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의 관계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ADHD|우울증|불안]
알림
심리케어센터
마인드카페 EAP
회사소개
black-line
가족과의 관계
커피콩_레벨_아이콘beem0
·8달 전
아주 어릴 때 부터 가족에게서 다정함이란 걸 느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차라리 폭력적이거나 책임감 없는 부모였다면 미워할 수 있었겠지만, 주변에서 볼때는 문제없는 가정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아***, 어머니, 나이차이 많이나는 오빠까지 4명이었고 유일하게 저에게 화내지 않으면서 얘기하는 사람은 오빠였어요. 그래서 부모님 말보다 오빠 말을 더 잘 듣고 오빠에게 더 의지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30대 중반쯤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HDAD검사를 예약했고 성인 ADHD판정을 받았습니다. 불안장애와 우울증도 진단받았고요. 한편으로는 제가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를 알게되어 좀 위로가 되었어요. 초등학교를 입학한 순간부터 항상 저를 괴롭히는 사람은 항상 존재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괴롭힘 당하지 않은 때가 없었어요. 한 번은 절 지속적으로 괴롭히던 친구가 절 죽이겠다고 목을 졸랐고 꽤 오랜시간 ***서 목이 부어 한동안 물 마시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은 한달에 두어번 수업을 할까 말까였고 자습을 ***고 본인 할 일을 하시느라 자리에 없는 학생이 있어도 눈치재지 못하셨어요. 부모님은 사실을 알고도 아무 조취도 취하지 않으시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 제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고 말하면 저에게 문제가 있는 것 처럼 말하거나, 그럼 다른 친구랑 놀라며 넘겨들으셨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 부터 부모님의 맞벌이로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았고 초등학교때는 오빠와 둘이 잘때도 많았습니다. 옆집에 기사식당이있어 거기서 식사를 해결하거나 라면같은 걸로 끼니를 떼웠어요. 초등학교 3학년땐가 떡볶이를 만들다가 실수로 손가락을 잘라서 손톱의 1/3정도가 같이 잘렸어요. 좀 크게 다쳤는데 들키면 엄마한테 혼날까봐 밴드만 붙이고 다녔어요. 며칠 뒤 오랜만에 가족끼리 식사하는 자리에서 어머니는 갑자기 대체 그 밴드는 언제까지 붙이고 다닐거냐고 소리를 지르신 적도 있었고, 한번은 1월 1일 새해부터 심하게 체해서 누워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평소 건강해서 그정도로 아파한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대청소를 한다고 한 겨울에 문을 다 열고 가족들이 청소를 했어요. 어머니는 누워있는 저를 못마땅해했고 저는 속이 너무 안 좋아 화장실로 가다가 방 안에서 토를 했는데 어머니는 다른 사람은 다 청소하고 있는데 뭐하는 거냐며 니가 닦으라고 ***를 집어 던지셨어요. 아주 어린시절 부터 어머니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머니가 다른 지방에서 일하시게 되면서 아***와 저 둘만 지내게 되었습니다. 오빠는 고1이 되자마자 기숙사로 가서 집에 잘 오지 않았어요. 아***는 2교대 근무로 야간근무를 많이 하셔서 3일에 한번씩은 어른없이 저 혼자 자야했고 빨래나 요리 청소 같은 살림은 거의 제가 했습니다. 이모들은 가끔 저를 보면 니라 고생이다 라고 하셨고 어머니는 옆에서 본인 학창시절에는 공장다니고 조카 업고다니면서 공부했다. 라는 식의 얘기를 하면서 본인이 더 힘들게 살았다고 얘기하곤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상처되는 말을 많이 하셨는데 당시에는 너무 화를 내셔서 말을 못하고 나중에 어머니 기분이 괜찮으실 때 얘기를 꺼내면 내가 언제 그랬냐고 화를 내시며 너는 나를 치매환자 취급하고 있다고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그런일이 계속 반복되고 상처를 받은 건 저인데 항상 어머니 본인은 힘없고 불쌍한 사람이고 제가 가해자 인 것 처럼 억울해하셨어요. 엄마가 돼서 그런 말도 못하냐고요. 그러다 대학교에 다닐때 엄마가 사업을 접고 집으로 오셨는데 절 볼때마다 여자도 직업이 있어야한다. 천재는 1%재능과 99%노력으로 만들어진다. 토익공부 같은 거도 하고 영어는 무조건 할 줄 알아야한다. 라는 말을 녹음테이프 틀듯이 반복했습니다. 아침에 학교가기전에 한번, 도서관에 있으면 전화해서 한번 집에 오면 한번 하루 3번이상 저를 앉혀놓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러다 제가 컨디션이 너무 안 좋고 너무 피곤해서 진짜 몸이 안 좋아서 그런데 다음에 얘기하시면 안되냐고 했더니 잠깐 말할테니까 앉으라고 해서 또 여자도 전문직을 가져야한다. 영어를 할 줄 알아야한다. 설교를 늘어놓으셨어요. 매번 반복되니까 어느날은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도 들었습니다. 대학교는 집에서 다녔었고 대학 졸업을 하자마자 오빠는 저를 서울로 데리고 갔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저를 부모님에게서 탈출시켜주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는 저를 보면 매번 부정적인 말만 하셨는데, 그것도 모르냐, 니가 할 줄 아는게 뭐냐?, 잘하는게 하나라도 있냐 는 말부터 외모, 말투, 목소리, 표정 제 모든 것에 대해 매일같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저를 볼때마다 지적하는 말을 내뱉으셨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가 계속 하기 싫다는데도 억지로 성형수술도 ***셨습니다. 처음 서울에 가서는 오빠 친구들이 놀러오면 방에 들어가고 말도 잘 못하고 눈도 못 마주쳤는데 부모님이랑 떨어지고나서 조금씩 나아졌어요. 당시 아르바이트와 취업준비를 하며 힘들었는데, 어버이날 마감근무 끝나고 어머니께 전화드렸더니 다른 자식들은 다 집에 내려와서 용돈도 주고 하는데 너는 뭐냐고 화내고 끊으셨어요. 나중에 친척언니를 통해 들었는데 저는 돈이 없는 걸 알아서 아무것도 못하는 걸 이해하는데 오빠는 직장인인데 아무것도 안 해준게 서운하셨고 오빠한테는 티를 안 내고 저에게 푼거였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대화가 너무 힘들었지만 자식된 도리로 일주일에 4번정도는 전화를 드렸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오늘은 몇시간 일했고 얼마 받냐 그래서 한달에 버는 돈이 얼마냐 그것 밖에 못 받냐 니네 가게 매출은 얼마냐 이런 것에만 관심이 있으셨어요. 한 달 정도 설명해드려도 매번 얼마받냐고 물어보셔서 전에 얘기 해드리지 않았냐고 했더니 또 물어볼 수도 있지 너는 나이 안 들 것 같냐고 화내고 끊으시고 그 뒤로도 매번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일은 힘들지 않은지 이런 것 보다 돈에만 관심이 있으셨어요. 그러다 잠깐 투잡을 뛰던 때가 있었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일하고 한시간 넘는 거리를 이동해서 마감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 잠만 자는 삶이었어요.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을 때도 많았고요. 어머니는 제가 길게 일할수록 좋아하셨고 매일 몇시간 일했고 얼마 벌었냐 물어보시면서 연장근무 좀 더 넣어달라고 해라 그러시길래 좀 섭섭해서 “엄마..저도 이렇게 일하면 힘들어요…”했더니 “그러게 누가 그런일 하라고 했냐?” 하시더라고요. 원래도 안했지만 그 뒤로는 힘들거나 그런 일 있어도 아예 얘기 안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저는 알바로 일하던 카페에 흥미가 생겨 아예 직원으로 일하게 됐고 학원다니고 자격증도 따면서 바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항상 저의 직업에 대해 더 배울게 있냐 나중에 다시 하면 되지 않냐며 언제든 그만둬도 상관없는 것처럼 얘기하셨고 저의 직업을 존중하지 않고 항상 알바라고 하셨어요. 그만두고 엄마 일이나 도우라고요. 그러다 일하던 가게가 폐업을 하고 실업자가 되면서 취업준비 기간동안 어머니를 도와드렸어요. 당시 어머니는 연로도 없는 지역에 사업을 벌려 식당과 24시 편의점을 운영했고 편의점은 제가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따로 직원은 쓰지 않고 식당에 일하시던 엄마가 잠깐 교대해주시면 밥을 먹거나 씻을 수 있었고 그나마도 제가 계속 난리를 쳐서 겨우 씻기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편의점은 5시에 나와서12-1시까지 일하고 새벽엔 손님이 별로 없어서 안쪽에 마련된 방에서 자다가 밖에서 손님이 벨을 누르면 자다가 뛰어나가는 식으로 일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저를 보면 여기도 직장인데 화장도 하고 꾸며라 옷도 그런 편한 옷만 입지말고 좀 사입어라. 여기도 직장이나 마찬가지다. 한달에 두번 쉬고 250받으면서 매일 그런말을 들어야했습니다. 잘시간도 부족하고 씻을 시간도 주지 않으시면서요. 하루 3번씩 밀려드는 물류 정리에 발주에 분리수거 청소에 너무 지쳐서 바로 직장을 구해서 서울로 갔고 가끔 쉬는 날이나 연차를 써서 도와드리러 갔습니다. 하루는 연차써서 어머니를 도와드리러 갔는데 오빠는 전화하면 이런저런 얘기 많이 하는데 저는 그런게 없다고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오빠와 엄마는 외향적이고 말이 많고 아빠와 저는 내향적이고 말이 적거든요. 그리고 어머니는 항상 월급이 얼마냐? 그거 벌어서 어떻게 사냐? 라는 말이나 제가 하는 말에 대해 부정적인 피드백을 자주 하셔서 사실 어머니랑은 할 얘기가 별로 없습니다. 저는 친구끼리도 대화가 잘 되는 친구가 있고 좀 서먹한 친구가 있듯이 오빠랑 엄마는 대화가 잘 맞고 나는 아닌거다 라고 하는데 본인 할말만 하고 가버리셨어요. 그러다 친척언니가 놀러왔는데 또 와서 오빠랑 저를 비교하면서 제 욕을 하고 다시 가셨어요. 쉬고 싶은 거 참고 일하러 왔는데 좀 감정이 상했습니다. 12시에 일 끝나고 마무리 하고 어머니와 본가로 운전해서 가는데 또 오빠랑 비교하면서 제가 말을 안 한다고 하셔서 저는 사람이 어떻게 다 잘 맞을 수 있냐 좀 더 잘맞고 잘 안맞는 사람이 있는거죠 라고 했더니 그래도 맨날 얘기 를 안한다고 하셔서 “제가 단답형으로 대답한 것도 아니고 최대한 리액션하고 아빠 욕 하면 맞장구도 쳐주고 했는데 뭐가 문제예요?” 했는데 제 얘기를 안 한다고 하셔서 “전에 힘들다고 했더니 누가 그런일 하라고 했냐고 하셨잖아요.” 했더니 화내시면서 기억도 안나는 걸로 그런다고 하시더라고요.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그런다고. 이때까지 그래 본 적 없는데 처음으로 “그렇게 말하시면 안 돼죠. 저한테 사과하셔야하는 거 아니에요?” 했지만 계속 기억안나고 별것도 아닌걸로 그런다고 했고 저는 끝까지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는게 맞다고 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그래 미안하다 미안해 됐냐? 이제 말하지말자!) 하고 한마디 없이 집까지 갔습니다. 30대 중반인 저에게 아직까지 제가 보이기만 하면 외모지적 목소리 지적 일은 제대로 하냐 표정은 왜 그러냐 매일 같이 너무 일상적으로 듣고 있고 그쯤 이건 잘못됐구나라고 깨달았어요. 그래서 서울로 올라와 오빠를 통해 엄마와 더이상 연락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다가 눈물이 터져서 놀란 오빠가 저희집까지 달려왔고 저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오빠가 엄마에게 전달해줬고 처음에 어머니는 엄마 안보고 싶냐면서 본인 친한친구가 얼마전에 죽었다며 문자를 보냈습니다. 본인이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냐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부모도 자식을 선택할 수 없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랬다. 저는 너한테 상처를 줬다면 정말 미안하다. 라는 말을 한마디는 할 줄 알았는데 온전히 본인 입장에서만 쓴 글을 보고 숨쉬기가 힘들고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그 와중에 저와 어머니 사이를 중재하다 지친 오빠가 엄마는 할만큼 했고 니가 엄마한테 벌을 내리고 싶은거라면 잘하고 있는 거다. 라는 말을 해서 또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아*** 칠순이셔서 안 갈 수가 없어서 집에 가게 되었고 그렇게 다시 연락하며 지내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그 후 많이 달라지셨지만 저는 오래 가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됐습니다. 한동안은 잘 지내고 주변에서도 엄마가 엄청 노력한다고 많이 말했어요. 잘 지내던 중 다시 조금씩 엄마의 외모지적이 시작되었어요. 저는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직업이고 출근하면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 일하기 때문에 편한 옷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데 계속 치마 좀 입어라 구두신어라 머리 파마를 해라. 제가 옷이 맘에 안든다는데도 계속 어울린다고 입으라고 강요하시기 시작했어요. 오빠도 강요하지말라고 하고 왜 옷 입는 걸로 지적하냐.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애한테 왜 구두를 신으라고 하냐 편들러줬지만 들은체도 안 하셨어요. 서울 올라오는 길에 오빠랑 새언니랑 대화하는데 저만 상처가 많은 줄 알았는데 오빠도 부모님에 대한 상처와 원망이 너무 커보여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오늘도 위염때문에 저녁에 아무것도 못 먹고 서울 도착해서 너무 아픈데 응급실에 가야하나 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전화로 아까 그 원피스 너 줄테니까 입어라 구두도 신고 아님 단화라도 신어라… 예전 같으면 그냥 원래 어머니 성격이니까 생각하겠는데 이제 별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관계지속을 위해 제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도 않아요. 사실 부모님에 대한 애정같은 건 사라진지 오래고 그냥 자식으로 할 도리만 하고 있어요. 나이 먹으면 더 이해심도 많아지고 달라지는 게 있어야하는데 갈 수록 본인 말만 하고 다른 사람을 자신한테 다 맞추려하고 아직까지도 자식을 소유물 대하듯이 하는 부모님때문에 지쳐요. 너무 여리고 작고 힘없는 어린 저희들에게 왜 그렇게까지 자존심 부리면서 상처를 줬을까… 왜 우리 부모님은 70이라는 나이가 되도록 사과란 것도 못하는 어른이 되었나… 지금까지 자식보다 자존심이 먼저였으면서 이제와서 친구같은 딸을 바라는 것도 너무 이해가 안가요. 인간관계는 본인이 행동한대로 돌아오는건데 저희 부모님은 노력없이 본인이 좋아하는 자식의 모습들만 저희에게 바라시는 것 같아요. 30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연애는 커녕 썸도 타본 적 없는데 가족이라는 단어가 따뜻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한번도 제편이었던 적이 없고 자꾸 상처 받다보니까 그냥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요.
부모님
지금 앱으로 가입하면
첫 구매 20% 할인
선물상자 이미지
댓글 2가 달렸어요.
커피콩_레벨_아이콘
ausername
· 8달 전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어떡하고 싶으세요 ?
커피콩_레벨_아이콘
안녕세요
· 8달 전
저희 어머니랑 비슷한데 연 끊고 사는거 추천드려요. 어머니 돌아가시게 되면 장례식때만 가세요. 모든 왕래 끊어버리시고 님만의 인생 살아가시길. 낳았다고 부모 아니고 바라기만 하는 부모도 부모 대접 받을 필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