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약을 먹었다. 약이 든 서랍 속에서 진통제란 진통제는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 꺼냈다.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스무 알 남짓 되었던 것 같다. 늘 학교에 들고 다니는 텀블러를 꺼내 물을 가득 담아서 서너 번에 걸쳐 약들을 전부 집어삼켰다. 나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살아온 걸까.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던 3년의 대학생활은 내게 뭘 남긴 걸까. 정말로 교수님이 말씀하신대로 3년동안 헛된 시간을 보낸 거라면 그동안 *** 듯 나는 무엇을 보고 달려왔던 걸까.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감추려고 억지로 밝은 척을 해 댔다. 웃기지 않은 말에 웃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 최대한 내 내면의 우울을 끌어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무얼 위한 거였을까. 사람들은 내가 밝은 줄 안다. 그냥 매일 잘 웃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변에 뿜어내는 활기찬 스물 세 살 여대생. 그런 정도였겠지. 부모님에게도 딱히 예외는 아니었다. 우울을 숨기고 덮어도 이내 드러나는 혐오스러운 내 모습이 내게만 보인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견디기 힘든 류의 것이었다. 겉의 마냥 밝은 모습과 속의 썩어 문드러지는 모습 사이에 이제는 좁힐 수 없는 괴리가 생겼다. 그건 내가 나를 더 혐오하고 증오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남들 앞에서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 앞에서 나는, 내 자존감과 내 존재 자체는 수치와 혐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나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24시간동안 제일 싫어하는 사람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는 느낌. 더 이상 앞에 다가올 미래가 두려웠고, 내가 고치지 못한 내성적이고 소위 아싸틱하다는 성격은 계속 나를 좀먹었다. 찢어발겨진 내 속과 멀쩡한 겉을 일치***려면 나를 아프게 해야 했다. 주먹을 쥐고 멍이 잘 남지 않는 내 배에 주먹질을 해 댔다. 숨이 턱 막히고 울음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옷차림이 길어지자 칼을 집어들었다. 손목에서 배어나오는 피를 보고 한참을 울고 나야 진정이 됐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이전과 달라진 것 없는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오늘 상담에서 들은 이야기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 있었지만 예상보다 더 아프게 내 속을 찔러 댔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친구가 없고,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려고, 그래서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친해지려고 애쓰지 않아서 내 꼴이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3년간 무엇을 했느냐고 교수가 물었다. 곱***어보았지만 나는 대답 할 말이 없었다. 내 명의의 차가 생길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기에 남들 다 가지고 있다는 그 흔한 운전면허조차 따지 않았다. 나는 늘 무기력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변명을 하려면 그 미래를 개척하려고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남들 다 하는 그 노력이라는 것들을 나도 조금만 더 했더라면 지금 이 모양은 아닐 텐데. 다시 울렁거리는 자괴감과 혐오감이 속을 뒤집어놓는다.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속을 게워내기라도 하듯 두 시간 쯤을 침대에 걸터앉아 울었다. 이불 속에서 숨죽여 울던 평소와 달리 오늘은 참 서럽게도 울었는데 안방까지는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내가 싫다. 더 이상 나를 바꿀 힘도 없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그려낼 수도 없으니 내 답 없는 성격과 거지 같은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대는 나에게서, 노력하지 못하는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다. 하나 있는 딸 대학 공부 ***겠다고 혼자 멀리 떨어져서 일하는 나이든 아빠와 궂은 일이란 일은 다 모여있다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나이든 엄마에게 내가 보답할 자신이 없다. 당신들의 인생은 무슨 죄로 이런 나약한 나를 세상 밖에 낳아서 이리도 힘든 삶을 사시는 걸까. 내가 내일 죽으면 이런 죄의식에 가득 찬 생각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를 싫어하는 밤도 겪지 않아도 되는데. 도망치고 싶다. 수면제도 아닌 고작 진통제들 따위가 내 소망을 실현시켜줄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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