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졸업을 앞두고 이제 취업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20대 중반의 대학생입니다.
그런데 약 두세 달 전부터 무기력이나 우울감, 분노, 죄책감등 부정적인 감정과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제 일에 집중할 수가 없고 앞으로의 삶이 차단된 것 같아요.
길어질 것 같지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저는 지금까지 무척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어릴 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경험이 있듯이 잦은 부모님 싸움을 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이었어요.
중학교 때 1년 정도 왕따 경험이 있지만 잘 넘겼고 고등학교 때는 지금까지도 친하고 신뢰하는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주변에서는 저를 하*** 하는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 하고 공부도 잘 하는 학생으로 봐주었어요.
저도 지금 제가 하는 공부가 무척이나 좋고 자부심도 느끼고 더욱 배우고 싶었어요. 외모나 돈 등 제게 조금 부족한 것들에도 그냥 제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했고 누군가를 부러워한 적도 없었고 저 나름대로 자존감이 꽤 있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요.
이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제가 하*** 하는 공부나 앞으로 취업을 하고 또 돈을 모아서 대학원을 가고 등등 제 목표를 성취하는 것만 생각해왔고 그 생각을 하면 두근거리고 앞으로 제 앞날이 기대가 됐어요. 올해 초, 시험 준비를 하면서 조금 두렵고 스트레스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엔 잘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3월 초, 일을 겪었어요. 그 일로 상담소도 찾았습니다.
누군가가 그 일은 ***이라고 그랬고 저도 처음엔 그게 ***인 건지 아닌지 내 행동에 문제가 있었는지 고민하고 갈등하고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모르겠어요.
지금은 ***이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더 큽니다. 그리고 그건 제 행동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이 커요.
그냥 길가던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몰라요. 아무튼 그 사람이 한 행동은 별로 나쁜 게 아니고 누구든지 그 상황에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고 어떤 변수가 있든 그 사람의 행동은 변하지 않지만
내가 술을 덜 마셨더라면, 소리를 지르고 도망치고 그 사람을 때려서라도 저항했더라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그냥 단순히 하지말라고 하던 제가 이 모든 일을 자초한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운이 나빠 그 사람에게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기서 어떻게든 정신차리고 힘써서 뿌리쳐야 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처음 한 달 정도는 온갖 감정을 다 겪었어요. 그걸 또 다시 꺼내기는 이제 지쳤지만 간단히 말하면 충격 두려움 멍함 우울 분노 자책 등등의 감정이 하루 아침에도 순식간에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게 반복됐구요 투신 시도를 한 번 하려고 했어요.
일주일 정도는 악몽을 꿨어요. 진짜로 또 비슷한 상황에서 제가 저항하고 도망쳤고 상대방은 칼 들고 쫓아오는 등등 꿈이요..
두 달 째에는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고 그냥 무기력함 우울 자살충동 살인충동 느꼈던 거 같아요.
이번 달초까지는 계속 무기력하다가 이제 신기할 정도로 멀쩡하고 괜찮아졌는데 그래도 어딘가 불안하고 답답해요.
상담소도 가서 털어놨는데 그분은 악의가 아니었겠지만 저는 상당히 기분 나쁘고 치욕적이고 상처가 되는 말을 들었어요
아직까지 제가 느끼는 증상을 보면
일단 그 사람이 했던 말 중에 기억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게 떠오르면 순간적으로 불안해져서 저도 모르게 그 소리를 떨쳐내려고 막 머리를 흔들고 귀를 막고 몸서리를 치게 돼요. 소리 자체가 귀에 들리는 게 아닌데 뭔가 머리속에서 그 소리나 단어나 말 같은 게 떠오르고 들릴 것만 같은 기분 때문에요.
제가 했던 말이나 목소리도 떠올라요 잠결에 중간중간 그만하라고 하거나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그 목소리랑 그 사람이 대답하던 목소리도 같이 생각나요
자다가 너무 깜깜하면 옆에서 뭔가 일어날 거 같은 느낌에 울고 싶고 도망치고 싶어져요. 제 기억에 술에 너무 취해서 사진 같은 장면만 기억나는데 그 모텔 방 안이 암막 커튼 때문에 너무 깜깜했던 장면이 떠올라서요. 제게 누군가가 또 그럴 거라는 두려움은 아니고 제 바로 옆에서 그 일이 또 일어날 거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불을 항상 키고 자요...
제가 운동을 하는데 그동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어떤 운동 동작이 그때 기억을 떠오르게 해서 너무 도망치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고 불안하고 불쾌하고 조종당하는 것 같고 아무튼 끔찍했어요.
저런 일들이 아직도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정말 그 때처럼 엄청나게 강렬하게 그 때 기억이나 감정이 떠오르거나 하루종일 그 일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떠오르면 뭔가 마음이 아프고 씁쓸하고 화나고 그런 정도인데요.
근데 문제는 제가 잘 지내다가도 순식간에 화가 치미는 경우가 있어요..정말 물건 다 때려부수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길 다닐때는 예전엔 온갖 사람들에게 살인충동을 느꼈다면 요즘에는 또래 남성이나 아저씨들하고 눈 마주칠 때 그렇게 기분이 나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납니다. 욕이라도 해 주고 싶을 정도로요 ㅠㅠ 그것도 그냥 휙 지나가고 말면 모르겠는데 그 사람이 눈을 안피하고 몇 초 정도 더 바라보는 게 느껴지면 진짜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왜 쳐다본 거지 고민하면서 한참 속으로 온갖 험한 욕을 하고 두려워져요. 혹시 그 일을 알고 있는 거 아닐까 내 사진 같은 게 어딘가 유출되어 있어서 그 날 일을 다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 때문에요.
자존감도 떨어졌어요. 제가 제일 밉고 싫고 혐오스러워요. 씻을 때도 제 몸을 보는 게 힘들고 더럽고 문란해보이고 그때 이 더러운 게 어떻게 정신 못차리고 추잡하게 굴렀을까 하면서 상상이 돼요.
어릴 때 기억도 이젠 하나도 모르겠어요 어떤 술 취한 아저씨랑 친척오빠한테 *** 당한 기억만 떠올라요. 이 일이 있기 전에는 그냥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넘겨버리던 일들일 뿐이었는데요..
죄책감이 제일 숨막혀요 제가 너무 나쁘고 더럽고 그러면 안됐고 큰 실수했어요 한심해요
아무리 옆에서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저는 그게 어떻게 제 잘못이 아닌 건지 정말 모르겠고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저도 생각을 바꿔보려 노력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심으로 그건 제 잘못이고 사실이라서 어쩔 수 없어요
제 앞날이 깜깜하고 이 세상에 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고 그냥 조용하게 제 존재만 사라져버렸으면 편하겠다고 생각이 들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아닌데 굳이 살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고 지금 당장 교통사고가 난다면 그걸로도 미련없다는 생각도 들고, 저희 집이 꽤 고층이라 언제든지 그만 두고 싶어질 때가 오면 제 방 창문에 의자만 놓고 발만 넘어가면 되니까 언젠가는...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한편으로는 제가 어쩔 수 없어 살아 있는 거라면 잘살았으면 좋겠어요. 이 일이 아예 사라져버리는 게 제일 좋겠지만 아무튼 생각해보면 제가 하고 싶은 공부가 제 발을 잡는 것 같아요 지금은 무기력해져서 예전만큼 모든 일에 흥미가 있진 않지만 제가 하던 걸 하면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져요 그게 희망인진 모르겠어요 이미 저한텐 희망은 없는 것 같아요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어찌됐든 실패할 것 같아요
취업준비에 집중하려해도 나 같은 게 뻔뻔하다는 생각이나 난 뭘해도 어차피 안 된다는 생각이나 사라지지 않는 죄책감이 자꾸 붙잡아요
제가 지금 당장 제 방에서 뛰어내리거나 내일 교통사고가 나서 이 삶이 끝나지 않는 이상은 저는 어쨌든 숨쉬고 있을 거고 시간은 계속 가겠죠
그러면 저는 어쨌거나 취업준비든 뭐든 하면서 제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 직전까지는 살아가야 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제가 답답하고 무섭고 자신이 없어서 벼랑 끝에 있는 것만 같아요 깜깜하고 막혀 있어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