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큰 실수를 했었어요. 친구들에게, 답답한 나머지 왜 못하냐고, 힘들어도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느냐고 날선 어조로 오지랖을 떨었습니다.
친구들은 너 힘든 상황인거 같으니 거리를 두자고 했는데, 저는 왜인지 그 고마운 호의조차 잡지 못하고 마지막 정이란 정은 다 떨어질만큼의 언동을 했습니다. 멋대로 관계를 끊어버리고 저의 공감력 제로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인드를 다 보여줬지요.
친구들과 멀어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저는 제가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친구를 정말 걱정해서 한 말이긴 했지만, 그 전부터 저로 인해 관계는 삐걱이고 있었거든요. 저는 친구들에게 집착을 하고 불안해하고 성급하고 무례하게 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저에게 실수를 한 적 있었는데, 그때의 실수로 생긴 과도할만큼의 불안이 저의 내면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줄 미쳐 몰랐습니다. 나를 몰라서 생긴 외로움을, 그 애들에게 풀며 점차 폭력적인 관계가 되어가던 것이죠.
친구들이 성정이 착하고 상냥하며 취미가 맞아 정말정말 좋아했는데, 그럼에도 친구들의 게으름과 무계획성을 참지 못하던 건, 제가 아주 싫어하는 저의 어린 모습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저의 모습이 그들에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집착하던 것은 친구가 없어 홀로 외로움을 삭히던 어린 제가 있었기 때문이고, 제가 그토록 늘 불안하고 외로웠던 것은 외롭고 게으르고 현실도피적이던 저를 혐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친구들의 선을 넘어버리고, 용서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것을 뿌리치고 도망가 버린 것은, 저로 인해 피로하게 된 관계가 싫었고, 어른이 된 저의 가치관이 한국 사회의 융통성없음을 빼다 닮았고, 또 무엇보다도 친구를 사귀는 법을 제대로 몰라 관계에서 실수했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안 돼. 안 돼. 하는데 왜 입은 열리고 있었을까요. 저는 그때 정말 제가 깨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꿈이 있었음에도 28살 백수가 되어버린 나의 언니와, 고이고 고인 취업 시장을 보면, 직언을 안 하면, 나라도 이런 말을 안 해주면, 몇 번의 돌려말한 조언도 통하지 않은 채 그저 우유부단히 살고 있다고 생각한 친구에게 큰일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그 애와 저를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이죠.
사실은 그 애를 걱정하는 마음 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이룬 것 없는 저의 불안감을 그 애를 통제하는 것으로 풀려했던 거였습니다. 아주 이기적이고, 그 애의 입장에선 갑자기 오지라퍼의 폭언과, 갑작스런 손절이었겠지만, 지나보면 참 잘 멀어졌다 생각할 사람이 바로 접니다.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사람들 틈바구니에 몸을 담으면, 제가 참으로 평온하고 상냥하고 온화한 세상에 몸을 담고 있었구나 체감이 됩니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 비슷한 취향에, 비슷한 가치관. 참 편하고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만 편했을 수도 있죠. 아니 사실은, 저 마저도 그들이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해하며 같이 있음에도 외롭고, 어딘가 불편해왔지요. 왜냐면 저는 늘 어리고 외롭고 상처입어있던 절 외면하며 지냈으니까요.
저는 그 애들이 사라지자 단짝 친구가 사라졌습니다. 친구야 있긴하지만 그 애들만큼 가까이 지내지 않았습니다. 사무치는 외로움이 저의 곁에 늘 있습니다. 이따금 내면의 저와 가까워질 땐 사라지고, 고독이 되곤하지만, 때때로 전 무척 그들이 그립습니다.
하지만요. 하지만요. 그럼에도 말이죠. 그렇다고 그 아이들과 오래오래 계속 잘 지낼 수 있었겠냐는 생각을 하면, 저는 늘 아. 그건 아닐 것이다 라며 고개를 휘휘 젓습니다. 그것은 제가 상처입은 어린 아이를 가슴에 품고 있지만, 그 아이와 별개로 지금의 저는 착실히 어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부딪히며 저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도 점점 알아가고 있습니다. 효율적이고 싶어합니다. 일머리가 생기고 싶어합니다. 타인이 배우*** 애쓰는 모습이 참 귀엽게 보인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진정 착한 사람이 되려면, 아무리 주변 사람이 좋다하더라도 혼자 동떨어져 타박받고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는 자신의 일을 잘 해내야한다는 것을, 그를 위해 늘 자기자신을 갈고 닦고 배워나가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문을 읽고 책을 읽으면 그것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찌나 부지런한지, 제가 아직 아이였던 시절에 2023년 지금을 꿈꾸며 가꿔나간 사람들이 이토록 많을지 저는 미처 몰랐습니다. 친구들과의 온화하고 상냥하며 따스하던 공동체는 요람처럼 달았지만 그들과 저는 보고 있는 미래가 달랐습니다. 그들과 저는 가치관이 달라져버렸습니다.
이전부터 책을 읽어라, 신문을 읽어라, 말이 안 통할까 무섭다. 배움이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라는 말을 했지만, 그들에겐 더 중요한 취미가 있었습니다. 어린 제가 수년간 향유하며, 끝끝내 그것이 무익하다는 걸 알게 된 취미를요. 얼마전의 저는 그것에 울화통을 터트렸지만 이젠 압니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현재를 보내는 방식이었던 겁니다. 그들에겐 그것이 무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취미란 유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기적이었다는 것도 압니다. 저는 그들이 너무 좋아서 그들이 저와 같은 미래를 걷길 싶어했습니다. 그들이 저와 오래오래 같이 지내길 바랬습니다. 제가 그 애들과 함께 걸어가는 게 아니라요.
하지만 게으름으로 한번 무기력증을 겪고, 그로 인해 무능하고 게으른 어린 저를 싫어하는 나에게 그 애들을 온전히 존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들 역시 미래를 살 것임을, 언젠가는 나보다 더 잘 살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저는 그 때 제가 저 자신을 싫어하고 있는 줄 몰랐거든요. 저에 대한 혐오가 나의 친구들에게 옮아버려, 저는 그 애둘을 참 좋아하면서도 혐오하는 양가감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를 떠나보내야한다는 게 싫어서, 이토록 달고 좋은 관계를 참아 보내야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싫어서 그렇게 이기적인 방식으로 결별을 선언한 겁니다. 몇 번이고 멀어지려고 했지만, 너무 잘 알고 너무 편하고 너무 온화한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아 늘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최악의 방식으로 그것을 마무리한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마지막은 상냥한 말로, 아주 큰 각오를 하고, 시간을 갖자는 말을 하고, 제가 저와의 여행을 보내고, 그들과 멀어지는 시간을 보내며 날 성장할 수 있도록 했어야했습니다.
처음으로 집착하고, 처음으로 부지런해지고, 처음으로 남에게 훈수둘 것이 생기고, 오래전 처음으로 사귀었던 친구들이었기에 그것을 몰랐습니다. 나는 너무나 이기적이었습니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애들이 남이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가슴 한 켠이 아주 아팠습니다. 조용히 멀어졌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 애들이 너무 좋아져 그러지 못한 제가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과거의 반복이었을 것을 알기에, 당시 저의 내면에 늘상 멤돌던 공허와 혼란을 알기에 저는 그게 저의 최선임을 압니다.
유일하게 기쁜 일은, 늘 그 애들에게 미안한 사람이던 제가 더 이상 미안할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것, 내가 악역이 되었기에 그들에겐 시원하게 털어낼 일만 남았다는 것, 그 하나 뿐입니다.
그리고 슬픈 일은 이마저도 저의 이기적인 합리화일 뿐이고, 그 애들에게 저는 아주 나쁜 아이로 기억될 것이란 점, 그리고 저 개인으로서는 착한 친구를 영원히 잃어버릴 악수였다는 점입니다.
헤어지기 전에 그 애들은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이기적이고 못난 저에게 선물을 쥐어주고 떠난 것입니다.
어릴 때의 상처로 아직도 사람 간 관계를 잘 모르는 저는 그 조언을 품고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입니다.
첫째로, 남을 온전히 존중해라
둘째로, 나는 남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존중해라.
셋째로, 그럴 수 있지 라는 말을 새겨라.
넷째로, 늘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라. 늦어도 좋다.
다섯째로, 분쟁을 싫어해라.
정말 보석같은 배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삶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저는 이제 어린 저를 압니다. 그러니 저의 과거를 포함해서 나 자체를 늘 살피고 보살피며 사랑할 겁니다. 모든 일의 1순위에 나를 두는 대원칙을 세우고, 나에게 집중하고, 타인은 타인의 삶을 살고 있음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저는 너무 외롭지만, 돌이킬 수 없기에, 그리고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기에 더 좋은 선택을 했어야지 후회하면서도 현재를 납득하려고 합니다.
저는 오늘도 외롭고 고독합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혼자 세상을 살아봅니다.
이기적이고 못난 저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