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20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고민|이혼|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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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콩_레벨_아이콘kate7979
·9년 전
엄마가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20대 중반까지 10여년간 친구이자 엄마였던 분입니다. (기간이 짧은 이유는 친엄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새엄마입니다.) 제가 28살에 결혼을 했는데요... 저의 결혼 직전에 부모님은 또다시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서류상으로는 엄마와 남남이 되었지요. 하지만 저에겐 유일한 엄마로서 존재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속적으로 엄마와 연락도 하고 자주 왕래하면서 지냈습니다. (아빠는 제가 엄마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것을 반대하셨지만요...) 겨울이면 김치도 해주고, 생일땐 서로 찾아가 선물도 해주고... 친구처럼, 친정엄마처럼... 그렇게 잘 지내왔습니다. 부모님의 이혼후 혼자살던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는요. 이혼후 5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엄마가 혼자계셨기 때문에 쓰러진지도 몰랐어요. 쓰러지신지 이틀만에 발견되었습니다. 발견당시 동공,*** 다 열려있는 채로 숨만쉬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응급실로 달려가 의사에게 설명을 들었을때 뇌수술을 해도 정신과 신체가 온전할지 알수없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숨은 붙어있지만 거의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요... 의사가 환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냐고 해서 딸이라고 했더니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할지 물어보더군요. 의사는 수술을 적극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사망하도록 그냥 두는것이 더 나은 선택일수 있다는거죠..) 저는 고민했습니다. 제가 친딸도 아니고... 서류상으론 남남인데다가 엄마가 만약 장애가 생기거나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하게 된다면....? 그런 인생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그 선택을 과연 내가 할수있는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가족(언니,동생들)에게 연락을 해서 사실을 알리고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할지 물었더니 다들 당장 사인하고 수술들어가라고 하더군요. 살수만 있다면 당연히 수술해야 한다고요.. 수술후 엄마는 살아있습니다. 아직 환갑도 되지 않는 나이인데 3살짜리 애가 되었습니다. 병수발은 엄마의 친언니가 들고계십니다. 지금 수술하고 병원생활 시작한지 3년이 지났습니다. 혼자서 화장실도 못가고,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합니다. 의식이 온전하지 않아서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아요. 살아는 있지만 더이상 그녀는 인간적으로 존재하고 있지 못합니다. 지금도 저는 그녀를 만나러 2~3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갑니다. 수술후 말을 못하기 때문에 필담을 나누는데요, 늘 만나러가면 저를 알아보고, 딸이라고 보고싶다고 글로 표현해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를 보고도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하네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점점 기능이 퇴화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그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계속 병원에서 엄마의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만약 입장을 바꿔서 내가 엄마의 입장이라면 저는 수술하고 싶지 않았을거에요. 그대로 그냥 세상을 떠나고 싶었을거에요. 살아있는 사람들의 욕심으로 육체와 정신의 일부만 이 세상에 잡아둔것 같아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유일한 엄마를 이미 상실했다고 느낍니다. 엄마가 죽지는 않았지만 저의 마음속에서는 거의 죽었다고 생각해요. 추억도, 기억도, 그 어떤 생각도 공유할수 없는 상태니까요... 남은건 제 몫이죠... 요즘 엄마를 만나러가면 엄마가 이제 더이상 오지 말라고 하는것처럼 느낍니다. 더이상 자기를 보러 오지 말라고. 그만 와도 된다고.. 제가 듣고 싶은 말이라서 제 맘대로 해석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글씨를 쓰지만 반도 못알아보게 쓰셔서 해석하기 나름인 상태랍니다...) 괴롭습니다. 그녀를 보는것도, *** 않는것도... 기억하는 것도... 그녀의 생존을 결정한게 저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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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p
· 9년 전
어머니의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셨다는 사실이, 독단적인 결정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귀하는 그 당시 그녀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고려하여 망설이고 계셨어요. 외가의 동의를 얻었음은 물론이고, 그 분들이 어머니의 생존을 원하셨기 때문에, 현장에 있는 귀하께서 서명을 하셨고요. 귀하께서 '알고계셨던' 어머니의 상실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은 그녀의 모습이 큰 절망, 죄책감으로 다가 오실 수 있어요. 하지만 인간은 실낱같은 희망에도 의지를 다지곤 합니다. 평소 소중했던 이의 생존을 바랐다, 그 목숨을 구하는 행위에 일조했다-는 것은 몹시나 당연한 행동이라 생각해요. 어머니께서도 이해해 주실 겁니다. 귀하와 외가 분들이, 자신을 위했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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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e7979 (글쓴이)
· 9년 전
@clap 고맙습니다. 큰 위로가 됩니다. 저도 그렇게 믿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