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은 한몸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는 마주하고, 받아들이며, 소화한다. '어떻게 마주하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 나는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불행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기에 안다.
불행을 느끼는 와중에도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임을.
행복을 느끼는 와중에도 불행으로 빠질 수 있는 존재임을.
행복의 조건, 불행의 조건. 알고보면 같은 것이다.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이 조건을 알면 행복도, 불행도, 그저 하나의 현상이 된다. 정확하겐 자신이 쥐고 흔들 수 있는 현상이 된다. 그래서 행복과 불행은 별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누리고 다룰 수 있는 것 중 하나일 뿐. 나를 벗어난 무언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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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의 사람은 어느순간 생김새가 굳어져간다. 이는 좋게 말하면 완성인데. 이런 완성을 이룬 이들은 없는 생김새를 갖추지 못한다. 즉, 모든 모습이 있는 생김새라는 것인데. 이를 자기 마음대로 꺼내들 수 있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떤 순간들을 쌓아야 꺼내는 게 가능한 생김새도 있고, 어떤 조건들을 만족해야 꺼내는 게 가능한 생김새도 있다.(이는 수학을 닮아 꺼내들지 못한 아는 면에 역산을 하면, 필요한 순간과 조건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을 꺼내들기 전까지, 대다수의 인간은 자신에게 그런 모습이 있는 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생김새조차 자유롭게 다루지 못하고, 여러 번뇌와 마주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어리석음의 근원이고, 그래서 현명함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언제나 다른 방향, 다른 면으로 보인다 하여도. 발아한 근원은 같다. 차이는 하나, 어느쪽으로 나아가고 마주했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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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는 항상 나이기에 마주하는 것을 마주한다. 그것이 세상이고, 다른 존재이며, 또다른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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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누군가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고, 아는 것 외에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이는 모르는 부분을 멋대로 채우면서 일어나는 일인데.
내가 겪은 상당수의 사람은 모르는 부분을 맘대로 채우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이는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안다. 이 제멋대로의 채움은, 알 생각이 없다는데서 시작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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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방을 쉬이한다. 그렇기에 인간 세상은 인간을 알면, 그 구조가 눈에 훤히 들어오게 된다. 당장 국가가 가진 구조나, 회사가 가진 구조, 그러니까 조직을 보면 알수있다. 뇌를 담당하는 기관이 있고, 각각의 역할을 하는 기관(장기)가 있다. 그 안의 구성원은 세포로 보아도 무방하며. 이렇게 보면, 사람이란 군집체를 모방한 확장임을 알수있다.
이는 인간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게 인간 자신이기에 일어나는 일이며.
탐이 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모방해 자신이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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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내 속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