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나는 시작부터 꽤 많은 것을 가졌었다.
누가 봐도 예쁜 외모, 명석한 두뇌, 나이답지 않은 그림실력, 깊이있는 생각들, 마음을 움직이는 글솜씨, 논리정연한 언변, 높은 자존감, 어떠한 것에도 기죽지 않는 당당함, 타고난 운동신경, 치유의 재능, 뛰어난 기억력, 악바리 정신 등등등.
....이제는 안다.
이게 다 내가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이구나....
다 언젠가 사라지고 나를 슬프게 할 것들이구나...
영원한 것은 없기에.
지금도 잃어가는 것들이고,
딱 그 크기만큼 공허함과 상실감이 몰려온다.
내가 살을 빼더라도 예전만큼 예뻐지진 못할 것이고
내가 공부를 하더라도 예전만큼 똑똑하진 못할 것이고
내가 그림을 그리더라도 예전만큼 나이에 비해
잘 그린다는 말을 듣기엔 나이를 먹어버렸고
깊이있는 생각은 지금도 하지만 우울이 깊어져서
말이나 글이 예전만큼 정제되지도 않고
자존감과 당당함은 사회의 편견에 기가 눌려버렸고
운동신경은 살이 찌면서 둔해졌고
치유의 재능은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크게 데이며
나를 너무 힘들게 하기에 버렸고
뛰어난 기억력은 우울감과 나이로 인해 감퇴 중이고
악바리 정신으로 10년 살다가 보상도 못 받고 지쳐서
이젠 그냥 쉬고 싶어졌다.
나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갔다.
다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지만,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편해진다.
화려한 채로 기억 속에만 머무르게 내버려두고,
인사하며 보내주자. 닮고 싶고, 닿고 싶은
아직도 내 롤모델인 어린 시절의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