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저는 어렸을때부터 죽음이 항상 친숙했어요.
제가 꿈꿔온 죽음, 들어보실래요?
저는, 저어기 지구에서 가장 깊다는 마리아나 해구, 아니면 꼭 거기가 아니더라도 거기에 필적히는 아주 깊은 바닷속에서 영겁의 시간동안 서서히 사라지고 싶어요.
스스로의 삶을 정리할 수 있을때, 저는 요트를 하나 살거에요. 요트가 아니라 보트, 아니 통통배라도 좋겠네요.
그걸 타고 바다로 나가는 거에요. 마리아나 해구까지는 사실 어렵겠죠. 해경이나 각 군의 해군들, 여러 레이더 기지들에게 탐지될테니. 게다가 그분들에게 폐를 끼쳐드리기도 싫고. 뭐 정 안되면 현지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배를 사던가 하지요.
밤이면 좋겠어요. 하늘에는 달이 두둥실 떠있으면 좋겠네요. 깊은 곳까지 빠르고 무사히 도달할 수 있게 몸에 무거운 것들을 메달고, 뱃전에 앉아 흡입마취제를 들이킬 거에요. 정신을 잃기 전에 누구의 얼굴이 떠오를까요.
그렇게 물 속에 빠져들어, 대해저 일만 미터까지 가라앉을 거에요. 체내외압이 동일하지 않을테니 몸은 무섭게 찌그러들겠죠? 사실 그건 별로 원하지 않는데, 물리법칙을 어길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겠죠.
그렇게 바닥에 가라앉아, 영겁의 시간동안 그 자리를 지키는 거에요. 아무도 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바닥에서, 저 멀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향유고래의 노랫소리도 듣다가, 내 몸 주변으로 자라나는 망간단괴들도 구경하고. 그렇게 영겁의 시간을 지내는 거에요.
해양학 책 ***보니 심해군집의 교류에는 고래뼈가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다고 하더라구요. 내 몸도 그렇게 뭔가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고래에 비하면 워낙 덩치가 작아서^^; 육체는 금방 사라지겠지만 영혼은 거기서 가만히..가만히..가만히..안녕..
너무 중2병 같나요^^ 구체적으로 이렇게 생각한지는 스무살때. 그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제가 도달하고 싶어하는 죽음의 모습이에요.
하지만 중간에, 저기까지 도저히 도달할 자신이 없던 시기도 있었죠. 대들보만 봐도 목메는 장면이 상상되고, 건물만 봐도 떨어지는 걸 상상하던 때. 그런때는 어떻게 죽고 싶었는지 들어보실레요?
일단, 가을까지는 버틸거에요. 그 때 까지 제 ***은 둥지(고시원)에서 제 짐은 미리 다 뺄거에요. 제가 거기서 죽으면, 제 짐이 거기 있다면 고시원 주인에게는 얼마나 큰 폐가 될까요.
노트북은 반드시 부셔버릴거에요. 핸드폰도. 나의 생각과 내가 사랑하던 것들을, 혹시나, 누군가에게 들키기는 싫으니까. 그리고 사실, 남몰래 저장해 둔 야x을 들키는 것은 살기보다 더 싫어요.
포타슘, 보통 염화칼륨으로 부르는.. 이건 미리 구해놨았어요. 친구 중에 대형병원 간호사가 있거든요. 포타슘은 주사하면 심정지가 일어난답니다.
적금 깨서 중고차도 한 대 살거에요. 장롱면허지만, 어떻게 나 죽을 곳 까지는 몰고 갈 수 있겠죠.
유서는 안남겨야죠. 말이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적으니까.. 그리고 진심으로 궁금해 할 사람도 없으니까. 혹시 궁금할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안알랴줌.ㅎ
그렇게 차를 몰고, 산으로 갈 거에요. 인자요산 지자요수라고 했나요. 저는 지혜롭고 싶어 항상 물을 좋아했지만, 마리아나 해구로 가지 못하고 일찍 죽는 바에는 차라리 산으로 가려고 했답니다.
산으로 가서,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돈을 조수석에 놔둘거에요. 유서 말고, 경찰들 고생할거 안타까우니 '타살이 아니라 자살입니다'라고 적은 쪽지와, '수습하시는 분들, 죄송합니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드세요'라는 쪽지를 적어두고 그 위에 8만원을 올려둘 거에요.
그리고 포타슘을 꺼내어 80미리 볼러스로 주입하려구요. 아마 주입하다 그대로 죽겠죠. 적당히 빨리 발견되었으면 좋겠어요. ***은 방에서 곰팡이 핀 이 내 몸이 가을 햇살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것도 개운하긴 하겠지만, 중간에 삶을 그만두는 저는 그럴 자격도 없으니까요. 빨리 발견되어, 불 속에서 하얀 가루가 되어, 물에다가 누가 버려줬으면..
죽는다는 것은 곧 잠드는 것. 다만 그 뿐. 잠듦으로써 마음의 아픔과 온갖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간절한 바람의 극치는 없으리라.
저는 요즘 잘 지내요^^ 두 번째 묘사한 죽음을 생각하던 시절은 다행히 생명의 전화의 도움을 얻어 잘 이겨냈네요. 꿈도 되찾았고, 용기도 있답니다. 앞으로 다시는 두 번째 묘사한 죽음의 유혹에는 빠지지 않을 거에요. 그리고, 첫 번째 묘사한 죽음으로 달려갈거에요. 그러려면, 아주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 그 죽음은, 대충 살아서는 도달할 수 없으니까요. 하얗게 불태운 다음, 내 꿈을 이루고 나서야만 도달할 수 있어요. 대충 살다가 요트 사서 가라구요? 에이, 그건 뽀대가 안나잖아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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