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오월의 제 일기를 발췌해볼까요. "나는 아버지를 죽였다."
칼 들고 설쳤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왜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저는 아버지를 죽인거죠.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폭력적이었어요.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었구요. 그런 상황에서 뭣하러 애를 셋씩이나 낳았는지는 모르겠네요 ㅋㅋ 저와 제 동생들은 준비물 살 돈 달라고 말하기가 눈치보이는 집구석에서 숨죽여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가하는 폭력의 주된 피해자였죠. 그렇다고 어머니가 우리들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구요. 아버지는 제게 항상 말했습니다. 동생들을 책임져야하고 돌봐야하며 기강을 바로세워야 한다고. 말 안들으면 그냥 패버려라. 말 들을때까지 패버려라. 이 집구석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을 때는 멀리 와 있더군요.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우리들까지 나갈까봐 눈치를 보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두 분은 이혼을 하고, 우리는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막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양육비는 주지 않았고 음주량은 더 늘었고 만날때마다 우리들에게 뭔가를 쥐어주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느이들은 날 기억해야 한다며 만년필이며 태엽시계같은 것을 사다줬죠. 돈이 생기면 어김없이 불러내 음식을 사주고 용돈을 찔러주었습니다. 막내는 게임을 많이 시켜주니 그저 좋다고 따라다녔지만 저는 언제부터인지 거북해서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바로 아랫동생도 서서히 찾아가는 횟수가 드물어졌습니다. 아버지는 그래도 꾸준히 저를 불러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어디어디에 뿌려달라, 내가 죽어도 선물을 보며 나를 기억해달라. 얼핏 아버지가 우울증인가 싶기도 했지만 저는 제 생각에 바빠 아버지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수능을 봤습니다. 수능날 아버지는 저를 불러내 소주를 따라주며 나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대학을 어디를 가도, 설령 재수를 하더라도 너를 응원한다고 웃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설득에 따라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공시를 보기로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도 시작할 계획이었습니다. 아버지한테 알려드려야지, 뭔가 스스로 택했다는 기쁨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버지는 저를 설득해보려다 니년이 대학 안 나오면 뭘 할 수 있냐 ***이라며 ***을 했죠. 응원하겠다던 아버진 어디로 갔는지. 아버지를 다시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없으면 음식을 잘 챙겨먹지 않았습니다. 위염이 도지고 심화되어 복수가 찼습니다. 입원했으니 보러오라더군요. 죽기 전에 보러오라길래 갔습니다. 힘없이 제 손을 만지시며 웃었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뒤 분을 참지 못해 ***마냥 바닥을 구르며 울었습니다. ***이라며 ***년이라며 욕할 땐 언제고 왜 그렇게 힘없이 누워서 잘 가라고 인사하느냐고 허공에 화를 냈습니다. 밤이었길망정이지 낮이었으면 여기 미친사람있다고 신고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제 사이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아버지는 퇴원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제 동생을 팼습니다. 알맞게 갖다붙인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제가 보기엔 말도안되는 것이었고, 머리가 산발이 되고 얼굴과 눈이 퉁퉁 부어 돌아온 동생을 본 저는 눈이 뒤집혔습니다. 당장 전화와 문자로 따졌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진 건 아버지의 알콜중독과 폭력 때문이었다고,그걸 다른 사람한테 뒤집어씌우고 동생한테 풀지 말라고. 우리 둘은 다시는 당신을 안 볼 것이라고.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안 볼 거냐는 다그침에 그렇다고 대답하자마자 끊겼죠.
열흘 뒤 누군가 문을 두들겼습니다. 비오는 밤인데 들어올 사람도 없고 지레 겁먹었죠. 한참 실랑이하다 문을 열었더니 경찰분들이 부고를 전해주셨습니다. 자택에서 돌아가셨다고. 자살이었습니다. 유서는 막내 앞으로만 썼더군요. 우리한테 엿 먹으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동생들은 아직도 아버지가 아파서 돌아가신 줄 압니다. 간소하게 치러진 장례식에서 다들 펑펑 우는데 눈물 한 방울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답답합니다. 저는 아버지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몸이 약해져 일도 못 하고 대인관계가 끊기고 친가와 싸운 뒤 연락을 끊었던 때였습니다. 그런 때일수록 곁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내몬겁니다. 마음내킬때만 잘해주는 당신이 지긋지긋하다고, 앞으로 볼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왜 학교폭력 중 문자로 괴롭히는 거 있지 않던가요, 그거랑 다를 바 없는 형식으로 내몰아서 죽인겁니다.
할아버지가 저를 보시면서 곁에 있어주지 그랬냐고 하시더라고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화가 납니다. 분노라는 감정이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싶고, 그렇다가도 우리 관계를 일방적으로 정리해버린 아버지에게 또 화가 납니다. 하필 제가 갓 성인이 되었던지라. 제 손으로 이런저런 절차들을 처리하고 동사무소며 법원에 드나들다 울컥 화가 난 게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식욕이 없어 비타민 음료로 하루 식사를 때우고 법원 갈 때 빼곤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라도 이 ***맞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동생들은 저보다 어리고 힘들어하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절연한 사이라 말할 곳이 없었습니다. 말할 곳이 필요해 친구들과 술자리를 만들어놓고도 즐겁게 웃으며 노는 친구들을 따라 억지로 웃다 들어왔습니다. 술 마시면 좀 갑갑한 게 풀릴까 싶어 술을 마셨다가 아버지처럼 될까봐 다시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이런 얘기를 왜 하냐면, 하면 좀 가벼워질까봐 합니다. 마음이라도 좀 가벼워지려고요. 참 이기적인 놈이지 않습니까. 근데 너무 힘듭니다. 일 년이 지났는데도 저한테는 너무 무거워요.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잘하는짓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읽어줘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