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명한 책임자를 물색하는 것은 마녀재판을 열기 위함이다.
그런 기색들을 읽을 때마다 슬퍼진다.
추모와 애도의 마음 사이에 숨어들어서 사람들을 변질시키려는 그런 기색들은 언젠가 이 사회를 무너뜨릴거다.
어째서 그들의 끝이 이렇게 이용당해야 하는 걸까?
그들의 명복을 빌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와 합의만으로 충분한 일을. 물컵에 물을 더 부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가 더 병들어간다.
그래서 고민한다.
내가 지어낼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이런 길이 더 나아보이지 않냐는 제시를 할 수 있을까? 내가 내보일 때는 이미 늦지 않았을까? 내가 이런 메시지를 넣은 이야기를 만들 자격이 있는가?
나는 모자란 사람이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던진다. 이 모자람이 채워지고 나서야, 이 메시지를 이야기에 담을 수 있겠지.