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년을 정말 힘들게 보냈습니다 지긋지긋한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상담|우울증|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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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고등학교 3년을 정말 힘들게 보냈습니다 지긋지긋한 우울증을 겪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동안 추억 같은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는 공부 쪽으로는 빡세기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빡세다는 말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 전반이 억압적이고 공부만을 위해 사육된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인간적이지 못한 곳이였습니다 한달에 한 두 번 치르는 모의고사에 정신없는 학사일정, 버거운 학습량, 주말에도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긴 자습에 더불어 성적으로도 온갖 부당한 차별을 당하고 독설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저는 하필 그런 곳에서 하위권이였죠 학교에서 하는 대부분의 과외활동이나 프로그램 참가 신청자는 성적으로 거릅니다 저같은 학생들은 신청해봤자 떨어지기 일수였죠 프로그램 자체가 성적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일 경우도 당연했고요 제 모의고사 성적을 확인하시면서 이런 등급으로 왜 프로그램을 신청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 시간에 자습을 더 하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심신은 지치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죠 친구들과 함께 부당함에 이를 갈고 분노를 터트리던 때도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건 선생님들의 미온적인 반응이였고요 어릴 때 이후로 처음으로 이불을 덮어쓰고 남몰래 흐느끼기도 했습니다 억울함, 자신에 대한 한심함, 좌절감, 기대하는 가족들이나 친척들에 대한 미안함 같은 감정이였죠 저는 그 때 살면서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계획했습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마냥 조용히 사라지고 싶어서 자살하고도 시신을 완벽하게 숨겨 아무도 못 찾게 할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저 때문에 누가 슬퍼하는 것도 싫고 저한테 쓰는 장례비용도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죽어서까지 남한테 피해 입히기는 싫었나봐요 하지만 적당한 방법이 생각나질 않아서 자살 계획은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자살도 포기하고 난 이후로는 말그대로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폭풍같은 고통이 지나고 남은 건 무기력과 염세주의 냉소주의 였습니다 모든 일에 무감각해져갔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원래 다 그렇지 뭐 싶고 아무리 거슬리는 소리를 들어도 한 귀로 흘릴 수 있게 되고 욕하는 소리를 들어도 나란 놈이 원래 그렇지 뭐 하고 말고 딱히 흥분하거나 마음 상할 일도 없어지고 항상 무거운 공기가 날 짖누르고 있는 느낌이 들고 눈 앞에는 항상 회색 안개가 끼여있는 것 같고 항상 뭔가 무겁고 불편한 기분 뭔가를 뒤짚어쓰고 있는 듯한 갑갑함 그 당시에 심리학 지식은 거의 없었지만 이런 게 우울증이구나 하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항상 조금 기분이 불편하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견고한 배리어가 생긴 것 같아 든든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나약함을 드러내기 싫어서 혼자서 끙끙 앓다가 나중에는 엄마께 말씀도 드려봤어요 꽤 여러 차례 말씀드려봤지만 응석으로 받아들이시고 이해 못하겠다는 대답만 돌아오더군요 좋은 학교 갔으면 열심히 하면 되지 왜 그걸 못 버티냐고 다른 데 가면 안 그럴 꺼 같냐고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수능 칠 때 까지만 참고 견디라고 참으라는 말만 수 백 번 들은 것 같네요 참아라 딱 수능 칠 때 까지만 그저 참고 견디고 기다리기만 하면 그 날이 지나기만 하면 모든 게 괜찮아 지기라도 할 것처럼 말하는 무책임한 그 말이 너무 가증스러웠습니다 저는 오히려 수능 성적으로 지난 3년 간의 나의 모든 게 까발려지리라는 생각에 불안했습니다 수능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조차도 이해를 못 받으니 점점 더 고립돼갔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소홀해지고 정말 최소한의 필요에 의한 교우관계를 했죠 개인적인 감정은 얘기 안하게 되고요 그대신 더더욱 공부에 강박적으로 매달렸습니다 겉으로만요 자습 시간은 영겁같이 길고 시간은 칼로 쪼갠 듯 나눠져 있어서 기계처럼 공부하고 그 짓을 주말도 없이 계속했죠 자습 시간 대부분은 쓸데없는 일을 하거나 수학 문제를 풀면서 딴 생각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습도 거의 한 번도 빠진 적 없고 쉬는 시간에도 항상 공부를 하고 있는 등 나름 성실한 학생 이미지를 유지했습니다 어째선지 성적은 잘 안나오지만요 엄마께 당시 얘기를 하면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다 하십니다 한 번은 어릴 때 말고는 보여본 적이 없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엄마께 말씀드렸어요 그 때 나 너무 힘들었는데 힘들어서 몇 번이고 도움을 청했는데 왜 무시했냐고 몸은 조금만 아파도 병원가자고 재촉하시는 분이 마음의 병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더군요 우울증 같은 건 정신적으로 나약한 인간들이나 걸리는 거라면서 비싼 밥 먹고 다니면서 그런 건 왜 걸리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엄마와 대조적으로 저는 현재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됩니다 그 때 제 때에 상담받고 치료 받았으면 지금쯤 제 인생이 달라 져 있을까요 그 당시에는 왜 생각을 못했을까요 병원가서 상담도 받아보고 치료가 필요하면 학교 같은 거 잠시 쉬어도 되는 건데 그 때는 왜 그렇게 공부랑 학교를 목숨같이 생각했을까요 힘에 부치는 걸 어떻게든 떠안으려하고 속은 망가져가는 걸 어떻게든 티 안내려고 하고 멀쩡한 척하려고 하고 다 지나간 얘기긴 하지만 저한테는 아직도 그 때 일이 현재까지 영향을 끼치고 발목을 잡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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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o
· 9년 전
기성세대들은 이해 못해요 다 본인이 약해서 우울증이고 더 나아가 왕따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성자님 고생 많이 하셨네요 만족스럽지 못하고 있는거 같으신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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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oo
· 9년 전
그 암울했던 시절이있어 지금 더 많은 깨달음이 있다고 위로하세요. 심리학 전공이시라니 본인에대한 성찰도 많이해보고 또 누군가를 도울수있는 힘까지 키울수 있네요. 마카에서 이야기나누고 함께 치유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