데, 이젠 내가 왔을때도 식사를 하다 화장실로 들어가서 토해내신다. 처음에는 너무 잘 견뎌내셔서 살도 다시 찌고 환자라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는데, 요근래는 머리도 많이 빠지시고 팔다리도 저리다 하시고 식욕도 금방 회복이 안되고 짜증이 느셨다. 내가 잘못 생각했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아픈데도 어떻게 보면 마음으론 그걸 제대로 못받아들였나보다. 자꾸 나는 내가 아직 젊고 여러 경험을 하고싶고 해외로 나가고 싶어했다. 그저 내가 아직 젊으니까 나를 위한 기회가 더 살아있을거라 생각했다. 이성적으로는 엄마랑 가족을 더 봐야된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이 그게 잘 안됐다. 아직 내가 충분히 될거라 생각했는데, 머리가 성성해진 엄마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알았다. 아, 이제 안되는구나. 또 알았다. 내가 그래도되는게 아니라, 나 아닌 다른사람이 내가 외면하고 있던 책임을 짊어지고 있던거란걸. 그게 우리 가족이었다는걸. 오래 사귄 연인이 있다. 결혼을 원하는데, 사실 나는 아직 하고싶지 않다. 그의 불합리함을 따져본들, 내가 여러 핑계를 들어 결혼을 회피하든 그런건 사실 상관없는 얘기다. 중요한건 할건지 말건지다. 그걸 결정해야할 시점이 지금이다. 아빠는 항상 내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절대 강요하지 않으셨다. 몇 번 결혼얘기가 나오면 아직 이직한지도 얼마 안됐고, 생활이 안정이 안돼서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렇게만 말씀드렸고, 그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진지하게 물어보셨다.단박에 알 수 있었다. 엄마가 가면갈수록 안 좋아지시는게 보였으니까. 자꾸 결정을 회피하는것도 오래 만난 연인에게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다. 사실 당장 결혼하기에도 막막한 상태이긴 하다. 각각 직장이 편도 3시간 거리다. 아무리 그래도 연고도 없는 오랜 타지생활이 외롭고 힘들지 않다고하면 거짓말이겠지. 결혼한다고 뭐가 해결될게 보이지도 않지만, 엄마가 조금이라도 건강한 모습일때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은 맘이 없다면 그것도 거짓말이겠지. 가뜩이나 다정다감한 성격이 아니라 엄말 잘 챙기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내 기준에서 자꾸 나한테 다른 딸들처럼 해주길 바라고 막말하실땐 상처받기도 하고. 한편으론 엄마가 그렇게 아픈데 정신도 못차리는 내가 철없고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현실과 이상이 자꾸 괴리가 생기고, 잘 받아들이고 결정해야하고 스스로 현명해져야 하는데. 책임이 무겁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자꾸 무기력해지고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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