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조금 느리게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데 그럴 시간도 없다. 학교다닐땐 공부만 잘하면 될 것처럼 말하더니 과1등이고 2등이고 성적이 높아봤자 돌아오는 건 조금의 칭찬, 쓰다듬뿐이고 그 후에는 보다 무거운 기대만 늘어갔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가정형편도 좋지 않아 취업에 뛰어들었고 처음 간 회사에선 나를 그닥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늘 많은 걸 내게 요구했다. 시키면 시키는대로만 했다고 뭐라하고. 물론 사람들은 나쁜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착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다른 곳 가서도 다를바 없을거라며 스스로 다독이며 버텼지만 내가 있음에도 아무 말 없이 다시 새로운 애들과 함께 재면접을 보는 것은 좀 아니지 않은가. 미리 말이라도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아무리 을의 입장이었다하더라도.. 낯가림이 심했음에도 나름 잘 해보려고 노력도 했었다만 그래 그 정도로는 부족했겠지.
학교를 다닐땐 그곳이 그렇게 싫더라만 졸업하고 보니 이제 갈곳이 없다. 이제 성인이라고 홀로서기를 바라는 아버지가 짜증나고 싫다. 홀로서야함을 알고는 있는데. 아직은 아직 무서운데.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바라는 것도 없는데. 더이상 어리광을 받아줄 이가 없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가슴에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풍선하나가 가득 채우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그냥 죽어버릴까 하는 의미없는 생각들도 많이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가는데. 뭐든 하려하는데. 공부든 일이든 해야하는 걸 알고 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토록 좋아하던 책도 읽은지가 꽤 오래됐다. 늘 알바공고나 보다 시도도 하지 않은 채 그냥 하루를 보낸다. 아빠도 동생도 다 힘들다는 건 알지만 그래서 더 힘들다. 죽지 못해 사는 이 생활도 끔찍하고. 전문적으로 도움을 받으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 문제인 돈이 없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쓰레기같고 짜증나서 현실도피하는 것도 일상이다. 그냥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