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아니면 행복하게 끝나지 않겠죠? - 익명 심리상담 커뮤니티 | 마인드카페[상담|우울증|폭력]마인드카페 네이버블로그 링크마인드카페 페이스북 링크마인드카페 유튜브 링크마인드카페 인스타그램 링크마인드카페 앱스토어마인드카페 플레이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앱스토어마인드카페 라이트 플레이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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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아니면 행복하게 끝나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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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제가 태어나기 전 부터 특히 고모들과 사이가 안 좋은 아버지는, 계속 물어뜯고 싸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서로 소리를 지르며, 때리고, 걷어차며 닥치는대로 서로를 해코지 하기에 바빴습니다. 욕설이 난무하며, 잡히는데로 부수는 그 사람. 그 때문에 경찰차와 구급차가 몇 번 오갔습니다. 막내고모는 저를 초등학교 때까지 학대했습니다. 어두운 방에 억지로 가두었으며 못 나오게 고모가 저를 방 안에서 붙잡고 있었습니다. 제 어깨를 부여잡고 계속 흔들다 밀치고 소리치며 크게 욕했습니다. 친할머니는 학대당하는 제 모습을 보고도 방관하고 홀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빠는 112를 누르며 제가 계속 울었기 때문에 고모를 신고하는 것이라고 못 박으셨으며, 흥분하신 고모는 현관 거울을 산산이 부쉈습니다. 저는 그 거울 파편이 들어간 운동화를 신고 아빠의 손에 이끌려 집 밖으로 도주했습니다. 이후 경찰차가 오고 집안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고모는 폐쇄병동으로 끌려갔지만, 친할머니를 칼로 죽이려 들었고 물건을 부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폭력으로부터 자라왔습니다. 임신하여 직장을 잃은 어머니는 어린 저를 탓하기도 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셨습니다. 어머니는 4살된 저에게 소리치면서 폭언을 했고, 저는 땅에 엎드려 울며 빌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고모들의 험한 싸움을 저는 어머니와 함께 폭력을 받아왔습니다. 때때로 문을 잠그고 둘이 조용히 숨어있었지만, 고모가 문을 부수려고 하는 등 너무 폭력적인 날에는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결국 친척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 제가 4살때 우리 가족은 따로 독립했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부모님께서 주식에 돈을 투자했지만 빈번히 실패하여 어릴때 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1억도 잃고, 아버지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우울증과 아버지의 강박증세는 점점 심해져 갔으며, 저는 그 속에서 자랐습니다. 결국 부모님은 자살생각에 휩싸이셨고 절망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저에게 죽고싶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차를 끌고 사고를 낼 생각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매일매일 싸우셨습니다. 술을 계속 마시고 감정이 격해진 어느 날엔, 짐이 가득한 캐리어를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저 두 분의 화풀이 인형이었습니다. 엄마는 ***년이라며 아빠는 제게 말했고 싸우고 화가 난 부모님은 서로를 욕했습니다. 저에게 화풀이 하기도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주무실 때, 저는 식칼을 들고 침실로 들어가 모두 찔러죽이려 했지만 자해만 했습니다. 그때 저는 11살이었습니다. 마침내 부모님은 직장을 얻고, 저는 외할머니 집에 맏겨졌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외할머니도 심한 우울증을 앓고 계셨습니다. 어린 저에게 자주 죽고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자폐아, ***같다고 욕하며 우울이 심한 날에는 그대로 누우셔서 일어나지도 못하셨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저는 배가 고파서 밥 달라고 해도 할머니께 스스로 밥도 못 차린다고 구박당했습니다. 8살 무렵 밤이나 새벽에 홀로 방치되기도 했습니다.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하게 막았으며, 제가 노는 것이 장애년 같다고 그나마 장난감 역할을 했던 머리끈 큐빅 등을 다 빼앗아 가셨습니다. 4살 때 저는 유치원에 갔지만 소외되었습니다. 따돌림을 당하며 놀림을 자주 받았습니다. 가끔씩 맞기도 하며 유치원 선생님은 저에게 ***은 수건을 던지고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등 학대도 받았지만, 가족과 친척은 몰랐습니다. 5살이 된 저는 위험한 행동을 했습니다. 난간에 매달리며 떨어지면 어떨지 생각했습니다. 이후에 가족과 친구들을 원망하며 옥상에 올라가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그 이후에는 넥타이로 목을 조르거나, 도로에 뛰어들고, 죽으려 산에 올라갔습니다. 몰래 아파트 높은 층에서 뛰어내리려고 작정했고, 팔을 그었으며, 11살 때부터 칼로 배를 찌르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친척들은 저를 몰라주었습니다. 게다가 친가쪽 사촌오빠에게 얼굴을 면도칼로 상처를 입을 뻔했습니다. 외가쪽 사촌오빠에게 맞아 팔이나 어깨 등이 빨게지고, 발차기에 당하며 팔이 꺾이고 목이 졸리는 등 폭행을 당했습니다. 사타구니에서 점점 올라오던 오빠의 손이 제 성기와 엉덩이에 닿는 등, ***을 당했을 때에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6살 때 저는 피아노 학원에 다녔습니다. 40대였던 남성인 피아노 원장은 저를 사랑한다 했습니다. 그는 교회 장로였다고 부모님께 대강 전해들었고. '엉덩이가 너무 좋아서 정말 만질 수 밖에 없다.' '네 엉덩이만큼 사랑스러운 게 없다.' 6~7살인 제가 들은 말입니다. 제 중요부위를 만지고 찌르거나, 자신이 원할 때마다 키스를 하며 얼굴에 침을 묻혔습니다. 학원을 끊은 뒤에도, 그 학원의 위치와 제 등하굣길이 겹쳐 계속 만나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참고로 아버지는 그저 학업에 열중하셨습니다. 제가 98점을 맞은 날에도 화를 내시며 벌했습니다. 시험지를 찢어버린다며 압박하고, 전교 1-2등을 해도 제대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끝까지 말리지 않았으며 결국 저는 초등학교 때에도 낮에는 숙제를 하며 새벽 3-4시까지 공부했습니다. 중1에는 5개의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따돌림을 당했고, 가는 학원, 교회마다 놀림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를 때리고, 차고, 넘어뜨리고 마구 밟았습니다. 저를 소외***고, 욕했고, 위협했습니다. 발레 학원에서는 제 옷가지들을 구석에 숨겼고, 옷을 다 벗은 채 속옷만 입은 저를 놀렸습니다. 중학생이 되고 학교에선  저를 따 먹겠다, ***할까... 이러한 성희롱을 받았습니다. 태권도 학원의 또래들은 저를 죽일 뻔한 정도의 실수를 했지만 사과조차 없었습니다. 태권도 학원에 다녔던 7살 무렵 어떤 남자 아이가 저를 뒤에서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제 성기와 *** 쪽을 수차례 찌르며 조물거렸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저 방관했고, 저는 손가락을 빼라는 등 반항을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나중에 태권도 선생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걔네는 네가 좋아서 그랬던 거야."이렇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따돌림에 비명을 지르고 되갚는 것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 연필 한 자루 들고 맞설 때 살인마라는 야유를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제게 악마였습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한 아이를 넘어뜨리고 집단 린치를 가하거나 손발을 묶고 *** 대신 사용한다며 해당 아동을 청소도구처럼 바닥에 끌고 다녔습니다. 그 아이를 도우려다 제가 타겟이 되었으며 그렇게 저는 위에 설명한 따돌림을 당하고 초등, 중등 생활 9년간 더 움츠러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아(5살) 때부터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두렵고, 환멸이 났습니다. 저는 환각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침대 위에 잘린 팔과 온갖 장기들이 있어 피범벅인 모습을 봅니다. 또한 계속 눈코입이 없는 귀신과 그림자들이 찾아와서 저를 괴롭히곤 합니다. 생각해 보니까 저는 환각, 환청, 환후, 환촉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3층을 훌쩍넘는 끔찍한 귀신이 따라오고, 너무나도 긴 검은 팔들이 나를 붙잡았습니다. 눈이 수십개가 붙어있는 괴물이 나를 향해 돌진합니다. 머리가 터져서 뇌수와 피가 질질 흐르고, 조각난 뇌를 흘리는 아이가 나한테 걸어왔으며. 날카로운 이, 그리고 찢어진 입을 가졌고, 눈이 파여서 검은 피눈물을 흘리는 귀신이 나를 잡아먹으려 했습니다. 정확히는 그런 망상에 시달렸습니다... 때때로 눈에 보이는 귀신들이나 사물들을 만지고 느낄 수 있습니다. 피 냄새나 다른 이상한 냄새를 자주 맡습니다. 피아노 소리, 비명 소리, 웃음 소리가 자주 들리며 죽으라는 협박도 들었습니다. 살려달라는 간절한 소리도 들립니다. 대화를 나누는 소리는 그게 환청일 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가 슬프고 안절부절합니다. 내가 나같지 않고, 내 몸통과 영혼이 다 분리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상담 끝에 폐쇄병동에 입원했고, 두 번 자해소동을 일으켰습니다. 33일동안 입원했지만, 나아진 점이 거의 없었습니다... 과거대신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보라고 우리들은 주구장창 그런 말을 들어왔을 겁니다. 저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옥같았던 학교에서 저는 더이상 잘 버텨낼 수도 없는데, 계속 등교를 강요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자살시도를 한 것을 들킨 후에도,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시기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은 기독교에 성소수자를 미워하는 집안에서, 저는 범성애에 가까운 성소수자여서 소외당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자를 들고 아파트 2층으로 향했습니다. 평소에도 그랬듯이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높은 층에서 떨어지기에는 죽을 의지가 아주 부족했습니다. 의자를 놓고 그것을 밟고 올라가, 난간에 걸터 앉았습니다. 그리고 망설였는데, 아래를 내다보면서 총 8명 이상을 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뛰어내렸습니다. 떨어지는데 체감상 2~3초걸렸습니다. 얼굴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온몸에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어느 한 아주머니가 제가 떨어진 것을 보고 놀라 소리질렀습니다. 저는 정신을 차렸고 얼굴을 만져보니 피가 흥건했습니다. 저는 울지도 못하고 숨만 거칠게 몰아쉬었고, 그 자리에서 재빨리 뛰쳐나왔습니다. 그 전에 아주머니는 도망치듯이 자리를 떴습니다. 저는 의자를 들고 피투성이가 된 채 집으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응급실에 들렀습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말하길 코가 골절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부러지거나 금이 간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피가 묻은 얼굴을 전부 닦아내고 팔과 다리에 난 찰과상을 치료했습니다. 눈을 보니 실핏줄이 터졌습니다. 사실은 너무나도 비참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자해와 자살시도로 몸도 마음도 다 너덜너덜 합니다. 이후에도 잦은 투신시도가 있었고 약물 자살시도와 자해로 폐쇄병동, 일반 병동 각각 1회씩 더 입원하였습니다. 몸에 남아있는 약기운을 없애기 위해 사흘 동안 해독제를 링거로 맞았습니다. 제게 결국 자폐가 있다는 진단을 뒤늦게 받았습니다. 19살에 저의 발달장애를 정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학대받아온 게 내 탓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외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장애아가 맞았으니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었나... 너무 힘듭니다. 지금은 날 위하는 가족, 힘이 되는 친구와 남자친구를 만났지만 전부 다 내려놓고 나 스스로 결단을 내리길 바랍니다. 과거의 일은 과거일 뿐이지만, 저는 못합니다. 더는 못합니다. 무섭고 괴로워서 못하고요. 이젠 도와달란 말도 못해요. 그냥 제가 자살로 죽어도 딱 눈 한번 감고 저를 좀 안아주세요,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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