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하루도 버티고야 말았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갑작스러운 업무 때문에 하루 종일 산을 타며 여러 생각을 했다.
이렇게 사람 안 다니는 곳에서 죽으면 누구도 금방 발견하진 못하겠지. 그렇지만 다행히(?) 나는 키가 작고 올가미를 묶을 줄 모르니까 나무에 매달려 죽진 않을테니 오늘은 살겠네.
그 사람도 언젠가 내게 등산 이야기를 했었지.
이렇게 *같이 일하면서 버텨도 회사에선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고 높은 분들은 개인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니까 외면할테니 이 짓도 내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되겠지.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을 산을 오르내렸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삼켜 냈다.
2.
나라고 늘 이 지경이었던 건 아니다. 어설플지언정 낭만을 떠올리던 때도 있었고 감히 최선을 다 하겠단 말을 입에 담던 날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받아 들이기 힘들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만이 날 죽이려는 듯 한꺼번에 몰려 들어 등을 떠밀어 대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졌을 뿐이다.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는, 그러면서 워라밸도 잘 유지하고 고연봉에 배우자나 미래를 약속한 동반자까지 있는 드라마 속 직장인은 아니지만 이제 좀 쉬고 싶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떠올리는 ‘쉬고 싶다’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당장 손에 쥔 휴가만 봐도 올해가 두 달도 안 남았는데 두 손으로 다 못 셀 정도로 남았다. 그런데... 쉬면 정말 편해질까.
3.
솔직히 아직도 내가 살아 봐야 뭐가 얼마나 좋아지겠느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렇지만 적어도 요즘은 화장실 문을 온통 테이프로 바르고 착화탄을 피워서 죽은 내 모습을 상상하거나 퇴근하다 말고 차 안에서 추하게 우느라 길가에 차를 대지도 않는다. 폭식은 하지만 날카로운 물건으로 자해를 하진 않는다. 다시 저 아래로 가라앉을 날이 오겠지만 아무튼 요즘은 그렇다.
4.
만약 누군가에게 오래 사랑받을 수 있다면 나는 나를 버릴 수 있을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누군가에게 원망이 아닌 선망의 대상이고 싶다는 마음이 이따금씩, 아니 꽤 자주 거칠게 밀려든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