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자아에 관하여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이십대 초중반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가면을 갖고 있기 마련이죠. 만들어진 또 다른 내 모습이요.
특히 대학이나 직장생활이 시작되는 스무살 즈음부터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가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고등학교까지는 오랜시간동안 붙어있으니까요. 전 오히려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였고...
제 얘기는 그런 일반적인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거짓말을 아주 습관적으로 합니다. 내 스스로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자연스럽게요. 실제로 누굴가를 속이기 위해서 일부러 거짓말하는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나옵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틱장애 같아요. 나도 제어할 수가 없는겁니다. 정말로요.
아예 없었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말하거나, 혹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아주 과장되게 부풀리거나. 대체로 그런 식입니다. 아니면 내 자신에 대한 것...
살짝 감기가 걸렸던 것 뿐이지만 누군가 내게 '어디 아파? 안색이 안좋아보이네'하고 말을 걸면, 어제 정말 죽는줄 알았어ㅡ열이 심하게 올라서 밥도 못먹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하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해놨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제 죽을듯이 아팠다고 말하게 되죠. 그 과정에서 그 이야기는 더욱 디테일해지고, 정말 사실처럼 느껴지는거예요.
거짓말을 하면서 제 자신조차 그렇게 느껴요.
사실을 말하고있는것처럼.
제 거짓말은 아주 치밀합니다.
왜냐면 저도 사실이라고 생각해버리게 되니까요.
진짜 있었던 일처럼 사실적인거예요.
이렇게 들으면 단순히 거짓말쟁이구나하고 생각하겠지만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남들이 느끼는 제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가 달라요. 하지만 제가 의도한것도 아니죠.
거짓말 속에 등장하는 저는 조금 더 정의롭고 유쾌하고 호탕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 이미지를 지키기위해 또 거짓말을 해요...
이 일이 너무도 오래되어서 이젠 어떻게 돌이켜야 할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제 자신의 자아는 초등학교 저학년쯤에 머물러 있는것 같아요. 그러니 그때부터 제 거짓말은 시작되었다고 봐야겠네요.
두텁게 쌓인 거짓말들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나오는 제 모습. 아마 겨우 열살이나 되었을까.
보통 사람들이 '자아'를 형성해나가기 시작하는 그때부터 제 거짓말이 시작된겁니다.
저는 부모에게도 심지어는 제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합니다. 제 자신조차 속이려고 들죠.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중인격 같은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아가 분리되어 있는것이 느껴져요.
실제로 혼잣말을 하진않지만, 마음속으로 저는 제 자신과 자주 말을 합니다.
그러게 내가 일찍 나오자고 했잖아.
버스가 그렇게 늦게올줄 알았나.
아침에 알람이 세번이나 울렸어.
그냥 무시해도 된다고한게 누군데?
핸드폰을 엎어놓은건 너잖아. 책임전가하지마.
이런식으로요.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하루종일 대화하기도 합니다.
속으로요.
그게 싫어서 혼자있을땐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정신을 쏟아버리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서 잠시 정신을 놓으면 어느 순간 또 대화를 하고있어요.
솔직히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런데 이게 무서운게, 제가 자기합리화를 너무나도 쉽고 당연하게 하게 되는거예요.
거짓말하는것에 대한 죄책감도 전혀 없고요.
저에겐 거짓말하는것보다 사실 그대로 말하는게 더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 정도입니다.
대인관계도 좋은 편입니다.
사람들이 제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도 못할테니까.
오히려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말을 참 재미있게 잘한다고, 그 사람들은 제게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 소릴 들을때마다 소름이 끼쳐요.
아무것도 아닌 일을 과장해서 부풀렸던거잖아요.
다 거짓말이었는데..
차라리 의도한거거나 목적이 있는거라면 이렇게 괴롭지도 않겠죠.
재밌는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다거나...
차라리 그랬으면 보람이라도 있었겠죠.
왜 그런지 저도 모르겠어요.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런걸까요?
저는 이제 제 마음이나 생각조차 믿을수가 없어요.
언제나 핑계와 변명과 자기합리화로 가득찬...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조차 자꾸 거짓말을 해버리는 제가 너무 싫어요.
근데 진짜 더 싫은건, ....
그걸 이용해 먹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볼때..
약속에 늦거나 혹은 약속을 캔슬하는것같이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하거나 내게 불리한 일이 생길때, 미안하거나 불안하거나 그런 마음도 있긴하지만,
이걸 무슨말로 어떻게 넘길까 그런 생각부터 하게돼요.
그냥 늦잠자서 늦었다고 말하기가 힘들어요.
꼭 거짓말로 저를 포장하고 넘어가는거예요.
어쩔수없는 일이었다고.
물론 사과는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구요. 그러니까 신뢰를 잃지않을수 있었던거겠죠.
그리고 더 심각한건,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지각할텐데'하는 생각이 들때,
'지각하면 이렇게 말하면 되지'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는겁니다. 앞서 말했지만 정말 지독한 자기합리화....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여 주니까 자신감이 생기는거죠. 실제로 그렇습니다.
속이는거에 희열을 느끼거나 하는게 아니예요.
정말 저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추잡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끊임없이 대화하게 되네요.
이런 거 말해봤자 부질없을거라고요.
그래도 올려보려고합니다.
조금이나마 맘이 편해졌으면 좋겠어요.
벗어날수없을거란건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