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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참 이상한 꿈을 자주 꾸었다
여러가지 꿈을 꾼 날이면 항상 마지막에 꾸었고
그 내용이 심히 끔찍해서
깨어나면 꿈임에 안도했다
꿈의 등장인물은 이렇다
우선 가장 중요한 메인 준비물은 내 남자친구
나머지 인물은 매번 바뀌었다
남자친구에 대해서 간략하게 읊어보자면
미국에 거주하고, 출장이 잦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키는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체격이 건장하고 힘이 세다
정도로만 해두자
그래서 내 남자친구가 꿈에서 무엇을 하느냐면
범죄행위를 저지른다
그 중에서도 강간
피해 여성은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등
학창시절에 알던 친구들이었다
끔찍하지 않은가?
내 동창들이 내 남자친구한테
아주 강압적으로 당하는데다가
그걸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보기까지 하는 꿈
일어나면 진짜 여러가지로 황당했다
차라리 내가 당하는 꿈이면 나만 불쾌하면 되지만
친구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는 건 너무 끔찍했다
두 번 넘게 꾼 것 같지만
최근 두 번의 꿈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그냥 앞뒤 맥락 없이 남자친구가 무게로 친구를 눌러서 강제로 행위하는 꿈
다른 하나는 친구가 나한테 울면서 무언가를 토로하는데
그 내용이 위와 비슷했다
다만 달랐던 점은 내 남자친구에게 행위를 지시한 어떤 집단의 소속 인원이 있고
내 남자친구는 아무 사리 판단 없이 그냥 명령에 응한 것
이렇게만 보면 내가 쓰레기와 교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나한테 아주 잘해주고, 정말 해바라기 저리가라다
언제든지 나를 완력으로 제압할 수 있지만
한 번도 강압적으로 뭔가를 했던 적이 없었다
건전한 관계에선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딴 재활용도 못할
쓰레기 같은 꿈을 꾸는 건 왜일까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노력했고
두 가지를 추려낼 수 있었다
하나는 강제로 하는 성행위에 대한 두려움
작년 8월에 내가 미국으로 가서 남자친구를 만났던 적이 있었다
성적인 터치는 있었지만 본격적인 메인 이벤트(?)는 없었다
올해 4월에는 남자친구가 한국으로 오기로 했는데
이때는 무언가 한 번쯤은 해볼 생각이다
그런데 내가 경험이 없고 무지해서 그런지 몰라도
진짜 너무 두렵다 그 행위 자체와 피임의 스트레스가
아직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곧 하게 된다는 공포가
그리고 그 행위의 첫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두 번째는 남자친구를 '누군가에게 뺏긴다'라는 공포
남자친구에게는 이미 예전부터 같이 게임을 해오던 절친이 있다
역시 남자이고.
그런데 그 친구와 우스갯소리로 성적인 농담, 플러팅을 자주 한다는 것
...적어도 내 정서에는 잘 맞지 않아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것뿐이면 모르겠는데, 어쩌다 쉬는 날에 나랑 얘기하다가
말도 없이 그 친구랑 게임하러 사라지면 그것만큼 질투나는 일도 없더라
내가 남자한테 질투심을 느낀다는 게 뭔가 억울하고 수치스러웠다
남자친구와 절친 모두 이성애자인 걸 아는데,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서열경쟁 자체에서 밀려버린 그 느낌
절친하고 노는 게 끝나면 그제서야 나를 찾는 것 같았다
오죽했으면 내가
"나는 뭐 보험 같은 거야? 네 친구 가고 나면 나랑 놀면 되는 거야?"라며
역정을 냈었을까
그 절친 문제가 아니더라도
10000km가 넘는
소위 '롱디' 쌈싸먹는 물리적 거리
14시간 남짓의 시차라는 제약
자연스럽게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것
무얼 하는지 물어볼 수 없다는 것
남들은 다 하는 연락, 게임, 신체적 접촉
그 어느 것도 쉬이 할 수가 없다
티는 내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불안했던 것이다
당연했다
마지막으로, 꿈에 나오는 여성들은
내가 친구들에게 악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뇌가 내가 기억하는 여성들을
적당히 아무나 골라서 넣은 것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그러니까 매번 바뀌겠지
특정 여성에게 질투심을 느끼거나 한다면
그 여성만 나왔을 것이다
나는 내 동창들과 전혀 연락하지 않으니
제법 타당한 추론이다
며칠 전 대학 친구 두 명과 저녁을 먹으러 나갔을 때
'지금 저녁 먹고 있고 몇 시까진 들어갈게' 하고
자기가 원할 때 상대방에게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
'왜 그런 걸 부러워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못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그 중 한 명은 남자친구와 동거하다가
최근에 대학 편입 때문에 떨어져 있게 되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다
고작 전라도 경상도 거리 가지고 그러는 것이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하루 이틀정도 만날 수 있을텐데
한숨과 푸념이 나오는 걸 보며
어떻게 위로해주지 보다는
이제는 쟤도 조금은 알겠네 하는
얄궂은 심술이 내 마음을 먼저 채웠다
나도 참 이기적이다
매번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자기 눈에는 사랑스러운 부분들을
하나씩 다 이야기해주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저 배부른 자의 사치에 불과한 일일까
한 번은 남자친구에게
"네가 나오는 악몽을 꿨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무슨 악몽이냐고 묻더란다
차마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 내용은 못 말했고
그냥 이렇게 둘러댔다
네가 바람피는 것도 아니고
우리 이별하는 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훨씬 다양하게 끔찍한 꿈이란다
그런 류의 악몽을 꿔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꿈 속에서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막 일어난 뒤
"잘 잤어?"라고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상대방의 모습 속 괴리를
사실은 악마같은 사람인 것 아닐까 하고
아닌 걸 알아도 의심하게 되는 마음을
언젠간 그 아래 깔려서 울부짖는 게
내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나는 결국 이 정도 그릇밖에는 안 되는 걸까
이 정도 꿈만 꾸고 이 정도 생각밖에 못 하는
질투하지 않아도 좋을 대상을 질투하고
이제 롱디가 되는 친구를 위로하지 못하는
그러면서 동시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해코지할까, 나에게 등 돌릴까 두려운
그 어린 마음이 유치해서 스스로를 미워하는
사실 진짜 쓰레기는 내가 아니었을까
내가 느끼는 공포는 과연 타당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