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지난 이야기들을 해볼까. 이제는 그만 내려놓고 싶은 이야기들을.
가장 오래된 기억, 5살, 무슨 일이었던지는 모르겠지만 혼났다. 창 밑에서 손들고 있었다. 이 이후로 아빠와 관련된 기억은 좋은 것이 없다. 대부분 맞거나, 욕을 먹거나 하는 것 뿐.
7살, 담배 심부름에 실패했던 것을 원인으로 아빠에게 맞아 죽을 뻔 했었다. 재떨이를 던졌었다. 다행히 맞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8살, 선생님이 나를 싫어하셨다. 아이들 앞에서 나에게 *** 어린이라고 하셨던 것이 아직도 지나칠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해 전교 1등을 했었다. 태도가 바뀌었던 선생님을 잊을수가 없다.
9살, 친구가 귀찮다고 생각했다. 마냥 해맑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엄마가 한 번 집을 나갔었다. 엄마는 너희 아빠 같은 인간이랑 더 못살겠다, 라고 쓰여있던 그 쪽지를 아빠가 자고있던 내 얼굴에 집어던졌었다. 그리고 3일 뒤, 엄마가 책을 하나 사주고 가셨었다. 너무 낡아서 작년에 버렸지만 아직도 종종 기억난다. 마트에서 철없이 물건을 고르던 내 모습이. 뒤에 엄마는 돌아오셨지만, 내가 조금 더 철이 들었었더라면 그 때 괜찮았었을까.
10살, 아빠에게 의자로 머리를 맞았다. 플라스틱 의자였는데, 왜 맞았는지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빠가 말하는 걸 못들었던게 그리 맞을 일이었나. 그 때, 머리가 찢어져서 피가 났었다. 당연히 병원은 못 갔고. 그 때,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아빠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미안하다고 우셨는데, 그게 너무 가증스러웠다.
11살, 엄마가 다시 집을 나갔다. 어찌저찌 돌아오긴 했지만 그 해 말에, 내 앞에서 팔을 그으셨다. 그리고 했던 말이 너 때문이야. 그 말이 차마 잊히지 않는다. 이 즈음부터 사람이 너무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점점 우울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때 쯤이다. 그런데 지금 가장 역겨운 건, 난 그 시점에서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12살, 참는 것이 힘들어 처음으로 팔을 그었다. 대충 긋다가 금세 정신을 차리고 그만두긴 했지만, 팔에 한동안 남아있던 점선 같은 상처가, 팔의 다른 상처들을 볼 때마다 가끔 떠오른다
13살, 이 때는 조금씩 암울했을 뿐, 크게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견디다가 친구에게 처음으로 상담했을 때 들었던, 다른 사람들은 더 힘든데 니가 그러면 되냐.라는 말에 더 이상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 이후로 누구에게든 말하면 껄끄럽다.
14살, 친구가 내 앞에서 자해를 하며 웃었다. 지금 그 친구는 뭐하고 지낼까. 살아는 있을까. 이 즈음에, 나도 처음으로 자해를 했었다. 생각보다 기분도 느낌도 좋았다. 팔은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려워 배에 했었기 때문에, 종종 배를 보면 그 흔적이 남아있다.
15살, 상담 내역이 유출되어 부모님에게 넘어갔다. 처음부터 강제로 시작했던 상담이었는데, 그렇게 되니 암담하더라. 그 때 그 건으로 따졌는데, 그 사람이 사탕 두 개 줄테니 화 풀라고 하더라. 그게 그렇게 화날 수가 없었다. 내 가치는 고작 사탕 두 개 였나.
16살, 누구에게 들켜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어 팔에 자해를 했었다. 선생님이 이거 뭐야?하고 물으시기에 고양이가 긁었다고 답했는데 의외로 믿으셔서 안심되면서도 슬펐다. 그걸 왜, 믿으셔서, 이 때 일베랑 징하게 엮였다. 일베 하던 애한테 고백을 받았었는데 그게 소문이 나서, 일진들이 나를 인식했다. 그 한 해 동안 내 이름을 지겹도록 부르더라. 그래서 이름을 뜯어내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7살, 고등학생. 주변은 잘난 아이들 뿐이라 내가 없어도 세상이 잘 돌***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바득바득 살아가는 내가 너무 역겨워 잠시 그만두었던 자해를 다시 시작했다. 손바닥에 칼을 대고 그어내리는게, 그렇게 쾌감이 느껴질 수 없더라. 희열에 휩싸여 있었다. 이 때, 사람이 본격적으로 싫어져서 마주하는 것도 역겹고 목소리 듣는 것 조차 너무 거북했다. 결국 이 일로 선생님에겐 정신병 환자로 몰리고, 선생님과 싸움 비슷한 것을 했다. 너무 피곤해서 눈도 뜨기 힘들더라.
그리고, 지금. 18살. 이젠 무감각해지고 현실감이 없다. 세상에서 붕 떠있는 기분이다. 다가오는 내 생일, 다 끝내버릴 생각을 하니 오히려 기대가 된다.
각 해마다 가장 기억에 남아 날 괴롭히던 것들만 꼽았는데도 이 정도.
내가 만약, 나를 안아줄 수 있던 사람을 진작에 만났더라면 나는 내일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아니, 결국은 다들 견뎌내는데 혼자 버티지 못한 내 탓이겠지.
지금 앱으로 가입하면
첫 구매 20% 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