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렵게 합격한 계약직 인턴 .. 적응하기도 힘들고 미래도 안보이는 회사라 아깝지만 정신건강을 위해 또러이 대표를 피해 2주만에 퇴사라는 선택을 했다. 다시 본가에 돌아와 부모님께 죄송하기도하고 쪽팔렸고 다시 직업을 구하는 중인 하루하루가 너무 불확실하고 힘든데.. 어머니가 아침에 하는말 “엄마 모임에서 아줌마들한테 너 인턴 일찍 퇴사하고 들어왔더고 했어.” 그말을 듣자마자 노발대발 했다. 말로는 딸을 사랑한다면서, 1/10밖에 너얘기 안한다면서, 왜 굳이 1/10중 현재 내가 제일 힘든 치부를 남에게 얘기하지? 그냥 하루종일 우울했다. 그래.. 엄마는 이런 경험 안해보신 삶을 사셨으니까.. 이해하려해도 짜증나고 슬프다. 내가 죽어야 나를 알아줄까? 엄마가 나르같기도하고 ***같기도하고.. 또 말로는 미안하다 사랑한다하고, 진심이 아닌것만같고 얼른 집을 나가고싶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너무 힘들다.
곁에 있을 땐 한없이 편해서 편하게만 대했지, 소중한 줄 모르고 귀찮아하거나 짜증내는 경우도 많았었어. 직업 특성 상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도 역시 떨어져있다보니 문득 더 보고싶고 미안한게 많아서 더 우울한 오늘이네.. 옆에 없어서 울적한데 막상 또 곁에 있게되면 마냥 편하다고 너한테 못되게 굴고 또 상처줄까봐 무서워. 왜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나만 소중하고 다른사람은 무시하고 남탓하는 못난 성격을 가졌는지, 어떻게 고쳐야할지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도 변했으면 좋겠다. 곧 생일인 너에게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이런 내 성격때문에 다 망치면 어쩌지 싶고 우울한 밤이야..
가족이 법적인 문제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데, 그 문제 이후로 매일이 너무 버겁고 고통스럽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법적인 이야기, 밥 먹을 때도, 쉬는 시간도, 자기 전까지도 계속 그 이야기뿐이에요 물론 중요한 문제라는 건 알고 있지만, 제 생활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잠도 잘 못 자고,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공부에 집중도 전혀 안 됩니다 또 이번일로 원래 있었던 저혈압,틱,공황도 더 심해지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어요.. 그 상황 속에서 가족끼리의 다툼도 점점 심해지고, 매일 큰 소리가 오가다 보니 마음이 정말 지칩니다 저는 아직 학생이고, 제 앞길도 준비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화가 나고, 지치고, 무기력해요..이런일이 처음이어서 더 무섭고 지치는것같아요 어떻게 해야할까요..?
제가 어떤기억을 보고 내 자신으로 돌아가려면 사람이 필요한데요 아무나 실제친구하실분있나요 저에겐 진심으로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도 남들과 같은 그저 평범한사람입니다 도와주세요저 부산입니다 엄청난 충격으로부터 날 응시하려면 사람이 필요합니다 카톡아이디 c h i n 9 h a e
저희 가족은 아버지의 비트코인과 주식 빚으로 엄마와의 사이가 아주 많이 비틀어진 관계가 된지 5년 째 입니다. 저는 엄마 쪽에 붙은 터라 아버지와 얘기를 안 한지 5년이 되었기도 하고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였어서 이젠 아버지 얼굴 조차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엄마 말로는 아버지가 저 태어날 때도 보러 오지 않았고.. 나 같은 건 필요도 없다고 엄마 카톡에 보낸 적이 있어서 저는 여전히 아버지를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렇고.. 이렇게 지내다 보니 가끔 티비에 나오는 화목한 가정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특히 가족들과 해외여행가는 친구들을 더욱더.. 이 가족관계를 어떻게 끝맺을 수 있을까요?
저는 2남 3여 중 넷째로 태어났어요 동생이 중증 1급 장애로 많이 아픕니다 동생이랑 한 살 터울로 어릴 때부터 제약이 많았어요 가족 소풍이나 놀러가는 건 힘들었죠 아버지는 매일 일하러 나가시고 엄마는 저희를 키우시기에 벅찼구요 제가 지금 25살인데 중학교까지만 하더라도 가족 몸싸움이 빈번했어요 돈으로요 아빠는 저희를 맘에 안 드셔 하셨어요 집에서는 과묵하고 명령하는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상이었는데 밖에서는 저희 욕을 많이 하셨대요 지금은 나이인지라 일하기 힘드신데 아직 제가 독립이 안되고 오빠 결혼이나 언니 경제적 지원 때문에 지금도 일 나가시는게 죄송스럽고 그러네요 엄마는 지금까지 저희 돌보시는 게 지치셨는지 요새 동생 케어를 잘 못하세요 작은 언니한테 맞기시고 매일 집안일도 하시는데 병원 내원, 종교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세요 많이 지치셨나봐요 큰 오빠랑 큰 언니는 작은 언니 저보다 더 놀았어요 친구도 많이 만나고 일도 늦게 시작하고 동생도 거의 안봤어요 맏이 역할을 못했죠 독립도 서른 초반에 시작했어요 의지 대상은 아니었어요 근데 지금 보니 이 환경에서 둘의 도피처는 바깥이었나 생각이 들어요 작은 언니는 거의 맏이였어요 엄마 집안일 도와드리고 동생 돌봄 거의 언니 역할이었어요 저도 언니가 거의 엄마였으니까요 언니는 3년 전부터 계속 공무원 준비를 했는데 오후, 저녁에는 계속 동생 돌보고 새벽에 공부해서 오전에야 잠을 잤어요 근데 근 1년은 동생을 잠을 설쳐서 새벽에도 공부를 잘 못했죠 근데 항상 시험에서 떨어져서 마음이 안좋아요 현실적으로 공부량이 기존에 시험 보는 사람들이랑 비교가 안되잖아요 근데 언니는 불평하지 않아요 동생 계속 보는 거에 대해, 지금도 묵묵히 봐요 근데 최근에는 지쳤는지 동생에게 화를 많이 내더라구요 언니가 진짜 잘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뭔가 이 가족을 제 3자로 관찰한 느낌이에요 대학교 때 지역이 달라 다른 곳에서 자취하고 잠깐 휴학해 집에서 오랜만에 지내고 있는데 여전히 가족한테 잘 끼지도 못하고, 성격 때문에 큰 언니처럼 그냥 놀지도 못하고 작은 언니처럼 가정적이기도 못하고,, 옛날에는 버림받는 꿈을 많이 꿨어요 저는 스트레스 받아도 어리니까, 진로 고민 얘기해도 어리니까, 좋은 성적을 받아도 이미 오빠나 작은 언니도 그렇게 했으니까 가족들은 깊게 생각을 안해줬어요 고등학교 때 힘들었을 때 거의 처음으로 엄마 앞에서 서럽게 울었는데 너만 힘드냐, 뭐가 힘드냐는 말은 아직도 마음을 저려와요 동생은 제가 너무 사랑하죠 한 살 터울인데도 진짜 사랑으로 옆에 있었어요 동생이 세상을 못 누려 본 걸 다 제가 해주고 싶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았거든요 일에 대한 성과 등등 근데 그것들을 하려고 하니 부담이 되네요 이번에 오빠가 결혼한데요 저도 사회생활 시작할 나이인데 또 오빠한테 밀리겠죠 경제적 지원이나 등등.. 다들 저는 뭘해도 잘 할 거래요 사막에 떨어져도 잘 살거래요 굶어 죽지 않을 거래요 근데 이제 그 말이 그냥 혼자 계속 있어도 되겠다는 말 같네요 저는 저의 압박에 항상 같혀 지냈어요 "나는 이거 해내야 돼" "또 가족들 귀찮게 했잖아 표정으로 드러내지마" "너가 힘들어도 엄마랑 작은 언니, 동생만 하겠어?" "왜 이것도 못 견뎌, 책임을 다해야지" 근데 뒤돌아보니 남는 게 없네요 여전히 저는 가족들 눈치를 보고 바깥에 친구나 편한 관계가 없어요 행복한 기억도 별로 없고요 모든 순간이 제 몫인데 그동안 걸어왔던 게 다 제 잘못일까봐 무서워요 책임을 내려놓고 싶어요 저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을까요 저는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될까요?
남동생이 보이스피싱을 받앗다는데 걱정되서요 법원에서 우편이온다고그러더니 갑자기 이상한 전화받지말라고하더라고요 전 그래서 걱정이무지된게 잘못될까봐겁나요 넷플릭스도안되고 그러니 답답하네요 어젠 춤추면서 잘배웟고요 정신건강복지센터가좋아여 캘리도배울수잇어좋구요 ㅎㅎ 다행히 기억도나요 ㅎ녹음은 처음해봣지만 그래도 인증을하고싶어서ㅠ 근데 그다른언니는 잘지낼까요 ㅜㅜ
1월즈음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후 아빠와 둘이 살고 있고요 2인용 침대가 너무 텅 비어있고 엄마가 보고싶어서 힘들다는 말 때문에 아빠와 매일 같이 잡니다 아빠는 사망 이후 한동안 엄마 영정사진을 들고 외출했고요 틈 날때마다 꽃을 사서 엄마 무덤에 헌화를 하고 물을 주러 갑니다 자기 말로는 공황이 왔어서 힘들었다는데 약 몇 번 먹고 고쳤다면서 약 끊었다고 쉽게 말하고 다닙니다 자기 전에 엄마가 꿈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매일 합니다 청소를 하면서 엄마 살아있을 때 해줬으면 좋았겠다는 말을 하고요 근데 저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습니다 엄마는 늘 저한테 화를 낼때 강자인 아빠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울음소리 한 번 못 내게 했고요 자기 화를 못이겨서 등산스틱으로 머리를 때린 기억이 선명합니다 저는 엄마의 비염 증세로 인한 소리 때문에 고막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중학교때부터 느껴왔습니다 엄마가 주변사람한테 잘했고 저한테도 노력했던걸 알지만 저는 20여년간의 생활 끝에 엄마를 사랑하고 좋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큰 소리나 치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집을 나가서 차에서 자는 사람이었고 그 후에 엄마가 울면 제가 달래줘야 했습니다 이게 제가 미취학아동일때 일상입니다 아빠는 엄마를 ***이라고 취급했습니다 엄마가 장애가 있었거든요 외식하러 갔을때 너같은 *** 챙기는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소리지르고 사과도 안하고 태연하게 밥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살아있을때 못해놓고 죽은 후에 저렇게 후회하고 보고싶어하는걸 보면 제가 죽으면 저한테도 후회를 좀 해줄까요? 엄마가 죽었을때 주변 어른들은 저보고 아빠를 잘 챙기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해야할 상황이었지만 모두 내려놓고 본가로 내려와 아빠와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아빠보고 저를 잘 챙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살아있을때는 여기저기서 가져다 주던 반찬들이 이제는 하나도 오지 않아 아빠의 식사는 모두 제가 책임져야합니다 그런데 아빠는 못먹는거 투성이입니다 돼지고기도 못먹고 튀긴것도 못먹고 메밀과 매운 것도 못 먹습니다 그래서 뭘 먹고싶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말해주는게 아니라 너가 알아서 해야하는 거라고 합니다 저를 주부 정도의 실력으로 생각하나봅니다 저는 요즘 제 끼니도 챙기고 싶지가 않습니다 병으로 입원하거나 죽어서 아빠가 후회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밖에 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집은 11층인데 창문에 안전봉 하나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시골이라 주변에 정신과도 없습니다 온라인 상담 받을 돈도 못벌고 있어서 벌어야하는데 그때까지 버틸 자신도 없습니다 대화는 시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관계개선이 아니라 평생 후회만 하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되면 좋겠습니다 저승에서도 부모를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이 오만원 지폐를 둘이서 하나씩 나누어서 주어서 두장을 받았습니다 쓰지는 않고 불안이 없어지기를 기다리려고 바닥 상자에 두었습니다 기고만장해지는 가족을 볼수 없었습니다 어제 욕실물 독사건도 있고 해서 더 이상은 가족들이 집에 편안히 머무는게 힘들어서 한장은 돌려줬습니다 그사이 부족해진 시간과 끊겨버린 따뜻한 물 때문에 또 못씻고 있었고 기고만장한 가족들때문에 괜히 체압이 상승되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전에도 주변기압이 신경쓰여서 화장품 산다고 가족에게 돈을 받았습니다 백만원 경차완전파손 때 중고라지만 폐차인데 차값도 제대로 못받고 보험도 못받기도했고 아파트구입때도 삼천만원 통장에 있던것 이천팔백 하고 부동산수수료 정도만 출금만 하라했더니 삼천만원을 싹다 출금했더라고요 한번은 우연인지 차량파손시기즈음해서 자투리돈 모아 입금했던 금액하고 같은 금액을 가족여자가 주길래 이상해서 돌려주었습니다 뒤에 차량새로 구입 때 조금 더해서 입금한것은 기억합니다 이것저것 불편했던것도 있어 받았습니다 백만원 회사생활할때 현금영수증 발급받으면서 가족 여자남자 둘다 국민연금도 내줬던것도 분명해서 지금 쓰는 현금카드하고 백만원 권리에 대해 사각지대이니까 주장해보고 싶습니다 요즘은 산재사고로 뒤돌아*** 않던 아랫나라에서 많이난다는 초록차부터 조금씩 마시고 있습니다 나의 과거니까요 이후 경로도 절약해서 의미형성차원에서 적어보기도 하고요 얼른 가족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가까운 바닷가 여행이라도 가고싶네요 도와줄래요
아빠'라는 말만 봐도 눈물이 나 이젠 진짜 괜찮을려고 했는데 다 잊을려고 마음 정리했는데 왜 그러는 걸까, 자꾸만 나를 괴롭혀 내가 애쓰는 건 누구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구라도.. 한명이라도 주위에서 알아주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아빠가 이런 나를 보고 더 원망해도 아무렇지 않고 받아들일 자신 있었는데 또 흔들려, 이젠 내가 아빠보다 더 힘들어진 것 같아서 나 이제 아빠보고 원망해도 되냐고.. 죄송하다고 쉴새없이 말했으니 이제 용서가 됐냐고.. 너무 간절하게 물어보고 싶어졌어
당신이 적은 댓글 하나가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댓글을 한 번 남겨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