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링 부탁 드립니다.
웹툰 보다가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네요. 만화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니 그때의 ***같았던 기억들이 슬금슬금 올라오는데, 신기하게도 그 기억들을 몸소 선사하신 그 분들께는 딱히 분노가 느껴지지 않네요. 그저 냉소만 느껴질 뿐.
그 웹툰에서 등장하는 한 남학생은 교실의 실세인 주인공을 지속적으로 스토킹하다가 그 행적이 발각되고 말아요. 참고로 그 주인공 역시 남학생이었는데, 아무래도 스토킹 피해자도 남자, 가해자도 남자이다보니, 스토킹을 자행한 그 친구는 성소수자로 낙인찍혀 학교 내에서 완전히 매장 당해버리죠. 실제로 그 친구가 스토킹을 한 이유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비틀린 집착이나 애정에 있지 않았지만, 뭐 학생들이 그 친구 말을 듣겠나요. 교실 내에서는 목소리 크고 기 세거나 이 웹툰의 주인공이자 스토킹 피해자인 그 남학생처럼 드러나지 않게 은밀한 방식으로 교실을 장악하는 친구들의 입김이 강하잖아요.
하여튼 걔가 누구를 스토킹했다더라, 라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나가자 학교의 모두가 그 친구를 알게 되죠. 화장실에서 소변 누려고 가면 옆에 있던 학생들이 자리를 피해요. 몰래 도촬 당해서 페이스북에 올려지는 건 일상이구요.
그런데 이 장면에서 고등학생 때의 그 불쾌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 *** ***같이 생긴 년.
그 ***년은 고2 때 저랑 같은 반이었어요. 1학기였는지 2학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저희 반은 담임의 주도 하에 1박 2일로 여행을 갔었죠. 버스를 타고, 나중에는 배도 탔었어요.
아,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1학년 때 간 해외 여행 중 불편해서 잠시 갑판으로 나왔을 때 그 ***년이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언젠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그 년이 했던 짓과 그때 갑판 너머로 보였던 바다와 큰 소음 소리, 전체적인 사건은 세세하게 기억나요. 배 소음이 아무리 커도 사진을 찍는 찰칵 소리는 참 선명하더라구요. 그 ***년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 같은 년.
그래서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그 년이 제 쪽으로 휴대폰을 올리고 있더라구요? 제 사진 찍는 게 아니고 뭐겠어요. 그래서 다가가서 휴대폰 보자고 했죠. 발뺌 못하겠던지 선선히 건네주던데, 정말 화면 속에는 제 사진이 떡하니 찍혀 있더라구요. 아유, *** 같은 년
... 왜 찍었냐고 물으니, 제 얼굴은 쳐다***도 않고 뭐라고 궁색한 변명을 어물거렸던 건 기억나네요. ***년아, 그런 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냐? 어쨌든 그 년은 사진을 지웠어요. 그리고 저는 선실로 돌아갔죠. 그때 저는 그 년이 왜 제 사진을 몰래 찍었는지 알고 있었고, 지금도 그 이유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요. 몰래 사진 찍어서 저를 모르는 애들한테 보여 주면서 조리 돌림하려는 의도였겠죠.
그 아름다운 문화는 1학년 때 창체 수업 두번째인가 세번째 때부터 정착되었으리라고 추측하고 있어요. 저희 조는 저를 포함해서 네 명이었어요. 각자 ppt를 공개하며 자신이 꿈꾸는 직업에 대하여 소개하는 시간이었는데, 저희 조가 맨 처음으로 발표하게 된 거예요. 스크린을 모두에게 보여야 하니, 불을 모두 꺼버린 그 어두컴컴한 교실의 교탁 앞에 나아가 마이크를 들고 발표를 해야 했죠. 반 애들은 정말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었어요.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동의한다는 의미, 납득했다는 의미로 소리도 내어주시고, 마지막으로는 박수까지 쳐주시더라구요. 저를 앞두고 먼저 발표한 세 명에게 까지만요.
제 차례가 되자, 킥킥거리는 소리가 군데군데 들려왔어요. 제가 발표를 하는 도중 뭐라고 비웃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만 제 이름도 친히 불러주시고, 제가 꿈꾼다는 직업 이름도 불러주시고, 그 둘을 연관지어 이상한 예측도 만들어내주시고, 뭐 그랬어요. 제 목소리는 점점 잠겨들어가 나중에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아졌고 마침내는 울음기까지 섞였죠. 그렇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발표를 마치자 그들 모두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환호와 박수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었겠죠.
그렇게 자리로 돌아왔건만, 저를 위해 마지막 피날레를 잊지 않고 준비하신 분은 우리 훌륭하신 창체 선생님이었습니다. 말하던 도중 저를 향해 비꼬는 웃음을 가득 담은 채, '우리 누구도 꼭 신정아 같은 큐레이터가 되길 바랄게요, 그렇죠?' 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가 와-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내고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상황과 맞닥뜨리자 심장이 내려 앉는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눈물이 화산처럼 폭발하더라구요. 저는 두 눈을 손으로 가린 채 무슨 말을 소리치고는 울었는데, 그 모습을 보자 우리 친애하는 명덕외고 1학년 중국어학과 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렸죠. 저는 계속 고개를 수그린 채 눈물을 흘렸는데 군데군데 셔터 소리가 들려오더라구요?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편에 앉은 남학생들이더라구요. 웃으면서 셔터를 누르고 있었죠. 저를 향해 말이에요.
수업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수업 중 두번이나 창체 송용석 선생님께서 제 쪽을 보라고 애들에게 지시했던 것이 기억에 남네요. 무슨 의도였을까요? *** 울지 말라고? 나 우는 거 애들한테 보여주려고? 아니면 둘 단가?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그 때를 기점으로 아이들 사이에서는 저를 몰래 도촬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시작되었으리라고 저는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근데 이건 단지 추측에 불과해요 ㅋ 그 전부터 했을 수도 있죠 ㅋ
그 외에 그 웹툰으로부터 떠오른 것들, 예컨대 수능 끝나고 아무도 마중나가지도 않아서 저 혼자 덜컹거리는 버스 타고 집에 간 것, 그런데 그때 돈도 없어서 요깃거리 아무것도 못 사먹은 것, 근데 그 시각 동생은 편하게 집 차 타고 집에 간 후 식구들이랑 하하호호 외식 나가고 기념으로 옷 선물 받은 것, 그리고 나이 한참 쳐 드시고 나서도 아직까지 초딩 일진 놀이를 즐겨 하시는 어떤 분이 떠오르더라구요. 하긴 어릴 때 인성이 어디 가겠나요.
저는 부모님께 이와 같은 추억들을 몇번인가 말씀드린 적이 있었어요. 두 분다 같은 대답을 하시더라구요. 내가 잘못했다고. 생긴 것도 ****** 같이 생겼는데 하는 짓도 ****** 같으니 애들이 그런 거라고. 그게 아니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도 안 듣더라구요.
그래요, 제가 생긴 것도 ******이고 하는 짓도 ******이라고 쳐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 껍데기를 뒤집어쓴 오물들이 저에게 한 행동들을 정당화할 수 있는 건가요? 더구나 고등학생도 아닌 다 큰 성인이, 그것도 교사가 중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을 대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게 옳고 당연한 건가요?
제가 위에서 말씀드렸던 일화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요. 실제로는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이런 류의 일들을 몇번씩 경험했죠. 그러면서 제가 굉장히 강하거나 둔감한 사람일 것이라는 결론을 자연히 내리게 됐어요. 그 흔한 자살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죽고 싶다는 생각 역시 들지 않았으니까요.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지금에도 그 때의 기억들을 떠올리는 일은 거의 없어요. 한달에 열번 이하 그 언저리를 들락할 정도의 빈도겠죠. 하지만 그때를 떠오르게 하는 비슷한 일들을 경험할 때마다, 앞으로도 나에게는 그런 사람들, 그런 경험들이 반복적으로 찾아올 테고 나에게는 빠져나갈 방도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미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제 방이나 욕실 내에서 욕지거리를 하거나 *** 듯이 웃어제끼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저를 앉혀 놓고 아픈 애, ***년, ***년 등으로 부르면서 왜 과거 속에 빠져 사냐고 그러더라구요. 소리 소리 질러대면서, 중간중간 저를 비웃고 경멸하는 말을 길게 늘어놓고 그런 표정을 지어가면서 말이죠.
저는 그보다 더한 취급, 말을 정말 긴 시간 동안 받아왔으면서, 왜 이틀이 채 지나지도 않아 그분들이 저에게 살갑게 굴때마다 그 때 느꼈던 감정을 금세 잊고 그들에게 마음을 열었는지, 그리고 그 기억들을 왜 그들 앞에서 농담 거리로 삼았는지 모르겠네요. 금방 잊는 성격인 걸까요? 이제는 더이상 그러지 않으려고요.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일려구요.
부모님이 저를 기본적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건 알지만, 동시에 저를 한심하게 여기고 경멸하고 심지어 우습게 보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분들은 저의 몰락을 전적으로 나약한 저의 책임으로 보고 있고, 상당히 극단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으며 자립하지 못한 자식이기에 꺼리낌없이 분노를 표출하고 폭력을 자행할 수 있는 대상이 저임을 알고 있어요.
그 분들도 밖에서는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흔한 소시민들이겠죠. 집 안에서는 그런 말, 그런 태도로 한 아이를 지속적으로 대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할 거예요.
벽을 좀 세워야겠어요. 그 분들을 향한 친밀감의 욕구, 금세 풀어지는 내 마음 등을 알아차리고 경계해야겠다는 결론이 나오더라구요. 경험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글로 풀어내니 내가 당했던 것들이 얼마나 몰상식하고 비열했는지, 느껴지더라구요.
더 이상 당신들에게 심리적으로 얽매이지 않으려구요.
그러니까 당신들도 나한테, 동생에게 그런것처럼, 친구 같고 편해서 만만한 그런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길 바래요. 핏줄은 그저 허상이고 명목일 뿐 나와 당신들은 그저 실 끊어진 남남이고 타인일 뿐이잖아요.
나한테 동조나 칭찬 같은 걸 바라지마요. 내가 그런 것들을 허용하는 순간, 서로의 경계는 허물어져버리고 당신들에게 나는 비야냥되고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리니까요. 성인 대 성인으로 마주할 수 있되, 큰 관심과 애정은 없는 그런 관계가 되고 싶네요. 내가 너희들에게 마음 속으로 벽을 쌓는다면, 너희들도 그걸 느끼겠죠? 기피한다는 게 아니예요. 일상적으로 지내되 거리감을 둔 채 당신들에게 연연하거나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지.
그리고 중국어과 도촬 여왕님과 그 친구들아,
너희들에게는 딱히 해줄 말도 큰 관심도 없지만,
그냥 서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식이니 그런 일이 생기면 친하지도 않은 동창에게 갑작스레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웬만하면 나한테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고.
한 짓이 있는데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물론 그렇게 생각 안 하시겠지. 나는 그저 그런 일들을 너희에게 당해도 마땅할 정도로 하찮고 우스운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기억되고 있을 테니까, 그렇지?
뜬금없는 말이지만 저는 그 경험들을 통해서 성악설을 단단한 신념으로 자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냥... 그 친구들이고 선생들이고 저희 부모님이고, 사실 완전하게 악한 사람들은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선량하고 좋아보였죠. 영화 보면서 감동으로 눈망울 반짝이기도 하고, 친구가 울면 같이 아파하고, 그게 비록 어느 정도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딱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눈물 적시는 그런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그러한 그들의 이해와 공감의 대상에서 저만이 벗어나 있었던 것이었겠죠.
걔들 볼 때마다 꼴보기 싫어서 전부 카톡 숨김 표시해놨어요.
진짜 너희 우연이라도 안 마주쳤으면 좋겠고, 연락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나를 조금이라도 의식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비록 일방적으로, 지속적으로 내가 너희들에게 당한 거긴 하지만 너희랑 얽히는 건 정말 피곤하고 비참했다고 기억하고 있거든.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나는 왜 너희들을 그토록 대단하게 봤었는지. 페이스북을 통해 본 너희들의 모습은, 꼴에 대학생들이라고 한껏 꾸몄음에도 그 형편없음이 드러나더구나. 너희의 형편 없는 내면이, 그 평범하고 몰개성한 얼굴을 통해서도 쉬이 감지 되더라고. 아무튼 각자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에 대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았으면, 그리고 나아가 나에 대한 기억이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후 너희 자식들이 나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똑같은 꼴이 되기를, 같은 상황 말을 듣게 되길 기도할게.
뿌린대로 거두는 법이지만,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이 세상에서 그 격언이 실현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한 이 말이 일종의 저주처럼, 올가미처럼 너희를 얽매어 너희의 권태로운 삶 속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