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아버지와 대학관련 문제로 싸웠습니다. 나름대로 매일 열심히 했던 저는 재수를 실패하자 뚜렷한 열망이 없었기에 어차피 안 될 사람이었다며 모든걸 놓아버리고 반 년간 백수 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남들에 비해 뒤처지는 학습 실력을 가졌다고 여실히 느껴왔고, 나와 같은 시작점인데도 나보다도 훨신 공부를 잘하게 된 친구들… 그런 주변 아이들과 비교하게 되어 수능이 끝나니 배로 무력감이 들더군요. 그에 따른 우울감, 불면증도 심해져갔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저를 보곤 아무 대학에 가서 새로운 환경에 부딪히면 괜찮을 거라 말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부도 안 하는 주제에 아무런 대학은 가기 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단 겁니다. 그래서 평소에 말을 아껴오다가 그냥 이대로 대학교를 가는 것 보다는 군대를 간 다음 대학교에 가는게 낫겠다고 판단해 상의도 안 하고 입대신청을 했죠. 재학생이 아니라 변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 까지 아버지에게 말하자 아버지는 “멍청한 짓 했네.“ 라 말씀하셨습니다. 상의를 안 한 제 잘못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이나 계획 등등을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으셔서 순간 ‘이 사람은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지 않으려 하는 구나’ 그래서 화를 참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생각도 이해가 갑니다. 앞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날은 얼마 남지 않았고, 최대한 빨리 대학교를 졸업***고 싶은 마음이시겠죠. 그리고 재수시절 제가 성적이 점점 오르자 들뜬 아버지의 모습은 뇌리에 박혀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지 못한 거죠. 결론은 자기혐오만 심해졌다 입니다. 어릴 때무터 무엇이든 애매하게 하고. 제대로 해본적도 없죠. 게다가 정신은 나약해서 어찌나 걱정이 많은지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다 놓아버리고, 아무리 주변에서 조언, 동기부여가 될 사례를 보아도 길게 가지않는 의지박약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잘못일까요. 바꾸려해도 이런 성정이 바뀌지가 않습니다. 저도 제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고시 준비하고 있는데 남자친구랑도 헤어지고 고시 날짜도 다가오다보니 제 마음에서 온갖 것에 다 예민해지는게 느껴져요 그렇게 계속 화나있다가 너무 힘들어서 또 눈물이 나요 ..잉잉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이나 지나치게 예민해하는 사람으로 보이고싶지 안아요 그리고 계속 이런 기분에 사로잡히고 싶지 않아요 마음을 억지로 멈추려 하지 말아야 오히려 그 마음에 휩쓸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저는 뭔가 제 자신이 예민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걸 인정한 이후부터 이 마음이 더 커지는 느낌이에요 제가 제 마음의 평정심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는 여학생이에요 저는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편에 속하고 친구생활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보이는 제 모습은 전혀 저답지 못합니다 저는 사실 소극적인 아이인데요 어느순간부터 친구들과 지내려고 일부러 더 외향적인척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제 모습이 너무 어색하고 그렇다고 갑자기 소극적이게 행동하면 이상하게 볼까 걱정됩니다 또 영어학원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게 되었는데 어렸을때는 영어를 잘하고 좋아하는 학생이였습니다 근데 너무 어릴때부터 해서 그런가 너무 지치고 힘들게 느껴져 포기했습니다 그렇다고 또 수학을 못하는건 아니고 잘하는 애들중 중간 정도인데 부모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해 얘기하셔요 저는 지금을 즐기며 살아도 나중에 잘 벌어먹을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이러는건데 부모님은 이해를 못해주셔요 (저는 다른 사람보다 손재주가 좋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 개그도 잘하고 공감도 잘해 먹고 살수 있을것같아요)저희 부모님은 절 사랑으로 키우시고 하고 싶은고 가리지 않고 해주셨어요 근데 신뢰가 조금씩 깨지면서 저에게 좀 짜증을 많이 내시는것같아요 저도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집이 들어가기 싫어지고 두려워요 또 부모님의 표정 말투를 살피느라 너무 힘들고요 그래서 요즘 핸드폰을 많이하게 되는데 그것마저 뭐라고 하셔요 너무 힘들고 어떻게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남 앞에서 밝은척 긍정적인척하기가 너무 어렵고 지쳐요 부모님일도 그렇고 삶이 너무 지쳐요
순간의 아름다움 같은 장면과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해석과 경험을 만들어내는 말 없이도 느껴지는 설명 없이도 보이는 그 색 물감 음율 문장 그속에 빠져서 익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몇번이고 했는지 모른다 영감에 온몸을 맡길수 있는 그들이 너무나 부러워서 죽고싶어졌다
부모님이화내도 유튜브보는거같고그냥 아무생각도안들음 그러세요싶음그냥 이게 문제라고인식은하는데 굳이 고쳐야할까싶음
전 자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대략 4년간 우울증에 시달리는걸 숨기다가 최근 너무 힘들어서 부모님한테 말했더니 오히려 제게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자살하기로요. 방학이라서 특강이나 학원이 많아졌는데 우울증 때문인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근데 안하면 부모님한테 혼나고, 맞을수도 있어서 그게 두려워서 꾸역꾸역 하는것 자체가 너무 괴롭습니다. 그렇다고 안하겠다고 말할수도 없습니다. 애초에 안들어줄걸 뻔히 아니까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서 점점 모든것에서 행복을 느끼는게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는게 너무 괴롭기만 해서 자살을 할 생각입니다. 성공하면 죽으니 좋고, 실패해도 부모가 내 상태를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될테니 괴로움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근데 두렵습니다. 제가 계획하는건 수면유도제를 한번에 30알 정도를 먹는것입니다. 저번에 ***정도 먹었지만 휴유증만 있지 기절하거나 의식을 잃는다든가 그런건 없어서 양을 늘려서 복용할 생각입니다. 이번에도 그냥 다음날 멀쩡히 깨어나 휴유증만 생길까봐 두렵습니다. 기절을 하든, 죽든, 다음날 못 일어나야지 효과가 있을텐데.. 괴롭기만 하고 의미없는 짓일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치만 자살시도를 하지 않고는 사는게 너무 괴롭고 변할리가 없으니까.. 모르겠습니다. 대체 뭘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시도해야할까요. 두려워도 방법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계단올라갈때는 항상 숫자를 세야하고 카톡할때 ㅋㅋㅋ이나 …의 갯수를 세어봐야하고 바닥에 금이나 색칠선이 있으면 왼발 오른발 공평하게 밟아줘야되는게 자동적으로 나와요 ? .
저는 이제 만 19살된 성인이고요…작년에 예체능계열 입시를 했는데 성적은 꽤나 괜찮아서 실기력 무시하고 무리수 상향을 쏬다가 수시정시 포함 모든 9개 학교 광탈 후 유학을 목표로한 유학 재수 중입니다 최근에 우울감+분노감을 느끼는 역치가 너무 많이 낮아졌단 생각이 들고 그로 인해 실기라든지 공부라든지 어딘가에 집중하는게 너무 힘들어요.최근들어 인간관계 고민도 너무 심해졌고요…또한 옛날(2021년대)부터 “사람은 왜 죽는게 열심히 살지”란 생각이 든 이후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가족에 대한 죽음)과 그로 인해서 오는 상실감에 매일같이 울고 불안해하는 경향도 심하구요 전체적으로는 생각 하나에 꽂히면 밑도끝도없이 불안해하다가 결국 우울감을 느끼게 되는 식인거같아요 근데 최근에는 그게 너무 심해졌어요.예전에는 우울감을 느껴도 좋아하는 것들(소위 덕질이라고 해야하나 암튼 그런 것들이요)을 하거나 보면 생각이 정리됬는데 요즘에는 좋아하는것을 봐도 흥미가 없어요…더군다나 모 덕질로 유명한 sns(굳이 적진 않겠지만 다들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를 오래 했는데(극단적인 게시물은 차단 등의 조치를 취해 원천차단하고 딱 덕질만 하고 정보공유+관련된 소통만 하는식으로 이용)점점 그곳의 극단주의화 되가는 전체적인 분위기+그곳에서 오래 알고지낸 넷상 지인들의 극단화된 가치관과 사이버불링(제가 피해자는 아니지만 그 사람들의 말투를 보면 심히 스트레스를 받음+몇년동안 이런건 양쪽 모두에게 안좋으니 그만하자고 설득해도 듣지 않는 지인들)에 지쳐서 앱 지우고 잠적하는 중인데 그럼 그 비는 시간동안 공허함이 너무 심해져서 사람을 만나볼려고 노력한 뒤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제 평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됬고 이 문제에서도 요즘 많이 불안감을 느끼고있어요.더군다나 최근 언어 시험을 쳤는데 짦은 기간 내에 준비한 시험이라 합격 여부가 매우 불확실하며 떨어지면 삼수 확정인지라 여기서 오는 불안감도 정말 심합니다.제가 공부를 더 해야할지 이제 실기에 전념해야할지에서 오는 고민도 요즘 괴롭구요…어떤 길을 선택하든 무조건 후회할거같아서 여기서 오는 불안이 너무 심각해요. 또한…최근에 오래 악성 뇌종양으로 투병하시던 할머니가 호스피스로 병동에 입원하셨고 그로 인해 친척들이 싸우고 그로 인해 평소 자주 이런 문제로 같이 고민하던 엄마가 많이 히스테릭해져서 이런 문제로 같이 고민해줄 사람이 없어진 것도 문제에요…게다가 최근엔 제 방에서 몇몇 물건을 도난당한 범죄까지 당한 후에는(다행히 잘 해결됬습니다) 매일 어딘가 감시당한다는 느낌도 들고 사고회로 자체가 의심->불안->우울만을 반복하다가 끝난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밖에서 할일을 다 끝내고 돌아와도 침대에 눕거나 추가적으로 공부할려고 앉으면 눈물부터나오는 등 예전처럼 인생이 즐겁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어요….그나마 정신과 상담 후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있지만 계속 우울감이 몇달 내내 잔잔하게 남아있고 그러다가 확 심해져서 매일매일을 버티는 기분입니다 사고회로가 고장난 기분이에요
원래 이런가요. 작게는 사소한것부터해서.. 머리가 복잡해요 복잡함의 정도는 다 다르지만
안녕하세요. 저는 42세 남자입니다. 긴 글이 될 거 같습니다. 간단히 제 소개를 드리자면 미혼, 외아들, 부모님은 전부 3년, 1년 전에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그나마 가족이라 하면 가족인 강아지 한마리가 있네요. 화물운송업을 하고 있고요. 현재는 일을 못나간지 4개월이 넘었네요. 저는 어려서 외롭게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에 중매로 결혼하셨습니다. 늦게 결혼 하셨기 때문에 친가 외가쪽에는 제 또래가 없습니다. 외아들인데다 그런 점도 작용해서 외로움이 자연스러웠던 거 같네요. 아버지는 중졸, 어머니는 고졸이며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내향적인 분이셨고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피해망상을 앓으셨어요. 아버지는 한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잘살던 집안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망해서 혜택은 큰형들이 다 보고 본인은 초등학교도 돈이 없어 겨우 나오셨다 하셨어요. 어머니는 집에서 대학 보내려 많이 애썼지만 결국 진학하지 못하고 고졸로 마치셨습니다. 중매 후 한달만에 결혼 하셨다 하셨는데, 아버지 쪽 주장에 따르면 결혼 후 조금 지내다보니 어머니의 정신병 증세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쪽 주장은 (친척들)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의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문제를 안고 계시다가 이혼하려 했는데 제가 생기는 바람에 그냥 억지로 결혼 생활을 이어가셨어요. 당연히 두분 생전 내내 저희 가족은 가족 여행, 외식, 사진 같은 건 꿈도 못꾸는 환경이었고 제 어렸을 적 가족에 대한 기억은 폭력, 집안에서 내쫓김 당하던 기억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늘 집에서 잠만 자기 일쑤였고 혼자서 누군가 대화하듯 중얼중얼 거리거나 간혹 큰소리로 창문 밖에 대고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누가 집에 들어와서 된장에다 약을 뿌렸다며 침입 흔적을 찾기 일수였어요. 딱히 치료를 받지도 않고 그냥 방치 됐으며, 그러다 제가 초등학생 때 신문, 우유배달일을 좀 하셨었는데, 이유없이 신문 배달하는 옆 아파트 아주머니를 해코지하였으며, 제가 그 분 집에 붙들려 들어가 하소연을 들은 적도 있으며, 어느날 저녁에 그 집 남편과 같이 대동하여 집에 쳐들어 와서는 아버지가 남편에게 뺨을 맞고 한참을 욕을 먹고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단칸방에서 밤중에 잠을 자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와 같이 물벼락을 맞고 집에서 같이 쫓겨나가 어머니와 같이 어머니 친가로 도망쳤던 기억도 있으며 친척들과 극장을 하셨었는데 매표소 안에서 무지하게 두들겨 맞는걸 보곤 올라가 큰어머니에게 도와달라고 했던 기억도 있네요. 코피를 줄줄 흘리며 엉엉 울면서 수건이 전부 빨개지도록 감싸고 집에 저와 집으로 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 살이 좀 쪘었어요. 아무래도 살이 찌면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고 스스로 위축도 됐었죠. 아버지가 유독 밥을 고봉밥으로 드시기도 하셨고 저도 밥그릇을 대접으로 해서 강제적으로 먹었습니다. 원인모를 간질성 발작 증세를 한참이나 겪었던 일도 있습니다. 병원에서 MRI도 촬영했지만 별다른 소견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중학교에 들어서고 자연스럽게 증상은 사라졌지만 언제 발작할지 몰라 불안에 떨면서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살이 찌다보니 학급에서 저는 만만한 상대였고 괴롭힘을 좀 당했어요. 부당한 일을 당해도 소심한 성격 탓에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그냥 참고 지내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뒤에서 갑자기 빽초크를 걸면서 장난치는 놈에게 놔달라고 마구 뒤로 때리며 발버둥치다가 그 놈에게 느닷없이 장난인데 때린다며 뺨을 세게 얻어 맞고도 저는 싸우질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이런 기질 탓에 크면서도 목소리를 낼 상황에 내질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원하는 거는 최대한 해주시려고 노력하셨어요. 제가 친구따라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 피아노도 사주셨고 친구와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 사달라고 졸랐을 때도 선뜻 컴퓨터도 사주셨고 게임기도 사주셨지만 그러면서도 공부를 잘하길 원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공부랑은 잘 맞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반에서 34등을 한 성적표를 내밀었다가 야구 방망이로 엉덩이를 피멍이 나도록 맞았었습니다. 그 때 방에서 울고 있는 저에게 어머니가 와서는 같이 바람 쐬러 가자며 버스타고 월미도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드라마틱하게 제가 그 뒤로 정신 차리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았겠지만, 중간 정도 성적만 겨우 유지하는 게 저의 최대 노력이었습니다. 고2때 반 친구 무리와 몰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술김에 거기서 제가 중학교 때 왕따 비스무리하게 당했던 저의 치부를 털어놓은 일이 있었어요. 저는 좀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됐음 하는 것을 원했던 거였는데 그게 사이가 틀어지며 저에게 부메랑이 되어 왔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사회 생활 중에도 술김에 상사와 대화 중에 어머니가 ***라는 것을 알렸던 일도 있었는데 나중에 그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게 되며 퇴사하며 문자로 '그러니까 너 ***가 ***지' 라며 조롱을 듣던 일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과는 받았지만 저에게 큰 충격으로 남았던 일이네요. 저는 외로웠나 봅니다. 관심 받는 것을 좋아했고 좀 더 친한 사이가 되기 위해 저의 속얘기 털어내는 것을 거리낌 없어했어요. 그러다 이제는 나이 먹고 나니 전부 나에게 상처로만 남게 된 행동이였구나 생각합니다. 저는 어중간한 수능 성적으로 지방 사립대에 진학하였고 인문계 분위기상 대학교는 거의 모두 다 가는 분위기라 별 거부감 없이 대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제가 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안가겠다고 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고요. 1학년은 기숙사 생활했고 1년 마친 뒤 바로 다음해 겨울에 군대에 갔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은 대학교 다닐 형편은 아니었요. 군대 2년 다녀온 후 바로 복학을 하려는데 당장에 납부할 등록금 조차 없다고 했을 때 제가 거기서 대학을 자퇴했다면 상황은 좀 나았을까요. 아버지는 당시 개인택시를 하고 계셨는데 악착같이 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 놈의 낚시는 시도때도 없이 가셨습니다. 집에 돈이 모일리가 없었죠. 어머니는 여전히 일은 하지 않으셨고요. 저는 그 뒤로 1년 다니고 1년 휴학하고 돈 벌기를 반복하였고 최대한 집에 보탬이 되길 바라며 장학금도 4번 타봤네요. 휴강 날에는 막노동도 하면서 대학 졸업하기 늦은 나이 27살에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련하게 20대를 날렸구나란 생각을 해요. 성인이 되고 지나오며 묵혀왔던 어머니 문제가 시한폭탄처럼 터지기 시작했어요. 어머니는 제가 장기간 집에 없는 동안 자꾸 집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친척집에 가있기도 하고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내려가 찜질방 청소를 하며 숙식해결하며 계시기도 하셨고 어느 해에는 모르는 사람 손에 끌려가 어느 시골 집에서 기거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다 내팽겨치고 살*** 거면 그렇게 살 것이지, 꼭 종국에는 어머니는 저를 찾았어요. 저는 그걸 모른채 할 수 없었고요. 휴학하고 거주하며 일 할 때는 집에 늘 있었지만 꼭 대학교 자취를 할 때면 집을 나가곤 했습니다. 4학년 2학기 졸업반일 때는 아예 모르는 사람 손에 끌려서 시골 허름한 주택 집에 거주하길래 저는 취업 준비고 뭐고 때려치고 학교 근처 부페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어머니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무기력증이 생겼던 거 같아요. 당연하던 일상이 이제는 치우기가 힘들어 쓰레기집을 만드는 일이 곧잘 생겼었어요. 아무튼 그 집에서도 제가 꽤나 노력했음에도 정신병 문제로 인해 이웃간에 갈등이 빚어졌고 결국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게 되었습니다. 취업도 졸업도 엉망인 상태에서 저는 근처 공장에서 2교대로 들어가게 되었고 근처에 월세방에서 지내게 되었어요. 그러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너무 괴로워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 끝에 집에 모셔오기로 하고 둘이서 살게 되었습니다. 조건은 약 꾸준히 챙겨먹는 조건으로요. 하지만 어느날부터 다시 정신병 증세를 보이더니 혹시나 해서 방을 ***봤더니 약을 먹지 않고 책갈피에 숨겨뒀더군요. 그러던 와중에 밤근무를 마치고 낮에 자고 있는데 어머니가 방에서 계속 중얼중얼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곤 눈이 돌아가 어머니를 폭행했습니다. 그 때 심정은 어머니를 죽이고 나도 죽자란 심정이었어요. 온 난리를 피고 울고 난 뒤 더이상 이 집에서 같이 못지내겠다 생각하고 다시 정신병원으로 입원 ***려다 그것도 되질 않아 요양병원에 입소***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80만원이었는데 월급 250남짓한 벌이로 내 미래를 모두 포기할 각오하고 보내드렸습니다. 이런 사정들을 아버지에게 전화로 토로해봤지만 늘 아버지는 어머니가 그대로 사라져 없어지길 바랬고 저도 당신처럼 그러기를 바라셨어요. 신경쓰지 말라고 하는데 본인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무책임하고 나쁜 놈이라고 욕도 했어요. 어머니는 1년 전 쯤 요양병원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데 그동안 돈만 내고 10년을 넘게 한번을 찾아가질 않았습니다. 만나게 되면 오히려 괴로워질 거 같고, 해가 가면 갈 수록 더더욱 만나기 겁나고, 차라리 그냥 잊고 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겨우겨우 살다가 회사에 물동량이 떨어지고 월급은 줄고 좋아질 기약이 보이질 않아 퇴사하고 천륜을 끊고 싶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질 않아 아버지와 화해하고 다시 본가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계속 요양병원에 계셨고요. 거기서도 공장 교대 생활은 반복이었고 입퇴사가 반복되었습니다. 끈기가 없는 문제도 컸고 불안정한 월급 문제도 컸습니다. 그러다가 친구 아버지의 도움으로 정규 사무직으로 회사다운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탄탄했기에 덩달아 자신감도 올랐고 생전 처음 여자친구도 생겼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간간히 어머니 문제로 다투는 건 여전했으며 서로 대화를 몇 달간 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친척들 도움은 없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제사가 있을 때면 큰어머니가 따로 구석에 불러 부모님 사이 어떠냐고만 묻기만 했죠. 저는 그냥 괜찮다고 할 뿐이었습니다. 외가쪽에 의사가 한 명있어 어머니가 등급을 좀 받을 수 있도록이라도 좀 도와달라 한 적이 있지만 그게 자기들한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무 도움도 주질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만성 십이지장 궤양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꽤 위급했기에 그때 여자친구에게 나의 가정 상황을 모두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그때 여자친구는 울면서 나에 비해 자기는 너무 행복하고 별탈없이 자랐다면서 나를 위로해줬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저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하고 도망치듯 헤어졌습니다. 본인이 감당할 수준이 안된다며 미안하다며 말이죠. 다시 붙잡아 1년여를 만났지만 저의 달라지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부모님들 반대가 심해 결국엔 또 다시 헤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그 사람이 고맙고 미안하네요. 이런 변변찮은 놈을 사랑해줘서 그래도 나도 누군가의 연인이었다는 추억을 남겨줘서요. 아무튼 아버지는 저에게 우리 집안 사정 다 얘기하면 아무도 시집 안온다며 거짓말을 하길 원했으며, 차라리 임신을 ***지 그랬냐는 둥 책임감 없는 말들만 늘어놨습니다. 그렇게 해서 살*** 사람은 살겠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해서까지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무슨 죄일까요. 아무튼 그렇게 헤어진 뒤 저는 집에서 게임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집에서 게임만 하며 현실을 도피했어요. 그러다 사건이 터지는데 회사에서 회식을 하고 밤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집 문을 아버지가 안에서 걸쇠로 걸고 잠궈버린 겁니다. 아버지는 나와서는 너 게임하다가 지금 들어온 거 아니냐면서 서로 싸웠어요. 그러다 집에는 못들어가고 핸드폰도 바깥에 집에 던져 버리고 죽을 각오로 무작정 택시에 탔습니다. 전라도로 일단 가달라고 했는데 택시기사가 현금으로 달라기에 신용카드 밖에 없었고 돈을 따로 뽑아보려 나갔지만 택시기사가 안가겠다고 하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근처 모텔로 들어가 커튼에 목매서 죽으려고 시도했어요. 하지만 이게 평소 준비가 된 부분이 아니라 커튼이 떨어지면 어쩌나 이런 저런 고민하던 찰나에 술이 좀 깨면서 정신을 차리게 되면서 자살 생각은 접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회사는 난리가 났고 저는 핸드폰이 없었기에 회사에서 아버지에게 전화하게 되며 회사에 제 소문은 다 퍼지게 되었습니다. 창피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근데 제 상사가 친구의 삼촌이었는데 제 친구랑 둘이서 술자리에서 제 뒷담화를 했더라구요. 그리고 또 그 친구는 다른 친구를 만나 제 뒷담화를 이어서 한 것을 그 다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온갖 정이 다 떨어져 관두는 사정은 대충 핑계를 대고 도망치듯 또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제 긴 칩거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울증을 앓는 쓰레기 집처럼 제 몸도 제 방안 꼴도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한 반년을 그렇게 지내다 돈이 떨어져 나가고 하다보니 죽지 못할 거라는 생각, 죽어서는 안되는 생각때문에 겨우겨우 일을 하게 되고 또 들어간 곳은 사기꾼들과 거기에 속아 넘어가 일을 하고 있는 곳이더군요. 금전적인 피해를 보진 않고 발을 뺐습니다. 금전 문제는 당연히 여전했고 집도 전전 친구쪽 회사 근처였기에 이 곳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었고해서 평수 낮추고 시골에 있는 구축 아파트로 이사하게 됩니다. 저는 근처에 공장에서 교대 근무로 일하게 되었고 당시 아버지는 간간히 작은 화물차로 일을 하고 계셨는데 그 곳에 가서도 일은 할 수 있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같이 떠났지만, 아버지는 결국 일을 하지 못하시고 집에서만 계시다 4년 뒤에 식도암으로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 사이 집 밖에 나가지도 않으시고 외로움이라도 달래시라고 강아지 한마리를 분양 받아왔는데 그 강아지가 제 유일한 가족이라면 가족이네요. 그러다가 어느날 식음을 전폐하시더니 이젠 요양병원에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등급 받는 조건이 되질 않아 한달에 120만원 되는 곳에 모셨고 그 곳에서 몇 달 못계시다가 식도암 말기 진단 받고 한달여 뒤쯤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시고 이 모든게 내 탓이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생각이 짧았기에 집을 옮기는 바람에 아버지는 일도 못하시고 거리가 멀어져 주변 사람들과도 왕래도 더더욱 없어지고 나 때문에 쓸쓸하게 돌아가셨다는 생각입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게 좋았을걸 나의 짧은 생각때문에 더더욱 나도 아버지도 불행의 길로 걸어가게 했다는 생각에 자책하게 됩니다. 실제로 집을 팔고 난 뒤에 꿈쩍도 안하던 집값이 많이 오르기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자책감은 더욱 증폭했습니다. 일이라도 그곳에서 그럭저럭 잘 풀렸으면 모르겠건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코로나 시절을 겪으면서 회사가 휘청이고 일감이 줄고 월급도 적어지고 퇴사하게 되었고 그 뒤로 직장생활에 환멸감을 느껴 화물운송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운도 없게도 더불어 저의 신중하지 못한 성격 탓에 일자리 소개비까지 내가며 집 융자를 또 내가면서 낡은 중고차를 사서 고정일자리를 잡고 운행하였지만 한달도 되지 않아 그 일자리가 날아가게 되면서 저는 낡디 낡은 중고차와 달랑 남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고정일자리는 쳐다***도 않고 프리랜서로 억척스럽게 일을 했어요. 하지만 차는 왜 이리 자주 고장나는지 고장나면 마음이 또 상하고 고치는 동안 집에서 못나가고 그러다가 무기력증이 도져서 일을 다시 하기도 힘들고 한참 뒤에 끌려가 듯 억지로 일을 다시 시작하고 반복이었네요. 그렇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계속 까먹고 대출은 늘어만 갔습니다. 사실 회사 생활 하면서 나중에는 화물 운송을 할 생각은 가지고 있었어요. 단지 강아지와 단 둘이 계속 붙어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화물차 밖에 딱히 떠오르질 않았거든요. 남들이 앞으로 벌고 뒤로 깨진다라고 했지만 그래도 선한 마음을 갖고 나름대로 살았는데 난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열심히 하는대로 벌어가는 거잖아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언젠가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거고 나와 강아지 단 둘이 남게 되면 집에 하루종일 혼자 남겨놓고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기도 했었고요. 하지만 그 시기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인해 예상보다 빨라져 기존에 있던 차는 같이 데리고 잠을 자고 생활 할 수는 없는 차였기 때문에 폐차하고 무리하게 할부를 진행하고 같이 24시간 생활 할 수 있는 큰 세차를 뽑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공허함으로 인해 우울증, 무기력증이 심각해져서 차는 뽑아놓고 8개월 가까이 일을 하지 못하고 칩거하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과약도 처방 받았지만 멍해지는 기분이 싫어서 곧 관뒀구요. 그러다 한해가 지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1월 1일에 겨우 일을 나서게 되었고 첫달은 꽤나 매출을 잘 올렸습니다. 그러다가 요로 결석이 오더군요. 그리고 강제로 다시 칩거를 했지만 이 무기력증이 또 저를 엄습하고 또 그렇게 한참을 쉬고 그러다가 일을 하다가고 운송 단가 하락, 유가 폭등, 불경기로 인한 일거리 감소 등이 기운을 빠지게 했습니다. 그러다 장기간 또 집에 틀어박혀 배달음식과 음주로 쓰레기 집을 만들고 정신차리고 치우고 어지르길 반복했습니다. 당연히 자기혐오로 이어지고 이대로 죽으면 모든게 편해질텐데 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옆에 있는 강아지를 보면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하길 반복했습니다. 집 나가면 또 차에서 자면서 고생할텐데 그 고생을 해야만 하지만 몸은 자꾸 집에서 누워있길 원했습니다. 그래도 그땐 매달 첫째 날이 다가오면 이젠 나가야 된다는 생각은 그때는 들었기에 또 정신차리고 나가고 그랬었네요. 하지만 이젠 그럴 기운도 없을 뿐더러 앞으로 또 겪어야 할 힘든 일들만 눈에 선할 뿐이네요. 같이 강아지와 차에서 지내면서 전국을 다니는 모습을 보며 모르는 분들이나 친구들은 강아지더러 너가 나보다 낫다 전국 팔도를 다 다니고 있다며 제가 잘 키우고 있다고 서로 의지가 되고 있다고 말은 해주지만 1인 가구에 주변 가족도 없는 저에게는 제게도 반려견에게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이라곤 저밖에 없기 때문에 저 대신 누군가 근처에 사람이 돌봐주는 환경에 놓여진 것이 이제는 압박이고 부담이고 그렇습니다. 여러 연결고리가 있는 화목한 집에서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고 지내는 것이 반려견에게 좋을텐데 라는 생각도 들고 사람에 대해 애교가 많고 예쁘게 생겼고 성격도 무난해서 길가는 사람이 예뻐해 주는 모습을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겹칩니다. 나밖에 없기 때문에 열심히 해서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라는 마음도 이제는 옅어져만 가네요. 차라리 이대로 가면 친구들 중 누군가 키워주거나 더 좋은 곳으로 보내줄텐데 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제 7살이라 조금 더 나이 먹으면 점점 새 가족 찾기에 불리해질테고 정 쌓을 시간도 짧고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이기적이지만 제가 하루 빨리 생을 마감하는 게 서로에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혼에 혼자 남겨져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나니 인생에 대한 회의감 허무함 뿐만이 가득하고 형편도 좋지 않으며 오히려 제 스스로 계속 몸이 부서져라 일만해야 하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었고 그렇게 버텨낸 들 결국 독거노인으로 쓸쓸히 고독사 할 미래만 눈에 선합니다. 부모님때문에 죽고 싶을 때는 그래도 부모님보다 먼저 죽진 말아야지 외아들이라서 남겨진 형제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있을 상황에 대해 주저하게 된 것도 있었고 막상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나니 자살 생각은 늘 있지만 강아지가 눈에 밟혀 쉽사리 가질 못하겠고 그러했습니다만 이젠 그렇지가 않고 나보다 더 좋은 주인 만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하게 되니 조금씩 자살 생각이 구체화 됩니다. 빚쟁이 이지만 그래도 제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에 뒷정리 할 사람들과 강아지를 위해 생명보험도 두개 들어놔 있거든요. 약관에 자살도 받을 수 있는 거 확인했기에 수령은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습니다. 저는 태생부터 부모님 성향을 따랐고 그런 환경에서 자랐고 그렇다고 특출난 재능도 없고 그냥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으면 그냥저냥 살았을텐데 제가 이겨내기엔 너무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사람 같네요. 두서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