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쓸데없는 추억거리 중
한 사내가, 내 집 현관문 암호판 앞에 서 있다.
그 사내가, 나만이 알고 있는 암호의 숫자를 누른다.
낯모르는 사내가, 나의 옷을 벗긴다, 자신이
그 옷속으로 들어간다.
한 사내가 나의 방 유리창 앞에 서 있다.
바람이 후두둑 머리를 친다, 유리창이 나선형의 금 간다.
그는 덧문을 닫는다, 춥다고 느낀다.
위선만이, 그렇지, 따뜻하지, 체온을 사내에게 넘겨주며
내 피가 식는다.
부서진 유리 조각들은 한참 뒤에
수도관을 묻은 풀밭에 가서 풀잎들의 발목에 생채기를 낸다.
띠. 따. 까. 띠. 또 ······
나는 침묵을 들키지 않으려고
모든 소리들을 사내 앞에 들춘다.
그가 입고 있는 나의 옷이 울고 있다.
* 이연주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 세계사,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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