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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콩_레벨_아이콘나의새벽
·일 년 전
생애 처음 상담센터를 갔던 건 힘든 일을 겪고 어떻게든 죽을 궁리만 하던 때였어요. 당연히 상담 같은 걸 원하지 않았기에, 남자친구 손에 끌려 갔었어요. 자포자기해서 끌려간 것도 아니고 정말 힘으로 끌려갔었어요. 당연히 상담은 진행되지 못했어요. 이제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는 상담사님은 남자친구에게 이 상태로 상담을 할 수 없다고 말했고 남자친구는 그래도 5분 만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했던 게 기억나요. 저는 상담사님에게인지 남자친구에게인지 시위하듯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무엇인가 몇 번 질문해 주셨지만 들을 마음이 없어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아요. 상담료도 받지 않으셨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하지도 않았기에 그걸 상담을 받은 경험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 힘든 시기에도 상담사님에게 죄송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제 거의 3년이 지났는데 저를 기억하실까요? 아니면 저 같은 사람이 하나는 아니었을까요? 상담센터 홈페이지에 이메일이 공개되어 있어서, 할 수 있다면 그때 정말 죄송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용기도 안 나고, 딱히 제가 그랬던 걸 신경 쓰시지 않을 것 같아 괜한 연락일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생각만 하고 있어요. 잊었다가, 다시 생각나곤 해요. 거의 2년이 지나 제 발로 다른 상담센터를 찾아갔었어요. 직장 일 관련해서 지원을 받아 간 곳이라 제게 선택폭이 넓진 않았어요. 그 상담은 너무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들어 간 곳에서, 역시 죽는 게 맞다는 결론만 가지고 제 의사와 상관없이 한 달 만에 쫓겨나듯 상담이 끝났어요.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첫날부터 그저 힘들기만 했는데, 상담이 원래 어떤지 몰라서 참고 그 시간을 견뎠던 것도 있고 한참 전 다른 상담사님에게 가졌던 미안한 마음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다시 내가 폐를 끼치지 말아야지, 힘들어도 이번엔 노력해야지, 참아야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너무나 힘들게, 아프게 그 시간이 지나간 후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다행히 이후에는 정말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상담사님들을 만나서.. 여전히 힘든 가운데, 이전을 돌아보면 그래도 나아졌구나 생각되기도 해요. 미처 생각하지 못하다가 상담사님이 발견해 주시고 확인해 주실 때도 있어요. 어느 때보다 기복이 심한 한 해였어요. 항상 연말이 되면 내년엔 제발 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징그럽게 또 1년을 살았다니, 못 죽었다니. 지금은 조금 다른 마음도 드는 것 같아서, 이 또한 내가 나아졌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요. 한동안 주말이 늘 우울했어요. 굳이 안 해도 되는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했어요. 그런데 조금 전에 문득 배가 고파서, 배달 음식 시켜 먹을까? 돈 아껴야 되는데, 요새 좀 많이 시켜 먹었는데. 그래도 연휴인데 한 번쯤 더 먹어도 되지 않을까? 뭐 먹지? 고민하며 배달 어플을 뒤적이는 제 모습에, 너무나 가볍고 일상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제 모습에 새삼스러워요. 그렇게 느낀 순간 이유도 없이 눈물은 났어요. 눈물이 반드시 나쁜 게 아니라고 상담에서 들었던 것도 생각이 났어요. 내년부터는, 아니 내일부터는, 지금부터는. 사소하고 사소한 고민들이 더 많은, 그런 시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아픔과 힘듦의 경중은 남이 정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비교할 수도 없는 거라고 했지만 마카 커뮤니티에 오래 있다 보면 다들 정말 많이 힘들구나 느껴요. 죽을 만큼 힘들었던 제 경험마저 비교적 작구나 느껴질 만큼. 때로는 저게 굳이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일까 싶을 만큼 제 기준에서는 사소하고 가벼운 문제들도, 사실 있어요. 그 어떤 일이라도, 어떤 감정이라도, 지금 겪고 있고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무겁고 아프겠죠. 가장 힘든 순간에는 정말 듣기 싫었던 말. 정말 가식적이고 무의미하게 들렸던 말. - 지나간다. 그게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만큼, 혹은 완전하게 지나가기는 어렵겠지만. 그리고 그게 지나가면 또 다른 무언가가 오기도 하지만. 어쨌든 지나가는 것 같아요. 영원히 머물러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많이 지치고 아픈 모든 분들의 힘든 순간이 하나하나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그게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돌아보면 지나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소한 일상 고민이 새삼스럽지 않은 그런 날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먹은 이 마음은, 좀 더 길게 제게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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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ForN
· 일 년 전
🫂 고마워요. 솔직하고 따뜻한 글을 이렇게 용기내어 올려주셔서요. 마카님도 잘 지나가고.. 잘 흘러가서... 상처가, 아픔이.. 고여있지 않기를 바랄게요:) 다 흐르지 못한 흔적들을 억지로 떼어내다 더 큰 상처를 입지 않기를 바랄게요🫂 120세 시대라고해요. 급작스럽게 변하는 세상속에서 아직 사회적인 논의는 부족한 상태지만... 그럼에도 조금 더 천천히 걸어가봐요:) 충분히 아물수 있도록, 나아질 수 있도록이요. 지금까지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정말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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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새벽 (글쓴이)
· 일 년 전
@LoveForN 저렇게 글은 써놓고 연휴 동안은 왠지 모르게 지치고 우울했던 것 같아요. 우울보다는 긍정적인 감정이 오래 남아주었으면 싶은데 아직은 그게 잘 되지 않네요. 마치 숙제하듯, 하지만 숙제로 여기지는 않으려 노력하며 1년을 돌아보고 있어요. 1년 전 12월 마지막 날 마카에 처음으로 남겼던 마인드포스팃이, 올해를 보내며 버리고 싶은 한 가지 - '나'였는데 어떻게든 또 1년 동안 나를 버리지 않고 버텼구나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적어도 버리고 싶은 게 제 자신은 아닌 것 같아요. 아마도 달라졌고, 달라지고 있는 거겠죠? 제가 많이 의지하고 있는 분이 저는 지금 아주아주 깊은 물속에 가라앉았던 거라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숨었던 거라고, 이제 위험한 건 지나갔으니 다시 올라오라고, 다만 너무 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올라와도 올라와도 주변이 온통 어두운 물처럼 느껴질 거라고, 수면에 다가서야 빛이 조금씩 보일 거라고, 지금까지 많이 올라왔다고. 사실 글로 써도 오글오글한데 저걸 말로 해주신 분이 생각하면 참 감사하고, 전 또 거기에 마음이 움직여 그래도 해보자 다짐하게 되네요. 이 무렵엔 참 많은 생각과 감정이 드는 것 같아요.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제대로 걸어온 걸까 사실 의심도 많이 드는 시기이고요. 잘했다고 해주셔서, 고생했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조금 쉬고 다시 천천히 걸어가 볼게요. 마카님께도 평안한 한 해의 마무리가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