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힘든일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초 - 마인드카페[우울증|스트레스|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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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어릴적부터 힘든일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맞벌이 때문에 저녁에 나가 새벽에 돌아오셨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삼남매중 맏이었기에 너는 다 컸다, 어른이다라는 소리를 7살때 부터 들었습니다. 또래보다 키도 덩치도 컸기에 저도 그게 맞는 말인줄 알았어요. 스스로가 부담감에 가득차있다는 것도 인식 못하고 10대가 되었을 때 즈음. 아버지가 밖으로 나도시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년정도 감옥에 가셨나봐요. 그 땐 몰랐습니다. 친절하진 않아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지금도 이유는 모릅니다. 돌아오신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바람을 피셨습니다. 또 밖으로 나도셨죠. 들어오지도 않는 아빠에게 전화로, 문자로 울부짖었습니다. 돌아오는건 짜증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반성했습니다. 자기가 사실을 밝히며 무릎꿇고 사죄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컴퓨터에 저장된 어머니의 이혼서류를 봤고, 제 앞에서 펑펑 우시는 어머니를 봤습니다. 너무 힘들다고, 이혼하고 싶다고 우시는 어머니에게 저는 같이 울면서 이혼은 제발 하지말라고 빌었습니다. 제나이 열 한살 때였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너무나 미운 존재였고, 어머니는 안쓰러운 존재였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진심으로 기댈 수 없었어요. 당시 저는 감정을 숨기지도 못하는 눈치없는 바보였지만 아무한테도 집안 사정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끝났으면 참 좋은데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집이 망했습니다. 예민했던 사춘기에 은행 독촉 전화를 부모님 대신 매일 받고, 완전히 끊긴 용돈에 5천만 달란 말에도 쓴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도 놀고싶다고 돈 천원 교통비 들고 나갔다가 돈이 없어 밥을 못먹었습니다. 밥먹는 친구들 앞에서 배가 고픈데도 고프지 않다며 돈없어서 못먹는다소릴 못했습니다. 빌려도 갚지 못하니까요. 아무도 제 사정을 몰랐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도. 자존심만 끝없이 높아 속앓이만 했습니다. 일 년이 지나고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이제야 살만해졌다 싶었을 때 어머니가 암에 걸렸습니다. 그래노 바뀐 아버지 모습에, 나아가는 어머니 모습에, 풍족하지 못해도 부족하지 않은 집안 사정에 많이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간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시한부 3개월 선고를 받은 어머니가 2주만에 가셨습니다. 어머니가 그만큼 안좋은걸 안 지는 3주 되는 때였습니다. 같이 잠들 때 화장실에 자주가니 침대 바깥쪽에서 자겠다는 어머니가 피를 토하고 하혈하는지 저는 몰랐습니다. 어머닌 저보다 미련했습니다. 가망없다는 걸 스스로 알았는지 알지 못했는지. 암이 간까지 전이되어 흰자위까지 노래졌을때까지 그저 우리에게, 아버지에게 걱정 끼치고싶지 않다고 아무말 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안좋아 추석에 안내려가고 싶다는 어머니에게서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저는 얼마나 미련한 사람일까요. 가실때도 저희에게 힘든 모습 한 번 안보여주셨습니다. 과일이 먹고싶다며 투정섞인 짜증을 비춘것이 다였습니다. 병원 치료도 거부하고 돌아가실때까지 2주간 아버지만 어머니의 힘든 모습을 봤습니다. 장례식에서 많이 울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아플때 괜찮을줄 알고 뒤늦게 반항하고 투정부린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버티려고, 어머니 소식을 전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무너지는걸 들었기에, 동생들이 옆에 있기에 이악물고 버텼습니다. 제 나이 열일곱살이었습니다. 욕심 많은 악바리라 버텼습니다. 우울증이 겹쳐 대인관계에서 무기력해지고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는데도 모른척 버텼습니다. 그렇게 버티니 어머니가 돌아가신걸 아는 친구들도 아무렇지 않게 제 가슴에 화살을 꼽습니다. 아무말 못했습니다. 어머닐 보내고 세달쯤 되었을까. 두달일수도 있습니더. 아버지에게 새사람이 생긴 걸 알았습니다. 밉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인생이고, 사정상 아버지가 다른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삼남매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학교다니고 싶었습니다. 새엄마가 우릴 도와주길 바랄정도로 절박했습니다. 1년뒤에 살림을 합치고 집에 들어와 살겠단 아버지 말에 그 전에 고3을 혼자 버틸 자신이 없어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휴학했습니다. 하지만 새어머니는 제가 원했던 그런 분이 아니었고. 휴학동안 저는 더욱 망가져 쓴소리만 들었습니다. 주변 어떤 사람도 저를 위로해주지 않더라구요. 단 한사람도 괜찮냐고도 묻지 않았습니다. 열여덟 겨울에 죽으려고 가방에 집에 있는 모든 약을 털어놓고 소주를 챙겼습니다. 그정도로 죽지 않을수도 있단걸 알았지만 너무 절박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되면 망가질 사람들이 많기에 참았습니다. 살기위해, 제대로 숨을 쉬고싶어 죽길 바랐지만 그래도 살았습니다. 순탄치 않았던 휴학기간을 보내고 복학해서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전 욕심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에 여전히 다른 지방에서 저희끼리 학굘 다녔습니다. 쌓여가는 집안일과 스트레스속에서 스무살의 고3을 보냈습니다. 전교권에 드는 성적이었는데, 수능을 망쳤습니다. 제일 절망적이었던건 저였지만 탓하는 소리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고3 내내 아버지와 새엄마는 저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지만요. 그래도 믿었다는 아버지의 말에 울며불며하면서도 탓하지 않고 화해했습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정시에 원하는 대학을 붙고 이젠 인생이 필줄알았습니다. 십년 이상 고생했으니 앞으로 이십년만 행복하자고. 맘 속으로 열심히 빌었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은 어쩔수없었습니다. 스물 한 살. 그저 무력감에 빠져소 일주일간 자취방에 칩거만 하다가 죽으려던마음을 돌리고 살았습니다. 그당시에도 원활한 대인관계에 활발하단 평을 들었습니다. 제 주위 아무도 제가 그러려고했단 사실을 모릅니다. 올 해들어 그나마 좋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고향집에 돌아가있었던 2주 전 주말, 명절 빼곤 얼굴 보기도 힘든 새어머니에게 전화가오더군요. 제 휴대폰 번호도 몰라 집전화로 오더이다. 다짜고짜 퉁명스럽게 뭐라하며 전화하고 끊기를 반복하더니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아버지가 바람을 핀다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 다른 지방에서 집으로 올라온다는것을 말을 돌려 어찌저찌 진정하게만들었습니다. 밤 11시, 여동생은 잠들었고 남동생은 놀러나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 전화를 여동생이 받았으면 어떡할뻔했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였습니다. 무작정 집을 나왔습니다. 제 우는 소리가 여동생한테 들릴까봐. 좀 진정되자 친구들에게 전화했지만 눈물이 줄줄 흐르는 와중에도 태연한척 실없는 소리만 나왔습니다. 진짜 친한친구 대보라면 줄줄 말할수있는 아이들이 열댓명은 되는데 전화 할 엄두도 못내다가 결국 아는 선생님께 연락 해 밤새 울며 얘기했습니다. 전 분명히 스물 두 살인데, 열 한살 때의 무기력함을 똑같이 느꼈습니다. 버티고있었던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사실, 그 선생님과 연락이 안 닿았다면 운명이다 생각하고 죽을까했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인거 잘 알지만, 그냥 편히 잠을자고 싶었습니다. 밤을 새고 학교로 돌아가서도, 아버지 전활 받으면서도 아무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얼마나 위태로***는 잘 알고있습니다.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면서도 남이 보지 않을 때 수시로 눈물이 났습니다. 꿈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 펑펑 울기도 하고, 물에 빠지는 꿈을 꿔 수시로 깨기도 하고. 스트레스 때문에 희끗희끗 이상한걸 보면서. 잠을 자도 잔것같지 않고 잠들고싶지만 잠들기 싫기도 하네요.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타인 앞에선 또 잘만 지냅니다. 뭐가 잘못된건지 알지만 그냥 아무것도 따지고싶지 않네요. 이렇게 긴 글을 써놓고도 저를 힘들게 한 더 많은 일들을 다 쓰지 못했다는게. 스스로가 안쓰러우면서도 우습네요. 그냥, 괜찮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변함 없이 저를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했던 휴학기간동안 처럼 제 삶 자체가 저보고 죽으라고 아우성치고 있는것같습니다. 이쯤되니 제가 지금까지 살아있는게 눈치없는 행동인것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래도, 죽을만큼 힘들어도 저는 버틸것을압니다. 진짜 독한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악을쓰며 버틸걸 알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만큼 힘든게 거짓은 아닙니다. 어떤 말을 듣고싶어서 쓴 글이 아니에요. 늦은 시간에 정신없이 썼더니 두서도 없네요. 그냥 한 번쯤은 제대로 저를 돌아보고 허공에라도 지쳤다고 외치고싶었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그마저도 다 쓰지 못했지만요 지쳐요, 지칩니다. 음식을 먹어도 먹은것같지 않고 잠을 자도 잔것같지 않습니다. 살아도 사는것 같지 않아서 더 살고싶습니다. 제발 살기위해 죽는일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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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om
7년 전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저와 함께 살아있어줘서 고마워요.
kuyami0
7년 전
당신은 그냥 당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위한 삶을 살면 되는겁니다!!!!!!!!!!!!!
minbury
7년 전
수고했어요 버티느라 고생하셨어요 살아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